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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찰생태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연구소 사무국
* 다음은 2006년 5월 4일 안양 YMCA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음식물에 대한 옛 사람들의 생각과 삶(보완원고)
1. 머릿말
환경문제는 이제 지구 최대의 화두로 등장했다. 인류는 물론 지구의 자연생태계의 사활이 걸린 화두이다. 이 화두를 풀지 못하면 이제 인류에게 더 이상 '다음 세기'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환경문제의 요인은 외부에 있지 않고 인간사회 내부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환경과 생명보다 부(富)와 편의(便宜)를 쫓고, 절제와 성찰보다 욕심과 교만으로 살아온 당연한 귀결이다. 모든 환경문제는 영성의 혼탁과 인간 정신의 괴멸을 그대로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퍼다버릴 데도 없이 날로 늘어가고 있는 쓰레기 문제야말로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가장 여실하게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쓰레기 문제는 지구자원의 낭비에서부터 환경오염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제의 암세포적 요인이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심각해서 쓰레기 문제의 주범이 되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는 수질과 토양오염에서부터 갖가지 질병에 이르기까지 생명적 삶을 흔들고 있다. 게다가 하루에 쓰레기로 버려지는 음식이 무려 2만5천톤으로 8톤 트럭 3천대 분에 달한다고 한다. 돈으로 환산해 무려 8조원에 이르는 경제적 손실 또한 우리 경제에 큰 짐이 되고 있다. 또, 우리의 음식물 낭비는 남북간에 위화감을 조성하여 통일을 앞당기는 데 장애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오늘의 삶이 후손들에게 희망이 되기 위해 이제 음식문화에 대한 자기 성찰과 의식의 혁명적 전환이 필요할 때다. 어제를 비춰보는 일은 오늘을 살펴보는 일이며, 오늘의 살핌은 내일 후손들에게 하나의 지표가 되리라 믿는다. 이 글은 우리 조상들의 음식물에 대한 인식을 살펴봄으로써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성찰적 대안의 지혜를 모아보고자 한 것이다.
■ 밥에 대한 외경
옛 사람들은 속담을 통해 자신을 채근하고, 자식들을 가르치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속담의 내용이 과학적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옛 속담을 보면 옛 사람들의 음식물에 대한 외경심이 어느 정도였나를 알 수 있다.
'쌀을 밟으면 발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은 신주인 쌀을 함부로 대한 데서 오는 재앙을 경계하라는 의미이다. '쌀을 갖고 놀면 곰보 색시나 신랑을 얻는다'는 속담은 음식의 중요함을 이르는 교훈적인 속담이다. '생쌀을 먹으면 엄마가 일찍 죽는다'는 속담은 쌀은 신성한 것이므로 군것질 하듯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쌀을 날리면(흘리면) 남편이 바람 피운다'는 속담은 양식을 갈무리하고 음식을 만드는 주부들의 소임의 중요성을 깨우쳐준다.
옛 사람들의 전통음식은 단순한 먹거리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 정월대보름날 오곡밥은 조나 수수 종자를 지켜주었고, 빈대떡과 숙주나물 무침은 녹두의 종자를 지금까지 존속케 해주었다.
■ 밥과 생명공동체
옛 사람들은 가족을 식솔(食率)이라고 표현했다. 밥을 함께 먹는 사이라는 의미이다. 같은 집에서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가족적 결연의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한솥밥 먹고 자랐다'는 속담 등을 통해 가족적 공동체의식을 강조했다.
마을사람들은 동제(洞祭)를 통해 한솥밥을 먹음으로써 하나가 되었다. '한솥밥 먹고 송사한다'는 속담은 가까운 사람끼리 다투는 것을 비아냥거리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밥상공동체의 중요함이 바탕에 깔려있다. 여러 사람과 식사를 하면 좋은 일이 생기거나 어려운 문제가 풀린다는 해몽도 밥상공동체와 무관하지 않다.
<열양세시기>에 따르면, 시골의 부자집에서는 잡곡밥을 지어 이웃 사람들과 머습들을 불러서 한 사발씩 나누어 먹인다고 했다. 부자가 많은 마을에서는 하루에 여러 사발을 얻어 먹는다.
<농가월령가>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농부의 힘든 일 가래질 첫째로다 / 점심밥 풍비(豊備)하여 때맞추어 배불리소 / 일꾼의 처자권속(妻子眷屬) 따라와 같이 먹세 / 농촌의 후한 풍속 두곡(斗穀)을 아낄소냐’ 어디 처자권속만이겠는가. 새참을 먹을 때는 지나가는 걸인까지도 불러서 함께 먹었다. 비록 궁핍한 살림살이였으나, 먹는 일에는 남이 따로 없었던 것이 우리네 풍속이었다.
'선심공덕 하마더니 무슨 공덕 하였느냐 / 배고픈 이 밥을 주어 기사구제 하였느냐 /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선심 하였느냐 / 좋은 터에 원을 지어 행인구제 하였느냐' 회심곡에 나오는 이 대목은 우리 조상들의 나눔의 삶을 잘 보여준다.
예전의 계급봉건사회에서는 주인이 먼저 식사를 하고 밥상물림을 통해 하인들이 나중에 먹었다. 덕망 있는 이들은 하인들을 위해 맛있고 값진 음식을 다 먹지 않고 남긴 채 밥상을 물렸다. '양상수척(讓床瘦戚)'이라는 말은 밥상 물림을 통해 아랫것들에게 좋은 음식을 물려주다보니 본인은 몸이 수척해졌다는 말이다.
옛 속담에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인심은 서로 나눠먹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가름이란 이웃과 정을 나눈다는 뜻이다. 예전에 부잣집에서는 밥을 지을 때 세 사람의 밥을 더 짓게 하였다. 이것을 석덤이라 하는데, 행여나 찾아올 지 모르는 반가운 손님이나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항상 밥을 더 짓는 것이다.
농가월령가에 보면 '...농부의 힘든 일 가래질 첫째로다. 점심밥 풍비(豊備)하여 때맞추어 배불리소. 일꾼의 처자권속(妻子眷屬) 따라와 같이 먹세. 농촌의 후한 풍속 두곡(斗穀)을 아낄소냐'라는 내용이 있다. 일꾼들의 가족들에게까지도 먹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자 했다.
예로부터 백(百)은 완성(完成)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갓난아이가 백일이 되면 일단 발육과정에서 한 고비를 넘긴 셈이다. 백일에는 수수떡과 백설기를 만들어 백호(百戶)에 나누어 주거나 떡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대문간에 놓아두고 오가는 행인들이 집어가게 한다. 이는 백일의 기쁨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이다.
예전 관가에서는 점심 시간이 유난히 길었다. 벼슬이 높은 당상관들부터 먼저 먹고 이어서 당하관이 먹고, 그 밥상을 물려 받아 아전들이 먹다보니 신시(오후 4시)에 이르러서야 점심시간이 끝났다. 이와 같은 상물림 풍습이 계급사회의 비인간적 차별행위와 시간활용의 비효율성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함께 공식(共食)함으로써 밥상공동체를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요즘 우리 기업들은 소비자들을 '가족'이라는 말로 끌어안고 있다.
이런 전래동요가 있다 ‘어깨동무 씨동무 / 보리가 나도록 씨동무 // 어깨동무 씨동무 / 보리가 나도록 놀아라 // 논두렁 밭두렁에 앉아서 / 할배 새참 몰래 먹고 // 부뚜막 실겅에 미숫가루 / 우리 할매 들킬라 / 한모금 홀짝 들이키고 // 보리피리 불어대며 / 동무 동무 씨동무’
이 동요 역시 음식을 통한 공동체의식을 담고 있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마음을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옛날에는 정월 열나흗날 밤이면 총각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밥을 얻으러 마을을 돌아다녔다. 밥 뿐만 아니라 반찬까지 얻어와서 밤 깊은 줄 모르게 그것들을 나누어 먹으며 시쳇말로 올나이트를 하며 놓았다. 이 풍속을 총각두레라고 했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총각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인이 알게 모르게 밥을 훔쳐 먹었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 풍속으로 내려온 것이다.
상사가 부하직원을 초대해서 한턱 낸다는 것은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공동체 결속의 뜻이 있다.
또, 아이들이 아플 때는 일부러 남의 집 밥을 얻어와 먹였다. 이를 백가반(百家飯) 풍속이라 했다. 백가반을 얻어와서는 반드시 개에게도 한 숟가락 나누어주었다. 이또한 나눔을 통한 자연사랑이다.
꿈에 음식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으면 여럿이 협력해야할 일이 생긴다, 식사를 중단하게 되면 해야할 일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음식을 먹으면 어떤 일을 책임지거나 권리를 주장하게 된다, 밥 없이 반찬만 놓여진 상을 받으면 주된 일은 하지 못하고 부수적인 일만 하게 된다, 음식을 남에게 대접하면 상대를 설득하여 자기 일을 맡긴다. 이는 밥의 사회적 의미를 생각게 해준다.
밥상공동체는 죽은 조상도 예외가 아니다. 사람이 죽으면 저승에 가서 굶지 말라고 시신을 염할 때 입에 쌀을 넣어주고, 망자를 데리고 간다는 저승사자에게까지 사잣밥을 대접했다. 생사를 초월한 나눔이다.
3년상을 마치면 기제사나 명절제사 때 한솥밥을 올려 제사를 지냈다. 제사 후에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음복(飮福)은 조상과 후손이 한솥밥을 공식(共食)하는 제례 풍속 가운데 하나이다. 대개 제사는 한밤중[子時]에 지내는데, 어머니는 일찍 잠든 아이를 위해 제사밥을 남겨두었다가 꼭 챙겨먹이곤 했다. 신인공동체에서 자식을 소외시키지 않으려는 전통적 모성애였다. 명절 때 제주를 나누어 마시는 음복 풍속도 마찬가지이다.
혼례 때 주고 받는 음식을 이바지음식이라고 한다. <월인석보(月印釋譜)>에 보면 이바지 음식은 곧 신령에게 바친 음식을 뜻하고 있다. 사돈네 조상, 즉 사당에 올리는 음식인데, 이것이 나중에는 사돈네 집안 대소가가 함께 먹는 축제 음식으로 발전했다. 따라서 이바지음식은 신인공식(神人共食)문화의 흐름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심지어는 집안에 머문다는 여러 가신(家神)들까지도 풍속을 통해 인간과 한솥밥을 먹었다. 우리네 전통적인 밥상공동체는 이와 같이 신인공식(神人共食)으로 완성된다. 옛 사람들의 이러한 밥상공동체정신은 인간과 신이 함께하는 생명공동체 정신, 바로 그것이다.
■ 여러 생명들과 함께 나눠 먹기
한편, 밥상공동체는 인간만의 공동체는 아니다. 자연생명들, 즉 동식물과도 함께 나눠먹는 아름다운 풍속이 우리에게 있었다.
새참이나 들밥을 먹을 때 옛 사람들은 숟가락을 들기 전에 먼저 음식을 조금 떼어‘고수레 !’를 외치며 멀리 던졌다. 이 풍습의 기원전설은 지방마다 조금씩 달리 전해져오지만, 음식을 먹기 전에 고수레를 해야 체하지 않고 뒷탈이 없다고 한 것은 어느 곳에서나 공통으로 내려오는 금기이다. 그 금기 안에는 추수의 공덕을 자연에게 돌려 그 기쁨을 자연생명들과 함께 나눈다는 감사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정월대보름날 동해안에서는 밥을 강이나 바다에 던져넣는 ‘어부슴[漁夫心]’ 풍속이 있었다. 먹이 구하기가 아려운 물고기를 위해 먹이를 나눠주는 적선(積善)을 통해 한 해의 액을 푸는 것이다. 부안의; 위도에 전해오는 띠뱃놀이에는 물고기를 위해 바다에 부레밥을 던져준다.
한강유역의 속신에는 아홉직성[神]이 있는데, 토직성이 드는 해에는 조밥을 지어 논밭에 흩뿌리고, 수직성 해에는 조밥을 강에다 뿌린다 하였다. 요즘 철새 모이주기 행사와 다를 바 없다.
제사나 마을 축제가 있을 때 음식을 떼어다 밖에 내다놓고 뭇새와 동물들에게 주는 헌식 풍속도 자연생명들과 나눠 먹기 풍속이다.
그 밖에 늦가을에 감나무에 남겨놓는 까치밥 풍속 등등도 주변의 살아있는 자연생명과 한솥밥을 나누어 먹으려는 밥상공동체 풍속이다.
이렇듯 옛 사람들은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음으로 해서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기원했다.
생명공동체는 독단과 이기가 배제된 민주와 평화공동체이다. 평화의 '和'를 파자하면 '禾+口'이다. 농사를 천대하면 '禾(식량)'이 줄어들고 '口(입)'만 살아남는다. 모두들 자기 주장만 하다보니 화(和)가 깨어질 수 밖에 없다. 평화공동체는 나눔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집안의 가축들은 농사를 짓는 또다른 일꾼이자, 죽어서 고기를 주는 희생물이다. 정월보름날을 비롯한 명절 때에는 소나 말 등 가축에게 밥과 나물을 차려주었다. 하늘이 내려주고 땅에서 거둔 것들을 만생명과 나누어 먹는다는 크나큰 자연사랑이요 자연합일의 행위이다. 대보름날 아침에 소가 밥을 먼저 먹으면 풍년이 들고 나물을 먼저 먹으면 목화가 잘 된다고 믿었다.
■ 밥과 일상생활
밥 먹는 일은 모든 생명활동의 근본이며 가장 중요한 일이다. 우리 민족만큼 밥을 섬기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식사대사(食事大事)’라고도 했고,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고도 했다. 사람들과 나누는 인사 가운데도 식사와 관련된 인사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 '진지 드셨습니까?' '아침 먹었냐?'라는 인사가 그것이다. 차 마시고 밥먹는 일은 글짜 그대로 일상적인 다반사(茶飯事)이다.
'하루 세 끼 밥 먹듯'이라는 속담은, 평범한 일상사이지만 사람이면 누구나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고, 먹어야만 모든 일을 가능케 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바탕되어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도 있다. 먹고 살려다보니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 말 속에는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먹어야만 살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가 들어가 있다.
모든 행위는 밥을 먹어야 이루어진다. 걷고, 웃고, 말하고, 자고, 사랑하고, 싸우는 행위가 모두 밥으로써 말미암은 삶의 단편들이다.
■ 밥은 생명이다.
밥 먹는 일은 동서고금에 다르지 않다. 인류의 역사도 결국은 밥을 먹고 산 기록이다. 종교도, 예술도, 전쟁도, 평화도 다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먹고 죽은 귀신은 얼굴빛도 좋다'는 속담은 귀신까지도 제례를 통해 뭔가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먹고 마시는 일은 인간만의 일이 아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뭔가를 먹고 마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 밖에 기다릴 것이 없다. 먹고 마시고 싸는 일은 모든 생명체들에게 있어서 가장 원초적인 생명활동이다.
삶의 시작은 밥 먹는 일부터이다. 태어난 아기는 돌을 지나서부터 젖을 떼고 밥을 먹기 시작한다. 젖을 떼어야 그때부터 진정한 그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엄마의 생명의 일부이다. 다만 몸체가 자궁 밖으로 나와 있을 뿐이다. 모유 먹는 시간은 완전한 자기 삶이 아니다. 자궁 안에서 보이지 않게 공급하던 영양을 자궁 박에서 공급한다는 것이 다를 뿐. 그리고, 돌이 되면 아기에게 밥그릇과 수저 한벌을 처음 마련해주고, 수저도 손에 쥐어주는 풍속이 있다. 모유의 시기를 벗어나 밥을 먹기 시작한다는 것은 아이가 자연생명과 처음 만나는 성스런 생명활동이다.
우리는 흔히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한다. 즉, '밥을 먹는 입’으로 생명의 개체수 나타내었다.
어찌보면 우리 민족만큼 단식투쟁에 익숙한 민족도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단식 대신 ‘절곡(絶穀)’이라는 용어를 많이 썼다. 효자가 병환 중인 어버이와 고통나누기를 위해서, 충신이 불사이군의 뜻으로, 열녀가 남편따라 순사하여 부덕을 이루고자... 절곡을 했던 것이다. 즉, 밥 먹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생명을 건 결연한 각오를 나타낸다.
단식은 요즘도 정치인들이나 노동자들의 투쟁방식의 하나로 가끔 시도되고 있다. 밥은 곧 생명이며, 따라서 단식은 곧 생명을 걸고 개인이나 집단의 의지를 보여주는 저항과 투쟁의 행위이다.
‘아침 굶은 시어미 상판’이라는 속담도 며느리가 못마땅해서 아침을 단식한 시어머니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주는 말이다. 밥을 굶음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속담에 ‘밥 숟가락 놓았다’ 하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밥은 복이다
옛 사람들은 밥을 복이라 하였다. 밥은 인간의 손을 빌어 하늘이 내려주는 복이다. 사람이 누리는 오복(五福) 가운데 으뜸이 식복이다. 꿈에 음식이 생기면 좋을 일(福)이 생긴다고 했다. 식복은 곧 건강복이요, 수명복이다.
우리의 옛 이야기가 대개 ‘잘 먹고 잘 살았다’로 끝을 맺는 것을 보면 ‘먹는 일’을 ‘복’의 기본조건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설날 새벽에 파는 조리를 복조리라고 한다. 쌀과 돌을 분리 시킬 때 필요한 복조리는 쌀만 골라낸다. 즉, 복만 골라내는 조리이다. 정월대보름에는 밥을 김에 싸서 먹는 복쌈 풍속이 있었다. 김으로 복을 싸서 먹는 것이다. 일부지방에서는 ‘김쌈[海衣裏]’이라고 하는데, 풍년과 무병장수를 기리는 풍속이다.
밥그릇과 수저는 혼례 때 신부의 기본 혼수 가운데 하나였다. 식기나 수저에 ‘福’자나 ‘壽’ 글짜들을 즐겨 새겨넣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는 식복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풍속이다.
밥 짓는 일을 복 짓는 일에다 비유하여 ‘밥을 잘 지으면 좋은 신랑감을 얻는다’고 했다. 즉, 여러 사람에게 밥을 지어주는 공덕을 쌓으면 좋은 신랑을 얻어 ‘잘 먹고 살 살게 된다’는 의미이다. 예전에는 밥을 짓는 것이 여성들의 기본이었다. 밥 짓는 솜씨가 없으면 밥으로써 남에게 복을 짓는 일이 없으므로 복이 없다고 했다.
꿈에 대한 해몽은 그 사물에 대한 또다른 인식이다. 옛 사람들이 꿈에서 밥 또는 식사에 관한 꿈을 꾸었을 때 이를 어떻게 해몽하느냐 하는 것은 곧 옛 사람들에게 있어서 밥은 어떤 의미로 인식되었는가 하는 것과 같다.
밥을 많이 먹는 꿈은 앞으로 부자가 될 징조이다, 남으로부터 좋은 음식을 대접 받으면 좋은 일거리가 생긴다, 남보다 크고 화려한 그릇에 담겨진 음식을 먹으면 승진하거나 희소식이 온다, 평소에 존경하는 사람과 식사를 하면 매사가 잘 풀린다, 음식을 보고 만족감을 느끼면 기다리던 일이 성사된다, 입이 막혀 음식을 먹지 못하면 위급한 병에 걸릴 징조이며, 음식을 두고 먹지 못하면 불길한 징조이다 등등의 해몽은 ‘밥=복=행운’이라는 인식이 바탕되어 있다.
■ 밥을 버리지 말라
‘밥을 버리면 복을 잃는다’ ‘ 밥알을 떨어뜨리면 복이 달아난다’는 속담이 있다. 밥 뿐만 아니라 음식을 소중히 여기고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교훈이다.
속담에 ‘남이 남긴 밥을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이 있다. 남이 먹다 남긴 밥이라도 음식을 소중히 여겨 함부로 버리지말라는 가르침이 들어 있다. 어쩌다 밥이 남게 되어도 남은 밥으로 술을 담그거나 식혜를 담갔다. 상한 밥은 풀로 쑤어서 무명옷 등을 빨 때 썼다.
'흘린 밥알을 쥐나 새가 먹으면 어미가 죽는다'는 것은 음식물을 함부로 내버리지 말라는 경계의 뜻이 담겨져 있다. '밥을 흘리고 먹으면 군식구가 늘어난다'는 말도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남이 남긴 밥을 먹으면 오래 산다'는 속담 안에는 음식을 소중히 여겨 함부로 버리지말라는 가르침이 들어 있다.
'비벼 먹은 그릇에 물을 부어 마시면 체증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담도 음식물을 소중히 여겨 찌꺼기라도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찬밥 더운밥 가리게 됐나'는 속담은 좋고 나쁜 대우를 가리고 따질 형편이 아님을 이르는 말이다. 찬밥이나 더운밥이나 모두가 소중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는 속담이다. 예전에는 남의 집 수챗구멍에 밥풀만 있어도 그 집 살림살이를 경멸했다.
옛 사람들은 쌀 씻은 뜨물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뜨물을 모았다가 국이나 숭늉을 끓여 먹었으니, 뜨물은 곧 음식이었다. 그 밖에 밥 먹은 뒤 그릇의 이것으로 기름기를 제거하는 세제로 쓰기도 했다. 그리고 이 뜨물을 모았다가 소나 돼지에게 주었다. 가축이 없는 집에서는 이것을 모아 두었다가 마당 한 구석에 토란밭을 만들어 거름으로 쓰기도 하고, 가축이 있는 집에서 먹이로 가져가게 하였다.
성철스님이 봉암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산책을 하던 중 하수구의 물에 참기름 방울이 떠 있는 것을 보았다. 스님은 공양 소임을 맡은 젊은 수좌를 불러 기름방울과 함께 하수구 물을 양동이에 모두 퍼담게 했다. 그리고 목탁을 쳐서 대중스님들을 불러모은 스님은 대중들에게 그 물을 바루에 떠서 다 마시게 했다. 일벌백계(一罰百戒) !
현대인들은 돈만 주면 가공식품이나 편의식품(패스트푸드) 등을 언제든지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음식물에 대한 외경심이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음식물을 공산품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인식이 자원을 낭비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양산하게 된다. TV방송 등에 음식물로 장난을 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도 음식물을 다른 공산품과 동격의 것으로 인식한 데서 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옛 사람들은 직접 농사를 지어 음식을 장만했기 때문에 곡식과 음식에 대한 외경심은 거의 신앙적이었다. 옛 사람들은 음식물에서 나오는 것을 ‘쓰레기’라는 개념으로 보지 않고 ‘찌꺼기’ 또는 ‘부산물’로 인식했다. 밥과 반찬 등 음식물 찌꺼기는 가축의 사료가 되었다. 심지어는 설거지물까지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식구가 많은 농가에서는 가축을 여러 마리 기를 수가 있었지만, 식구가 적은 농가에서는 한 두 마리에 만족해야 했다. 음식찌꺼기가 그렇게 긴요하게 쓰였던 것이다.
지금 북한에서는 겹친 흉년과 농업기술 낙후로 백성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에서는 해마다 버리는 음식이 엄청나다. 그 양이면 북한 동포들은 일년내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고도 남한이 계속 복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 식사예절
밥에 대한 외경심은 식사예절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 옛 사람들은 밥을 먹는 예의범절도 독특하고 유별났다. 어떤 사람이 사웟감 둘을 놓고 고르는데,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선택했다는 고사도 있다. 한 숟가락을 먹어도 ‘복스럽게’ 먹어야지, 입맛이 없다고 하여 깨지락대거나 젓가락으로 먹는 버릇이 있는 사람은 ‘굶어서 죽을 팔자’라 하였으며, 밥을 먹는 도중에 수저를 흔들거나 까불면 복이 나가서 거지팔자를 면치 못한다고도 했다.
어른과 함께 식사할 때는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든 다음에 수저를 든다. 수저는 한꺼번에 들고 사용하지 않는다. 젓가락을 사용할 때마다 상위에서 맞추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한다. 밥그릇이나 국그릇을 손으로 들고 먹지 않도록 한다. 음식은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양만큼 입에 넣어 입을 다물고 씹는다. 입 속에 음식이 들어 있을 때에는 말하지 않도록 한다. 국 국물이나 김치 국물을 먹을 때에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한다. 밥이나 반찬은 뒤적거리지 말고 한 쪽에서부터 먹는다. 젓가락으로 반찬에 붙은 양념을 떨어가면서 먹지 않도록 한다. 음식을 먹는 도중에 돌이나 가시가 있을 때에는 상 위나 그릇 뚜껑에 지저분하게 늘어놓지 말고, 옆 사람에게 보이지 않도록 조용히 종이에 싸서 버린다. 또한 기침이나 재채기가 나면, 얼굴을 재빨리 옆으로 돌려서 손이나 손수건으로 입을 가려 다른 사람에게 침이 튀지 않도록 한다. 음식을 먹는 속도는 옆 사람과 맞추도록 하고, 음식을 다 먹은 후에는 수저를 오른쪽에 가지런히 놓는다. 어른보다 먼저 식사가 끝났을 때는 다 드실 때까지 기다리며, 먼저 자리를 뜨지 않도록 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 식사를 했을 때에 불쾌했던 경험을 이야기해 보고, 자신의 식사 예절을 어떠한지 스스로 반성해 보자.
<사미율의>에 10가지 계율이 나오는데, 그 중 아홉 번째가 ‘때 아닌 적에 먹지 말라’이다. 때 아닌 때란, 오후를 가리킨다. 병이 난 사람들에 한해서만 저녁에 약석(藥石)을 허락하였는데, 약석이란 방약(方藥)과 침석(針石)을 말한다. 즉, 밥으로서가 아니라 병에 대한 처방으로서 오후식을 허용한 것이다. 옛날 법혜선사가 오후에 절에서 밥 짓는 것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불법의 쇠퇴함을 염려했다.
절에서도 공양시간은 침묵의 시간이다. 식당은 선방, 해우소와 함께 삼묵당(三黙堂)에 속하는 곳. 이 곳에서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수행공간이다.
■ 밥은 하늘이다.
옛 사람들은 ‘밥은 하늘이다[以天食天]’라고 했다. 수운(水雲) 최제우 선생도 '밥은 하늘이다'라고 말했다. 밥을 하늘처럼 소중히 받들라는 뜻도 있지만, 하늘(대자연)이 밥을 만든다는 의미도 함께 들어가 있다.
하늘을 받들 듯이 직접 밥을 신으로 받드는 민간신앙도 있다. 경남 남해 가천마을에는 아직도 밥구덩이 동제(洞祭)를 지내고 있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돌탑 속에다 밥을 신주로 모시고 동제를 지낸다.
우리 전통신앙의 바탕은 범신론이었다. 그래서 집안에도 여러 신들을 들였다. 쌀은 주식인 밥을 만드는 기본적인 재료이므로 밥과 등가(等價)로 인식하여 쌀을 신체로 받들거나 신에게 공양했다. 가신 가운데 가장 높은 제석오가리는 흔히 오지그릇에 쌀을 담아 신체로 삼았다. 세대주와 가장을 상징하는 성주, 집안 살림을 지켜준다는 업신(業神), 집터를 지켜주는 터주신, 생명을 관장하는 삼신도 모두 곡식으로 신체로 삼았다.
■ 밥은 공덕이다.
우리의 밥은 주 원료가 쌀이다. 쌀을 한자로 ‘米’라고 쓴다. 이는 한 톨의 쌀을 만드는 데 여든여덟 사람의 공덕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일미칠근(一米七斤)’이라는 말은 쌀 한톨의 무게가 일곱근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정성이 깃들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일생동안 먹는 밥의 무게(은혜)가 얼마이겠는가.
음식이 밥상 위에 올려지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이 전제되어 있다. 농사 짓고 음식 만든 사람들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사람만의 공덕이 아니라 태양․바람․물․풀벌레․새 등등의 자연물(제중생)의 공덕도 함께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한숟가락의 밥에는 봄날 꽃향기도 들어가 있고, 여름날 빗소리도 들어가 있고, 가을날 귀뚜라미 소리도 들어가 있다. 뿐만 아니라 유무형의 시공간 조건까지도 모두 공덕이며 은혜이다.
모든 제사에 올리는 밥은 ‘밥’이 아니라 ‘공덕’의 상징물이다. 즉 ‘보은물’이다.
■ 음식풍속
1) 조반석죽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민족은 대체로 부지런하며, 따라서 아침밥을 대체적으로 건너뛰지 않는다. 우리 민족은 하루 세끼 중 아침밥을 가장 잘 먹는 조기(早起) 민족이다. ‘조반석죽(朝飯夕粥)’이라하여 식량이 모자라는 궁한기 때라도 아침엔 밥을 꼭 먹고 다녔다. 육체적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식사가 불규칙하다. 요즘은 아침을 건너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심지어 학생들까지도 아침식사를 거르거나 간편식으로 해치운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침밥을 먹는 학생과 먹지 않는 학생의 수학(修學) 능력을 조사했더니 아침밥을 먹는 학생이 훨씬 뛰어났다는 보고서가 있다.
2) 금기
예전에는 벼를 베어 마당으로 들여다 타작을 탈곡을 했다. 이때 낟알이나 쌀을 밟으면 발목이 비틀어진다고 했다. 생쌀을 먹으면 엄마가 일찍 죽는다거나, 쌀을 날리면 남편이 바람 난다거나, 곡식을 갖고 놀면 곰보 색시나 신랑을 얻는다거나 하는 속설도 있었다. 옛 사람들은 이런 속담이나 속설을 통해 곡식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또 스스로 마음에 새겼다.
실생활에서도, 예전에는 남의 집 수챗구멍에 밥풀만 있어도 그 집 살림살이를 경멸했다.
■ 밥값을 하고 살아라
해[年]의 원래 글자는 년[秊]이다. 이를 파자하면 禾+人이요, 禾+亻이며, 禾+千이다. 글자 모양을 자세히 보면, 등에 볏단(禾)을 짊어진 사람의 모습(千)을 하고 있다. 즉, 연(年)은 밥값을 한 사람의 모습이니, 한 해가 바뀔 때마다 밥값을 하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 즉, 밥값이란 밥 먹을 자격이 있는 ‘사람값’이다.
음식에 공덕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곧 보이지 않는 책임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하는 일 없이 밥만 축내는 사람을 일컬어 ‘밥벌레[食蟲]’라고 했다. ‘밥값을 해야지’라는 말은 정성이 깃든 음식을 먹었으니 그 감사함을 사회로 돌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익은 밥 먹고 선소리 한다’는 말은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싱겁게 하는 사람을 핀잔하여 이르는 말이지만, 그 속에 식사에 깃들어 있는 사회적 의미를 나타낸다.
불교에서는 공양(供養)이라는 말을 쓴다. 음식 자체를 공양이라고도 하지만, 식사하는 일을 두고 ‘공양한다’라고 한다. 그 말 속에는 내 안의 부처[佛性]를 잘 모시고 대접하라는 뜻 말고도, ‘위로 바치고 아래로 기른다’는 의미가 강하게 깃들어 있다. 즉, 여러 공덕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위로 진리를 찾고, 아래로 중생을 구하라(상구보리 하화중생)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한 숟가락도 공밥이 안 되도록 열심히 수행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그 징표로 양산 통도사에 가면 봉발탑이란 것이 있다. 돌로 만든 큰 밥그릇을 올려 놓은 특이한 탑이다. 지금도 불가에서는 전법의 징표로 스승이 제자에게 가사와 바리떼를 건네주는 풍습이 남아있는데, 그 의미는 중생들로부터 받은 공양물을 헛되이 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수행자로서의 경책을 담고 있다.
스님들의 밥그릇인 발우(鉢盂)를 응량기(應量器)라고 한다.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는 그릇이라는 뜻이다. 밥을 얻어 먹은 만큼 열심히 수행하여 밥값(상구보리 하화중생)을 하라는 의미도 있고, 밥을 얻어먹을 만큼 수행이 되었는지 되돌아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시주를 화살 받듯하라(施者如受箭)’는 말은 한눈 팔면 화살에 상처를 입는 것처럼 바짝 정신 차려 수행하지 않으면 죄업을 쌓는다는 이야기이다.
■ 밥은 약이다.
음식물은 몸을 건강하고 병 없이 지탱해 주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인사 가운데 ‘진지 드셨습니까?’ ‘밥 먹었느냐?’라는 인사가 있다. 일제는 우리네의 그런 인사말이 ‘워낙 전쟁과 흉년이 잦고 가난해서’ 생겼다고 비하했지만, 그 인사말은 식사 여부를 묻는 말이 아니라 ‘건강하냐?’를 묻는 인사말이다.
음식물 속에는 다양한 약 성분이 들어 가 있어서 골고루 취할 경우 음식물은 곧 약이 된다. 옛 사람들은 음식물과 약을 따로 보지 않았다. 음식은 몸을 보(補)하고 병을 예방하거나 회복을 돕는다고 생각했다. ‘밥이 보약이다[食卽藥]’이니 ‘식약불이(食藥不二)’라는 말들이 거기서 연유한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도 같은 의미의 말이다.
실제로 <동의보감>에 나오는 생강․계피․쑥․당귀․오미자․구기자․박하․더덕․도라지․율무․모과․석류․유자․인삼 등등 많은 약재들은 밥상 위에 올라오는 식용식물들이다. 그래서 밥을 함부로 하는 것은 곧 약을 함부로 하는 것과 같이 생각했다. 밥은 가족들의 건강의 원천으로, 주부가 밥을 업신여기면 가족들이 건강을 잃는다고 했다.
그런가하면, 밥을 나눠 먹음으로해서 약으로 삼는 전통이 있었다. 옛날에 아이가 봄을 타서 몸이 아프면 이것을 막기 위해 백집의 밥을 얻어다가 절구 위에 앉아서 먹는 풍습이 있었다. 즉 밥이 약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절에 가면 누구든지, 또 언제든지 밥을 얻어 먹을 수가 있다. 예전에 민간에서는 입맛을 잃거나 건강이 좋지 않을 때 가끔씩 절을 찾아가 절밥을 얻어 먹기도 했다. 그러면 병이 완쾌되거나 입맛을 되찾는다는 것이다. 절에서는 산중 약초를 반찬으로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약효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요즘은 음식과 약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음식으로 병을 고친다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음식을 약으로 인식하면 오늘날과 같은 음식물 천시 풍조가 조금은 누그러질 것이다.
한편, 음식을 두고 먹지 못하면 병에 걸릴 징조라고 해몽했다.
■ 소식(小食)과 소식(素食)
우리 민족이 밥을 많이 먹는 대식민족(大食民族)으로 소문을 낸 것은 일제였다. 하긴, 식사에 있어서 우리는 질보다 양을 우선하는 것도 같다. 그것은 외국에는 없는 탕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점심을 거의 먹지 않는 민족이었다. 설령 낮이 긴 여름철 점심을 먹는다 해도 겨우 ‘점을 찍을 만큼[點心]’ 소량이었던 것이다. 1905년 러시아에서 펴낸 <한국지>에서야 비로소 세 끼 먹는 풍속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니 아침과 저녁을 성찬으로 먹을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저들의 눈에 대식으로 비쳐진 것도 같다. 세끼 식습관은 외국문물이 들어온 한말 이후의 것이다. 그래도 우리 민족은 저들과 같은 비만이나 성인병이 일찍이 없었다. 오히려 양보다 질을 따지는 저들의 식습관이 들어와서 그런 것들이 생겼다. 그래서 뒤늦게 ‘저칼로리 영양식’이니 ‘다이어트’니 하는 용어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스님과 신부들은 절제된 생활을 하기 때문에 대개 소식(小食)과 소식(素食)을 한다. 그런 연유로 해서 평균 수명이 79세로 일반인보다 장수한다고 한다. 직업으로 볼 때 64세로 언론인들의 수명이 가장 짧게 나왔다.
음식물은 몸을 만들고, 몸은 정신을 담고 행동을 만들어낸다. 즉, 사람은 음식물을 통해 자연과 물적(物的) 영적(靈的)으로 교감한다. 그 교감에 따라 체질이 달라지고, 사고방식이 달라지고, 행동양식이 달라진다. 나아가서는 그 나라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그 나라의 음식문화와 국민정서가 달라진다.
동양인은 육식을 주로하는 서양인들과는 달리 오랜 채식의 전통을 갖고 있다. 우리 민족도 예외는 아니어서 일년 중 명절이나 집안의 길흉사 때나 육식을 했을 뿐 거의 채식에 의존하였다. 육식은 겨우 채식에서 오는 결점으로 보완하는 정도의 보식(補食)이었을 뿐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검소한 소식(素食)을 해왔음을 의미한다.
옛 사람들은 아이를 키울 때, 말을 시작하기 전에는 고기를 먹이지 않았다고 한다. 밥맛을 들이기 전에는 고기맛을 보여주지 않는 철저한 소식으로 아이들의 입맛을 길들였다.
퇴계 이황 선생이 서울에 있을 때. 좌의정 권공철이 찾아왔다. 함께 식사를 하는데 밥이 너무 보잘 것 없어서 먹을 수가 없어 깨지락대다가 말았다. 그러나, 퇴계 선생은 조금도 꺼리낌없이 밥을 맛있게 먹었다. 권 정승이 집을 나와 제자들에게 한탄을 했다. ‘종전에 내 입을 잘못 길들여 이 지경이 되어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하였다.
중종 때 선비 사재 김정국(金正國)은 다섯 가지 반찬으로 밥을 먹는다고 말했었다. 어느날 한 제자가 사재 밥상에 반찬이 세 가지만 올라 있는 것을 보고는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김정국이 ‘반드시 시장할 때 찾아먹으니 시장이 그 한가지 반찬이요, 반드시 따뜻하게 해서 먹으니 그것이 다른 한가지 반찬이라’ 했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있다. 임오군란으로 민영익이 도망쳐 가까스로 김양근의 집에 숨어들었다. 김양근은 이따금 민영익의 집에 식객 노릇을 한 사람이었다. 김영근은 보리밥에 부추김치를 내놓았다. 평소같았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으나 몇 끼를 굶은 민영익이라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후딱 해치우고는 쑥스러운 얼굴로 ‘부추김치가 어찌 이리 맛 있는가’했다. 그러자, 김영근은 민영익 들으랍시고 ‘영감님댁에서 식객들에게 내놓는 것보다야 훨씬 낫죠’라고 비웃었다. 민영익이 부끄러워 대답을 못했다.
■ 밥과 과학
옛 사람들은, 밥알이 식기에 붙으면 맑고, 떨어지면 비가 올 징조라고 했다. 대단한 관찰력이 바탕이 된 기상학이다. 밥알이 식기에 붙으면 날이 맑다는 말은 그만큼 공기 중에 습기가 없어 건조하다는 것을 뜻한다. 맑은 날은 지상의 온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습기가 적다. 또 밥알이 식기에 붙지 않는 것은 그만큼 습기가 많기 때문에 밥알이 잘 떨어지는 것이다. 기압골이 접근하여 남서풍이 불 때 습기를 가진 바람이 불어오므로 습기가 많아지고, 지상의 온도는 햇빛이 났을 때보다는 낮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습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즉 상대습도가 높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맑은 날은 습도가 낮아 밥알이 그릇에 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고, 흐린 날은 습도가 높아서 밥알이 그릇에서 잘 떨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