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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 外編 19篇 達生篇 第12章(장자 외편 19편 달생편 제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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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魯나라의 손휴孫休라는 사람이 편경자扁慶子 선생의 문하에 이르러 탄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고향에 살면서 사람들에게서 부도덕하다고 하는 악평을 듣지 않았으며, 전쟁터에 나아가서는 비겁하다는 악평을 듣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들에서 농사를 지음에 풍년을 만나지 못하고 나아가 벼슬하여 임금을 섬김에 제때를 만나지 못하여, 향리鄕里에서도 빈척擯斥(싫어하여 아주 물리쳐 버림)되고 주州의 관청으로부터 추방되었으니 하늘에 무슨 죄를 지은 것일까요? 저는 어찌하여 이 같은 운명을 만나게 되었을까요?”
편자扁子가 말했다. “그대도 지인至人이 어떻게 자유롭게 행동하는지 들어서 알고 있겠지? 지인至人은 자기의 간肝과 담膽의 활동을 잊어버리며, 귀와 눈에 의한 감각작용을 잊어버리고서 멍하니 세속의 티끌 밖에 방황하며, 아무 것도 일삼지 않는 일에 소요逍遙한다고 한다. 이것을 일컬어 하면서도 자기의 공로를 뽐내지 아니하며, 길러 주면서도 주재主宰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그대는 잘 알지도 못하는 지식을 꾸며 어리석은 자들을 놀라게 하고, 몸을 깨끗하게 닦아서 타인의 오점을 밝게 드러내는데 그 행동이 밝고 밝아서 마치 해와 달이라도 내건 듯하니 그대와 같은 사람은 그대의 몸뚱이를 온전히 갖고 그대 몸의 각종 기관을 온전히 갖추고서 귀머거리․ 장님․ 절름발이․ 앉은뱅이 등으로 중도에 요절함 없이 사람들 무리 속에 나란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인데 또 어느 겨를에 하늘을 원망하겠는가. 그대는 어서 돌아가라.”
손자孫子가 나갔다. 편자扁子는 〈손자를 전송하러 나갔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와 잠깐 앉아 있다가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탄식하였다.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어찌하여 탄식하십니까?” 편자扁子가 말했다. “아까 손휴孫休가 찾아왔기에 내가 그에게 지인至人의 덕德에 대해 말해주었는데, 나는 아무래도 그가 놀라 드디어 혼란에 빠질까 걱정이다.”
제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손자孫子가 말한 것이 옳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이 그른 것이라면 그른 것은 진실로 옳은 것을 혼란에 빠뜨릴 수 없고, 반대로 손자孫子가 말한 것이 그르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이 옳은 것이라면 그는 본시 혼란한 상태로 찾아온 것이니, 〈선생님에게〉 또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편자扁子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옛날 노魯나라 도성 밖에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는데 노나라 임금이 기뻐하여 최고급요리를 갖추어 향응하고, 구소九韶의 음악을 연주하여 즐겁게 하였는데 새는 처음부터 근심하고 슬퍼하며 눈이 어찔어찔 어지러워하다가 감히 마시지도 먹지도 못했다. 이것을 일컬어 노군魯君 자신의 양생법을 가지고 새를 기른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새를 기르는 데 알맞은 방법으로 새를 기르려면 마땅히 깊은 수풀 속에 살게 하며 강호江湖에 떠다니게 하며 미꾸라지나 피라미를 먹게 하고, 자기와 부류가 같은 새들의 행열行列을 따라다니거나 함께 머물러 있게 하며, 있는 그대로 만족스럽게 지내면서 살게 하면 새가 편안하게 살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저 손휴孫休는 작은 구멍 열어보듯 보는 것이 좁고, 들은 것이 적은 사람인데 내가 지인至人의 덕德을 이야기해 주었으니 비유하면 새앙쥐를 수레나 말에 태우고 메추라기를 종 치고 북 치는 음악으로 즐겁게 해주려는 격이니 그가 또 어찌 능히 놀람이 없을 수 있겠는가?”
有孫休者 踵門而詫子扁慶子 曰
休居鄕 不見謂不脩 臨難 不見謂不勇
然而田原 不遇歲 事君 不遇世 賓於鄕里 逐於州部
則胡罪乎天哉 休惡遇此命也
(유손휴자 종문이타자편경자하야 왈
휴 거향하야 불견이불수하며 임난하야 불견위불용호대
연이전원에 불우세하며 사군에 불우세하야 빈어향리하며 축어주부호니
즉호죄호천재오 휴는 오우차명야하노라)
노魯나라의 손휴孫休라는 사람이 편경자扁慶子 선생의 문하에 이르러 탄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고향에 살면서 사람들에게서 부도덕하다고 하는 악평을 듣지 않았으며, 전쟁터에 나아가서는 비겁하다는 악평을 듣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들에서 농사를 지음에 풍년을 만나지 못하고 나아가 벼슬하여 임금을 섬김에 제때를 만나지 못하여, 향리鄕里에서도 빈척擯斥(싫어하여 아주 물리쳐 버림)되고 주州의 관청으로부터 추방되었으니
하늘에 무슨 죄를 지은 것일까요? 저는 어찌하여 이 같은 운명을 만나게 되었을까요?”
☞ 손휴孫休 : 인명. 성은 손孫, 이름은 휴休, 노나라 사람.
☞ 종문이타자편경자踵門而詫子扁慶子 : 종문踵門은 〈덕충부德充符〉편의 종현踵見과 같이 문하에 이르렀다는 뜻.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상上〉에 ‘종문이고문공踵門而告文公’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의 ‘종문踵門’과 마찬가지로 “발이 문에 닿다.”는 뜻(朱熹)으로 쓰였다. 타詫는 告함(司馬彪), 탄식함(成玄英), 괴이하게 여겨서 물음(怪問)이다.
☞ 居鄕 不見謂不脩 臨難 不見謂不勇 : 불수不脩는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서 “덕이 닦여지지 않음[덕지불수德之不脩].”이라고 한 구절에서 나왔고, 불용不勇 또한 〈위정爲政〉편에서 “올바른 도리를 보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견의불위見義不爲 무용야無勇也].”고 한 데서 나온 표현이다.
☞ 전원불우세田原不遇歲 : 원原은 들, 전田은 농사짓는다는 뜻이고, 세歲는 풍년을 뜻한다.
☞ 빈어향리賓於鄕里 : 빈賓은 빈擯의 가차자로 빈척擯斥당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 휴오우차명야休惡遇此命也 : 저(休)는 어찌하여 이 같은 운명을 만나게 되었을까요? 오惡는 어찌. 야也는 의문사로 쓰였다.
扁子曰 子獨不聞夫至人之自行邪
忘其肝膽 遺其耳目 芒然彷徨乎塵垢之外 逍遙乎無事之業
是謂爲而不恃 長而不宰
(편자왈 자는 독불문부지인지자행야아
망기간담하며 유기이목이오 망연방황호진구지외하며 소요호무사지업이라하니
시위위이불시며 장이부재니라)
편자扁子가 말했다. “그대도 지인至人이 어떻게 자유롭게 행동하는지 들어서 알고 있겠지?
지인至人은 자기의 간肝과 담膽의 활동을 잊어버리며, 귀와 눈에 의한 감각작용을 잊어버리고서 멍하니 세속의 티끌 밖에 방황하며, 아무 것도 일삼지 않는 일에 소요逍遙한다고 한다.
이것을 일컬어 하면서도 자기의 공로를 뽐내지 아니하며, 길러 주면서도 주재主宰하지 않는다고 한다.
☞ 방황彷徨과 소요逍遙에 대한 표현은 〈소요유逍遙遊〉에 나온 내용을 답습한 것이며 망기간담忘其肝膽 이하의 네 구는 같은 표현이 〈대종사大宗師〉에 그대로 나오는데 무시지업無事之業은 〈대종사大宗師〉편에는 무위지업無爲之業으로 되어 있다.
☞ 위이불시爲而不恃 장이부재長而不宰 : ≪노자老子≫ 제10장과 제51장의 내용과 똑같다.
今汝 飾知以驚愚 脩身以明汙 昭昭乎若揭日月而行也
汝得全而形軀 具而九竅 無中道夭於聾盲跛蹇
而比於人數 亦幸矣 又何暇乎天之怨哉 子往矣
(금여는 식지이경우하며 수신이명오하론대 소소호약게일월이행야하나니
여 득전이형구하며 구이구규하야 무중도천어농맹파건이오
이비어인수 역행의어니 우하가호천지원재리오 자는 왕의어다)
그런데 지금 그대는 잘 알지도 못하는 지식을 꾸며 어리석은 자들을 놀라게 하고, 몸을 깨끗하게 닦아서 타인의 오점을 밝게 드러내는데 그 행동이 밝고 밝아서 마치 해와 달이라도 내건 듯하니
그대와 같은 사람은 그대의 몸뚱이를 온전히 갖고 그대 몸의 각종 기관을 온전히 갖추고서 귀머거리․ 장님․ 절름발이․ 앉은뱅이 등으로 중도에 요절함 없이
사람들 무리 속에 나란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인데 또 어느 겨를에 하늘을 원망하겠는가. 그대는 어서 돌아가라.”
☞ 수신이명오脩身以明汙 : 명오明汙는 다른 사람의 오점을 밝게 들추어낸다는 뜻. 오汙는 오汚와 같다.
☞ 구이구규具而九竅 : 구규九竅는 사람 몸에 있는 아홉 개의 구멍으로 이목구비耳目口鼻 따위의 각종 기관을 지칭한다.
☞ 농맹파건聾盲跛蹇 : 귀머거리, 장님, 절름발이, 앉은뱅이.
☞ 비어인수比於人數 : 온전한 사람들의 수數에 나란히 낄 수 있음을 말한다.
孫子出 扁子入坐 有間 仰天而歎 弟子問曰 先生 何爲歎乎
扁子曰 向者 休來 吾告之以至人之德 吾恐其驚而遂至於惑也
(손자 출이어늘 편자 입좌하얏다가 유간이오 앙천이탄이어늘 재자문왈 선생은 하위탄호잇고 편자왈 향자에 휴래커늘 오고지이지이니덕호니 오는 공기경이수지어혹야하노라)
손자孫子가 나갔다. 편자扁子는 〈손자를 전송하러 나갔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와 잠깐 앉아 있다가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탄식하였다.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어찌하여 탄식하십니까?”
편자扁子가 말했다. “아까 손휴孫休가 찾아왔기에 내가 그에게 지인至人의 덕德에 대해 말해주었는데, 나는 아무래도 그가 놀라 드디어 혼란에 빠질까 걱정이다.”
☞ 유간有間 : 잠깐의 시간이 흐름.
弟子曰 不然 孫子之所言是邪 先生之所言非邪 非固不能惑是
孫子所言非邪 先生所言是邪 彼固惑而來矣 又奚罪焉
(제자왈 불연하니이다 손자지소언이 시야요 선생지소언이 비야인댄 비고불능혹시오
손자소언이 비야요 선생소언이 시야인댄 피고혹이래의이니 우해죄언이리오)
제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손자孫子가 말한 것이 옳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이 그른 것이라면 그른 것은 진실로 옳은 것을 혼란에 빠뜨릴 수 없고,
반대로 손자孫子가 말한 것이 그르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이 옳은 것이라면 그는 본시 혼란한 상태로 찾아온 것이니, 〈선생님에게〉 또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 제자가 편자의 자책감을 위로하려는 뜻에서 억지로 만들어 낸 일종의 궤변으로 상식과 어긋나는 주장이다.
扁子曰 不然 昔者有鳥 止於魯郊
魯君說之 爲具太牢以饗之 奏九韶以樂之
鳥乃始憂悲眩視 不敢飮食 此之謂以己養 養鳥也
若夫以鳥養 養鳥者 宜棲之深林 浮之江湖
食之以〈鰌鰷隨行列而止〉委蛇〈而處〉則〈安〉平陸而已矣
(편자왈 불연하니라 석자에 유조 지어노교어늘
노군이 열지하야 위구태뇌이향지하며 진구소이락지한대
조내시우비현시하야 불감음식하니 차지위이기양으로 양조야니라
약부이조양으로 양조자는 의처지심림하며 부지강호하며
식지이 <추조수행열이지> 위타<이처> 즉<안> 평륙이이의니라)
편자扁子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옛날 노魯나라 도성 밖에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는데
노나라 임금이 기뻐하여 최고급요리를 갖추어 향응하고, 구소九韶의 음악을 연주하여 즐겁게 하였는데
새는 처음부터 근심하고 슬퍼하며 눈이 어찔어찔 어지러워하다가 감히 마시지도 먹지도 못했다. 이것을 일컬어 노군魯君 자신의 양생법을 가지고 새를 기른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새를 기르는 데 알맞은 방법으로 새를 기르려면 마땅히 깊은 수풀 속에 살게 하며 강호江湖에 떠다니게 하며
미꾸라지나 피라미를 먹게 하고, 자기와 부류가 같은 새들의 행열行列을 따라다니거나 함께 머물러 있게 하며, 있는 그대로 만족스럽게 지내면서 살게 하면 새가 편안하게 살 것이다.
☞ 이 부분의 문장은 〈지락至樂〉편 제5장의 해조문답海鳥問答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 식지이<추조수행열이지>食之以〈鰌鰷隨行列而止〉 위타<이처>委蛇〈而處〉 즉<안>평륙이이의則〈安〉平陸而已矣 : 본래 浮之江湖 食之以委蛇 則平陸而已矣로 되어 있었으나 그대로는 문의가 통하지 않으므로 〈지락至樂〉편에서 “江湖에 떠다니게 하며 미꾸라지나 피라미를 먹게 하고, 자기와 부류가 같은 새들의 行列을 따라다니거나 함께 머물러 있게 하며, 있는 그대로 만족스럽게 지내면서 살게 한다[浮之江湖 食之鰌鰷隨行列而止 委蛇而處].”고 한 내용을 따라 ‘鰌鰷隨行列而止’, ‘而處’ 두 구를 보완하고 번역하였다.
今休 款啓寡聞之民也 吾告以至人之德
譬之 若載鼷以車馬 樂鴳以鐘鼓也 彼又惡能無驚乎哉
(금휴는 관계과문지민야어늘 오고이지인지덕호니
비지인댄 약재혜이차마하며 약안이종고야니 피는 우오능무경호재리오)
그런데 지금 저 손휴孫休는 작은 구멍 열어보듯 보는 것이 좁고, 들은 것이 적은 사람인데 내가 지인至人의 덕德을 이야기해 주었으니
비유하면 새앙쥐를 수레나 말에 태우고 메추라기를 종 치고 북 치는 음악으로 즐겁게 해주려는 격이니 그가 또 어찌 능히 놀람이 없을 수 있겠는가?”
☞ 금휴관계과문지민야今休款啓寡聞之民也 : 관款은 빈 구멍이고 계啓는 연다는 뜻이니 마치 빈 구멍을 열어보는 것처럼 소견이 좁음이다(李頤).
☞ 비지譬之 약재혜이차마若載鼷以車馬 약안이종고야樂鴳以鐘鼓也 : 새앙쥐[혜鼷]와 메추라기[안鴳]는 각각 가장 작은 종류를 든 것으로 모두 손휴孫休의 좁은 식견을 비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