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2
2014. 3. 금계
우리 집 언저리 웰빙 공원 산책로에 새로 입주한 청동 모자상이 봄 햇살을 푸짐히 받고 있다. 나는 목포에서 차분히 산책만 할 수 없는 처지다. 내 나이면 남들한테 봉사도 좀 해야 할 텐데 광주 오르내리면서 손자도 가끔 살피고 연로하신 어머님도 뵙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토요일(22일) 광주 일곡동에 갔더니 손자 위쪽 대문니 두 개가 빠져 달아나고 없다. 작년에 아래쪽 두 개에 이어 네 개째라 한다. 짐승들은 털도 갈고 허물도 벗지만 사람은 자라면서 유일하게 바꾸는 것이 이빨이다. 당분간 보기에는 흉물스러울지 몰라도 그게 다 성장통의 일부요 잘 자라고 있다는 징조니까 축복받을 일 아니겠는가.
용봉동 우리 어머니는 김치김밥을 좋아하신다. 일요일(23일) 아침에는 김밥을 두 줄 사다가 89살 어머니와 69살 아들이 다정하게 식탁에 앉아 먹었다. 방에 죽치고 앉아 있기에는 햇살이 너무 고왔다. 산수동 오거리로 가서 무등산 산장 가는 버스를 탔다.
일요일이라 무등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붐빈다. 주차장에 빼곡히 들어선 승용차들도 봄 햇살을 푸짐히 받고 있다.
광양 다압의 매화축제나 구례 산동의 산수유 축제만 잔치판이 아니다. 생명의 새로운 소생을 재촉하는 봄 햇살이 내리쬐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축제요 잔치판 아니겠는가.
벌써 50년 넘었는갑다. 우리 중고등학교 다닐 적에는 누문동 학교에서 여기 산장까지 걸어서 소풍을 다녔다. 그 때도 도시락을 까먹고 단풍잎 동동 떠다니는 계곡물 따라 시내까지 내려오자면 한참이나 걸렸지만 그다지 멀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시내에서 산장까지 걷자면 엔간한 배포 아니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학생 시절에는 그래도 무등산과 친했던 셈이다. 어디에선가 토끼몰이를 한 기억도 있고 소풍 길에 서석대 입석대도 오르내렸다. 어른 되고서는 한 번도 무등산에 오르지 못했다. 이 봄이 다 지나가기 전에라도 화창한 날을 택하여 아들며느리 손자손녀와 함께 한 번 무등산 올라봐야겠다.
나는 평상에 앉은 등산객 아저씨한테 점잖게 묻는다.
“여기에서 무등산 오르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코스에 따라 다르지만 장불재까지는 한 시간 반쯤 걸립니다.”
원효사 들어서는 문이 한가로이 봄볕에 졸고 있다. 지극히 평화롭고 아늑한 분위기다. 지금은 버스정류장 옆의 식당 매점 건물만 빼고 모두 사라졌지만 한때 이 산장 골짜기에는 통닭집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여름이면 골짜기 바위마다 주저앉은 관광객들이 화투를 치고 가무음주를 즐기고 먹고 남은 닭 뼈다귀를 아무 곳에나 내던져 썩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무등산 가는 길’은 등산로 안내 표지판이 아니라 가게 이름이다.
가게 유리창에 철 지난 포스터가 붙어 있다. ‘무등산 연가’
광주 동구청 제작 지원. 무등산 국립공원 1주년 기념 최초의 무등산 소재 멜로 영화. 주연; 명승훈, 신송, 김려원. 각본/감독: 이정국. -시사회에 시민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2013년 12월 27일. 광주영상복합문화관 6층.
나는 산장 주차장을 어슬렁거리며 삽상한 공기를 마시고 사진을 몇 장 찍은 다음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내려온다. 꼬부라진 길마다 헐벗은 나목들이 다사롭게 봄 햇살을 받고 있다. 저 나무들도 머지않아 새싹을 틔우고 녹음이 짙어지리라.
수원지 물이 많이 줄어들었다. 지난겨울에 지구 남반구 나라들은 더워서 죽고 북반구 나라들은 지독히 춥거나 눈이 많이 내리거나 홍수가 나서 고생했다는데 다행히 우리 남도는 별로 혹독하게 춥지도 않고 눈도 많이 내리지 않아서 수월하게 넘어갔다. 그 대신 겨울 가뭄이 들었다. 이번 봄에는 푸짐한 비가 대지를 촉촉하게 적셨으면 좋겠다.
전남대 입구에서 내린다. 선거철이 가까워지나 보다. 통합진보당 후보, 거 참 인물 한 번 매끈하게 잘 생겼다.
열어젖힌 대문 안으로 정원이 환히 들여다보인다. 항아리들이 정오의 봄볕을 받아 찬란하게 번쩍거린다. 빛나는 모든 것에 축복 있으라!
전남대 정문에 다다른다. 정문 옆에 커다란 사진이 붙어 있다. 사진 오른쪽 위에 쓰여 있기를,
-5.18 민주화운동 최초 발원지. 1980년 5월 17일 자정, 전남대에 진주한 계엄군은 도서관 등에서 학문에 몰두하고 있던 학생들을 무조건 구타하고 불법 구금하면서 항쟁의 불씨는 뿌려졌다. -
숱한 생령을 살상하고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탈취한 무리들은 지금도 억억 소리를 내면서 잘 살고 있다.
정문부터 본관 건물 쪽으로 곧게 뻗은 메타세쿼여 흙길. 나한테도 저렇게 봄볕을 쬐며 의좋게 걸어가는 캠퍼스 커플이 있었는지 기억이 아리송하다.
대운동장에서 뛰어다니는 축구의 향연이 너무나 상큼하고 싱그럽다.
5.18 민주항쟁 진원지 - 34년 전 역사의 아픔을 뒤로한 채 광주시민들은 잔디밭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아이들의 재롱을 즐기고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전남대학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호수 주변이다.
우리는 비로소 능수버들에서 봄이 안착했음을 여실하게 느낄 수 있다. 이쪽 버드나무의 머릿결이 칭칭 늘어진 새로 또 물 건너 능수버들이 어른거린다.
개나리 만발한 호숫가에서 누군가 정오의 봄볕을 받으며 독서에 열중하고 있다.
구례 산동까지 안 가더라도 산수유가 활짝 폈다. 커플이 다정하게 스스로 찍은 사진을 들여다본다. 참 좋은 경치인데 어떻게 좋은지 뭐라 말하기가 좀 그러네.
한 쌍의 석상도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봄볕을 즐기고 있다. 기분이 괜찮아서 뭐라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차마 우물쭈물 말을 아끼고 있는 눈치다.
전대 후문 쪽 건널목, 일요일인데도 학교에 나왔던 학생들이 점심이라도 먹을 셈인지 파란 신호등을 기다린다. 그들이 부럽다. 좀 어설프더라도 청춘은 아름다운 것이다.
솜사탕 장수가 무안해할까 봐 나무그늘에 숨어서 몰래 찍었다. 전에는 솜사탕을 그냥 맨살로 내놓았는데 이제 먼지 쐬지 말라고 비닐봉지로 덧씌워놓았다.
전에도 잔치마당에는 솜사탕이 빠지지 않았다. 솜사탕을 뜯어먹으면 소다를 먹었을 때처럼 괜히 가슴이 부글부글 끓고 몸뚱이가 가벼워지면서 둥싯둥싯 꿈이 부풀어 오르면서 혼몽상태에 빠지던 것이었다.
남이 놀려대도 좋으니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손가락과 주둥이에 찐득찐득 설탕을 묻히면서 솜사탕을 뜯어먹고 싶다.
목련, 동백, 수선화, 서향, 거리 곳곳에서 봄꽃들이 요염한 자태를 뽐낸다.
광천동 버스정류장의 꽃가게는 한층 더 화려하게 봄을 장식한다. 탐스런 해바라기 꽃송이들이 고흐의 그림 속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하다.
“금호고속의 최종 목적지는 고객 행복입니다.” 경쟁하던 금성여객이 무너지면서 광주여객은 전라남도 길 위에서 독점적인 번영을 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몇 십 년 후 광주여객의 후신인 금호고속은 아시아나 항공을 설립하여 하늘에서 대한항공의 독점을 깨뜨렸다.
터미널 광장 무대의 대형스크린에서는 아직도 2002년 월드컵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었다. 듣기 좋은 노래도 석 자리 반이라 했거늘.......
목포 가는 길, 광천동 정류장 대합실 네온사인 광고판에서는 2015년 유니버시아드 대회와 2019년 세계 수영선수권대회를 선전하는 불빛이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춘분을 넘어서더니 참 긴 하루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