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불문 해설
수행자라면 누구나 아침 저녁으로
부처님께 예를 올립니다.
예불은 모든 수행자의 기본적인 수행인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매일 예불을 올리지만서도
부처님께 올리는 예불의 의미를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실 줄로 압니다.
말 그대로
예불은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 것인데,
사실은
부처님 뿐 아니라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스님들
다시말해, 삼보(三寶)님에게 대한 예를 올리는 것입니다.
삼보에 대한 예를
조금 구체적으로 늘려보면
바로 우리가 조석으로 올리는 칠정례가 되는 것입니다.
먼저 예불을 올리기 전에
오분법신의 향을 올리고
그리고 난 다음에 예경문 칠정례를 올립니다.
죄송스럽게도 다음의 '예불문 해설'은
정확하게 어떤 분께서 해놓으신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참 오래전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자료를 다운 받아놓았던 것 같은데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못해 죄송할 뿐입니다.
법우님들께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렇게 옮겨 와봅니다.
약간 수정과 편집을 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예불문(禮佛文) 해설]
예불은 불법승(佛法僧) 삼보 께 예배하고 자신을 비롯한
일체중생이 함께 성불하고자 원을 세우는 의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래 하루 여섯번, 혹은 네 번이나 두 번씩
올렸지만 요즘은 두번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예불의식도
종래에는 오분향례(五分香禮) 향수해례(香水海禮) 사성례(四聖禮) 등이
었으나 점차 오분향례로 통일되었습니다.
새벽예불에 앞서 도량석(道場釋)을 하게 되는데, 도량석은 도량을
푸는[석(釋)] 의식입니다.
잠든 도량을 깨울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전을 독송 함으로써
절에 머무는 대중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것입니다.
도량석은 일반적으로 천수경을 하지만 스님에 따라서는 반야심경,
법성게, 해탈주, 사대주, 신심명, 참선곡, 토굴가, 발심수행장 등을
하기도 합니다.
천수경에는 삿됨을 물리치는 여러 진언과 함께 사방을 찬탄하는
내용과 도량을 찬탄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도량석 뒤에 이어지는 종송(鐘頌)은 지옥을 파괴하고 중생을 제도
한다는 발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예불은 삼보에 대한 예경과 발원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새벽예불 후에는 그 사찰의 큰스님이 ‘행선축원(行禪祝願)’이라는
걸 하게 되는데, 행선축원은 부처님 전에 자신의 원을 세우고 이를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다짐의 의식입니다.
행선축원이 끝난 뒤에는 신중 단(神衆壇)을 향해 반야심경(般若心經)
을 다함께 암송합니다.
반야심경을 신중단에 하는 이유는 불교의 핵심인 반야 공사상
(般若空思想)이 담긴 반야심경을, 육도(六道) 가운데 천계(天界)의
중생인 신중(神衆)들에게 들려줌으로써 신심(信心)을 증장(增長)시켜
가람외호(伽藍外護)를 더 잘해줄 것을 당부하는 의미를 갖습니다.
따라서 어떤 스님은 신중단에 절을 하지 않는데, 이는 스님들보다
신들의 격이 낮기 때문입니다.
[오분향례(五分香禮)]
오분향례는 오분법신(五分法身)이신 부처님께 향(香)을 공양(供養)
하여 그 향이 법계에 두루하여 시방의 무량한 불법승 삼보께 공양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禮)를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저녁에 향공양을 올리는 이유는 향이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녁에는 어둠이 내리게 되는데, 어둠은 ‘죽음 나쁜기운 무지(無知)
번뇌(煩惱)와 망상(妄想) 악취(惡臭) 두려움’ 등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저녁예불때 향을 올리는 의식을 하는 것은 어차피 어둠은
찾아오는 것이지만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어둠을 맞이하기 위함입
니다.
부처님의 몸이 오분법신이라고 하는 것은 계(戒) 정(定) 혜(慧)
해탈(解脫) 해탈지견(解脫知見)이라는 5가지의 법(法 ? 덕성)을
신체로 삼는분을 말하는데, 궁극의 깨달음에 달한 성자(無學位의
羅漢)와 부처님이 이 다섯 가지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계(戒)를 지키면 정(定 : 三昧)을 이루고, 정(定)에 의해 지혜를
얻고, 지혜(智慧)에 의해 해탈에 도달하고, 해탈(解脫)에 의해 해탈
지견(解脫知見) 을 성취합니다.
부처님은 이러한 공덕(功德)에 의해 부처님의 몸 [불신(佛身)]을
이루기 때문에 이것을 오분법신(五分法身)이라고 합니다.
계(戒)라는 것은 부처가 되기 위해 지켜야할 행동을 말하는 것으로
악(惡)을 멈추고 선(善)을 닦는 것입니다.
정(定)이라는 것은 심신(心身) 을 정결히 하여 정신을 통일하고
잡념을 몰아내어 생각이 뒤 엉키지 않게 하는 것으로, 마음의 동요가
없는 상태, 즉 삼매(三昧)를 말합니다.
혜(慧)라는 것은 그 정결해진 마음으로 바르고 진실한 모습을 판별
하는 마음작용을 말합니다.
계(戒)와 정(定)과 혜(慧), 이 세 가지를 삼학(三學)이라고 하는데,
이 세 가지를 닦지 않으면 부처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해탈(解脫)이라는 것은 벗어나는것, 풀려나는 것을 말합니다.
중생은 번뇌(煩惱)의 속박에 묶여있고 악업(惡業)의 속박에 묶여있고
고통의 속박에 묶여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에반해 부처님은 모든 속박 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번뇌가 없으므로 번뇌의 속박이 없고 악인(惡因)을 짓지 않으므로
악과(惡果)의 속박이 없으므로 고통이 없습니다.
고통스러운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를 해탈이라고 합니다.
해탈지견(解脫知見)이라는 것은 “나는 해탈했다”라고 확인할 수
있는 지혜와, 혼자서 해탈했다고 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다시말하면 완전한 깨달음을 증득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분법신에 향을 올리고 난뒤 발원이 이어집니다.
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찬란한 광명을내는 구름덩어리처럼 온
세계 곳곳으로 피어올라 이 우주에 가득한 수많은 부처님과 진리와
승단에 공양을 올린다는 내용입니다.
이어서 향을 올리며 진언을 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진언은 번역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진언이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언어로 쓰여 있다는 점에서
번역하지 않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진언은 3번을 반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를 고대 인도인의 의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늘 허공 땅이나, 과거 현재 미래가 3이며, 힌두교에서 창조의
신 브라흐마 유지의 신비슈누 파괴의 신 쉬바가 3입니다.
고대 인도인들은 3을 완전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진언도 3번을
반복해야 그 목적이 완전히 성취된다고 보았습니다.
오분향(五分香)을 곧바로 번역 [직역(直譯)]하면 이렇습니다.
계향 戒香 : 계의 향기
정향 定香 : 정의 향기
혜향 慧香 : 혜 의 향기
해탈향 解脫香 : 해탈의 향기
해탈지견향 解脫知見香 : 해탈을(解脫) 알고(知) 보는(見) 향기(香)
광명운대 주변법계 光明雲臺 周遍法界 :
빛나는 구름이(光明雲) 높은 누대처럼(臺) 법계에(法界) 골고루 미쳐
(周遍)
공양시방 무량불법승 供養十方 無量佛法僧 :
시방 세계의(十方) 한량없는(無量) 불법승께(佛法僧) 공양합니다(供養).
헌향진언 獻香眞言 : 향을(香) 바치는(獻) 진언(眞言)
옴 바아라 도비야 훔(3번)
이를 번역하여 손질[의역(意譯)]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올바른 행위만 하시는 부처님께 향을 올리옵고,
항상 선정에 들어계신 부처님께 향을 올리옵고,
올바른 지혜를 갖추신 부처님께 향을 올리옵고,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신 부처님께 향을 올리옵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께 향을 올리옵니다.
빛나는 구름처럼 향연기가 온 세계에 가득하게 하여
시방세계의 수많은 불법승께 공양합니다.
향을 올리는 진언
모든 삿된 기운을 물리치는 영원불멸한 향기여!
[예경문(禮敬文)]
예경문(禮敬文)은 예배와 발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심귀명례’로 시작하는 예경문은 모두 일곱 귀절로 되어 있기
때문에 칠정례라고 합니다.
이 예경문(禮敬文)은 삼보께 귀의함을 뜻하는 것으로 그 골격이
불 법 승 삼보에 예경함을 기본으로 하고, 삼보를 더 구체적으로
서술하여 칠정례로 확대한 것입니다.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 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至心歸命禮 三界導師 四生慈父 是我本師 釋迦牟尼佛
삼계의 길잡이시고 뭇 생명의 자비로운 아버지이시며, 우리들의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합니다.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는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 바쳐 예배한다는
의미입니다. 귀명(歸命)은 산스크리트어 나마스(namas)를 번역한
말로 나무(南無) ? 귀의 (歸依)라고 번역하기도 하며 목숨을 바치다,
마음으로부터 진심을 바치다, 믿고 의지해 바치다 등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서 삼계(三界)는 중생이 육도윤회하며 사는 미혹의 세계 세군데로
욕계 색계 무색 계를 말합니다.
욕계는 음욕(淫慾)과 식욕(食慾)의 두 욕망을 갖는 생명이 사는
세계이며, 색계는 욕망은 없으나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 세계이고,
무색계는 물질조차 초월한 세계입니다.
‘삼계의 길잡이’라는 것은 육도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을 부처님이
가르쳐준다는 의미입니다.
사생(四生)은 미혹한 세계의 모든 생명체를 말하며, 중생이 윤회의
세계에 태어나는 방법의 차이에 따라 네 가지로 분류합니다.
즉 태로 나는 생명 [태생(胎生)], 알로 나는 생명[난생(卵生)], 습기
속에서 태어나는 생명[습생(濕生)], 홀연히 태어나는 생명[화생(化生)]을
말합니다.
이 가운데 화생은 천상이나 지옥에 날 때처럼 의지하는것 없이 저절로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사생의 자부’라는 것은 부처님이 뭇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 마치
아버지의 사랑과 같다고 하여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시아본사(是我本師)라고 하는것은 나의 근본 스승이라는 의미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교설에 의해 불교 교단이 성립되었고 진리의
세계가 펼쳐졌으므로 이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말하며 석가모니는 석가족의
성자라는 의미입니다.
불교를 처음으로 개창한 교조로서 B.C. 6세기에서 B.C. 4세기 사이에
생존했습니다.
80평생 중생교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인입니다.
부처님은 엄격한 의미에서 그 수(數)가 얼마가 되든지 동일한 위상을
갖지만 유독 석가모니 부처님을 따로 먼저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불교의 교조이기 때문입니다.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 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
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佛陀耶衆
시방삼세의 수많은 세계에 항상 머무르시는 모든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합니다.
시방은 동 서 남 북 동남 서남 서북 동북 상 하의 열가지
방위를 말하며 공간적으로 ‘모든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삼세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통틀어 말하는 것으로 ‘언제나’
라는 의미입니다.
제망찰해(帝網刹海)는 제석천에 있는 그물에 비친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세계가 수없이 많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제망찰해를 수많은 세계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상주(常住)는 ‘항상 머물고 있다’는 의미이고, 일체(一切)는
‘모든’, 불타야중(佛陀耶衆)은 ‘부처님께'로 해석할 수 있습
니다.
중생이 자신의 성품을 깨달으면 부처가 되는 것이므로 수많은
부처님이 법계에 가득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 찰해 상주일체 달마야중
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達磨耶衆
시방삼세의 수많은 세계에 항상 머무르시는 모든 진리에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합니다.
달마야중(達磨耶衆)의 달마는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를 말하는
것이므로 ‘진리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지심귀명례 대지문수사리보 살 대행보현보살 대비관세음보살
대원본존지장보살마하살
至心歸命禮 大智文殊舍利菩薩 大行普賢菩薩 大悲觀世音菩薩
大願本尊地藏菩薩摩訶薩
지혜의 화신 문수보살과 실천의 화신 보현보살, 자비의 화신
관세음보살, 대원의 화신 지장보살께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합니다.
보살(菩薩)은 원래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대승불교 시대에는 스스로 부처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동시에 중생을
부처의 세계로 인도하는 구도자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보살이 부처님 생존시에 직접 모셨던 직계제자들보다 먼저
예배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대승불교권에 속해 있기 때문이며, 구도자
자신의 깨달음과 함께 중생제도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수사리보살은 산스크리트어로 만쥬스리의 음을 문수사리(文殊舍利)
라고 표현한 것이며,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입니다.
보현(普賢)은 부처님의 실천을 상징하는 보살이며, 관세음(觀世音)은
부처님의 자비(慈悲)를 상징하며, 지장(地藏)은 부처님의 지옥중생
제도의 대원을 상징합니다.
이들을 4대보살이라는 말로 함께 지칭하기도 하는데, 보살사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하살(摩訶薩)은 보살의 존칭입니다.
따라서 별도로 새기지 않아도 관계없습니다.
지심귀명례 영산당시 수불 부촉 십대제자 십육성 오백성 독수성 내지
천이백 제대아라한 무량자비성중
至心歸命禮 靈山當時 受佛咐囑 十大弟子 十六聖 五百聖 獨修聖 乃至
千二百 諸大阿羅漢 無量慈悲聖衆
영축산에서 부처님으로부터 중생제도를 부촉받은 10대 제자와 16
성인, 500성인, 혼자 수행하여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성인부터
1200의 모든 아라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자비로운 성인들께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 합니다.
여기서는 부처님 생존시의 직계제자들이 예배의 대상이 되고 있습
니다.
영산(靈山)이라는 것은 영축산을 말하는 것이나 확대해석하면
부처님이 친히 머무르셨던 때와 장소를 말합니다.
따라서 영산당시(靈山當時)는 ‘부처님이 계실 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불부촉(受佛咐囑) 가운데 부촉(咐囑)은 분부하다, 맡기다라는 의미
이므로 ‘부처님으로부터 부탁받은’이라는 의미입니다.
십대제자는 두타(頭陀)제일 수행(修行)제일로 칭송되는 마하가섭
(摩訶迦葉), 다문(多聞)제일의 아난타(阿難陀), 지혜가 제일인 사리
불(舍利弗), 신통력(神通力) 제일인 목건련(目?連), 심안(心眼)을
떴다고 하여 천안 (天眼)제일로 칭송된 아나율(阿那律), 공(空)사상
이해에 밝은 해공(解空)제일의 수보리(須菩提), 설법(說法)에 뛰어나
설법제일인 부루나(富樓那), 토론을 잘하여 논의(論議)제일인 가전
연(迦?延), 계를 잘 지켰다는 지계(持戒) 제일인 우바리(優婆離),
석가의 아들로서 남몰래 행(行)을 잘하여 밀행(密行)제일이라는
칭송을 들은 라후라(羅聳羅) 등입니다.
16성은 16아라한이라고도 부르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아라한과
를 증득한 16명의 뛰어난 부처님 제자를 말합니다.
오백성(五百聖)은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수행하여 아라한과를
얻은 500명의 제자들을 말합니다.
오백성에 대해 어떤 사람은 부처님이 입멸하신후 제1결집에 모였던
스님들이라고도 하며, 또 다른 사람들은 법화경 오백수기품에서 수기
받은 제자들이라고도 합니다.
독수성(獨修聖)은 ‘홀로 도 를 닦아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성인’
즉 타인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 깨달음을
이룬 까닭에 벽지불(?支佛) 또는 독각이라 부르며, 12인연의 이치를
깨달아 모든 번뇌에서 벗어났다하여 연각(緣覺)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천이백 제대아라한(千二百諸大阿羅漢)은 부처님께서 생존해 계실때
부처님께 귀의하고 부처님 주변에서 수행했던 1,250명의 제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야사 장자 아들의 친구 50명, 세 가섭과 제자 1,000명, 사리불과
동료 100명, 목건련과 동료 100명이 이에 해당됩니다.
지심귀명례 서건동진 급아 해동 역대전등 제대조사 천하종사 일체
미진수 제대선지식
至心歸命禮 西乾東震 及我海東 歷代傳燈 諸大祖師 天下宗師 一切微
塵數 諸大善知識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진리의 등불을
이어온 모든 큰스님들께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합니다.
여기서는 부처님 입멸후 큰스님들이 예배의 대상이 됩니다.
서건(西乾)은 서방천축(西方天竺)의 뜻으로 인도를 가리키며,
동진(東震) 은 인도에서 보아 동쪽에있는 진단(震旦)을 말하고 있습니다.
해동은 중국 에서 보았을때 우리나라가 동쪽에 있다고 하여 부른 이름
입니다.
중국 중심의 사고입니다.
역대전등(歷代傳燈)은 대대로 등불을 전한다는 의미입니다.
조사(祖師)는 한 종파를 창시 한 종조(宗祖)나 중흥조를 말하며,
종사(宗師)는 한 종파의 업적을 계승 발전시켰거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후세에 잘 전한 스님을 말합니다. 선지식은 가르침을
설명하고 불도에 들어가게 하는 사람, 바른 길로 이끄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 부분을 엄격히 말하면 바로 뒤에 따라오는 승가야중에 포함시켜도
전혀 하자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따로 큰스님들께 예배하는 것은 인도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이어진 법맥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도의 27대 조사와 중국의 6대 조사, 우리나라의
구산선문으로 연결되는 법맥을 강조함으로써 우리 나라가 불법의
진수를 이어받은 종주국임을 천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 찰해 상주일체 승가야중
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僧伽耶衆
시방삼세의 수많은 세계에 항상 머무르시는 모든 스님들께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합니다.
승가야중(僧伽耶衆)의 승가는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를 깨닫기 위한
스님들을 말하는 것이므로 ‘스님들께’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예경에 해당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석가모니불을 포함
한 부처님들과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인 달마, 달마를 깨달아
부처가 되기를 서원하고 정진하는 보살과 아라한, 큰스님, 승가에
예배하는 의식이 칠정례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예불(禮佛)’이라면 부처님께 예배하는 것인데 달마와 승가에도
예배 하므로 엄격히 말하면 ‘예삼보(禮三寶)-삼보에 대한 예경’
이라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佛)은 법(法-달 마)을 깨달은 분이며, 승(僧-승가)은 법을
깨달아 불이 되고자 원을 세운 분들이므로 마침내 불(佛)이 될것입니
다.
따라서 ‘불(佛)=법(法)=승(僧)’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으므로
‘예삼보(禮三寶)’ 가 아니라 ‘예불(禮佛)’이라고 하더라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이렇게 이름지었을 것입니다.
유원 무진삼보 대자대비 수 아정례 명훈가피력 원공법계제중생 자타
일시성불도
唯願 無盡三寶 大慈大悲 受我頂禮 冥熏加被力 願共法界諸衆生
自他一時成佛道
오직 원하옵나니, 한량없이 많은 삼보께서는 크나크신 자비로써 저의
지극한 예배를 받으시고 깊이 가피력을 베푸시어 법계의 모든 중생
들이 모두 성불하게 하소서.
삼보께 예경을 마친 뒤 발원을 하게 됩니다.
목숨을 바쳐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였으니 자비로운 마음으로 예배를
받으시고 크나큰 가피력을 내리시어 그 가피력으로 모든 중생들이
동시에 윤회의 쳇바퀴 에서 벗어나 성불하게 해 달라는 내용입니다.
이 예불문은 부처님께 예경하고 가피력에 의지하여 중생의 성불을
발원한다는 측면에서 타력문(他力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불법승이 동일한 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데다 법계의 모든 중생이 너나없이 동시에 성불하기를 발원
하고 있으므로[法界諸衆生 自他一時成佛道] 스스로 수행하여 부처가
되어가는 자력문(自力門)의 성격도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무 아미타불
본사(本師)합장
♩..바람 / 한태주
.................................................................. 카페 생활불교 : http://cafe.daum.net/mercy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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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_()()()_
좋은글 감사합니다. 잘모르는 불자님들 도움이 많이 되실것 같군요. ()()()......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_()()()_
_()()()_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