요즘 한국인들에게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생선회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만큼 생선회는 모든 국민들이 애용하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특히 활어 생선회는 고가의 음식임에도 모두가 선호하는 음식임은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사시미(생선회)와는 달리 우리가 좋아하는 생선회는 우리식으로 먹는 것이 훨씬 맛있다는 것을 아마 일본인들은 모를 것입니다. 물론 생선을 써는 방법에서도 우리식의 생선회와 일본의 사시미는 칼질이 다릅니다. 일본의 사시미는 결을 따라 얌전하게 칼을 눕혀 썰지만 우리의 생선회는 그야말로 촌스러울 정도로 씀벅씀벅 썰어 그것을 상추나 깻잎에 얹어 초고추장이나 된장을 첨가하고 마늘과 매운 고추를 더하여 먹으면 그 맛은 세상의 어떤 음식이 주는 맛과 견줄 수가 없을 만큼 일품입니다. 그렇다고 일본의 사시미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간장에 냉이고추(와사비)를 풀어 넣고 품질 좋은 참치 부위나, 방어, 광어 등 사시미와 청주 한 잔을 곁들여 먹는 맛 또한 천하일미 중의 하나이니까요.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어촌이 아닌 곳에서 성장했거나 도회지에서 자란 사람들은 날생선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서울에서도 몇 되지 않는 일본 식당들이 있었지만 현재의 일본 식당처럼 일본인들이 주식으로 사용하던 생선들을 이용한 사시미와 스시를 내놓는 식당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저 일본 음식과 비슷한 모양새에 초고추장을 넣고 비벼 먹는 한국화된 회덮밥이나 우동, 돈부리, 돈가스 정도가 모두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려서는 사실 비위가 약해 날생선이나 돼지고기를 먹을 수가 없었는데 스시와 사시미를 먹으려고 노력했던 것은 20세 무렵 샌프란시스코의 일본 타운에서입니다. 외국인들과 자주 가게 되는 일본 식당의 점심 초대에서 일본의 정통요리인 사시미와 스시를 먹지 않고서는 왠지 소외되는 것 같아 할 수 없이 눈 딱 감고 먹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그중에도 날로 먹는 새우(아마에비)가 가장 힘들었는데 지금은 날새우 스시나 사시미가 제일 맛있고 징그럽다고 하는 산낙지, 제주도 자리돔 물회도 가장 선호하는 음식이니 사람의 입맛도 간사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세계적인 음식이 되어버린 사시미와 스시에 푹 빠져서 이 음식의 본 고장인 일본의 북쪽 홋카이도에서 남쪽 규슈 지방의 도시까지, 그 지방의 역사 문화를 탐방하며 그 고장에서 가장 사시미와 스시를 잘 한다는 식당은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가 맛에 탐닉한 적도 많았습니다. 더욱이 일본 음식에 어울리도록 만든 일본 도자기에 담아내는 스시나 사시미의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우리의 질박한 생선회와는 또 다른 멋이 있으니 미를 추구하는 직업을 가진 나로서는 그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수십 년을 날생선 음식을 먹다 보니 이젠 프로급 수준으로 생선의 품질을 가려낼 수 있으며 생선을 사다가 집에서 사시미와 스시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 일본 음식을 먹다보니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스시를 만들어 먹을 때 스시와 김치를 곁들여 먹을 때가 많았습니다. 일본 식당에서는 스시를 김치와 함께 먹을 수 없지만 집에서 먹다보니 김치와 함께 먹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렇게 먹을 때마다 스시의 맛이 훨씬 좋아 더 많이 스시를 먹게 되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음식도 음식끼리 궁합이 있는데 스시와 김치의 궁합은 참으로 절묘합니다. 카레라이스와 깍두기 김치를 먹을 때보다도 훨씬 오묘한 맛이 납니다. 담백하고 단순한 스시와 맵고 짜서 강렬한 맛을 내는 김치, 심심한 백김치와의 음식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게 의외여서 믿기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히려 양념이 가미된 달콤한 갈비나 불고기와 김치보다 김치가 어우러진 스시의 맛이 훨씬 좋습니다. 김치가 스시에 더해주는 맛과 향의 조화가 다른 어떤 음식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니까요.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이유를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김치를 먹게 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음식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일본 정부가 작년에 유네스코(UNESCO)에 일식(日食)을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신청을 했다는 소식과 캘리포니아주의 글렌데일 시의 공청회에 일본인들이 몰려와 시위를 벌였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착잡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정식으로 요청한 세계유산등록 명칭은 일본인의 전통적인 식문화인 ‘와쇼쿠(和食 일식을 일본에서는 이렇게 호칭)'입니다.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사회적 관습이 자국의 정체성을 증명할 때 가능하다고 합니다. 물론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고급 식당의 이미지가 확실하게 형성된 일식-특히 스시와 사시미, 테리야키와 우동-은 많은 이들이 찾을 만큼 대세입니다. 저(低)칼로리라서 건강식인 데다 맛도 좋으니 세계인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떠오르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날생선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캐나다에서도 여기저기 눈에 띄게 많이 생겨나는 것이 일본식당입니다.
이렇게 일본이 일식 세계무형문화유산 등록신청을 정부의 국책사업으로 추진하여 자국의 자존심을 부추기고 위상을 세우려 하는 한편으로 캘리포니아의 글렌데일 시에서는 일본계 주민들 120명이 몰려와 반한 시위를 벌이며 추태를 부렸습니다. 지난 4월 시의회를 정식 통과한 글렌데일 시의 ‘위안부 기림비 평화의 소녀상’은 7월 30일 제막식을 앞두고 있습니다. 디자인에 대해 주민들의 마지막 의견을 조율하는 시간에 일본계 주민들이 거센 항의와 야유를 퍼붓는 바람에 공청회 진행이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기림비 건립에 강력히 반대하며 “일본군 위안부는 역사 날조다”, “위안부 문제는 인권문제가 아닌 한일 외교문제다”, “위안부는 창녀”라는 망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장하며 시의원들의 발언에 야유를 보냈습니다.
일본인과 한국인은 언행과 차림새만 조금 다를 뿐 지정학적, 생물학적으로 보아도 많은 것을 이 두 민족처럼 닮은 민족은 지구상에 또 없습니다. 기름기가 흐르는 차지고 쫀득쫀득한 쌀을 주식으로 하는 유일한 민족, 된장 간장, 김 다시마, 마른 생선이나 날생선을 사용한 음식, 소금이나 된장 간장으로 절여 만든 절임 밑반찬 등의 식단을 가진 민족입니다.
김치를 기무치라고 부르며 김치를 즐겨 먹는 일본인도 있고 미소시루가 아닌 된장찌개나 시뻘건 육개장을 좋아하는 일본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본인들 중 스시와 김치를 같은 상에 올려놓고 스시를 먹으면서 김치를 함께 먹을 때 얼마나 맛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고급 음식인 스시를 어떻게 김치와 같이 먹느냐고 인상을 쓸 일본인도 있을 것입니다. 시각적으로는 상차림이 이상해 보여 아름답고 깔끔하게 차려 나오는 스시와 소박한 김치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일본인들은 웃을지 모릅니다만 일본의 많은 도시의 슈퍼에서는 김치를 팔지 않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지방 도시에서도 쉽게 김치가 발견됩니다. 캐나다의 일본 슈퍼에서도 김치를 팔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들도 김치를 좋아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스시와 김치 맛의 조화가 매우 뛰어남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 이 또한 안타깝습니다.
국가의 발상과 언어의 태동, 많은 분야에서 한국의 기가 흐르고 있는 문화유산들, 오늘날 밥상에 오르는 도자기 문화조차도 한국으로부터 전래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이자 진실입니다. 그들의 자긍심의 근원인 천황조차도 그들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과는 그 무엇이라도 서로 연계되는 것을 피하려는 정서가 무의식 세계에 깔려 있을 뿐 아니라 일본 정부는 그들이 조선에 저지른 만행을 반성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의 후손에게 왜곡된 교과서를 통하여 바르지 못한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일제치하에 강탈당한 한국의 문화유산, 징용 위안부 문제, 독도에 대한 일본의 야심 문제 등 일본과 한국 사이엔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정말 가깝고도 먼 일본입니다. 정부가 그러하니 일본 시민들의 의식은 어떻겠습니까? 물론 선량하고 양심적인 일본인들도 많습니다. 어디선가 일본인들의 혐한시위를 반대하는 일본인들이 있고 바른 뉴스를 보도하는 아사히신문 같은 언론사도 있습니다.
한민족과 일본민족 사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태생적 문화적 역사적 상대성을 지니고 조상 대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부정하고 국가의 자존심만을 지키려는 우경화된 편협한 일본정부, 왜곡된 비역사적 인식과 선민의식에 대한 환상이 한일 두 국가의 미래를 위협하는 애물단지임을 모르는 점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세상에 홀로 살 수 있는 사람 없듯이 국가도 마찬가지, 일본 정부는 겸손하고 진지한 자세로 과거사를 반성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초석이 될 수 있는 겸손의 시대로 전환할 수는 없을까요?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김치와 스시의 조화처럼 밝은 미래와 강력한 기상을 두 국가의 후손들에게 남겨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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