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입헌군주제라는 상상에서 쓴 <궁>이라는 만화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조선의 왕조가 유지되고 고궁에 왕족들이 살고 있다는 가정은 신선한 발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재도 조선 왕조의 맥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05년 전주 이 씨 대동 종약원은 황실의 적통을 잇는 자손인 '황사손'으로 이원 씨를 추대했습니다. 조선 왕조가 현재까지 이어졌다면 황사손은 왕자이자 왕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원 씨의 증조부는 고종입니다. 조부는 고종의 5남인 의친왕이고 부친은 의친왕의 9남 이갑 씨 입니다. 이 황사손 이원 씨를 지난 21일 고종의 92주기 기신제에서 만났습니다.
이원 씨는 5년 전까지만해도 그의 이름은 이상엽이었습니다.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던 평범한 40대 가장이었던 그의 운명은, 조선의 마지막 황세손 이구 씨가 돌아가신 뒤 갑자기 황세손의 양자로 결정되면서 큰 전환점을 맞게 됐습니다. 이름도 황실 족보에 있는 이원으로 바뀌고 다니던 회사도 그만 둬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갈등도 많았지만 이구 황세손의 영결식 뒤 3년 상을 치러내면서 점차 황사손에 대한 소명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다음은 황사손 이원 씨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왕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뜻은 무엇입니까?
오늘(21일) 은 고종 황제 92주기 되는 기신제인데요. 각 왕릉마다, 조선왕릉 42기입니다. 2기는 지금 북한에 있고요. 남한에 40기가 있는데 각 릉마다 왕릉에서 지내는 기신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 사가에서 얘기하는 조상께서 돌아가신 날을 기리면서 우리가 제사를 지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왕릉마다 이제 제사 기일이 있는데 특히나 왕릉 기신제, 고종황제 기신제는 다른 왕릉 40기와 다 같이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가 됐습니다. 따라서 저희가 지키고 있는 왕릉 기신제, 제사를 모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5천년 이상을 이어왔던 우리 가장 중요한 문화 유산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시대에 황사손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황사손의 의미는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왕과 황제 적통을 이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지금은 왕실과 황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조선왕조에 있었던 왕실과 대한제국의 황실에 있었던 제사를 제가 직접 참여해서 옛날에 왕이 하시던 역할을 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제향이 있기 전날은 마음가짐부터 아무 것도 먹거나 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제사를 지내기 위한 마음가짐을 갖고 제향에 임하게 됩니다. 지금의 제향의 의미는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던 가장 중요한 우리의 정신문화유산입니다.
하여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사장으로서 옛날에 왕이 행하던 왕권과 또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의 주체였던 가장 중요한 사상이 조상을 모시는 가장 중요한 효, 그리고 충의 사상이 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이루어지는 제사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나를 지금에 있게 만들어준 조상께, 그리고 나의 아버지, 어머니께 드리는 가장 중요한 우리의 효 문화 사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2005년 7월 19일, 5년전이죠.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이구 황세손께서 서거하신 이후에 저는 대한제국 적통을 이은 사람으로서 황사손, 이을 사자를 넣어서 황사손이라는 위치에, 또 황실에 있었던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많은 제사를 지내오면서 또 국가와 연관된 많은 제향을 지내오면서 그리고 조선왕릉 세계문화유산 여러가지 것들을 직접 경험하면서 제가 지금은 갖고 있는 생각이 황사손은 대한제국의 적통을 이어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으로서의 직함을 가졌다고 봅니다. 그 직위라는게 결국은 요즘 시대에 와서 제사만을 행하는 사람에서 어떤 가장 중요한 것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도 역할을 수행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합니다.
황사손이 되셨을 때 심정은 어떠셨나요?
5년 전, 구황세손께서 서거하시고 대동종약원 그리고 문화재청 주관으로 국상을 치를 때, 저는 그 당시에는 그냥 일반인과 똑같은 직장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저희 집안에 제가 누구의 후손이라는건 알고 살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지금은 없어진 왕실이나 황실을 대변하는 자로서의 역할은 생각을 못했습니다.
저 또한 모든 사람과 똑같이 역사에서 배웠던, 그리고 어떻게 보면 확실하게 지금도 자세하게 배우질 못하는 그런 역사 속에 있었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부분들을 학교에서 배운대로 기억했었기 때문에 그게 극히 자랑스럽거나 극히 제가 해야될 여러 가지 일들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받아들였을 당시에는 굉장히 제가 당황스러웠고 힘들고 혼란스러웠고 그런 부분을 지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역사를 다시 공부하면서 저희가 나라를 빼앗겼던 역사 속에서 식민지 사관이나 또는 일본에 의한 주입적인 역사 속에서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나, 그리고 지금도 역사에 있어서 우리가 제대로 알고 배워야 될 부분들을 배우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좀 더 우리가 알아야 될 것, 빼앗겼던 문화, 그리고 다시 찾은 문화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고등학교의 역사의 수업이 필수가 아닌 선택 과목이라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자기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른 나라의 문물과 다른 나라 역사, 문화와 언어만 한다 그래서 세계 중심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했던 우리 선조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아버지, 어머니들의 삶의 가장 중심이 뭐였는지를 다시 생각하고 다시 역사 속에서 그런 것을 찾았을 때 우리가 세계 중심이 될 수 있는 제대로 된 나라가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황사손이라는 5년 전의 저의 생각은 제가 접하지 못했던 그런 역사 속에서 혼란스러웠고 이제는 역사를 하나하나 다시 찾아가면서 이제 다시 내가 해야될, 내가 가야될 길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는 황사손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황사손으로서 가장 보람된 일을 말씀해 주시죠.
우선은, 최우선적으로 작년에 있었던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40기에 대한 등재입니다. 남한에 있는 40기의 왕릉을 직접 다 참배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직접 조상들이 계신 곳, 그리고 가장 우리 조선왕조, 대한제국까지 가장 중요했던 정신은 유교에 입각한 충, 효에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직접 참배를 하고 왕릉의 상태를 살펴보고 그리고 유네스코 답사팀이 왔을 때 직접 옛날에 임금이 행하셨듯이 지금 태조 고황제가 계신 건원릉에서 건원릉 제향을 친향례. 왕이 직접 제향을 참여한다고 해서 친향례라고 하는데요. 그 친향례 행사를 재연을 했습니다. 그 때 유네스코 답사팀의 단장이 중국의 역사학자이자 교수인데, 그 분께서 하신 말씀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 위한 자연적인 경관이나 또 왕릉 하나도 훼손된게 없이 잘 보존이 됐지만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후손들이 왕릉에 직접 600년전에 있었던 제사의 예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습니다. 그것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부분이고요.
그리고 민간단체의 행사에 아이들 교육이나 또는 여러 어머니회에서 초청을 합니다. 조선왕조의 자랑스러운 그런 문화 유산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고 그런 아이들로부터 또는 일반 어머님들로부터 그런 말씀을 들을 때, 아 그 동안에 몰랐지만 정말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을 잘 지키고, 또 그런 것들을 앞으로 아이들에게 얘기하겠다는 어머니 말씀을 들었을 때 그럴 때 가장 그 동안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그런 부분들이 가장 저한텐 고마웠던, 그리고 그런 것들을 알릴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게 가장 고마웠던 순간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이제 경술국치 100주년 되는 해입니다, 올해가. 어떻게 보면 나라의 국운이 100년 전에 고종황제께서 제국주의에 의한 여러가지 열강의 침입을 예견을 하시고 그 시기에 1897년에 조선 왕조 마지막 임금으로서 대한 제국을 건립을 하신 이유가 더 강한 나라를 만들고자 외세 침입에 대비하시고자 했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국에서 왕실 또는 황실 이런 제국으로서의 우리 문화유산은 없어졌지만 대한민국이 나라를 빼앗긴 이후 100주년 되는 이 시기가 어떻게 보면 주변의 지금 여러가지 열강들의 어떤 상황들을 파악해 봐야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경제력을 가지고 자본주의적인 침략을 다시 또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일본에 의한 자본이 우리나라에 지금 문화적인 부분들, 예술적인 부분들이나 한류라고 한동안 얘기되었던 한류까지도 잠식할 수 있는 막강한 자본력으로써 우리나라의 문화를 지금 소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이 시기에 우리가 회복하지 못한 우리의 정신문화유산, 가장 고급스러웠던, 가장 중요했던 문화가 있었던 왕실과 황실의 역사를 다시 파악하고 거기서 필요한 지금 이 시대에 재현될 수 있는 그런 문화적인 어떤 복원이 지금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더 정부와 그리고 민간단체의 협조를 통해서 그런 왕실에 있었던 문화를 연구하고 그것을 국민들이 좋아할 수 있는 그런 문화 컨텐츠로 만들어내는 일이 굉장히 지금 시기에 중요하다고 봅니다.
곧 올해 G20 세계정상회담이 우리나라에서 열립니다. 각 국 귀빈들이 서울에 오게 되면 결국 궁, 조선시대에 있었던 지금 비어있는 궁에 대한 여러가지 채워질 수 있는 많은 문화적인 행사가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문화적인 행사를 조금 더 우리가 왕실에 있었던 또는 황실에서 재현됐던 그런 문화들을 지금의 시대에 맞게끔 잘 복원시켜서 그것들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봤을 때도 훌륭한 전통, 훌륭한 뿌리가 있는 민족으로서 보여질 수 있게끔 그런 일들이 다시 재현되고 그런 것들이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문화로써 보급되어지기를 바라면서 제가 그런 것을 일반인에게 얘기할 수 있고 우리가 갖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일반인들이 참여해서 볼 수 있게끔 그런 것들을 알리고 보급시켜 나가는데 일조를 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올해가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나라를 빼앗겼던 100년 되는 해입니다. 그 시대를 잠깐 역사 속에서 회상을 해보면요, 결국 우리는 준비가 안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일부 식민지 사관에 의해서는 황제가 무능했기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다. 물론 가장 중요한 최고 통치권자가 모든 사항을 다 수렴해서 강하게 나라를 지켰어야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빼앗겼던 그 부분만 가지고 얘기를 한다면 더 이상 발전된 나라로서의 강국이 되기 위한 마음의 준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 무엇이 나라를 빼앗길 수 밖에 없었는지, 황제는 왜 대한제국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신하를 또는 국민의 여러가지 마음을 통합해서 나라를 지켜내지 못했는지, 그런 것들을 연구해서 지금 이 시대는 과연 우리가 그런 것들을 잘 지켜내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다시 또 전쟁이나 무력에 의한 침공은 아니겠지만 일본의 지금 문화적인 어떤 그런 자본에 대한 침략이나 또는 끊임없는 독도에 대한 얘기나 또는 중국이 지금 세력을 확장시켜 가면서 이미 동북공정을 통해 우리나라 역사를 자국의 역사화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문화 컨텐츠 시대에 우리 것들을 점점 빼앗겨가는 시대에, 100년 전에 열강들이 무기로 침략을 했다면 이제는 자본으로 침략을 하고 정신으로 침략을 하고 있는 시기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지금 이 시기는 그 때 빼앗겼던, 그 때 준비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지금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될지를 생각을 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치욕스러웠던 역사만을 얘기하고 되풀이할게 아니라 이제는 지켜내야될 것이 무엇이고, 빼앗겼던 뿌리에 대한 정신을 어떻게 지금 이 시대에 강하게 유지, 발전시켜 나가야 될지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될 시기라고 생각을 합니다.
원본: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703352
첫댓글 글을 읽어 보신분들 소감 한 말씀 뎃글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러한 기사와 방송이 많이 보도되었으면 좋겠네요. 황실에 관한 뉴스가 방송을 자주 타야만 더 이슈화 될 수 있고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우리 황실의 현주소와 비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계시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