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때를 기다립시다. https://youtu.be/rnlQ7nqv4fs?si=SnOl3VOAOOlH_qpj
(2025.01.12. 주일 낮 예배)
본문말씀 : 누가복음 20:1-16
주 제 :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철저히 따르셨다. 우리도 인내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자.
1. 예수님의 권위
지난주에는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오셨는데, 이제는 드디어 성전으로 들어오셨네요. 그곳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성전으로 들어오니까 대제사장도 나타납니다. 대제사장, 서기관, 그리고 장로들이 와서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주는 이가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이 물음에 대해서 예수님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인가? 아니면 사람으로부터 온 것인가?’ 참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입니다.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고 대답하면 왜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할 것이고, 사람으로부터라고 하면 백성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합의 끝에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도 그러면 나도 내 권위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말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대답을 피하신 것입니다. 대답을 피하시려고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지신 것으로 보여집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대답을 피하셨을까? 생각해보아야 겠지요.
2. 포도원 농부의 비유
그런데 성경을 보시면 이 기사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 전부에 기록되어 있고 게다가 이 기사는 그 다음에 나오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와 늘 함께 딱 붙어서 나옵니다. 마태, 마가, 누가 모두 두 이야기가 껌딱지처럼 딱 붙어서 나와요. 그러니까 각각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는대로 기록하다가 보니까 우연히 함께 기록한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예수님께서 권위에 대한 질문을 받자 요한의 세례에 대하여 되묻고 그들이 대답을 못하자 바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말씀하셨다는 거예요.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들이 묻기를 ‘너는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라고 물었는데 예수님은 말하지 않겠다. 하셨지만 사실은 이 말씀으로 그 대답을 하신 것입니다.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이런 것입니다. 한 사람이 외국으로 떠나면서 포도원을 소작농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때가 되어서 그 사람이 소작료를 받으려고 대리인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이 소작료를 주지도 않고 그 사람을 흠씬 때렸습니다. 주인은 다시 사람을 보냈는데 이번에도 그들은 소작료는 주지도 않고 또 때렸어요. 마지막으로 주인은 자기 아들을 보냈습니다. 설마 아들은 때리지 않고 소작료를 주겠지 하고서 보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농부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저 사람은 아들이니 상속자이다. 그러니 저를 죽여버리면 우리는 앞으로 소작료는 내지 않아도 될 것이고 포도원은 영원히 우리의 것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그 아들을 죽여버렸다는 내용입니다.
3. 왜 대답을 하지 않았을까?
좀 전에 말씀드린대로 대제사장과 함께 온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하고 물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나도 대답하지 않겠다.’ 하시면서 대답을 피했지만 사실은 이 비유 안에 그 대답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주인의 아들이 곧 예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로 이런 일을 한다고 바로 대답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바로 말하지 않고 대답하지 않겠다고 하고서는 비유로 넌지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데 그 권위로 이런 일을 한다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비유로 하셨을까요?
4. 모든 것이 때가 있다.
전도서 3장에 보시면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이렇게 만사에는 때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일부 예배를 드렸습니다만 그 전에 11월 말쯤 추수감사 예배를 드릴 때, 서민정씨 부부가 예배를 드리면서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꼭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라고 했다고 하면서 또 어머니께서 감사헌금을 바치라고 하면서 돈을 주셔서 오늘 추수감사헌금을 바쳤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아직 확실치는 않는데 좋은 일이 있으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혹시 임신한 것이 아닌가? 생각은 얼핏했는데 본인이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제가 함부로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세례를 받을 때도 다 되었는데 아무 말도 없기에 저는 ‘아닌 모양이다.’ 하고 기대를 접었습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을 때 임신했다고 하기에 저는 아 그때 그 이야기가 임신했다는 것이구나 그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서민정씨도 확실히 굳어지기 전까지는 말하기가 조심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을 때는 이제는 확실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또 이때는 이야기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겠지요.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할 때가 있고 하지 않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고 말씀할 수 있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 당장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로 이런 일을 한다고 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들은 당장 예수님을 잡아가서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조금만 더 가면 유월절이 시작됩니다. 그전에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야 말이 나지 않습니다. 바로 죽이려고 했을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으로서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닙니다. 아직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그곳에서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앞으로 보십시오. 20장부터 24장까지 무려 5장이나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것이 남아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유월절 제사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의 모든 죄가 하나님 앞에서 받아드려져서 모든 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 모든 것을 이루고 죽어야 합니다. 그냥 죽는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죽는 방법까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죽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시면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8) 하셨어요. 모든 성경이 말씀대로 다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다 이루어야 합니다. 언제 죽을지 어떻게 죽을지도 성경대로 이루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을 다 이루기 위해서 바로 그 자리에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로 이런 일을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다만 넌지시 비유로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5.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자
우리는 힘든 일을 만나면 흔히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때로는 ‘하나님이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 이런 의문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기다리고 기다려도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응답이 없을 때, 실망하고 심지어는 ‘실망하면서 하나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이 나오셔야 합니다. 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입맛에 맞게 나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오실 때까지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저도 지금 우리나라의 사태를 두고서 많은 생각을 하면서 많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기도 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나라를 통치하고 계시면서 이 나라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지금 이 나라는 많이 엉클어지고 잘못되어 있는데 그 모든 것을 바로 잡으려면 지금과 같은 혼란의 기간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이 사태를 두고 어떻게 될까? 두려워하거나 혹시 잘못되지 않을까? 초조해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바로 잡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평안한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모든 것이 때가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그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때가 이루어지면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를 바로 잡으실 것입니다. 더 성숙되고 더 진보된 나라로 만들어가시리라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믿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 가십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