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의 소모적인 논쟁은 피해야합니다. 알미니안주의가 현재는 수정알미니안주의로 교리가 변하면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수정 알미니안주의는 알미니안 주의 사상중에서 마지막부분인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부분을 수정하여 그 부분은 칼빈주의의 성도견인교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도 계통 분류가 다양하지만 핵심교리만 정리하겠습니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1. 칼빈주의의 5대 교리
1) 인간의 전적무능력(Total Inability)
웨스트민스터신경에 인간의 「전적 무능력」의 교리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이 스스로 죄에 빠짐으로 구원을 얻을만한 선행의 의지력을 전연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사람은 선에서 멀어지고 죄에서 죽었으니 자력으로는 회심할 수 없을 뿐만아니라 하려고 하여도 못하나니라」
바울, 어거스틴, 칼빈은 전 인류는 아담에게서 범죄하였다는 사실과 모든 인류는 핑계할 수 없다(롬2:1)는 사실로 출발한다. 바울은 누차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고(엡2:!) 하나님에게서 떠나서 할 수 없는 자리에 빠졌던 자라고 말하였다(엡2:12).
성경은 철두철미 인간은 전적으로 파멸되어 자구할 수 없는 죄벌과 부패의 상태에 있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처지대로 그들을 그냥 멸망하게 버려두었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롬5:12, 엡2:1-3, 렘13:23, 시51:5, 롬3:10-12)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성경의 주요 관심은 죄인의 구속에 있다. 따라서 이 선택교리는 당연 중요한 지위를 점하는 것이다. 개혁교회의 신조는 사람이 나기전에 벌써 영생할 자와 멸망할 자를 분별하여 택정하는 영원적 제정이 있음을 주장한다.
선택된 자들은 죄벌에서 구원되고 행복과 성결의 자리에 인도되고, 선택을 받지 못한자들은 그들의 멸망상태 그대로 방치되고 마는 것으로서 그들의 죄 때문에 정죄함을 받는 것이고 결코 부당한 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웨스트민스터신경은 이 교리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제정에 의하여 또는 그의 영광을 위하여 어떤 사람들과 천사들은 영생을 얻게 예정되고 어떤자들은 영원한 멸망을 받게 예정되었느니라」
성경은 선택을 개인의 업적에 무관계하게 이미 과거에 있는 일로 또한 전연 주관적 행위인 것으로 제시한다(롬9:11-13, 살후2:13, 마24:24, 31, 롬11:7, 5, 벧전2:9)
3) 제한적 속죄(Limited Atonement)
알미니안파는 「그리스도께서 인류 전체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주장하고 칼빈주의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은밀하신 목적과 의도에서 선택된 자만을 위하여 죽으셨는데 선택된 자 이외의 사람에 대하여서는 그들이 일반적 은혜에 참예하는 자인 범위내에서 부대적 관계를 가지는데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본교리의 의미는 「창조적 속죄」라기 보다 「유한한 대속」이란 말을 사용하는 편이 일층 명료하게 될 것이다. 속죄의 가치는 전 인류를 구원하기에 족하나 선민만을 우호적으로 구원한다(요17:6, 9, 10, 요10:14-15, 엡5:25)
4) 불가항적 은혜(Irresistible Grace)
웨스트민스터신경은 불가항적 은혜에 대하여 「무릇 영생에 이르기로 예정하신 사람들은 ...... 말씀과 성신으로 저희들을 확실히 부르사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은혜와 구원을 얻는 지위에 이르게 하신다.」고 말한다.
칼빈주의자는 신의 구원은혜의 불가항적인 사실을 확신한다. 죄인의 구원에 관한 능력을 전부 하나님에게 돌리는 견해만이 복음적인 신앙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가리켜 불가항적 은혜라고 칭한다. 중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고 영적 생명의 새원리를 인간의 영혼에 부어주는 하나님의 자유은혜의 행위이다. 이와 반면에 성화는 외부생활에 나타나는 잔재 점차 제거하여 그리스도의 성품을 진하게 덧입어야 한다. 중생과 성화는 불가항적 은혜로 되는데 성화는 하나님과 연대사업으로 이루어 가는 것이다.(딤전1:15, 삼하7:18)
5) 성도견인의 은혜(Perseverance of Saints)
성도견인의 은혜에 대하여 웨스터민스터신경은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자의 수에 가하여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성령으로 깨끗케 하신 자는 전적으로 궁극적으로 은혜의 상태에서 타락될 수는 없다. 이러한 자는 최후까지 확실히 보존되어 영원히 구원을 얻느니라.」
다시 말하면 일단 진정한 기독자가 되면 두 번 아주 타락하여 멸망하는 일이 없다. 비록 일시적으로 죄에 빠져 들어가는 일이 있어도 필경은 다시 돌아와서 반드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궁극적인 구원은 인간의 선행으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빌1:6, 요일5:13, 요10:28-29)
2. 알미니우스 주의(Arminianism)
칼빈파의 정통주의에 대하여 인도주의적 반동을 일으킨 것이 있으니 그것이 곧 알미니우스 주의이다. 이는 인본주의와 재 세례파가 화란에서 개혁운동 초기에 야곱 알미니우스(1560-1609)와 그 동지들이 조직한 것이다.
알미니우스는 칼빈주의의 무조건적 예정설을 의심하여 인간의 자유를 주장하며 “신은 인생의 타락을 예지 허용하시고 구원을 얻을이만 선택하신다”고 가르쳤다. 그를 반대하는 이들은 “하나님은 구원 얻은 이를 택하여 놓으신 후 그것을 실현키 위하여 어떤이는 타락케 하신다”고 주장하였다.
이 양론으로 인하여 화란의 개신교는 분열되었다. 그러나 칼빈파가 대다수이므로 1621년 가을 도르트회의에서 알미니우스주의는 이단으로 배격을 받았기 때문에 알미니우스파는 자파옹호에 결박되어 「항론 5개조」를 작성하였다.
1) 예정에는 조건이 있다.
하나님은 믿는자를 선택하신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믿는 자를 예지하신다.
2) 속죄는 보편적이다.
그리스도는 선택을 받은 이들만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니요 인류전체를 위하여 죽으셨다. 그러나 그를 믿는 이만 이 은혜를 받는다.
3) 타락은 전적이 아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선행의 능력이 전부 상실된 것은 아니다. 아무리 죄가 깊은 인간이라도 하나님께 향한 능력이 있으므로 구원에 들어가려면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4) 신의 은총은 불가항적이 아니다.
죄 있는 인간은 하나님께 향하는 능력과 함께 신의 은총을 반항하는 힘도 있다.
5) 죄인이 중생후 다시 중죄를 범하면 영원히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신자가 예정되었다고 해서 그것은 영원히 구원을 보증할 근거가 될 수 없다.
내용출처) myrodem.com/임기동목사의 신학논쟁 중에서
알미나안주의의 탄생 배경은 네덜란드 정부가 칼빈주의를 반대하는 쿠른헤르트(Coornhert)에 대항하기 위해서 아르미니우스를 시켜 쿠른헤르트의 신학사상을 반론하라 한 것에 기인합니다.
그러나 아르미니우스는 오히려 쿠른헤르트의 신학사상에 동조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아르미니우스와 고마르 사이에 신학논쟁이 있었는데, 논쟁의 내용은 ‘타락 전 예정론’과 ‘타락 후 예정론’이었습니다.
1608년 아르미니우스 사후 그의 추종자들이 그의 신학사상을 더욱 체계화하여 발전시켰고 마침내 40여명의 아르미니안주의자들은 종교적 관용을 강조하는 네덜란드의 정치인 올덴바르네벨트의 요구에 따라 Remonstrance(항의서)라 불리는 신앙성명을 작성하였으며, 이에 대한 도르트회의(1619년)의 신학적 응답이 바로 칼빈주의의 5대 강령입니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의 그 내용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칼빈주의
* 인성-----전적 타락
* 예정-----무조건 예정
* 속죄-----제한된 선택 구원
* 은총-----불가항적 은총
* 성도-----성도의 견인(보호)
2. 알미니안주의
* 인성-----자유의지 인정
* 예정-----예지하여 예정
* 속죄-----무한 선택 구원
* 은총-----가항적 은총
* 성도-----성도 보호 불확실
결국 1618년 11월 13일-1619년 5월 9일까지 도르트회의가 열려 칼빈주의의 5대 강령이 승리하여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편 알미니안주의는 네덜란드를 벗어나 영국교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유니테리언주의와 침례교,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의 논쟁은 5세기경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을 연상시킬 정도로 17세기 초를 뜨겁게 달구었던 개신교 역사상 가장 거대한 신학 논쟁의 하나였습니다.
내용출처) [도서] 이형기 “세계교회사2” (서울 : 한국장로교출판사, 1994)
첫댓글 칼빈주의는 현재 장로교가 채택하고 있고, 알미니안주의는 성결,감리,순복음,침례교가 채택하고 있습니다
장로교도 말만 칼빈주의지 실제 그들의 설교는 알미니안 주의를 따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거의 알미니안 주의로 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도의 견인을 거의 포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성도의 견인을 설교에 말씀 하는 교회는 지금 대형교회는 장로교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실정입니다
칼빈에 의하면 믿는 자의 자유의지가 살아남을 말하고 있습니다. 불신자는 여전히 자유의지가 죽은 것이지요.. 그 살아있는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간섭이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서 [신인협동]이 될수 있다고 봅니다. 기계론적 인간론이 아니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택한 자녀는 그의 섭리안에서 보호받으며 구원에 이를 것입니다. 이것이 전적타락에 대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엔 권면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권면의 말씀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바른 길을 갈수 있도록 인도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믿는자와 하나님의 [신인협동]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로보트로 만들진 않았으니깐요
그 살아난 자유의지로 인하여 우리의 영도 살아납니다. 또한 성화에까지 이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견인은 하나님께서 성도를 구원에 이르게 하심에 실수가 없음을 말합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알아채지 못하지요.. 신인협동의 관점으로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 기록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울의 확고한 관점은 하나님 중심주의입니다.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고린도전서 4:7)]
웨슬레의 신인협동과는 전혀 다릅니다. 웨슬레는 모든 인간에게 선행은총을 부여해서 믿는자는 신인협동에 의하여 믿을 수 있다는 사상입니다. 또한 불신자는 선행은총으로 자유의지가 살아있어 하나님을 거부하기도하고 취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책임론을 주장합니다.
당연히 웨슬레의 신학은 칼빈의 예정론을 반대할 수 밖에 없는 이론인 것입니다...... 웨슬레는 알미니안주의를 수정한 수정알미니안주의자입니다.
그렇다면 저도 다음주에 알미니안주의에 관하여 글을 한번 올려볼까 합니다 ^^; 그동안 그냥 묻어두었던 신학인데 오랜만에 다시 끄집어낼려고 하니 잘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왕이면 각 교파간의 잘못 이해한 부분에 관하여 간격이 조금이나마 좁혀지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머 신학적 간격이 그대로 확인될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유익하게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주일 되시기 바랍니다.
참빛님..감사합니다.. 서로 다른 교파와 신학에 대해서 알아간다면 더욱 유익하겠습니다. 저도 허접한 지식이지만 배우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칼빈주의자들도 알미니안 주의자들에게 배울점이 많습니다. 조지휫필드에게 어떤 분들이 와서 웨슬레 목사를 과연 천국에서 볼수 있냐고 따지니.. 휫필드는 말하길 "그분을 당연히 못보지요.. 그분은 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 저희들은 감히 그분을 볼 수 없답니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과거의 믿음의 선진들이 추구하던 바가 신학으로 사람을 평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신앙생활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 그를 평가해야 함을 배웁니다. 요즘 감리교가 웨슬레의 그 신학과 신앙을 잃었다고 전에 총신 홍치모 교수에게 심히 꾸짖음을 당한 것이 생각나네요.
홍치모 교수는 칼빈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감리교에게 웨슬레의 신앙을 회복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도 우리들이 이와 같았음 합니다. 각 신학은 각기 특색이 다르고 색이 다르지만 각 신학의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이 보여주었던 그 신앙을 서로 추구하길 간절히 바라는 그 마음이 서로에게 있었음 합니다.
아멘...
나도..... 아멘^^
감사-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