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미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나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전입니다!" 열왕기상 9장
나는 매일 묵상의 일기 부분 소재가 다르다. 그런데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올리는 소재가 누구에겐가 필요하기 때문에 내가 먼저 겪고(?) 그 이야기를 글로 올리면 이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이 읽고 도움이 되는 차원으로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시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제는 누구를 상담(?) 해 주었는데 지난번에도 또 지난번에도 이분이 겪는 이야기가 어쩌면 참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계속 당(?) 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사기를 당해도 계속 당하고 이용을 당해도 계속 당하고 상처를 주는 사람을 계속 만나고.. 왜 이렇게 반복되는 아픔과 억울함이 있는 것일까? 이것이 당연한 것인가? 하나님이 연단 시키는 과정이라고 여겨야 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분은 사람이 넘 착하고 그리고 너무 쉽게 사람들을 믿는다. 그래서 속지 않아도 될 일을 속은 일이 많다. 그래서 나는 어제 이분을 상담하면서 좀 꾸짖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내 딸 이야기를 해 주기도 했다. 내 딸은 지금은 결혼을 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내 딸은 정말 착한 딸이었다. 엄마인 나에게 불평 한마디 안한 아이이다. 내가 완전한 엄마일 리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애가 착하니 엄마가 듣기에 불편한 이야기를 안 하는 것 같다. 학교는 국제 학교를 안 보내고 어렸을때 부터 케냐 현지인 학교를 보냈다. 학교 가면 왕따 당하고 상처 받을 때가 많다. 학교 친구들은 수진이가 착하고 그리고 선교사 딸이니까 자기들이 뭐 필요하면 수진이한테 뭐를 해 달라고 한다. 수진이는 아마 진실된 친구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자라기도 했을 것 같다. 항상 친구들은 뭔가를 바라고 기대하면서 수진이 옆에 있었으니 말이다. 마음이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고 상처 받는데 상처 받는다는 말을 안 하는 것이 건강한 것일 리는 없다. 그래서 하루는 수진이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수진아! 나는 우리 딸 수진이가 착한 것이 참 감사해! 그러나 엄마는 내 딸 수진이가 착한 딸이기 보다는 건강한 딸이었으면 좋겠어.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일 수 있어! 너 학교에서 어떤 애가 너 머리를 자꾸 누른다고 생각을 해 보자. 너가 그 친구가 계속 너 머리를 누르면 그것을 참고 계속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너가 그 친구의 팔을 치우면서 "자꾸 나 누르지 마! 나 아파!" 이렇게 말을 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그 아이는 너를 계속 눌러도 너가 아프다는 말을 안하고 그 친구 팔을 치우려고 하지 않으니까 너가 괜찮은지 알고 계속 너를 누를 수 있겠지? 그러면 너는 그 아이로 하여금 계속 너를 누르고 아프게 하는 죄를 짓게 하는 거라는 생각 해 보았니? 너가 아프다는 말을 안 하니까 그 친구가 모를 수 있다는 것이지! 그때는 너가 그 친구 팔을 치우면서 "나 아파! 더 이상 누르지 마!" 이렇게 말해 주는 것이 그 친구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게 한다는 이야기야!"
성경에는 누가 5리를 가 달라고 하면 10리를 가 주라는 말씀이 있다. 그런데 착한 사람들은 10리가 아니라 100리 까지 가 주려고 한다. 그건 지혜가 아닌 것이다. 나는 정말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상담한 것 같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착하다. 그래서 이용 당해도 참고 상처 받았다는 말도 못하고 속은 사람에게 또 속고!!
옷 두 벌 있으면 한 벌 주라고 했지 성경이 나에게 한 벌 옷 있는데 세 벌 옷을 주라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착하게 사는 것 중요하지만 성경적으로 사는 것은 더더욱 중요한 것이다.
속인 사람보다 속은 사람이 더 나쁘다는 말도 있다. 왜 속임을 당하는가 말이다! 한번 더 검사(?) 좀 하지! 그냥 모든 사람을 다 믿는다는 것이 지혜는 아닌 것이다.
나도 선교지에 있으면서 사실 재정에 대한 것 검사 안 하면 더 속이 편하다. 좀 속고 말지. 일일이 다 검사하는 것이 시간 걸리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내가 너무 믿어서(?) 상대편으로 하여금 나를 쉽게 속이게 만드는 것은 그 사람에게 내가 죄를 짓게 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적이 많이 있다. 그래서 귀찮아(?)도 어떤 일들은 내가 검사를 할 때가 있다. 돈의 액수가 적다 해도 바늘 도둑 소 도둑 된다는 말도 있으니까 말이다.
예수님 믿으면 암만 억울해도 법정에 가서 고소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어떤 악한 사람들은 예수님 잘 믿는 사람들이 호구인 줄 알고 마음 놓고 속이고 사기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성경은 비둘기처럼 순진하고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비둘기처럼 순진하나 뱀처럼 지혜롭지 못한 경우를 나는 참으로 많이 보았다고 하겠다.
어제는 상담하면서 내담자(?)를 많이 꾸짖었다 . 이렇게 연속으로 속임 당하고 이용 당하는 그 사슬(?)에서 끊어져야 할 것을 선포해 주었다. 착하다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과 동일어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자꾸 남들에게 속는 사람들은 기도를 좀 해야 할 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착한 것 보다는 지혜롭고 그리고 건강한 그리스도인들이 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나는 믿는다.
내 자식 밖에 나가서 착하기만 해서 맨날 두드려 맞고 오는 거 기뻐하는 부모는 없으니까 말이다.
개역개정 열왕기상 9장
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The LORD said to him: “I have heard the prayer and plea you have made before me; I have consecrated this temple, which you have built, by putting my Name there forever. My eyes and my heart will always be there.
하나님은 우리 몸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라고 말씀 하셨다.
고린도전서 3장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Donʼt you know that you yourselves are Godʼs temple and that Godʼs Spirit dwells in your midst?
그러니 하나님의 눈길과 하나님의 마음이 항상 우리 안에 거하지 않으실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어느 때라도 절대 절대 혼자가 아닌 것이다. 성전인 내 안에 하나님의 눈길과 하나님의 마음이 있으시니까 말이다.
하나님은 그래서 오늘도 우리 마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는 분이신 것이다.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신 것이다.
하나님이라는 분을 멀리 어디 하늘에만 계셔서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바로 성전인 나의 마음 안에 계시는 분이라고 믿어야 하는 것이 바로 성경적인 믿음이라고 하겠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내 안에 내주 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를 떠나실래야 떠나실 수 없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감사합니다. 내 안에 계시니 내 마음을 가장 잘 아시고 내가 겪는 모든 것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나를 들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오늘부터 한국에서 말씀 사역이 시작됩니다. 오늘은 푸른나무교회에서 설교를 합니다. "성령 충만"에 대한 설교를 해달라고 부탁받았기 때문에 "나는 성령 충만한 사람인지 어떻게 아는가?"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대언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옵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
외울 말씀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시편 20:4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