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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오로라의 공상 시즌2 | 오로라
원문
http://blog.naver.com/kkumi17cs1013/222226971807
#1. -이 대통령은 26일 밤에 맥아더 원수에게 전화를 걸고 (부관이 받았음) 『한국을 빨리 도와주지 않으면 재한 미국인을 다 죽이겠다』고 위협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2. -이승만은 동경의 맥아더에게 전화를 했지만 부관 코트니 휘트니 준장이 전화를 받으며 맥아더가 깨면 전하겠다고 했다. 이승만은 벌컥 화를 내며 “한국에 있는 미국시민이 한 사람씩 죽어갈 터이니 장군을 잘 재우시오.”라고 고함쳤다. 프란체스카가 너무 놀라 수화기를 막을 정도였다.-
한편 대통령은 25일부터 27일 사이에 미국에 어지간히 징징거리기 시작함. 일단 위의 두 이야기는 서로 상반되는 이야기이며, 교차가 되지 않는 단편적인 정보임. #1은 당시 경무대 비서인 민복기 전 대법원장의 증언이며 #2는 프란체스카 여사의 증언.
메데의 추론에 의하면 아마 이승만은 영어로 대화했을 것이고, 다급한 상황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그러면 프란체스카의 기억이 정확할 가능성이 있음. 다만 확실하지는 않음. 어찌되었건 도쿄의 GHQ에 상당히 선넘은 발언을 했다는 것은 사실임.
그런 이승만이 서울에서 빠져나온 것은 27일 오전으로 보여짐. 이 때 빠져나가면서 각료들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나버렸고, 이 때 오직 서울역에서 대통령의 피난을 알았던 것은 비서 4명 뿐이었음.
이 시간에는 창동 방어선에서 5연대와 16연대가 죽기 살기로 버티면서 미아리 방어선 구축을 위한 시간을 벌어다주던 시간임.
당연히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말도 없이 사라졌으니 각료들도 뿔뿔히 흩어져버렸음. 임병직 외무장관은 오전 12시 경에 자가용으로 서울을 빠져나왔고, 사수론자였던 장기영 체신장관 역시 저녁 7시를 기하여 수원으로 빠져나옴.
거의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신성모 장관도 이 즈음 한강을 건넜고, 13명의 장관 중 내무장관 백성욱을 제외한 12명이 27일 내로 수원으로 탈출하였음. 내무장관은 28일 오후 7시가 넘어서 나룻배로 한강을 간신히 건넘.
이게 무슨 문제냐고 할 수 있는데, 행정부 수반이 전쟁 수행을 해야하는 각료들에게 말도 없이 멋대로 탈출해버린 것이 문제. 각료들은 27일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쟁 수행에 대한 논의와 서울 사수에 대해서 토의를 하고 있었음.
실제로 27일 오후부터 서울 시내의 질서가 붕괴된 것도 이러한 요인이 상당히 컸음. 창동 방어선 붕괴 소식도 있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시민들이 더더욱 혼란에 빠진 것임.
거기에 갑작스럽게 취소된 천도방송 역시 혼란을 가중함. 심지어 미 대사관 및 KMAG은 자기 자리 지키면서 민간인 대피에 여념이 없었고, 27일 비상 국회를 소집한 국회 역시 대통령의 피난 소식을 듣지도 못한 채 수도사수 결의문을 가지고 갔지만 이미 텅 비어버린 행정부를 보며 그제서야 탈출 준비를 했으나 이미 늦어버림.
그 결과 수많은 국회의원들이 납북당하는 피해로까지 이어졌고, 시민들 역시 피난이 늦어지면서 많은 참상을 겪어야만 했음. 군대와 경찰은 계속해서 시가전을 주장하며 시민들을 한강 이남으로 대피시키고자 했으나 이미 그 시점이 27일 오후부터인지라 너무 늦었음.
27일 오후부터 서울역과 한강의 교량 일대는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28일에 한강교가 폭파당하면서 완전히 발이 묶여버린 것. 행정부가 저런 식으로 붕괴되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한강교를 빠져나갔을 수 있었을 것임.
이미 28일에도 한국군과 경찰은 최후 방어선인 미아리가 돌파당했을지언정 M8 그레이하운드까지 동원하며 북한군에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고, 그 결과 아직 한강교까지는 북한군이 접근하지 못하던 상황이었음.
상황이 가능하면 방어지역 전면에 파괴된 트럭 잔해와 노면전차를 가져다가 북한군 전차들의 진입을 저지하고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군도 꽤나 고전을 면치 못했음.
미군의 조언대로 44,000명의 한국군과 7,500명의 경찰이 제대로 통제받아 싸운다면 서울이라는 거대한 시가지를 방패삼아 북한군의 주력 9만명을 시가전의 늪에 빠뜨릴 수 있었다고 한 것도 허언이 아니었음.
그러나 수도를 떠난 자들, 그리고 그들의 대표가 무책임하게 달아나면서 행정부의 붕괴를 야기했고 이 피해는 고스란히 서울 시민들과 아직까지도 자기 자리에서 싸우며 버티고 있는 수많은 한국군 장병, 경찰, 심지어 KMAG 고문들이 뒤집어써야만 했음.
그리고 미처 달아나지 못한 이들은 잔류파로서 또다시 부역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고통을 받아야만 했고. 수도를 떠난 자들의 행동은 수도에 끝까지 남아 싸우던 모든 이들의 노력을 한 순간에 배신한 사건이라 보아도 무방할 정도임.
P.S. 자료를 제공해주신 늑대님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