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의 시 <그날>은 2007년 제3회 5.18 민주화운동 기념 서울 청소년 백일장에서 대상을 받았고, SNS에 '천재 고교생의 5.18시'로 화제가 되었던 시이다. 당시 '심사 위원 중 한 명인 정희성 시인은 '그날'의 현장을 몸 떨리게 재현해 놓은 놀라운 솜씨, 직접 경험한 사람도 이렇게 쓸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자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깨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 것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 데잉 발이 안 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 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더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재.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있데. 어린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그날> 정민경
정민경시인은 '5.18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가족은 없지만, 아버지 친구분 중에 5.18 때 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등 아직도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분들이 많다'며 부모님은 평생 주변에서 5.18 피해자들을 보셨기 때문에 저 역시 자연스럽게 '오월 광주'를 많이 듣고 자랐다고 말했다. 시인은 대상을 받은 뒤 '그날'의 저작권을, 백일장을 주최했던 5.18 민주화운동 서울 기념사업회에 기증했다.
'그날'을 쓴 뒤 한동안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만큼 시의 화자에게 몰입했다며, '이 시가 제 손을 떠나 5.18 희생자들을 위해 보다 많은 곳에 쓰일 수 있기를 바랐다'라고 전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19세 당시 고등학생이던 정민경시인의 삶을 뒤바꿔 놓았다.
'시를 발표한 이후 정치적인 이념 때문인지 학교에서 나를 괴롭히는 교사들이 있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시를 인쇄해 반마다 돌아다니며 '빨간 펜으로 이 시의 잘못된 부분을 고쳐라'라고 말하며 망신을 준 일도 있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전했다. 결국 2년 늦게 대학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