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푸른 물결 출렁이는 동해의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팔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많은 형제 틈에서 자라 이런 저런 추억거리가 많지만,
아무래도 부모님과 관련된 추억이 가장 마음 깊이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는 우직한 신앙을 지니셨고
어머니는 유머스러우시며 성실한 기도로 하느님께 사랑받는 비결을 가르쳐 주는 분이셨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던 아버지와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으로 두 분이 자주 다투셨지만
매일 새벽 두 시간 가까이 기도드리던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가정이 얼마나 견고한지, 마치 '바위 위에 지은 집'과 같음을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배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신자들에게도 싸울 땐 싸우더라도 반드시 시작기도와 마침기도를 함께 하라고 말하곤 합니다.
특별히 나를 사제의 길로 인도한 분은 어머니였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우면 어머니는 성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그 이야기들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머니는 나를 낳을 때 노산이었던 까닭에 심한 산고를 겪었는데,
그때 나를 성모님께 봉헌하는 기도를 끊임없이 바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를 어릴 때부터 "너는 성모님께 봉헌된 아이다". 라고 말씀하곤 했습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엔 어머니는 직접 나무라는 대신 저녁기도 때
"예수님, 저희 막내가 어떤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너무 화가 나지만 제가 야단치고 때리기보다 당신께 맡겨 두립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이를 품에 꼭 안으시고 앞으로 잘하도록 말씀해 주세요."라는 기도하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용서가 무엇인지 체험하고 그래서인지 다른 이들을 너그럽게 용서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팔 남매 중 다섯이 사제와 수도자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어쩌면 어머니의 이 같은 특별한 교육 덕이라고 생각됩니다.
신학교 시절에도 어머니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습니다.
4학년 때였다고 기억됩니다. 그때 나는 성소에 대한 갈들을 심하게 겪고 있었습니다.
평생사제로 산다는 것이 너무도 부담스럽게 다가왔고, 다른 의미 있는 길을 찾고 싶었습니다.
무척이나 힘들고 막막하기만 했던 그래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던
방황의 시기에 나를 붙들어 세워 준 것은 갈날 같은 매서운 바람에 창문을 세차게 대리던 어느 날
새벽 촛불 한 자를 밝히고 기도하던 어머니의 뒷모습이었습니다.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그날 이후 내 마음 깊은 곳에 새겨졌습니다.
사제품을 받고 첫 부임지로 떠나던 날, 어머니는 내게 사제 수품 선물이라며 작은 보따리 하나를 건넸습니다.
임지에 가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풀어 보라 하였습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첫날 저녁 그 선물 보따리를 풀어 본 나는 어머니의 깊고 깊은 사랑에 목이 메어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 보따리 안에는 장롱 깊숙이 차곡차곡 보관해 두었던 내 갓난아기 적 배냇저고리들과 정성스럽게 적은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습니다.
그 편지에는 "사랑하는 막내 신부님! 당신은 원래 이렇게 작은 사람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돌아보면 어머니의 그런 작고 깊은 사랑의 속삭임들이 사제로서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여겨집니다.
성직자, 수도자의 길을 가는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느라 하루하루가 어느새 지나가는지 모르겠는 어머니,
자식들을 하나 둘 당신 품에서 떠나보낼 때마다 심장이 한 조각씩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던
어머니의 마음을 내가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다.
어머니가 우리 자식들에게 항상 들려주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쟁기를 잡았으면 뒤돌아보지 말고 가라!" 15년이 되어 가는 나의 사제 생활,
어머니의 가르침과 기도가 없었다면 무척 힘겨웠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제 연세도 많이 들고 기력도 많이 약해졌음에도 언제나
세상의 모든 사제와 수도자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에 힘입어 더욱 열심히 살아보자는 다짐을 해 봅니다.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면서 기도 많이 해 주셍요. 그리고 많이,...아주 많이 사랑해요!
오세민 루도비코 신부님-춘천교구 소속으로 1996년 사제품, 현재 청호동 성당 주임신부
어머니의 손길에는
인간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나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는
따뜻함과 호소력이 있다.
어머니와 자식 간의 통교에는
명시적, 언어적 통교 이전에 존재하는
침묵과 몸짓의 교감이 있다.
첫댓글 감동입니다. 어머니의 기도와 사랑~ (엄마라고 다 똑같은 엄마는 아닌가 봅니다. 훌륭한 어머니!!)
정말 감동입니다.사제되신 아들에게 주신 선물 배냇저고리와 편지.. 원래 이렇게 작은 사람이었다는것 잊지말라신 말씀..훌륭하신 어머님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