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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한자 병용에 관한 입법 활동을 찬동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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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일에 김예지, 이달곤, 김석기, 윤두현, 이명수, 이종성, 김선교, 김승수, 홍석준, 윤창현, 이상 10명의 국회의원이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였다.
“현행법에 한자 사용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어 국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 부족 등으로 인해 문장력과 사고력이 저하되는 것은 물론 세대 간 의식차이가 심화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국어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어휘력을 신장시키고 우리 문화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초등학생용 교과용 도서에 한자 병기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다.”는 것이 제안 이유이다.
개정 내용은 초중등교육법 제29조에 “교과용 도서는 한글로 작성하되, 그 뜻을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교육부 장관이 정해 고시한 한문교육용 기초한자를 함께 쓸 수 있다.”는 항목을 넣자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한글학회가 12월 10일자로 ‘교과서 한자 병용을 되살리려는 법안은 멈추어야 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전문을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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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학회 [성명서]
교과서 한자 병용을 되살리려는 법안은 멈추어야 한다
지난 12월 2일 김예지, 이달곤, 김석기, 윤두현, 이명수, 이종성, 김선교, 김승수, 홍석준, 윤창현 국회의원이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였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용하자는 내용이다. 불과 몇 해 전 교육부가 한자를 함께 쓰면 국어 어휘력이 향상된다고 하여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용하려는 방침을 슬며시 내놓았다가 국민들의 엄청난 저항에 부딪혀 결국 두 손 들고 말았던 망령이 이번 법안 발의에서 되살아나 충격을 주고 있다. 우리는 당장 이 법안의 발의를 철회하기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우선 의원님께 묻습니다. 의원님께서 직접 쓰신 법안 발의문을 보면 모두 한글로 작성하셨습니다. 발의문에 사용하신 표현을 빌려서 되묻겠습니다. “그 발의문을 쓰고 읽으실 때 올바른 이해와 표현에 어려움이 있으셨습니까? 문장력과 사고력이 저하되셨습니까? 세대 간 의식 차이가 심화되셨습니까?” 만약 그러시다면, 오늘부터 모든 의정활동을 국한문 병용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시다면, 이 법안의 발의를 바로 거두어들이십시오. 왜냐하면 한글로만 쓴 초등학교 교과서도 더더욱 그렇지 않습니다.
2016년 가을, 바로 4년 전 헌법재판소가 국한문혼용을 위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이는 일상의 글자생활에서 한글만 쓰는 것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글자를 통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시대적인 흐름을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가 한글만 쓰는 것은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다. 한글만 쓰는 것이 편리하고 지금 우리들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글자생활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한글만 사용하는 것은 온 국민이 함께 누리는 글자생활의 평등이다. 한글전용은 글자생활의 표현과 이해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이러한 너무나도 당연하고 합리적인 글자생활을 멈추고, 국민들의 평등한 글자생활을 불가능하게 하는, 글자생활의 정보화와 과학화를 가로막는 국한문 병용을 주장하여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섞어쓰자고 하는, 이러한 국력을 낭비하는 논쟁에 헌법재판소가 마침표를 찍은 심판이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미 학계와 시민단체에서 연구하고 토론하고, 심지어 헌법재판소 심판까지 거친 구체적인 논의를 이 자리에서 되풀이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한글만 쓰면 국어의 올바른 이해와 표현에 어려움이 있다든지, 문장력과 사고력이 저하된다든지, 세대 간 의식 차이가 심화된다든지 하는 근거 없는 이유로 발의한 법안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초등학교 교과서의 한자 병용 정책으로 한자교육 시장과 한자시험 시장이 과열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데, 이로 인해 학부모의 사교육 부담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2020년 12월 10일
한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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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성명서를 본 소감을 아래에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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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冒頭)에서 법안 발의문을 모두 한글로 작성한 것에 대한 반어적인 질문으로 반박한 것은 법안 취지를 곡해한 것이므로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성명서 전체에 걸쳐 산견(散見)되는 중대한 오류, 오해, 오판, 억측 문제는 국민을 현혹시키거나 오도할 소지가 다분하기에 하나하나 풀이하여 바로 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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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2016년에 “헌법재판소가 국한문혼용을 위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기각”한 것은 “(국한문) 논쟁에 헌법재판소가 마침표를 찍은 심판이었다.”는 오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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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에 제정된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은 “대한민국의 공용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한자 병용이 법적 지위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위헌 심판 청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2005년 이 법이 폐지되고 대체 입법된 ‘국어기본법’은 “공공기관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제14조)는 한글전용 의무만 규정하고 있다. 국어기본법의 일부 조항이 위헌(헌법 前文에서 규정한 “悠久한 歷史와 傳統”을 숭상하는 헌법 정신에 위배되고, 헌법 제10조에서 보장된 幸福 追求權 및 人格 發現權을 침해) 여부가 국민적 관심사로 대두되었다.
그래서 2012년에 語文政策正常化推進委員會가 한글전용 위헌 소원(2012헌마854)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4년이란 장고(長考) 끝에 2016년 11월 24일 “공문서의 한글전용을 규정한 국어기본법의 일부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공문서의 한글전용’이 위헌이 아니라면, 한글전용의 의무는 공문서를 작성하는 공무원에게만 있음을 만천하에 명명백백하게 밝힌 셈이다. 즉 일반 국민들에게는 그런 의무가 전혀 없음을 반증(反證)한 것이다.
이러한 전후 맥락을 잘 모르고 “국한문 논쟁에 헌법재판소가 마침표를 찍은 심판이었다.”는 한글학회의 성명은 중대한 오해(誤解)였음을 확실하게 밝혀두며, 더 이상 국민을 현혹시키거나 오도하는 일이 없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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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한글전용은 글자생활의 표현과 이해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는 오류(誤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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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이 언뜻 보기에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비문(非文)이 곳곳에 보인다. 우선 “한글전용”의 ‘전용’은 한자는 모르고 한글만 아는 사람이라면 그 뜻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오로지 전’(專)과 ‘쓸 용’(用)이라는 한자 지식이 있어야만 비로소 ‘한글로만 쓰기’를 말함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전용’ 같이 한글로 써놓은 한자어를 보고 그 속뜻을 추론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자면 한자 자의(字義) 지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이다.
그리고 문자생활 대신에 ‘글자생활’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으나, ‘표현과 이해의 자유’는 문제가 많다. 우선 ‘표현의 자유’는 있지만, ‘이해의 자유’는 없다. ‘이해의 자유’가 있다면 수능 시험을 포함한 모든 시험이 필요 없게 된다. 그리고 ‘한글전용’이나 ‘글자생활’은 ‘표현’이 아니라 ‘표기’ 문제이다.
‘표현’과 ‘표기’의 차이를 모르는 것은 따지고 보면 한자 교육 부재로 야기된 것 같다. ‘표현’은 ‘겉 표’(表)와 ‘나타날 현’(現)을 쓰는 것으로 ‘의견이나 감정 따위를 겉으로 드러냄’을 말하며, ‘표기’는 ‘겉 표’(表)와 ‘기록할 기’(記)를 쓰는 것으로 ‘문자나 부호를 써서 말을 기록하는 일’을 이른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는 말이 되지만, 한글전용은 이에 해당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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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글자생활의 정보화와 과학화를 가로막는 국한문 병용”이라는 오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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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병용’을 ‘국한문 병용’으로 오판(誤判)한 것은 한자와 한문의 차이를 간과한 결과이다. 한자는 한자어(word)를 구성하는 낱낱 형태소(morpheme)에 해당하는 글자를 말하며, 한문은 한자로 써놓은 문장(sentence)을 말한다. 그리고 ‘국한문’은 ‘국문’과 ‘한문’의 축약어 이며 이 경우 국문은 ‘한국어 문장’을 말한다. 실제로 요즘은 국문과 한문을 병용하는 사례는 전혀 없다.
그리고 한자 병용이 “정보화와 과학화를 가로막는”다고 생각한다면 이것 또한 중대한 오판이다. 한글이 컴퓨터 입력에 빠르고 편리하기에 ‘정보화와 과학화’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글은 표음(表音) 문자의 속성을 벗어날 수 없다. 한글은 표음 정보만 처리할 수 있을 뿐이다. 표의(表意) 정보를 처리하자면 한자를 포함한 수많은 종류의 문자와 기호를 수용해야만 한다.
이러한 사실은 컴퓨터 자판과 각종 문자표를 보면 금방알 수 있다. 글로벌 시대, AI 시대, 4차 산업 시대의 주역이 되자면 표음문자인 한글은 물론, 표의문자인 한자, 그리고 문자에 준용되는 수많은 기호를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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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초등학교 교과서의 한자 병용 정책”이 “사교육 부담”을 늘인다는 억측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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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학회 성명서에서 언급한 “한자교육 시장과 한자시험 시장”은 근본적으로 초등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다. 따라서 사교육비 부담 운운하며 우려하는 것은 기우(杞憂)이자 억측(臆測)이다.
초등학교 교과서가 한자를 병용하지 않고 오로지 한글전용으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읽을 줄은 알아도 그 속에 담긴 뜻, 즉 속뜻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공부에 현기증을 느끼고, 끝내 공부를 포기하는 ‘공포자’로 전락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학부모들이 사교육 시장에 의존하는 고육지책과 고충을 알아야 한다.
한자 교육은 물론 한자어 교육도 등한시 하고 그래서 학력(學力)이 갈수록 저하되고 있기 때문에 사교육이 갈수록 번창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공교육에서 한자어 교육을 제대로 한다면 학부모의 각종 사교육비 부담을 크게 경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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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한글만 쓰면 국어의 올바른 이해와 표현에 어려움이 있다든지, 문장력과 사고력이 저하된다든지, 세대 간 의식 차이가 심화된다든지 하는 근거 없는 이유로...” 운운한 것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한글학회에서 발표한 성명서 문장을 잘 읽어보면, 그 가운데 ‘국어에 대한 잘못된 이해’, ‘어색한 표현’, ‘문장력과 사고력’이 낮은 문제, ‘심화된 의식 차이’ 등등의 문제점이 산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의 학회라고 자부하는 단체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글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한자어 교육의 필요성을 반증하는 반면교사 같은 자료이기도 하며, 오답 노트를 보는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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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한자를 잘 알면 한글전용이 편리할 수도 있다. 한글로 써 놓은 한자어를 보고도 그 속뜻을 척척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뜻’을 전혀 모르고 ‘겉음’만 아는 사람에게 한글전용은 임시방편의 미봉책에 불과하며 많은 폐해를 끼치게 된다. 한자 지식의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 현상을 심화시키고, 지식의 양극화 문제가 극심해지고, 우민(愚民)이 양산될 우려가 있다.
한글전용으로 표기된 교과서는 ‘소리 정보’만 제공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정작 각종 시험에서는 ‘의미 정보’를 얼마나 아는지를 테스트한다. 이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모순이다.
초등교과서에 등장하는 중요 한자어에 대하여 선별적으로 한자를 병용하여 괄호 안에 표기하는 것은 ‘소리 정보’에 아울러 ‘의미 정보’도 제공하는 효과가 있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꿈나무들이 드디어 ‘생각의 눈’을 뜰 수 있겠기에 크게 환영하는 바이다. 굳이 한탄스러움이 있다면 만시지탄(晩時之歎) 뿐이다.
(필자 전광진 :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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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1) 장문의 졸문을 끝까지 읽어 주신 분께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혹 궁금한 일이 있으면 저의 이메일( jeonkj@skku.edu)에 글을 남겨 주시면 반드시 厚謝 하겠습니다.
(2) 한글학회 성명서에 대한 저의 소견은 2020. 12. 18일자 '에듀인뉴스'에 실려 있습니다. 우리나라 꿈나무들이 '생각의 눈'을 하루 빨리 뜨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거듭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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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뜻의 반대가 겉음이라는 것을 깨우쳤습니다. 한글학회 회원 뿐만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모두 읽고 이해하고 음미한 후 토론해야할 주제라는 것을 떠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