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은 과학을 위한 과학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기 위한 학문입니다. 부모 형제가 죽어 가는데 비가 온다고, 몸이 좀 힘들다고 연구를 게을리 할 수 있겠습니까. 생명과학의 보람은 돈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생명의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인터뷰 중-
나는 10년 넘게 3~4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하는 생활을 계속해 왔다. 이병천 교수,강성근 교수 등 동료 교수.박사는 물론 오현주,김혜수,김지혜,전현용 등 10여명의 20대 초.중반의 우리 여성 연구팀원들까지 3년째 휴일과 명절을 반납했다. - 인터뷰 中 -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6개월 받은 적 있다. 당시 만약 내가 살아난다면 전 인류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었다. 어떻게 하다보니 건강해 졌다. 지금은 웬만한 사람이 나를 3일만 따라다니면 코피 터진다. 결국은 정신자세가 문제다. 무엇보다 교수들이 학생보다 더 먼저 나와서 더 늦게 귀가한다. 모든 실험과정에서 직접 손 끝에 애환을 묻혀보지 않으면 실험 난관에 닥쳤을 때 돌파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리더들의 자세다." -- 카이스트에서의 강연 후 질의응답 중 --
"과학을 하다보면은 거의 유신론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다른건 몰라도 이 자연생태계의 돼지를 만들어 낸 조물주의 그 오묘한 진리 그것이 신을 믿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
"여러분 교통사고로 경추 마비된 환자들 중 가장 나이어린 8살된 저 환자 아이가, 저 목사님의 3대 독자가 아니고 여러분의 가장 사랑하는 여러분의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엄마, 저 좀 제발 일으켜 세워주세요.’라고 애원을 할 때 앉아계신 아주머니는 뭐라고 하실겁니까? '야 우리나라가 기술은 개발하는거 같은데 아직 사회적으로 합의가 이루어 지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가 너에게 그 시술을 해달라고 말을 못하겠다. '라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분이 여기 얼마나 계십니까? 가장 사랑하는 여러분의 가족이, 여러분의 친구가, 여러분의 동료가 그런 상황에 빠졌을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바로 거기에서 저 친구와 정말로 의미있는 약속을 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논 그 세포를 너의 척추에 넣어 줄 수 있는 그 날까지 비록 사회적으로 우리한테 누가 뭐라 하더래도 슬기롭게 잘 이겨나가면서 우리가 그걸 한 번 해보겠다. 대신 너도 지금과 같은 쾌할하고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갈 수 있겠니? 했더니 그러겠다고 약속을 했어요.손짓을 하면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새끼 손가락을 쓰윽 하더라구요.. 이걸로는 안된다고 이걸 찍자고 해서 엄지손가락 도장을 찍었습니다. 여러분 만약 이 자리의 30대 후반의 40대 초반의 그 의과대학 여자교수님들이 여러분이 계셨었고, 아이를 오랫동안 돌봐줬던 여성 간호원들이 그 자리에 있으면서 그 광경에 눈시울을 붉히고 그 분들 중에서 일부가 저 아이를 일으키자고 자기의 난자를 우리 연구팀에 만약 제공을 했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 난자를 이용해서 실험을 했다면 이 행위는 윤리적이라는, 생명윤리의 보전적 잣대로 이것을 매도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그것은 지금 판단 받고 싶지 않습니다. 한 십오년 후 쯤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결정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저는 역사에 이걸 넘기고자 합니다. -----부산 초청 강연 방송 중에서 --
"한국인말고 누가 쇠 젓가락으로 콩을 집을 수 있나" -2005년 2월18일 LA타임스 회견, 연구팀의 성공을 독창성과 힘든 작업, 손재주의 덕이라고 말하면서.
"전 세계에서 한국인말고 어떤 이가 쇠 젓가락으로 콩을 집을 수 있느냐. 중국과 일본이 밥을 먹을 때 나무 젓가락을 쓰는 것과 달리 한국인들은 쇠 젓가락을 사용하는데 이런 관습이 극히 미세한 인간의 난자의 핵을 집어내 새로운 유전적 물질을 주입하는 극도로 민감한 작업에 완벽한 훈련이 되고 있다."
"우리는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달력'에 따라 연구를 한다" -2005년 5월16일 네이처 메디신 5월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인류와 질병 치료를 위해 싸우는 군대'다. 우리는 쇠 젓가락으로 옥수수나 쌀 같은 것까지 집을 수 있다. 우리의 표어는 '하늘을 감동시키자'이다. 우리는 '월화수목금금금-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달력'에 따라 연구를 한다."
에피소드
어린시절 소를 공부하는 과학자와 서울대 교수가 되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줄기차게 '면서기'가 꼭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결국 면서기가 못되고 서울대 교수가 됐는데 고향 선배인 심대평 도지사가 어머니를 뵙고 '어머니, 황 교수는 도지사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됐어요'라고 이야기 해 어머니의 마음이 풀어졌다.
연구실의 연구작업은 매우 고되고 힘들었다. 거기다가 1년 365일을 하루도 변함없이 연구소 문을 열었다. 변함이 있다면 1년이 366일인 해에 하루를 더 문을 열었다는것. 직원이 너무 힘들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너무 힘이들고 제 능력에 한계가 있는것 같습니다." 황교수님이 받아 말씀하셨다 "이 사람아, 웃기지 마시게. 차라리 자네 성실함에 한계가 있다고 말하게. 그럼 받아 들이겠네" 이러한 열정으로 오늘의 황우석 사단은 세계를 제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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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국인말고 누가 쇠 젓가락으로 콩을 집을 수 있나" 젖가락질 많이 하면 머리가 비상 해진담니다^^^
세계인류의 생명공학의 새 장이 열려가고 있으나...또하나의 생명윤리에 자칫 모든것이 사장될 위기 ....안타깝습니다. 부시야~~산사람 입에 풀칠은 해야하니..황우석 박사 키워주그레~이
한류열풍에 노빠가 많아서 근래에는 통 못가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