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에서 김고문을 만났다. 너무 일찍 도착해 근처 던킨 도넛에서 커피를 마시며
다른 일행을 기다린다. 회룡사를 마지막 와본 것이 20여 년 전인 것 같은데 상전
벽해란 말이 실감난다. 흙먼지 날리던 시골길이 시끌벅적한 아파트촌으로 변했다.
뭉게구름을 머리에 인 수려한 도봉산 능선 아래 한가롭던 옛 마을의 모습은 이제
흔적도 없다. 회룡역 앞 고층아파트 벽에는 경전철 건설을 반대한다는 살벌한
문구가 적힌 거대한 현수막들이 펄럭인다. 혹시 경전철이 지나갈 곳에서 조금
떨어진 아파트 벽에는 정반대의 구호를 외치는 현수막이 펄럭이지 않을까. 저자
거리의 인간의 욕심은 몇 발짝만 걸어가면 만나는 숲의 고요나 평온과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다. 같은 사태의 중심에 놓인다면 나라고 그런 욕심에서 자유로울까...
공연히 아침부터 우울해진다.
10시, 회룡역에서 만난 현총무가 노 전대통령의 운명 소식을 전한다. 공과를 떠나
한 사람의 자연인 노무현의 명복을 빈다.
가까운 곳에 사는 김택열동문이 결혼식 때문에 함께 산행을 못한다면서 고맙게도
전송을 나왔다. 산악회 副찍새 한영구동문은 지난 달 산악회와 함께 처음 산행한
다음날 무릎이 아파 겁이 났는데 그 다음 산행부터는 아프지 않았다며 자신감을
보인다. 알고 보니 30대 초반, 동기들 몇 명과 2박 3일 지리산 종주산행도 한
경력이 있는 원조 알피니스트다. 지금부터 산악회와 함께 새로운 산행의 역사를
써 보십시오.
10시 10분 출발, 회룡사는 하산 길에 구경하기로 하고 바로 숲 속으로 들어선다.
어제 밤에 내린 비로 떨어진 귀룽나무 꽃들이 오솔길을 하얗게 덮고 있다.
11시 45분, 사패산 갈림길. 제법 깔딱 고개인 길을 1시간 30분 걷고 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잠시 휴식하는 동안 현총무가 6월 둘째 주에 갈 1박 2일 경주 남산
여행이 경비가 많이 들 텐데 이참에 회비를 인상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한다. 김영길대장한테 먼저 물어봤더니 “그러면 회원들이 조용히 안 나오는
수가 있다”고 하더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그러지 말고 임전대장이 동기회 사무총장도 됐는데 후원금을 좀 더 타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 나오자 “말도 마라. 임종수가 총장 되더니 나보다 더 짠돌이
됐다” 고 머리를 흔든다. 며칠 전 아침에 동기회 사무실에 나갔더니 임총장이
작업복 입고 걸레 들고 사무실 청소를 하고 있더란다. 산악회원들 모두 충격
받았다. 아니, 우리 전 대장님이 청소부가 웬 말이냐. 정작 본인은 그런 일
하는 게 즐겁다고 한다지만 내친김에 사무실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바둑회가
사무실을 좀 더 깨끗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성토까지 이어진다.
12시 20분, 백두대간 닮은 능선 길을 1.2km 걸어 사패산 정상. 거대한 바위
봉우리다. 날이 흐려 도봉산-북한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능선이 시원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깝지만 사방을 뒤덮은 초여름 녹음이 아름답다. 넓은
바위 위 혼자 잘 가꾼 분재처럼 다소곳이 앉은 소나무 아래서 점심을 먹는다.
다들 샌드위치 한쪽씩 꺼내드는데 한영구 부찍새만 거창하게 한정식 상을
펼친다. 옆에서 놀라워하며 한마디씩 거드는데, “김명용이도 처음엔 그랬다,
그러더니 얼마안가 샌드위치로 바뀌더라.”, “첫 부인인데 아직도 그렇게
해주나, 부럽다.”, 놀려댄다.
정상 기념촬영. 김고문이 카메라를 들이대더니 하나, 둘, 셋 한다. 아니 그새
배웠나, 안 하던 하나 둘 셋은 왜 하는 거야. 12시 55분, 하산 시작.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2시 10분, 회룡사. 4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모두 오랜만에 아주 좋은 코스로 기분
좋게 걸었다며 만족한다. 회룡사 구경하고 가자. 그런데 회룡사 명물인 우물이
안 보인다. 한참 두리번거리니 우물 위에다 거창한 法鼓閣을 세워 우물이 건물 밑
시멘트 기둥 사이에 숨어있다. 탁 트인 마당 한가운데 언제나 물이 철철 넘치는
직사각형 돌우물은 회룡사의 명물이었는데 이렇게 천덕꾸러기처럼 건물 밑에
숨은 걸 보니 화가 난다. 법고각은 다른 곳에 세우고 우물은 예전처럼 지나가는
사람들 누구나 한눈에 들어오게, 그래서 달려가 시원한 물 한 바가지로 마른
목을 축이게 두었어야 하는 건데...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걸까. 오늘은
이래저래 우울한 일이 많다. 꽃밭 옆 벤치에 앉아 오후 햇살을 즐기며 법당에
들어간 김회장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뭐 빌러 간 거야?”, “늦둥이 막내아들
하나 점지해 달라고 비는 거야?”
목욕이나 하고 저녁은 너무 이른 것 같으니 간단히 맥주나 한잔 하자는 의견이다.
회룡역 근처에서 사우나 하고 나오니 4시. 역시 예상했던 대로 ‘간단히 맥주나 한잔’
은 이제 반역이다. 아침에 올라가다 본 수협 직영 ‘싱싱회’ 횟집으로 간다. 우선
시원한 맥주 한잔, 그래 바로 이 맛이야! 밖이 다 내다보이는 탁 트인 유리창에
깔끔한 횟집은 쯔끼다시도 푸짐하고 옥호 대로 회도 싱싱해 의외로 마음에 든다.
긴급 제의. 부인 간병 때문에 힘든 김대장한테 당분간 대장 임무수행 부담을 덜어
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에 모두 동의. 후임은 회원들의 의견을 듣고 김회장이
결정하기로 했다.
경주 남산 여행은 6월 12일(금) 아침 일찍 출발해 오후에 경주 시내 명소를 구경
하고 13일에는 전문 문화해설사의 안내로 하루 종일 남산 탐방을 합니다. 동문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참가자(10명): 김숭자(장원찬), 김윤기, 김종남, 박정수(노순옥), 임한석, 전정원,
한영구, 현해수. (노순옥 기록)
첫댓글 안개속에 흐릿하긴했지만 장쾌한 산경치 정말 좋았읍니다.함흥에 머물던 태조 이성계가 회룡사 까지 왔다가 함흥으로 다시 가지않고 이 절 주지스님의 설득으로 대궐로 돌아 갔다고 회룡사가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