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누가보기에 옳은 게 옳다고 순수하게 주장하는 데, 참으로 올곧게 집요하게도 주장한다고 할 것이다. 주장의 핵심 요지란 이것
(1) 주류 우파의 전통 목소리는 사탄 목소리로서의 이데올로기 분석이다. 그러기 위해서 주류 우파의 전통적인 정신 우위의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기독문명은 세계 선진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보편적인 것이며, 박대통령 시대의 보수 논리에서 철학참고도서였던 헤겔(후기저작 편향)은 참조할 가치가 크다.
(2) 현재 주류 우파의 목소리는 공산당에게 부르주아 반동 타령 하고 기독교인들에게 무신론적인 가치로 불려다니라는 입장으로, 사탄목소리로서의 이데올로기와 부르주아 반동 이데올로기 차원이 교묘하게 섞여 있다고 지적했다. 정신 우위론을 일관되게 부정하면서 권력지향론의 레닌주의적 잣대와 반공논리의 결합이 논리가 일관되지 못하고 있다.(일관될 턱이 없다. 문약 이론을 통해서 사리분별을 할 새싹을 막아버림으로 그 모순을 숨겨 버렸다.)
(3) 앞으로 필요해야 할 것은 지식 사회학적 이데올로기 분석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민족담론도 현재의 주류 우파의 선입견의 형성기에서 어떻게 현재의 지식이 창출되었는가의 사회학 분석을 해야 한다.
우파들은 네티즌 차원에서 낙서글을 적으면서, 최소한 3가지의 전혀 다른 내용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섞어 쓰고 있다. 지식사회학적인 지식의 사회적 토대를 밝혀적는 어법과, 서구 선진 자본주의 문명과 한국 기독교도와 충군애국 유교가 공유하는 지평에서, 사탄과 사악한 논리로서의 공산주의 비판 차원과, 공산당 이데올로기의 무분별한 긍정과 반동이데올로기의 무분별한 부정의 차원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나는 번번이 주류 우파 세력과 이견을 가져왔다. 주류 우파 세력은 칼 맨하임의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에서 이어지는 지식사회학을 전혀 모르고 있다. 따라서, 민족주의 자체가 정치권력 상태마다 상이하게 적용해 왔음을 모르고 있다. 지금도 이승만 대통령의 정신을 이은 '일민주의'의 이름을 갖는 공공장소가 있긴 하지만, 이 일민주의는 박대통령시대의 5.16 민족주의와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전통의 창조적 발전 측면에서 일민주의 이념의 합리적 내용을 계승하고 있음이 지식사회학적 분석에서 드러난다.
칼 맨하임의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에서 나온 지식사회학적 바탕으로 민족주의란 지식의 근대 국민 국가의 역사 속에서의 사용 상태를 조사한 책이, 페리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란 책이다. 근대 국민 국가에 있어서 민족주의는 중대한 통합 기제가 되었고 그 속에서 국민들이 동화되었다는 주장이다. 언뜻 보면, 알튀세의 이데올로기 관에서의 '대중=목석'론을 동조하는 것 같고, 담론의 물질성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좌익적 색깔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근대 국민 국가 있고 민족주의는 국가의 결속 차원에서 창조적으로 개발된 이념이란 사실은 페리앤더슨의 신좌익 이념에 동조하느냐 여부 떠나서 동의할 수 있다. (동의해야 한다고 본다.) 북한은 공산당이 북한국가의 민족을 이끄는 상황을 '김일성민족'이라고 명명한다. 친북좌파의 '민족공조'나 '우리민족끼리'는 지식사회학적 분석으로 친북좌파에 결속된다고 여러 번 주장했다. 그리고, 네티즌 차원의 어피니언 제시보다도 너끈히 초월하는 유명인사의 지식사회학적 분석의 공론장의 도전이 요청된다고 주장했다. 모든 지식은 발생영역으로 되돌아갈 수 있고, 발생영역으로 돌아가서 쓰여질 수 있는 용법과 효용이 정해진다. 박대통령의 민족주의에서 북진자유통일의 가치관을 김일성 민족 이론은 수용할 턱이 없다. 그냥, 붕괴된 북한주민이 인정할 뿐이다. 북한은 김정일 체제 수호를 위해서 자본주의 요소 통제를 공산당이 버틸만한 수준으로 통제하는 몇 겹의 장치를 갖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과연 대한민국에서 김일성민족주의의 남발은 과연 허락될 수 있어야 되는 것인가? 북한은 방어막을 몇 겹을 쌓고 대한민국만 허무는 것이 과연 탈냉전일까?
여기에서, 주류 우파와 나는 분명한 현실 판단의식의 차이가 있다.
나는 다수의 좌파 지식인들과 다수의 전대협과 한총련 집회의 평범한 인사들을 체험적으로 겪은 바에서 이야기한다. 결국, 오늘의 좌파는 애초부터 향긋한 '해방사상'에 도취된 게 아니란 결론을 반복한다. 생각해 보자. 우파는 논증적으로 밝혀적어 다수에게 알게끔하는 거 하지 못하고, 언론에서는 '이리 가면 굿!' '저리 가면 배드!' 이 차원으로 도배된다. 그러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군중심리로 자연스럽다. 여기에서 주류 우파들에게 질문하고 싶은 게 그러한 군중심리에 세뇌되는 사람은, 뭔가 실용논리를 모르는 허깨비 관념과 명분의 숭배래서 그러한가? 참으로 엄청난 착오이다. 젊은 세대는 도저히 눈물나서 동의할래야 동의할 수가 없다.
여기에 이러한 이견 차이의 발생적 맥락도 어느 정도 파악했다. 주류 우파는 모든 현실 문제를 1960년대 초중반의 아버지 세대들의 젊은 날로 환원해서 해석하고 있다. 많이 공부하고 싶어도 공부할 경제는 안되고, 기독신앙 중심의 서북문화주의자들은 공부가 제일이라고 분위기를 만든다. 서북문화주의를 수용하면서도 속으로는 적개심이 만팡지게 낫을 것이다. 레닌이즘적인 권력만능주의를 통해서 좌파 공산세력에 부르주아 반동이라 말하는 어법인듯 하면서도, 사탄 어법과 겹쳐지도록 하는 표현은 그래서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오늘의 현실에서 발생해서 현실로 작동하는 젊은 좌파 세력들의 활동은 다 못보고, 오직 과거 기억속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박대통령의 반일반공사상이 옳다고 믿으며 대한민국의 공산주의 운동사에서 일본적 경향에 대해서 강렬한 적개심을 갖는 입장과, 일제 36년이 지난 이후에 여전히 일제 문화에 단절 못하는 대중들에 박대통령이 가했던 상징폭력 차원의 계몽주의적인 나라세우기의 상처에서 기원된 '민족주의'란 말자체를 싫어하는 적개감은 겹쳐진다. 일본 말을 저절로 아는 세대와 일본 말을 학원가서 배워도 스피킹 하려다가 쪽바리냄새가 내 몸에 베는 것 같아서 역겨운 세대의 차이를 이해 못하고 구세대적 관성을 고집하니, 친북좌파의 이 바탕에 터잡은 '극우 파시즘'타령을 무분별하게 허락했다.
나는 '5.16 민족주의'(사실, 일민주의로 바꿨어도 무방했고, 전두환 대통령 때나 노태우 대통령 때의 민족주의라 해도 무방했다. [창작과 비평]계열의 민족주의가 대중사회에 들어오기 이전의 모든 것은 다 유효하다. 그 때부터 남로당 민족주의에 기원을 둔 대한민국의 이념 아닌 것이 대중들에 세력을 넓혀갔다.)와 '김일성 민족주의'를 대항시켰다. 그런데, 이것은 정치학개론의 기초 적인 차원으로 아까 말했던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말하는 것이다. 친북좌파의 북한에 충성감이 대한민국 국민의 단합심을 깰 수 없다. 그런데, 이 바탕자체를 무슨 담론권력화하는 신문 기사 가십 꺼리로 오해한듯 하여 마음은 착찹하기 그지 없다. (제발, 주류 우파 세력에 칼 맨하임의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수준의 지식사회학을 누가 알게 해주었으면......) 왜냐하면 모든 문제의 핵심을 자초한 문제점을 구세대 지식 권력에 도전하는 식의 오독으로 계속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대에도 여전히 해외 기업을 유치하려면, 엘리트들의 타협과 교섭보다도 근대 국민 국가의 기업을 유치하여 일자리를 얻어내려는 공동체 의식이 중요하다. 공산주의자 빼면 탈근대세계에서도 근대 국가로서의 정체성과 연대성은 중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민족주의가 중요하다. 박대통령이 일제관성에 빠져 엽전타령하는 것에 과격하게 단절하려 했던 것의 차원을 애초에 넘어섰다. 정교하게 복권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긍정적 전통의 창조적 발전을 하자는 말이다. 책으로 배운 지식을 넘어서면 박대통령 때 딱지를 쳤던 세대입장이기 때문이다.
친북좌파는 북한국가의 정당성을 바탕한 김일성민족주의를 바탕한다. 친북좌파의 통일관은 김일성 민족주의를 기반한다. 그들의 애국이냐 매국이냐 하는 타령은 북한공산당이 이끄는 국가를 기준한다. 통일된 세상이라 하더라도 일국일당주의로서 한반도 내에 유일한 공산당이 있는 정부에의 애국을 말하지, 자유민주주의 세계의 애국을 말하는 게 아니다. 최근 10여년 간 북한의 정당성을 주도하는 민족주의는 대학가를 휩쓸었고, 주류 우파는 30-40년 전에 데인 상처가 자식세대에 강요되어서 민족주의란 국민들의 감성적 차원의 연대성 논리가 찍소리 할 공간도 마련해주지 않았다. 친북좌파의 대한민국내 행동전략이 다원주의 사회의 응집력 결여를 터잡는 것이었다면, 민족주의가 아니라 다민족주의 차원으로 박대통령에 상처 입기 전의 감성을 중시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좌파에 기여하고 젊은 세대들에 상처를 주었다고 봐야 적절하다.
나는 지식사회학적 분석으로서 이데올로기 분석을 주장한다. 대중들은 해고 위협에 처한 상황으로 현실 정치 상황에 깊이 있게 사유하지 않는다. 이리 가면 좋고 저리 가면 나쁘다 하는 여론 유도에 몰린다. 그러면, 그것을 뚫는 방법은 무엇인가? 잘 생각해보라 하면서 가던 길을 멈추게 하는 방법이어야 한다. 각성이고 계몽 방법이어야 한다. 그런데, 주류 우파는 여전히 '권력=우파'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 권력이 우파에 없어야 된다는 게 아니라, 권력을 쥐었을 때 대중들에 뿅가게 할 정치선전어구만을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데아'란 관념을 지칭하는 표현에서 이데올로기(관념학)이란 말이 만들어졌다는 칼 맨하임의 어법을 따를 때, 대한민국에 봉사하는 지식과 대한민국의 자유를 해치는 지식이 구분된다. 현대 사회에서 주류 우파만 권력=우파 권력으로 선동이 가능하다고 믿지만, 과반수 열린당의 횡포 시대는 권력이 누가뭐래도 우파에 없다. 진실이며 진리 차원으로 대중에 파고 들었어야 옳다. 현실 사회에 바쁜 사람들은 스스로 사고하지 않으면서 드라마 연예인 캐묻듯 정치담론에 그러한 자세를 가질 수 있다. 정교하고 분석적이고 고급화되고 차별화되어야 할 이유가 있다.
문약 이론으로 젊은 우파에 싹을 죽이면서 좌파 주도권에 봉사하며, 권력을 놓치 않은 채 쇠락하는 운명을 각오할 권리가 주류 우파에겐 없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박대통령의 연설문에 담긴 '명분'에 대한 독단적 해석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박대통령의 명분표현은 그 시대 그 상황속에서 지식사회학적으로 이야기되어야 한다. 제대로 연구되어야 할 젊은 세대 측의 연구 논리가 없으니, 자연스레 박대통령의 명분 연설문에 기초한 조선조 역사 희롱하기와 공산당 희롱하기는 거부감과 구역질을 동반하게 한다. 박대통령의 명분론은 조선조 역사(물론, 박대통령 시대의 역사학계 공식 표현은 이때는 '이조'가 맞다. 봉건성을 강조하여 역사를 볼 이유가 뭔가 하는 차원의 명칭 개정은 1980년대 이후이다.)에 대한 일본 역사학계의 해석에 자유롭지 못한 때와 연관되고, 양명학을 중시할 수 없는 군인기반적 사유에 관계된다. 또, 조속한 근대화를 위해서 추진력을 위해서 일원화를 하려 했던 바탕과 연관된다. 이러한 분석은 박대통령을 유사 천황 만들기 차원으로 연설문을 틀린 지식으로 신비화하는 것에 반대이다. 많이 회자되고 많이 연구되고 많은 관심이 있어야 된다. 박대통령이 만약에 지금의 지식계에서 발언했다면, 계속 '명분'이란 단어를 사용했을까? 역사적으로 지식을 객관화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대세인 시대이다.
공산당은 명분에 빠져 그러한 정체성을 보인 바가 없다. 대학가에 다 퍼진 좌익 이론서들을 단 한권이라도 읽었다면 그러한 착각을 할 수 없다. 반공이론서의 저자들에 신뢰를 했다면 결론만의 동의가 아니라 서술 분석의 과정에도 역사속으로 지식을 환원해 분석할 때 깊은 믿음이 있어야 된다. 공산당이 그 모양 그 꼴인 경우에 대해서 박대통령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박대통령과 그 분의 시대가 만든 발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