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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 단풍시제(丹楓詩祭)의 운치(韻致)
민문자
2008년 10월 마지막 일요일은 봄날 같이 맑은 햇빛으로 온 누리가 빛났다. 나는 오늘도 우리詩회 시선(詩仙)들의 초대를 받고 그들이 매년 봄, 가을마다 삼각산 자락에 자리 잡은 ‘우이도원(牛耳桃源)’에서 펼치는 단풍시제 풍경을 마음눈에 담으려고 카메라와 가벼운 바랑 하나만 달랑 메고 집을 나섰다.
도선사로 오르는 길은 등산객들로 일찍부터 붐볐다. ‘우리詩회’의 삼각산 시제(詩祭)에 참석하기는 이번으로 세 번째이므로 길이 익어 긴장감은 덜했다. 오늘의 삼각산 단풍은 지난해에 보았던 그 아름답던 모습이 아니고 아직도 푸른빛이 짙은 나뭇잎이 많았다. 가을이 게으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이도원’에 이르기 까지는 영시(英詩)를 잘 읊는 고창수 시인을 만나 함께 산등성이를 올라 무료함을 달랠 수 있었다.
시제(詩祭)터에 도착해보니 지난해와 같이 어느덧 『우리시 삼각산 단풍시제(丹楓詩祭)』현수막이 이곳저곳에 걸려있고, 잘 생긴 고목 앞에는 제물(祭物)이 진설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동향(同鄕) 후배인 ‘꿈초롱’이 먼저 달려와서 나를 극진히 반갑게 맞아 주었다. 몇몇 시선(詩仙)들을 먼저 찾아뵙고 지난해 사귄 분들과 반갑게 눈을 맞추며 손을 잡았다.
‘우리詩회’의 삼각산 단풍시제(丹楓詩祭)는 11시가 조금 지나, 1부 사회자 이대의 시인의 선언으로 시작 되었다.
서곡은 장수길님이『무인도』를 오카리나로 연주했는데, 그 음향은 마치 아름다운 새가 노래하는 듯하였다. 뒤를 이은 헌시낭독은 ‘우리시회’ 고문이신 이생진 시인께서 해주셨는데 작품은 다음과 같다.
낙엽 / 이생진
한 장의 지폐보다
한 장의 낙엽이 아까울 때가 있다
그때가 좋은 때다
그때가 때 묻지 않은 때다
낙엽은 울고 싶어 하는 것을
울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은 기억하고 싶어 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은 편지에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엽을 간직하는 사람은
사랑을 간직하는 사람
새로운 낙엽을 집을 줄 아는 사람은
기억을 새롭게 갖고 싶은 사람이다
초헌 역시 우리시회 고문이신 고창수 시인님이 올렸고, 헌가는 가야금을 들고 나온 박현숙님과 북을 들고 나온 조영제부부가 올렸다.
독축은 박영원 시인이 낭독했는데, 축문은 다음과 같다.
축문(祝文)
개벽 이래 억 천만 년이 흐른 2008년 10월 26일 삼각산자락에 선남선녀 자연 사랑 시 사랑패들 모여 천지신명께 고하나이다.
천신(天神) 일월성신(日月星神) 산신(山神) 수신(水神) 목신(木神) 악신(樂神) 시신(詩神) 들으소서.
계절 따라 만물이 소생하였다가 만산을 홍엽(紅葉)으로 단장하는 천고기풍은 여전하나 인간 속인 탐욕으로 물고 뜯고 헐고 찢어 산수자연 황폐하고 기는 짐승 , 나는 짐승 초목군생 다 신음하니 신명이여 살피소서.
위엄으로 지키시고 사랑으로 다스리어 정치쟁이 마음비우고, 장사치는 욕심 덜고, 이웃사랑 자연사랑 밝은 세상 만들어서, 나라로는 통일성취, 세계로는 인류화평, 사람에게는 사람세상, 동물에게는 동물세상, 초목에게는 초목세상, 詩쟁이들 詩세상, 풍각쟁이 풍각세상, 태고태평천지자연 다시 찾게 하옵소서.
천지신명이여! 오늘 여기 ‘우이도원’에 우리시회 가족모여 詩쟁이는 시 읊고 풍각쟁이 풍악 울리며 박주소찬(薄酒素餐) 진설하여 정성으로 올리오니 흠향(歆饗) 하옵소서.
아헌은 ‘우리시회’ 사무국장인 임동윤 시인이 올렸고, 「자연과 시의 선언」은 나병춘 시인이 낭독하였다.
자연과 시의 선언
자연은 생명의 모태요, 삶의 터전이다. 모든 생명체는 어머니인 자연의 품속에서 복된 삶을 누릴 수 있는 천부의 권리를 부여받았다. 반면에 만유가 공유할 수 있는 자연을 성스럽게 보전해야 할 의무도 또한 지고 있다.
………………………………중략………………………………
우리시회 시인들이 오늘 자연의 품속에 안겨 외치노니
“몽매한 인간들이여! 네 생명의 젖줄인 자연을 섬겨라. 자연을 보는 네 눈이 아직도 닫혀 있다면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저 산야의 눈부신 단풍을 보라. 신의 뜻 생명의 외경이 여기 넘치나니 그대가 지은 마천루의 모래성도 한 이파리 저 나뭇잎의 신비를 따를 수 는 없으리라. 저 울긋불긋한 단풍잎은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시(詩)이다. 이 시가 막힌 네 가슴을 열지니 돌아와 무릎을 꿇고 자연 앞에 경배하라.”
………………………………중략………………………………
시(詩)로 쓰인 연두교서, 시로 된 법전, 시로 이루어진 신문기사, 시로 외치는 행상인의 목소리, 그러한 시인공화국은 없는가.
그러한 세상은 자연과 인간과 만휘군상(萬彙群象)이 한데 어울려 뒹구는 평화의 낙원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이여, 자연을 사랑하는 시의 마음을 어서 일깨우라. 그대의 아름다운 심성이 암담한 절망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하리라. 자연은 아름다운 시요, 시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피워내는 아름다운 자연이다.
2008년 10월26일
사단법인 우리시진흥회 회원일동
「자연과 시의 선언」낭독이 끝난 후, 곧 이어 멋쟁이 하덕희 회원이 헌가 홍해리 시, 변규백 곡 「시인이여, 시인이여」를 삼각산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이 감동하게 시원스럽게 불렀다.
광주대학교 이은봉 교수의 축사에 이어 박희진 원로시인의 격려 말씀이 있었다.
‘우리시 낭송회가 왜 이리 잘되는가.’ 일 년에 두 번씩 산신 앞에 음복하고 노래하면서 산신제를 지내서 잘 되고 있는 것 같다. 시에 대한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 신나게 융성하게 잘되는 시낭송회는 사랑이 있는 한 왕성하게 불꽃을 튀기며 살아있을 것이다. 이런 시낭송회는 망하지 않는다.
시의 본질이란 사랑이라 하면서 시인들은 사랑 사랑 사랑, 밤낮 사랑타령을 한다. 대체 사랑이란 무엇이냐. 어느 철학자의 물음에 답을 못했다. ‘사랑이란 지속성이다.’라고 그 철학자가 말했다.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속된다. 지속되어야 엄청난 시련을 견디는 것이다.
“여러분, 계속해서 시를 쓰세요, 문학은 원래 단독으로 하는 것이요, 이런 시낭송회에 참가하는 것이 시를 계속해서 쓸 수 있는 불타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시단에 있는 것이 얼마나 축복입니까. ‘시인만세’를 부르고 싶어요.
“시인만세, 만세, 만세!”
음복은 홍해리 회장에 이어 이생진, 박희진 원로시인과 박근 전 유엔대사의 순서로 이어졌는데, 지난해 보던 돼지머리 대신 이번에는 탐스런 바나나가 시제꾼들이 내미는 배춧잎 지폐를 받아 물었다.
시제(詩祭)의 공식행사를 끝낸 후 행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는, 시제 지내는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고만 서있는 잘 생긴 고목 앞에서 전체사진을 찍은 후 바로 제상을 물리고 둥글게 자리를 잡고 앉아 올해도 어김없이 여수에서 올라온 갓김치와 유자주로 권커니 잣커니 하며 흥겨운 점심시간을 가졌다.
2부 순서는 조성심 시인이 사회를 보았는데, 제일먼저 임보 시인이 지명되었다. 임보 시인은 미 발표작이라는 자작시 「어이할거나」를 지난해보다 조금 다른 가사로 흥을 돋우었다. 뒤를 이은 것은
김정화 시인의 노래 「동그라미」
신금지 님의 단가 남도민요 산타령「갈까부다」
나병춘 시인의 노래 「섬마을 선생님」
조윤진 학생의 해금, 조영제 님의 북, 박현숙 님의 가야금 중모리 「한범수류」와 「진도아리랑」
김금용 시인의 노래「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장진돈 시인의 노래 「산이 날 부르네」
민문자 시인의 시낭송「사랑법」/ 임보
김용길 님의 노래 「꽃목걸이」
박은우 시인의 하모니카연주 「긴 머리 소녀, 아 목동아, 돌아가는 삼각지」
박근 전 유엔대사님의 노래 「좋아졌네」
장수길 님의 노래 「님 떠난 후」/ 윤준경 시, 장수길 곡
윤준경 시인의 노래 「가을의 여인」
박현숙 조영제 부부님의 가야금산조 서공천류, 심청가 중에서 방아타령, 진도아리랑
김분남 님의 노래 「갑산」이생진 시, 변규백 곡
하덕희 님의 노래 「까치집」박희진 시, 변규백 곡
임순화 강북구청 명예기자의 시 낭송「그대 누구를 잃었기에」/ 자작시, 노래 아리랑
문지숙 시인의 시낭독 「명창정궤(明窓淨几)」/ 홍해리
송문헌 시인의 노래 「숨어 우는 바람소리」등의 풍성한 장기들을 선보였다.
이토록 즐겁고 다양했던 오늘의 ‘우리시회’ 단풍시제는 임동윤 ‘우리시회’ 사무국장의 산회선포로 아쉬운 막을 내렸다. 詩쟁이는 시 읊고 노래쟁이 노래하고 풍각쟁이 풍악 울려 한껏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시산제때 딱따구리는 ‘딱 딱’ 장단을 맞추고 장끼는 ‘꿩 꿩’ 하면서 저희도 한몫 끼워 달라고 애원했는데 까치 한 마리도 볼 수가 없었다. 단지 벌들만 우리와 함께하자고 윙윙거리며 자꾸만 달려들었다. 시제 터 한가운데 곱게 피었던 꽃들도 잡초에 묻혀 버렸다. 그래도 높은 가을하늘은 흰 구름도 갖가지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양을 꾸며서 보여주며 단풍시제를 축하해주었다. 다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며 신기롭게 생각했다.
사람의 인연은 흔히 함께 밥 먹고 잠자면서 돈독하게 정이 든다고 한다. 아무 인연이 없던 ‘우리시회’ 회원들과 이제 반쯤은 얼굴이 익었다. 지난해 그렇게 서먹하던 기분은 싹 가시고 내가 김치를 접시에 담아 일손을 도우며 함께 어우러져 점심준비를 해도 어색함이 없었다. 해맑은 10월의 마지막 일요일, 내 마음도 곱게 정화된 하루였다. 고마운 모든 ‘우리시회’회원들에게 감사드린다.
첫댓글 선배님은 참 재미나게 사십니다~^^더예뻐지고 젊어지고 비결이 글을 싸랑하는 고운 마음때문인가여??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