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지칭할때는 항상 "학자"임을 강조하시는 김용서 교수님의 발언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내가 만들어 놓은 인물데이타베이스를 뒤져봤다.
아니나 다를까 "학자"이신 김용서 교수님의 이름이 있다.
2001년 2월에도 100토론에 나왔다가 자질시비로 망신만 당했던 그 유명한 교수님께서 또 한번의 히트작을 내셨다는 것은 그분(? 그래도 명색이 교수님이시니 그분이라고 칭해드려야지.)으로서는 어쩌면 당연.
2001년 9월 28일 역시 100분토론 "안티조선 언론자유 침해인가, 소비자 운동인가? 2000년 한국, 희망은 있는가? "에 나오셔서 개그콘서트.
틈만나면 코메디성 발언으로 망신만 당하는 그놈의 빨갱이병은 언제 치유가 되시려나..불쌍한 교수님..김용서 교수님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자료제공한다. [빈라덴]
"100분토론..패널 선정 신중하게"
2001년 2월 8일 제26회로 방송된 MBC 100분 토론(사회자 : 유시민)의 주제는 "국가보안법 존속돼야 하나?"였다. 패널로는 김용갑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범구 민주당 국회의원, 김용서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강정구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등이 출연했다.
기획의도는
"김대중 대통령이 정무업무보고회에서 국가보안법을 개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후 이번 임시국회 회기 내에 국보법을 처리하겠다는 여권의 전략은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한나라당은 국론 분열이 일어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고 자민련도 시기상조라며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편 처리방법에 있어 여야 지도부는 先당론 後협상의 카드를 택하고 있는데 반해, 여야의 소장파 의원들은 국가보안법 개정에 대해 크로스 보팅(자유투표)를 주장하고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 이제 올 정국의 최대변수가 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예고되고 있다. 남북평화협력의 시대에 걸맞은 인권과 대북 포용정책의 상징물이 될지 아니면 자유 민주체제의 마지막 보루로 여전히 존재할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 국가보안법 개정 논의를 본격적으로 다뤄본다."였다.
이날 토론은 국가보안법이 현행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김용갑 의원과 김용서 교수 측과 개정 또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정범구 의원, 강정구 교수측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특히 국가보안법 제2조(反국가단체), 제7조(찬양, 고무 등), 제10조(불고지)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필자는 이 글에서 한 교수의 토론 태도를 지적하고자 한다.그 주인공은 이화여대 행정학과 김용서 교수이다.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100분 토론"이다. 토론이라 함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논리적인 근거로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이견을 경청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토론 중에 다른 이견을 가지고 있는 상대편에게 "대한민국 국민이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라고 하면서 "사회자가 저쪽 편을 들고 있다."라는 등 토론에는 부적절한 표현들을 자주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100분토론에 참여한 많은 패널들이 보여주는 실망스러운 모습에 어느정도는 면역이 되어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북한처럼 지독한 나라".....대한민국 사법부를 비방하고 있다."라는 등의 감정에 치우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결국 감정에 북받친 방청객과 말싸움까지 벌이는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당시의 상황은 토론이 아니라 싸움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강정구 교수가 국가보안법이 反인권법이라고 하자 김 교수는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라고 하면서 반박했고, 보다못한 사회자는 그런 입장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이라며 김 교수의 자제를 부탁했다.
결국 프로그램 마지막 부분에 전화로 연결된 어느 시청자는 "패널의 자질이 의심스럽다"고까지 말했다. 토론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한편 MBC 100분 토론 홈페이지에 게시판에는 김 교수를 질타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그 몇몇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화여대 행정학 교수님 토론을 하자는 것인지...... 아마 교수님 밑에서 공부하는 제자 분들 걱정됩니다." "김용서 교수, 용서가 안 된다. 리허설 좀 하고 하지." "대학교수라는 분이 남의 이야기를 경청할 줄 모르고 그러한 분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한 그러한 분이 전국에 방송되는 토론프로그램에 패널로 나오게 되다니."
"어떻게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토론에 대한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토론의장에 선정되었는지", "토론의 자세도 안되어 있거니와 목소리만 크면 이긴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그리고 토론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듣는 자세가 안되어 있다.", "교수님은 아집으로 똘똘 뭉쳐서 남의 의견을 하나도 듣지를 않는군요. 단지 교수니까 내가 당신보다 아는 게 많으니까 하는 자세로 토론을 하고 있군요.",
"MBC 100분 토론 방송을 보며 이대 행정학과 김용서 교수의 행태에 대하여 심히 유감스럽다. 토론이란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줄 줄도 알아야 하는데 김용서 교수는 그 기본 자체도 무시하는 태도를 계속 보여주고 있다."라면서 패널의 자질과 패널이 지켜야 할 기본 예의를 지적했다.
어느 네티즌은 "다음"사이트에 안티 김용서 라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몇몇 글은 김용서 교수 때문에 이 토론이 재미있었다고 적고 있다.심지어는 모방송국의 인기드라마 "아줌마"의 장진구를 거론하는 네티즌도 있었다.
매번 불거져 나오는 패널의 자질 문제는 시청자로 하여금 짜증을 나게 만든다. MBC 100분 토론이 좋은 기획의도와 과감한 주제 설정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이런 저급한 토론행태는 시청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어제 MBC 100분 토론 잘 봤다. 주제는 앤티 조선운동, 언론자유의 침해인가 정당한 소비자 운동인가 였다. 앤티조선운동에 반대하는 편의 논객으로 이화여대 행정학과(?) 김용서 교수가 나왔다. 다른 한 사람은 임 무슨 변호사였는데, 판검사를 두루 거친 듯 전직이 화려한, 현재 헌법수호 어쩌고하는 변호사모임 총무였던 걸로 기억된다. 원래 판검사 출신들은 그렇다치고… 이 글을 제발 김용서 교수가 읽어줬으면 하는 생각에서 이대 행정학과 게시판에 글 쓰게 되었다. 경어 및 존칭 생략에 대해서는 널리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난 두가지로 김용서 교수를 비판하고 싶다.
첫째, 그 분의 논리는 다분히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다. 즉,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대표적 케이스라 하겠다. 내가 그 토론회를 녹화해서 말 한마디한마디 정성스레 녹취할만큼 성실하지 못한 탓에, 그 분 발언을 여기 옮기는 데에 있어 다소간의 착오가 있을 수 있으며 그건 전적으로 나의 책임임을 먼저 밝힌다. 나로서는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 원음에 가깝게 재생하고자 노력할 따름이다.
먼저 문제가 됐던 점은 최장집 교수에 대한 조선일보의 사상검증이었다. 이에 대해 김용서 교수는 “공직에 나간 사람은 개인의 윤리가 아닌 국가의 윤리로 판단해야 한다”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실제 행정학에서 공무원들에게 그런 내용을 가르치는 강의가 있다는 소개와 함께. 공직자들(판검사 포함해서)의 행태가 어떠한지 다들 잘 알고 있는 터에, 공직자는 국가의 윤리가 우선이다라는 말이 참신하게 들렸다.
학자출신의 관료에게, 이전의 학문적 활동에 대한 ‘사상검증’이 과연 옳은가 그른가는 또다른 문제니까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조선일보와 김용서 교수의 ‘국가윤리에 의한 판단’을 일단 받아들이자. 그런데 말이다… 최장집이 무슨 대통령도 아니고 심지어 국무총리나 내각의 일원도 아닌 무슨 위원장이었는데 고작 그런 사람에게 국가윤리네 공직자의 사상검증이네 떠들어 대는 바로 그 조선일보와 김용서 교수는, 박정희부터 노태우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사상검증은 도대체 얼마나 철저하게 해 왔던가? 사상검증 하려면 그 때부터 열과 성을 다해 했어야지, 이제와서 갑자기 사상검증하겠다고 하니 그 불순한 의도가 의심받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사상으로 치자면 박정희가 일본 군관학교 출신장교로서 독립투사들 때려잡는 데에 앞장섰던 친일 전력이 가장 큰 문제가 될 터인데 자신들 구미에 맞지 않는 사람들만 골라서 마녀사냥식 사상검증을 정당화하는 것이 ‘내로남불’이 아니고 무엇인가…
김용서 교수는 발언 도중에 상당히 위험한 발언도 여러 번 했었다. 그 분은 우리 나라 현대 정치사를 2/3의 폭력정치와 1/3의 선동정치로 구분하였는데, 이승만부터 전두환에 이르는 2/3의 폭력정치가 왜 불가피했는지를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그러지 않으면 빨갱이들이 사회주의 정권 세울 판인데, 그걸 폭력적으로 막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그렇다면,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북한 체제에 대해서 일언반구를 할 수 있는지… 나의 사상인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폭력 사용도 얼마든지 미화되지만 남의 사상인 ‘사회주의’를 위해서 사용된 폭력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깡패도당의 행패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이건 마치 72년 남북 공동성명 발표해 놓고서 박정희는 10월 유신체제를 선포했고 김일성은 12월 주석제를 만든 것과 비견된다. 당시 박정희가 김일성더러 넌 왜 그리도 군사주의적이며 독재적인 발상으로 나라를 통치하느냐라고 비판할 입장이었겠나.
이건…자유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니다…그저 민족의 비극일 뿐이다. 김용서 교수가 북의 체제를 목청높여 비판하지만, 결국 그 분이 그리는 사회 또한 그가 그렇게 비판해 마지않는 북한 체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잘 알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하시는 말씀이, “어쨌든 폭력정치도 그 나름대로의 이유와 정당성이 있었다(체육관 선거가 정당성이 있냐는 김정란 교수의 지적에 그렇다는 대답까지 했다)”면서, “언론의 입장에서야 어떤 언론은 정부를 비판하면서 커 나가기도 할 것이고 또 어떤 언론은 정권의 입장과 사시가 동일하여 정부를 옹호하면서 클 수도 있는 것이니 7,80년대 조선일보가 권력을 옹호했다고 해서 크게 나쁠 것은 없다”고 했다. 뭐…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왜 남들이 지금 권력을 옹호(?)하는 것을 두눈뜨고 못 보는 것일까?
“조선일보가 잘하는 게 딱 하나가 있어요. 김대중이 남북 화해 분위기로 쫙 몰아가고 있는데 말이야, 모두가 잘한다고 하고 있거든. 기회주의적이든지 권력에 아부해서 그러는지 다들 설설 기고 있는데, 오직 이 조선일보만이(이 때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제대로 된 소리 한다 이거야. 권력 감시 및 견제 기능을 그래도 지금 조선일보가 제대로 하고 있지 않냐 이거지.”
이제 와서 권력감시니 하는 말을 하시다니… 왜 조선일보가 예전에 권력감시와 견제의 기능을 발동하지 않았는지는 나중에 묻는다 치더라도, 조금 전까지 권력에 빌붙는 것이 크게 나쁠 게 없다고 해놓고선 불과 몇 분만에 딴소리를 늘어 놓는 저의가 도대체 뭔가. 조선일보는 뭘 해도 정당화되고 다른 사람들은 뭘 해도 비난받을 게 뻔하다.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이중적 잣대와는 별 상관없지만 김용서 교수 논리의 백미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조선일보를 지지하는 쪽에서 “공정한 시장경쟁” 논리를 들이밀자, 앤티조선 쪽에서는 “이미 출발부터가 불공정했다. 전두환 시절에 조선일보는 너무 비대해졌다”고 맞받았다. 그러자, 김용서 교수님 하시는 말씀이, “아니, 내가 동경대 나와서 토론 잘하고 있는데 상대방에선 말이야 그정도 학벌과 실력이 되지 않으니까 이게 애초부터 게임이 안 되는 불공정한 경쟁이라고 자기보다 똑똑한 토론자를 내쳐 버리는 것과 뭐가 달라?” 라고 하시며 아주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 기고만장함이란…본인은 아마도 자신조차 놀랄만큼 아주 훌륭한 비유를 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도 놀랐다.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에 스스로 대견해하는 김용서 교수님과 제대로 반박도 못하는 앤티조선 관계자들 때문에… 조선일보가 전두환 시절에 급성장한게, 그게 김 교수님이 동경대(이력을 보니 정말 동경대 출신이시더군요) 가서 학위 받은 것과 비유된다면…이건 심각하다. 조선일보가 어떻게 정권의 비호를 받았나? 그건 피의 대가였다…피의 대가! 광주항쟁을 아직 잊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조선일보가 어떻게 광주시민을 두 번 죽였는지도 기억날 것이다. 동경대 출신이 교수가 되기 위해 자기 경쟁자를 칼로 수십 번 찌르고 대검으로 유방을 잘라내고 총탄세례를 퍼부어 얼굴을 짓이겨 놓고서, 그렇게 장갑차 몰고 깔아 뭉개고 나서 경쟁자를 물리치고 교수가 되었다면, 그렇다면 교수님의 그 잘난 비유에 대한 기고만장함을 인정할 수 있다. 피를 묻힌 펜대를 감히 경쟁력이 우수한 집단으로 미화, 나아가 동일시한다는 건 정말…그건 동경대식 발상인가?
정말로 위험한 발언을 한 건 이것이다.
얼마 전 남북한 군사 당국자 회담을 보도하는 조선일보 태도가 도마에 올랐었다. 조선일보는, 조성태 국방장관이 너무 저자세로 비굴하게 나갔다고 썼는데, 이에 대해 앤티 조선이 사실이 아니라고 맞서자, 교수님 왈 “그거 말이죠…기자들이 기사 쓸 때 현장에서의 느낌 소감 이런 거 그냥 쭉 쓰는 겁니다. 뭐…제가 보기에도 우리 국방장관이 좀 비굴하던데요…”
그러면서, “기자들도 인간인데, 오보가 나갈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만일 그런 일이 생기면 법대로 하셔야죠…언론중재위원회 이런 곳에 제소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 합법적인 방법은 생각도 않으시고 거리로 나서는 겁니까?”
적어도 교수님 생각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그 분 견해를 따르자면, 신문사는 오로지 자기 사시만 고집할 뿐이고 그 다양한 사시 중 독자들이 고르면 되는 것이다. 즉, 신문사는 아무 소리나 막 떠들어도 상관없다는 얘기다. 일단 터뜨려 놓고 “아니면 말고” 이런 식이다. 불만 있으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라 이거다. 이렇게 진실보도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으니까, 이런 말도 쉽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거..앤티조선운동이 말이죠…현 정권과 유착되어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는 거 아셔야 합니다…” 참…기가 막혀서…같은 교수 신분으로 그 자리에 나온 상대방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겠나. 이런 발언은 동료 교수의 양심을 도려내는 행위이다. 도저히 학자로서 내뱉은 발언으로 믿기지 않는다. 내가 잠시 인간이길 포기하고 김용서 교수님의 ‘용서받지 못할’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 볼까? 토론 도중에 방청객 질문 순서가 있었다. 김용서 교수님 뒤쪽에 이화여대 출신이라고 밝힌 한 여학생이,
“조선일보를 반대하는 객관적인 잣대나 판단근거가 도대체 뭡니까?”라는 취지의 질문을 했다. 이걸 보고 분개한 어느 일간지가 예를 들어 오늘자 사회면에 김용서 교수님과 그 학생을 한 컷에 잘 잡아 찍은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싣고서, “그 교수에 그 제자…이대 출신 사제는 용감했다.”
이런 식으로 사진 캡션 나가면 심정이 어떠실지… 아니면, 이건 어떤가?
“토론회 참석한 이대 출신의 두 사제는 마치 사전에 합의라도 한 듯이 앤티조선운동에 대해 하나하나 반박했다. 아마도 방송 들어가기 전에 방청객과 충분한 작전회의가 있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둘이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을 것이고….그렇다면….그렇다면 둘이 원조교제하는 거 아냐?---- 이대학보----억울하면 언론중재 위원회에 제소하시오”
참…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남의 논리 반박하느라 잠시나마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하고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했으니… 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인가. 김용서 교수의 발언은, 까놓고 얘기해서 정권과 앤티조선 넓게는 시민운동이 “원조교제” 했다는 거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몇몇 분은 아마도 내 주장이 좀 심하다는 생각도 할 지 모르겠다. 하긴, 이건 인간의 탈을 쓰고 할 짓이 아니니까. 그런데! 실제로 이런 엽기적인 행각을 버젓이 행해왔던 인간들이 바로 조선일보이다. 다들 잘 알고 있는 부천서 성고문 사건 생각해 보라. 어떻게 피해자인 권인숙씨에게 “여성들이 이제는 자신의 성마저 혁명의 도구로 전락시켰다” 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을 수 있는가? ‘성의 혁명적 도구화!’ 이 말을 대하고 나면, 내가 퍼뜩 생각해 낸 저 ‘원조교제’라는 표현이 얼마나 내 상상력의 빈곤을 드러내는지 그저 부끄러울 지경이다. 지금 조선일보를 옹호하는 김용서 교수님의 조선일보 옹호의 변과 시민단체 비판의 변 모두가 언론의 사회적 책무, 진실 추구에 대한 지식인의 책임을 모조리 던져버린 반인륜적 작태라고 난 생각한다. 어떻게 이런 분이 한국 최고의 여자 대학교 교수로 제직하고 있을까…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폭력사용도 불사해야 하는 그 분에게 제자들 몇 명이 국가권력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하는 게 (데모하다 끌려가면서 전경들한테 성추행 당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대수겠나. ‘혁명적 도구화’ 운운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 이해할 수 없다…그렇게 자존심 높은 이대 교수 및 학생들이 어제 토론회 보고 당장 벌떼처럼 일어나지 않는 것이…
지금까지는 그 분의 이중적 잣대에 대해서 얘기해 왔다. 사실, 난 이런 식의 말꼬리잡기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앤티조선운동 사건의 핵심은 내 생각에 사상의 차이를 가진 두 집단의 격돌이다. 시대적 격변기를 맞이하며 서로가 자신의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 시점에서 단지 ‘조선일보’를 통해 표출됐을 뿐이지, 본질적인 문제는 집단 간의 역사관의 문제, 가치관의 문제가 핵심이다. 김용서 교수님의 역사관은 도대체 무엇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빨갱이 때려잡기 위해서 폭력사용도 불사하는 자유 민주주의자임에 틀림없는 거 같다. 난 최소한… 배웠다는 분이라면 사상의 자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사상의 자유…내가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의아스러웠다. 인간이 생각을 자유롭게 하는 거야 당연한 것인데 왜 굳이 사상의 자유라는 말까지 나왔을까…그건 아마도 자기와 비슷한 생각을 사유할 자유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자기와 다른 생각 심지어 자기에게 적대적이기까지 한 사상을 가지는 것에 대한 자유를 보장함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굳이 “사상의 자유”라는 거창한 말까지 필요없었을 게다. 모두가 똑 같은 생각만 할 테니까 말이다. 뭐…좋다…사상의 자유 이런 거 인정 안 하는 교수님이 어디 한둘인가… 그렇다손치더라도, 그 자유민주주의가 도대체 무어길래, 그 수많은 생명을 짓밟아야만 하는 것인가. 그게 제대로 된 자유 민주주의이기나 한 것인가?
난 최근에야 제주도에 처음 가 보았다. 거기서 삼다도의 유래를 들었다. 제주도에 여자가 많은 이유…. 그건 4.3 항쟁 때문이었다. 내가 책에서 읽은 것만 해도 3-4만은 살육되었다. 미군 함정이 제주도 앞바다에서 한라산을 초토화시켰다. 부녀자와 젖먹이 어린애도 수없이 도륙되었다. 왜?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런 사람들에게 사상의 자유 바라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왜 부녀자와 애기까지, 죄없는 양민까지 무려 수만 명에 이르는 사람을 무차별 학살했어야 했나 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