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합계출산률은 0.78로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그렇다 보니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일단 애국자입니다. 둘을 두면 다둥이 가족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큰 녀석은 아들 하나인데, 11월에 하나 더 나올 예정이니 다둥이 애국자가 되는 셈입니다. 뿌듯합니다. 하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아들 내외는 더 그렇겠지요. 남부럽지 않게 먹이고 입히고, 문화생활 즐기게 해주고 공부시키고 심신이 건강한 아이로 키우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의사표현을 아직 못하는 나이 어린 손자가 아프면 부모가, 할아비, 할에미가 더 아픕니다. 이제 16개월 된 손주를 보면서, 아들 세대의 아이들 키우는 방식은 우리와는 참 많이 다르구나 싶습니다. 기저귀 재질, 밥 먹이는 방식, 업거나 안는 방법, 실내 적정 온도 등등... 같은 게 더 적을 정도입니다. 어떤 건에 대해서는 우리가 키웠던 방식이 확실히 더 낫다는 생각에 한 마디 하려다가도 참습니다. 아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또래를 통해 얻은 지혜 또한 우리의 삶을 통해 얻은 지혜만큼 중요하고, 우리에겐 손자지만 그들에게는 자식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김천에 사는 아들 내외는 아이 병원은 꼭 구미로 옵니다. 김천에는 아직 아동병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아이들 가는 병원이 있어 예약을 대신해주는 보람도 느낍니다. 구미에는 아동병원이 4개 있고, 소아청소년전문의가 있어 아동진료를 보는 곳까지 포함하면 30여개 됩니다. 41만 인구 중 16.45%를 차지하는 유아/아동을 보는 병원 수로는 부족한 편이지요. ‘22년 구미시 인구가 408,110명인데 병원 수가 437개인 걸 고려하면 말입니다. 그래서 병원은 항상 만원입니다. 3시쯤 되면, 7시까지 진료지만 이미 마감이 되어 버립니다. 얼마 전, 밤늦게 아이가 열이 많이 난다고 아침 일찍 예약을 해 달라기에, 7시 접수증 발행 시작이나 6시 55분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도 17번째였습니다. 며칠 전 손자가 아데노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데 입원해야 한다고, 아들이 우리 집에 와서 자고 새벽 4시에 줄 서러 가겠다고 하더군요. 직장에 다니는 아들을 생각하여 제가 대신 표를 받으러 가기로 했습니다. 내심, 지난 번 갔을 때와 대비해 생각해보면 6시에 가도 되겠다 싶었지만, 입원실이 하나만 남아 있어 무조건 번호표 1번을 뽑아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그냥, 4시에 갔습니다. 어두운 계단에서 시낭송을 들으며 앉았다 걷다를 반복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6시에 2번이 오더군요. 그렇게 6시 50분까지 10여명 대기줄이 이어졌는데, 한 명만 엄마고 모두 아빠입디다. 예전엔 엄마가 슈퍼우먼이었는데 요즘은 아빠가 슈퍼맨이 된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건, 3시간을 기다린 덕에 7시 정각에 1번 번호표를 뽑아, 8시 50분에 1번으로 접수를 마치고, 1등으로 진료를 받은 뒤 입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피곤했지만, 머리가 몽롱했지만 손자의 입원을 위해 이런 수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보람 있고 기분 좋았습니다. 좋아하는 아들내외 얼굴을 보니 피로도 씻어져 나갔습니다. 다행히 사흘 만에 퇴원하여 시름도 덜었습니다. 아이들 방식대로 자식을 키우게 놔두고, 적절하게 도와주며 그냥 성장과정을 지켜보면 그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만, 아이들은 그들의 아이들에게만 자신들이 주변의 지혜를 모은 자신만의 양육방식대로 키워나가면 될 것입니다. 그냥 무탈하게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세상의 모든 할아비가 같을 것입니다. 행복은 언제나 내 안에서 숨 쉬고 있습니다. 손자의 미소처럼...
네 안에서(모셔온 글)=======
있잖아.
행복은 어디서 오는 게 아닐 거야.
언제나 네 안에서 숨 쉬고 있지
아직 꽃망울조차 피지 못하고 있을지도 몰라
있잖아.
너의 미소는 보석과도 같아
언제나 네 안에서 빛나고 있지
아직 사랑스런 너를 발견하지 못했을 거야
- 박병철의《자연스럽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