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하나님
(요 4:19-26)
1. 사마리아를 지나가는 예수님
① 수가성 여인을 만나심
영적인 갈급함을 가진 사람을 만나심
(요 4:3,4)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오늘 본문의 배경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돌아가시는 길에 사마리아를 들러 가시다가 만난 수가성 여인과 대화한 내용입니다.
그 때 당시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처럼 취급되던 지역이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이지만 앗수르에 멸망 당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고 이방인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혼혈 민족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동족으로 여기지 않고 이방인 취급을 했습니다.
더구나 유대인 랍비인 남자가 사마리아인 여자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 말을 거셨고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②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요 4:13,14)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야곱의 우물이라 자랑하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게 되지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여인은 자신에게 그 물을 달라 하는데 예수님은 전혀 관계 없을 것 같은 남편을 데려오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목마름의 원인을 아셨기 때문에 남편을 데려오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에게 남편이 없다 말하고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네게 남편이 다섯이 있었는데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다 하십니다.
자신의 모든 상황을 한 눈에 꿰뚫어 본 예수님을 선지자로 인정합니다.
2. 어디서 예배해야 합니까
①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는지
그리심 산에서 예배하는지
(요 4:19,20)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사마리아 여인이 왜 다섯이나 되는 남편을 만났고 지금 있는 자도 남편이 아니라 하신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나중에 자세히 살피기로 하겠습니다.
이 여인은 바로 자신의 관심사는 예배에 있다고 밝힙니다.
그 중에서도 예배할 장소에 대해 질문합니다.
어디에서 예배를 해야 하느냐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해왔었는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전체 역사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어느 쪽에 정통성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② 장소가 아니라 때가 중요하다
예배할 때가 온다
(요 4: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하지만 예수님은 한 마디로 여인의 질문이 잘못되었다 말씀하십니다.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때가 있다 하십니다.
그리고 그 예배의 대상을 예수님은 아버지라 말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를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예배의 대상을 알아야
(요 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그리고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한다 하십니다.
왜냐하면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섬겼습니다.
예배의 대상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지요.
하지만 자신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첫 왕인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절기마다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사를 드리면 돌아오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벧엘과 단에 두고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하나님께서 정한 절기가 아니라 자신들이 정한 날 제사를 드렸습니다.
금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리면서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음으로는 재물을 섬기고, 건강을 섬기고, 사람들의 인기를 섬기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예배 대상이 바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3.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사람
① 예배하는 자를 찾으심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요 4:23,24)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수님은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이 어떻게 예배해야 하고 그 때가 언제인지 말씀하십니다.
먼저 예배는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시간과 몸과 정성을 다해 예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드려 교회 일을 열심히 하고 많은 재물을 드린다 하더라도 우리 속에 허락하신 하나님의 영으로 예배하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은 자신의 의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 진리 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배드려야 합니다.
먼저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께 순종하는 예배여야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예배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예배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예배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어떤 사람은 예배를 단순히 주일에 교회에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설교를 듣는 것이 예배라 생각하기도 하고 헌금을 드리는 것이 예배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예배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때 우리의 예배에도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예배의 주체는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예배를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극장에 가면 연극을 하는 배우가 있고 연극을 보는 관객이 있습니다.
예배를 연극이라고 한다면 누가 배우고 누가 관객이겠습니까?
예배드리는 모든 사람은 배우여야 하고 오직 하나님 홀로 관객이 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 느낌과 감정을 따라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에 순종하여 예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걸까요?
② 왜 찾으시는가
영광을 보여주시려고
(레 9:22-24) [22]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마치고 내려오니라 [23]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24]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
하나님께서 성막의 설계도 대로 모든 것이 마쳐지고 제사를 집례할 수 있는 제사장의 위임식이 끝나고 처음으로 제사장 아론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을 때, 첫 예배가 드려졌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셔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드러내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나타내기 원하십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하는 예배 되기 원합니다.
능력을 베푸시려고
(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십니다.
감찰하신다는 말은 살피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땅을 두루 살피시는 이유는 나누어지지 않는 마음, 전심으로 하나님께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풀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주고 그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셔서 이 땅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아와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배의 장소가 아니라 예배의 방법과 함께 때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는 메시야가 오시는 때고 사마리아 여인 앞에 메시야, 즉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 때가 이미 이르렀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왔고 우리는 그 예배를 통해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는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예배의 관객이 아닌 주인공이 되어 하나님을 만나 그 눈빛을 보고 우리를 사랑한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③ 우리의 예배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나타나는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
(창 4:3-5), (레 10:1,2), (사 1:13-15), (말 1:7,8,10)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인지 아닌지 구약의 예를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최초의 제사를 드린 가인과 아벨을 통해 예배를 잘못 드리면 살인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서 정하지 않은 다른 불을 드리려다가 죽임을 당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이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다 하십니다.
그들의 예배를 싫어하신다고 하시며 하나님의 눈을 가리시고 그들의 기도도 듣지 않겠다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말라기를 통해서도 여호와의 식탁을 경멸히 여기고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고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며 주를 더럽게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고 책망하십니다.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교회에 오는 것 뿐만 아니라 평소 하나님 앞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나요?
평소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은 자투리 시간은 아닌지,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시간이 남으면 말씀을 보고, 이제 기도나 해야겠다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정해진 시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를 살아 있는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권면합니다.
이 말은 주일 한 번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변하게 됩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던 모든 사람들은 변화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생명을 다해 순종했습니다.
예수님께 굴복하여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복음 전하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의무감으로 자신의 만족을 위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사랑인지 알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고 그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리게 되면 변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의 예배도 이렇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그 분의 음성을 듣고 날마다 변화를 경험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4. 함께 드리는 기도
① 벨빌교회를 위한 기도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앞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진리로 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예배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변화된 삶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지는 공동체 되게 하소서.
작은 예물을 드립니다. 열에 하나 십일조를 드리고 여러 가지 제목으로 감사헌금을 드리며 선교헌금을 드립니다. 예물 드린 손길에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자로 일어나 빛을 발하게 하소서.
이 물질이 쓰일 때도 함께 해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드러내는 곳에 쓰이게 하소서.
찬송 :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