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7일 04:20 독도 인근 해상
"적 전투기 편대 접근중! 추정 약 16기!"
대공레이더를 담당한 3조가 약간 긴장하며 보고했다. 호위함 다카스키의 함장 가쓰오 이
등해좌가 즉시 해상막료감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마이즈루 지방대 소속 함대는 이제 거꾸로
위기에 처했다.
'예정대로다.'
도시오 해장은 가쓰오 이해좌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는 사실 해상자위대가 한국 해군에
도발을 해도 한국 해군은 반격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위기는 최고조로 올라간
다. 한국 전투기 다음에는 자위대 항공기들이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양국간의 긴장은 더더
욱 높아질 것이다.
누군가 참지 못하고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자그마한 불빛에도 놀라 응사할 것이다. 양쪽
전투기들이 접근하거나 하면 그것은 필연적이었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전투기 한 대가 떨
어진다면, 이는 곧 전면전을 의미했다.
"저것들이 지나치게 접근하면 요격할까요?"
가쓰오 이해좌가 도시오에게 묻자 그가 힐끔 함장을 쳐다보았다.
"자네 미쳤나?"
전투기가 함대에게 위협이 되는 경우는 가까이가 아니라 오히려 멀리 있을 때이다. 전투
기가 적함에 가시거리까지 접근하여 폭탄이나 어뢰를 투하하는 2차대전식 공대한 전투는 이
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적기 편대가 돌아갑니다."
"흠...그래? 한국 함대는?"
"한국 함대는 위치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함장의 질문에 해상수색 레이더를 맡은 준위가 보고했다.
"E-2C에서 보고입니다. 한국 구축함 전대가 지원하러 이쪽으로 접근한답니다!"
통신관이 외치자 긴장했다기보다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도시오 해장이 마이크를 잡고
조기경보기와 통하는 무선을 개방했다. 소속인 해상막료감부보다는 항공자위대를 통해 상부
정보를 얻으려는 의도였다.
"솔개 2, 솔개 2, 여기는 꽃돔 5. 무슨 일 있나?"
조기경보기와 연결된 무선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왜 사고를 쳤느냐고 조기경보기로부
터의 무언의 항의가 들어오자 도시오 해장이 피식 웃었다. 한일간의 문제는 언젠가 한 번은
결판을 짓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고,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확신은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 일한 정상간에 회담중입니다. 통막에서는 대기하라는 명령입니다."
대정벌의 시작
12월 7일 04:30 서울 금천구 시흥 2동, 통일참모본부
"그러니까...어쩔 수 없는 우발적인 실수니까 수상께서는 책임이 없고 해상자위대도 잘못
이 없다는 뜻이군요."
"..."
대통령 홍지영과 일본 수상의 전화통화가 계속 이어졌다. 다른 참석자들은 통화내용이 궁
금했지만 국가원수간에 이뤄진 전화통화에 함부로 끼여들 수는 없었다. 그래도 대통령이 적
당히 통화내용을 흘려줘서 대충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뭐요? 며칠만 더 있었으면 평화적으로 인수인계? 씨팔! 그런 말씀하신 게 한달이 넘었
소."
놀란 이종식 차수가 홍차를 홀짝이다가 한 모금을 토해냈다. 회의실에는 황당한 표정을
짓는 사람 반, 낄낄대는 사람 반이었다.
"흠! 내각에서는 공식적인 사과를 못하시겠다, 이거요?"
"..."
아니, 방위청 차원에서 유감표명? 죽도와 인근 해역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해서 유감이다,
이런 식 말이요? 젠장! 도대체 유감이라는 말이 미안하다는 거요, 아니면 당신네들이 우리
한테 불만이 있다는 뜻이요?"
"..."
"알겠소, 관두시오!"
홍지영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물론 예전이라면 아주 조심스러워야
하겠지만 핵을 보유한 한국은 일본에 머리를 조아릴 필요가 없었다.
"결국...일은 걷잡을 수 없게 되었소. 일본 정부는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겠답니다."
대통령 홍지영이 좌중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예상됐던 결과라 다들 묵묵히 앉아 있
었다. 그러나 일본 주장대로 하급 지휘관에 의한 우발적인 사고라고 해도 그걸 국민에게 납
득시킬 자신이 없었다. 홍지영은 중국의 침략을 막아내고 나면 일본에 대해 응징하겠다고
국민 앞에 누차 다짐했다. 이제 그 약속을 지켜야 할 때였다.
그는 결코 일본과의 전쟁을 바라지 않았지만, 그가 물러난다면 강경파가 권력을 잡을 것
이다. 만약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다물선양회가 잡는다면... 홍지영은 결코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다물선양회는 지난 전쟁기간 동안 중국을 정복하자고 주장했다. 이번엔 일본을 점령하자
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핵보복을 당할 게 분명했다.
국무위원들과 통일참모본부 관계자들이 모인 연석회의에서는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
다. 홍지영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달았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숨소리가 가빠졌
다.
"한중일 삼국은 당분간 인구증가율이 억제되겠습니다."
대통령의 말은 왠지 어폐가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전쟁에서든 사망자는 전체 인구 중에서
극히 일부분이다. 전사로 인한 인구억제 효과는 거의 없다는 뜻이다. 물론 기아와 혼란으로
인해 전쟁기간 동안 인구증가가 억제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쟁이 끝나면 금방 원래의 인
구증가율로 회복되기 마련이다. 양석민 국방장관이 물었다.
"전사자들이 많이 나와서 말씀입니까?"
"그것보다는...앞으로도 남아선호사상이 기승을 부릴 테니까요, 군사문화가 우세한 사회에
서는 사내아이가 양육과정에서 우대받고, 게다가 산모들 영양상태가 나빠지면 남자아이를
많이 낳게 됩니다. 인구증가율은 남자 숫자와는 별로 관계없고, 오히려 가임여성 숫자와 밀
접한 관계가 있는 것 아니겠소?"
대학에서 사학과, 그것도 문화사를 전공한 학자답게 홍지영이 알기 쉽게 설명했다.
"그럼 대통령께서는 일본과 일전을 불사하시겠다는 뜻입니까?"
최창식 국무총리가 뚱뚱한 몸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물었다. 매사에 무딘 총리는 대통령의
결단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싸우고 싶지 않아도 여론이 가만히 있지 않겠죠. 일본도 기세등등할 테고 난 걱정이오. 전
쟁이 끝난지 얼마나 됐다고 우리나라가 또 전쟁에 말려든다면..."
"대통령님! 그럼 미국은 어떡하시겠습니까? 미국의 국익이 걸린 만큼 당연히 개입할 겁니
다."
홍지영이 소리가 나는 쪽을 확인했다. 역시 김온 국가정보원장이었다. 1980년대에 미국에
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고 국정원에 들어가 대외 공작에서 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작달막
한 키에 박사답지 않은 다부진 인상이었다. 홍지영이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대통령은 요즘도 국정원 사람들에게는 전폭적인 신뢰를 보낼 수 없었다. 수십 년간의 공
작정치 때문이기도 했지만, 권력에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치는 사람들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
가 보기엔 국정원 요원들은 권력자가 원하는 것이라면 정치사찰이든 정치공작이든 가리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즉, 홍지영이 보기에 국정원은 이스라엘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민족과 운명을 같이하는
모사드이기보다는 팔레비 왕정을 수호하기 위해 국민을 체포, 고문하고 감시했던 이란 정보
기관 사바크인 것이다. 이런 막강한 조직이 그의 손아귀에 있다는 자체가 야간은 야릇한 느
낌이었다.
홍지영은 전임자인 지효섭 국정원장이 작년 여름 그를 차장으로 천거했기 때문에, 그리고
20년간 해외정보 수집에 몸바쳐 해외정보에 정통하기 때문에 그를 신임 국정원장에 임명한
것뿐이지, 결코 그를 믿어서는 아니었다. 대통령은 신임 국정원장도 권력에 무조건 아부하는
해바라기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김 원장, 그거야 당신이 할 일이 아니오? 월급 받으면서 뭐하는 거요? 그런 공작 하나
하지 못하고."
홍지영은 국무위원들과 군 고위 장성들이 있는 곳에서 대놓고 그에게 면박을 주었다. 국
무위원들이 수군거리고 고위장성들 가운데는 킥킥대는 사람도 있었다. 직급이야 부총리급
에 불과하지만, 한국에서 국정원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홍지영은 이 기회
에 국정원장을 확실히 휘어잡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대통령님, 그렇지만..."
"미국 대통령에게 뇌물을 바치든 여당 하원 원내총무한테 여자를 바치든 당신 맘대로 하
시오. 어쨌든, 미국이 이번 일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시오. 알겠소?"
홍지영이 김온을 노려보았다. '니 엉덩이를 대주든'이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러
나
국정원장은 반발도 배반할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그들 조직상 생리였다. 다른 행
정조직이나 야당 정치인, 고급 공무원들에게는 사찰을 무기로 불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더
라도 대통령 한 사람 앞에서는 꼼짝 못하는 것이다. 국정원장의 대답은 역시 그가 예상한
대로였다.
"예 알겠습니다."
12월 7일 05:00 평안북도 구성시
통일 한국군 제5기갑여단장 차영진 준장은 여단 상황실에서 비상대기하고 있었다. 통일참
모본부에서 긴급 하달된 통지문이나 주변 상황으로 봐서 중국군의 준동이 있는 것은 아니라
는 것이 확인되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는 길게 기지개를 켜다가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는 5시가 되자 TV를 켰다. TV에서 나오는 상황을 보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맙소사!"
여단본부에 근무하던 당직사령 임영춘 중좌와 상황실 요원들이 놀란 눈으로 TV를 시청
했다.
"뭐하러 그런 짓을..."
"잘했다. 일본하고 한 판 붙는거야!"
상황실 요원들 사이에서는 저마다 의견이 분분했다. 이참에 일본과 한판 붙자는 의견과,
일본과 싸워봤자 승산이 없다는 의견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임 중좌. 임 중좌는 우리가 일본하고 전쟁을 하면 승산이 얼마나 있을 것 같소?"
임영춘이 한참 고민하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였다.
"아무래도...바쁘디 않캈습네까?"
통일한국이 일본을 상대하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한국이 통일이 되어 막강한 지상
전력을 갖췄더라도 일본열도에 지상군 병력을 상륙시키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것이다.
"전쟁 나면 배급이 줄어들갔디요. 남새밭이나 일궈야 되갔습네다."
임영춘 중좌는 지금도 1990년대 말의 악몽을 잊지 못하고 한국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에 죽어갈 때 한국은 그들을 '충분히' 돕지 않았기 때
문이다.
한국이 현대그룹 등을 비롯한 민간기업들을 동원해 금강산 관광사업과 경수로 지원사업
등을 통해 북한을 지원했지만 '인민'들에게는 그 혜택이 거의 돌아가지 않았다. 이것은 물론
북한 기득권층이 수혜를 독점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임 중좌가 보기에 한국은 북한의 어려움을 즐기는 듯 했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인민들이
굶어 죽어가는데 같은 민족이 돕지 않고 수수방관한 것은 도덕적인 문제였다.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를 원하지 않는 다면서도 그것을 은근히 바라는 남한 기득권측의 형
태에 아연실색했지만 자존심이 강한 인민군답게 도와주지 않는 동포에 대해 적개심을 내비
치치는 않았다. 그는 아직도 당 지도부에서 선전한 대로 북한이 외국에서 식량을 구입하려
는 것을 미국과 남조선이 방해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는 일본과의 전쟁을 통일한국 전체의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중국의 침략에 대
해 남북한이 힘을 합쳐 싸운 건 이민족의 침입에 대한 군인, 또는 민족으로서의 당연한 의
무였지만, 이번 경우는 일본을 침공하는 셈이 되니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나도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합니다만..."
"려단장 동지께서 말입네까?"
임영춘이 약간 의외라는 듯 반문했다. 그가 알기로 남조선 군관들은 호전적인 전쟁광들이
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차영진만 해도 혁혁한 전공을 올려 남조선 괴뢰정부가 아닌 공화국
정부로부터 전쟁영웅 칭호를 받은 사람이다.
"만약에...혹시나 말이오."
갑자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차영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우리 부대가 일본에 투입된다는 말씀입네까?"
"그렇소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우리나라는 기갑사단을 일본에 상륙시킬 만한
수단을 보유하고 있지 않소. 고속운반선은커녕 상륙주정도 별로 없소. 기껏해야 자동차 운반
선 몇 척 보유하고 있는데, 기갑사단은 힘들 테고 아무래도 우리 같은 독립 기갑여단이 차
출되기 쉽소."
"알갔습네다. 이동에 대비한 작전안을 올리겠습니다."
차영진은 이렇게 북쪽에 주둔한 부대가 설마 동원될까 했지만, 현재 통일한국군에서는 중
국과의 접경에 있는 부대들이 주력이었다. 대 일본전에 그의 부대가 투입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12월 7일 06:05 대전 동구 용전동
한의대생 안창훈은 일어나자마자 PC통신에 접속했다. 지난밤에 휴대폰에 수신된 긴급연
락 메모 내용도 그렇거니와 지금 아침 TV뉴스에서 방송되는 내용도 심상치 않았다. 화면에
독도탈환 장면과 한국 해군 전투함이 화재에 휩싸인 모습이 나오며, 아나운서가 경주함 어
쩌고 하면서 계속 호들갑을 떨었다.
'또 전쟁이 터졌나?'
안창훈이 길게 기지개를 폈다. 자동접속이 되자 잔자메일이 2통왔다는 메시지가 떴다. 하
나는 자주 메일을 주고받던 익숙한 아이디였다. 안창훈은 그 메일 내용이 아마도 이번 독
도사태에 대한 정보나 행동지침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다른 하나는 처음 보는 아이디였다. 제목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안창훈이 두 번째
메일부터 열람했다. 내용을 읽은 안창훈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발신일시 : 12월 7일 03:44
발신인 : 이영철 (착한남자)
제목 : 꼭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저에 대해 말씀드려야 하겠죠. 저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는 21세
학생입니다. 며칠동안 뜬눈으로 고민하다 전에 인터넷에서 본 사신님의 홈페이지를 떠올리
고 이렇게 메일 드립니다.
한달전, 제 여차친구가 자살했습니다. 제가 목숨 바쳐서 사랑한 애인입니다. 예쁘고 착하
지
만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애였습니다. 저는 도대체 그녀가 자살할 이유를 몰랐습니다. 집안 문
제도 없고 성적도 항상 상위권이었습니다. 젊은 여자들이 흔히 갖는 그런 고민거리도 없었
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아름다운 육체는 차디찬 시신이 되고 억울한 혼백은 구천을 떠
돌고 있습니다.
그녀의 장례식을 마치고 그녀 집에서 소지품을 정리하던 중 문득 컴퓨터를 보고 뭔가가
스쳤습니다. 당장 컴을 켜고 뭔가 있을까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러나 비밀일기나 그녀가 심
경에 변화를 겪고 나서 쓴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통신 디렉토리에서 찾아봤
습니다. 워드용 프로그램으로 쓴 것은 못 봤지만, 혹시나 다운이나 캡쳐 파일에서 뭔가가 있
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그녀는 다자간 통신으로 진행되는 '마법의 성'이라는 게임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디렉토
리에는 게임에 필요한 명령어와 지도 등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캡쳐 파일을
봤을 때 그 놀라움이란...
그녀는 어떤 불량한 사용자들로부터 별 것 아닌 욕설을 들었습니다. 상대방이 보이지 않
는다고 그런 욕설을 퍼붓는 사용자들도 문제였지만, 몇 푼 안 되는 사용료가 아까워서 그
런
사용자를 제재하지 않는 운영자들도 문제 였습니다. 그녀는 그 사건으로 커다란 마음의 상
처를 입은 것 같습니다. 그 이후 친구들과 이야기 하지 않고 혼자 고민하다가 결국 이 더러
운 세상을 하직한 것 같습니다. 한동안 슬프고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만 1996년인가 그때 PC 통신 대화방에서
인격적인 모독을 받은 한 여학생이 자살했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깟
일로 자살까지 한 여학생을 책망했지만, 제 여자친구가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하니 그 여학생
의 불행도 이해가 갔습니다.
갈무리 파일에 들어있는 그놈들 신상을 파악하기 위해 게임회사를 방문했습니다.l 그러나
그 게임회사에서는 무책임하게도 고객의 비밀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그놈들 신상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신님께 부탁드립니다. 부디 페이소스, 레자일, 화형령주라는 게임명을 쓰는 놈들
을 죽여주십시오, 가능하면 처참하게, 최대한 고통을 당하도록 찍어 죽여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부디 그놈들을 죽여주십시오. 만약 저나 그녀가 당한 이런 상황이 억
울하지 않고 그놈들이 죽일 놈들이 아니라면 저를 죽이십시오. 당신의 홈페이지에 있는 다
음과 같은 문구가 마음에 듭니다. 사신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해주십시오.
"당신이 불합리한 경우를 당했을 때, 너무 억울해 상대방을 꼭 죽이고 싶을 때, 그만한 합
당한 이유가 있을 때, 그리고 목숨을 걸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때, 그 이유와 목표에 대
한 메일을 주시오. 단, 나를 납득시키지 못하면 당신이 그 희생자가 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친구, 당신의 옹호자, 당신의 적, 당신의 원수, 사신, GrimRper"
안창훈은 메일을 끝까지 읽을 즈음 그는 이미 게임회사 메인 서버에 접근하고 있었다. 보
안 프로그램을 간단히 통과해서 이들 세 명에 대한 프로필을 뽑은 다음, 그 아이디들이 접
속한 전화번호를 찾아 이를 전화회사 자료와 대조했다. 역시 세 명 가운데 두 명은 사용자
프로필에 입력된 전화번호가 사실과 달랐다.
안창훈은 다시 전화회사 메인 컴퓨터와 행정전산망 자료를 비교했다. 안창훈이 예상한 대
로 한 명은 고교생, 한 명은 재수생이었다. 그러나 레자일이라는 게임명을 쓰는 다른 한 명
은 삼형제라서 누군지 확실치 않았다.
안창훈은 아이디의 비밀번호를 확인한 다음, 이를 주민등록번호, 은행계좌 비밀번호 등과
대조했다. 그 중 고교 2년생인 차남이 비슷한 암호를 쓰는 것이 확인됐다.
안창훈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죄로 봐서 그들은 죽어 마땅했다. 이영철이라는, 그 피해자
애인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미성년자들을 과연 죽여야 하는 가가 문제였다.
그가 직접 행동에 나서는 일은 없다. 표적 프로필을 실행팀에 넘기면 그들이 여자들 어린
아이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해치울 것이다. 그러나 결정은 그가 할 일이었다.
12월 7일 06:15 서울 금천구 시흥 2동
"일본 자위대 전 병력은 현재 비상령이 내려져 있는 상태입니다. 한국의 일본상륙전을 가
정한 비상계획령 제 3호에서는 한국군의 상륙예상 지점을 큐슈 북단 후쿠오카와 혼슈 서남
단 야마구치현 일대로 잡고 있습니다.
통일참모본부 정보참모부장 김평국 중장은 여느 인민군 출신 장령과 달리 문화어를 잘 구
사했다. 홍지영 대통령과 최창식 국무총리, 국가정보원장을 비롯한 일부 각료들은 북한 TV
방송을 시청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김평국 중장이 멀티비전 화면에 뜬 일본 전도를 화면 바로 옆 브리핑석에서 지시봉으로
짚어가며 자위대가 긴급전개된 상황을 계속 설명했다. 브리핑석 단말기는 멀티비전과 연계
되어 있다.
통일참모본부가 한국군의 합동참모본부 역할을 떠맡음으로써 남북한군의통합은 완료되었
다. 기존장교와 사병들의 계급은 남북한 그대로 쓰지만, 신병과 새로 장교로 임용되는 자원
은 한국군 체계에 따라 계급을 부여받았다. 인민군 고급장교들이나 노동당 고위직들로부터
반발이 있긴 했지만 크게 문제삼을 정도는 아니었다.
"해상자위대 제 1호, 2호위대군은 제주도 남방에 전개하여 한반도 봉쇄를 실시하고, 제3,
4호위대군은 동해와 대한해협에서 상륙전에 대비합니다. 그리고 혼슈 북동부에 있는 자위대
3개 사단이 서남쪽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좋수다. 다음은 박정석 동지가 설명하기요."
이종식 차수가 김평국 중장의 설명을 짧게 끊었다. 작전결정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
미 알고 있는 내용이고, 모르는 사람들은 어차피 자세히 설명해도 모르는 법이다. 이 차수가
전략기회 참모부장 박정석 상장을 지목하자 작달막한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의 박상장이 지
시봉으로 지도를 짚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 부서에서 준비한 전략입네다. 기본 전략 목표는 일본열도 정복에 있갔습네다."
박정석 상장이 한 달 전부터 세밀하게 준비한 작전계획을 설명했다. 해상자위대와 항공자
위대의 격렬한 저항을 누르고 일본 서부 큐슈와 주고쿠에 상륙한 한국군이 3개월에 걸쳐 일
본을 점령해 나간다는 계획이었다.
박 상장은 비교적 단기간에 일본의 항복을 받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병력을 일뵨 영토에
상륙시켜야 하는데, 상륙 능력에 문제가 많다고 솔직히 실토했다.
전략시물레이션이 전개되자 화면에는 각종 표지를 단 한국군이 푸른 화살표가 되어 노란
색으로 표시된 일본군을 격파하며 차근차근 북동쪽으로 진군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진격로
는 일본지도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측 가능한 시모노세키, 교토, 도쿄, 아
오모리였다. 훗카이도 상륙전은 새로운 상륙작전이라는 이유로 설명에서 빠졌다.
화면 오른쪽에는 동원 가능한 한국군 전력이 표시되었다. 지상군만 총병력 60만에 전차
1500대, 장갑차 2500대, 야포 2000문 기타 소송용 차량 20000대였다. 해군과 공군은 예비역
까지 총동원된 대역사였다.
"이 정도만 동원되면..."
"문제없습니다. 대통령님!"
대통령의 감상에 이종식 차수가 자신감을 표했다. 중국의 침략을 물리치고 나서 통일 참
모본부가 확대개편된 이후 이들이 머리를 싸매고 토론한 것이 일본정벌 작전이었다. 다양한
전략과 전술이 개진되고, 수많은 모의 전투가 치러져 마지막까지 남은 작전이 지금 막 제시
한 이런 정공법이었다.
"통참은 오늘부터 정동행성이오, 겨울이라 가미카제는 결코 불지 않을 것이오, 유사이래
최초로 일본땅을 공격하는 만큼, 기필코 승리를 쟁취합시다."
대통령 홍지영은 이렇게 된 마당에 반드시 승리하자며 참모들을 격려했다. 자신이 후세에
히틀러로 보이든 광개토 대왕으로 추앙받든 상관없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숙적 일본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홍지영이었다.
"전에 '일본정벌기'라는 소설이 있었지요."
대통령이 운을 떼자 국무위원들과 참모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임진왜란 직후 , 조선이
비밀리에 대군을 동원해 일본을 공격한다는 내용으로,1999년에 발간된 가상역사 소설이었다.
노량해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순신 장군이 왜군으로서 조선에 항복한 김충선 등의
도움을 받아 일본땅에 진공해 들어간다는 내용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자객
몇 명 파견에 그친 비슷한 제목의 다른 소설들과는 다른 소설들과는 아예 다른 내용이었다.
"소설과는 달리 진짜로 일본땅을 정벌하는 것이오."
대통령은 이번 전쟁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국정홍보처장 오석천은 대통령 말이 틀렸
다고 생각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역사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아서 그렇지, 한반도에서 일
본 정벌을 간 예는 적지 않았다. 일본 고대문화의 성립시기부터 그 이후에도 백제, 신라 ,고
구려, 가야에서 꾸준히 일본에 진출하여 일본 사회의 지배 계급을 형성했다고 믿었다.
국무위원들과 참모들은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현해탄에 해군과 공군을 집중해서 지상군
병력을 일본에 상륙만 시키면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인사군수 참모부장인 정
지수 대장이나 작전기획 참모부장인 권대현 대장은 아까부터 표정이 어두웠다.
"정 대장은 왜 떨떠름한 표정이시오?"
홍지용은 정지수 대장에게 의견을 물었다. 군부내 강경파이며 호전적인 인물로 알려진 정
대장이 전쟁을 앞두고 잔뜩 상기될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이상했다.
"일본을 점령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장 기본적인 의문이었다. 보통 대규모 전쟁의 기본적인 양상은 점령전이다. 그러나 점령
해서 얻는 것이 적다면 구태여 점령할 필요는 없다. 이쪽 정치집단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강
요하는 것, 즉 정치의 연장이 전쟁이라고 할 사람이 클라우제비츠였다.
"일본점령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정치적으로도 위험합니다. 다른 나라들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다른 나라는 당연히 미국이었다.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도 통일한국의 일본점령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지만, 미국이 한국의 일본점령을 미국 국익이 침해받는 상황으로 간주하
여 핵공격을 가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정 대장의 걱정이었다.
홍지영도 일본 배후에 있는 미국을 겁내지 않을 수 없었다. 세력이 상당히 약화됐다고 하
지만 아직도 세계경찰을 자처하는 유일한 초강대국이다. 일본을 점령하면 미국이 개입하게
될 것이 당연했다.
국무위원 몇몇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북한 출신 각료인 서창일 과학기술부 장관과 우
형섭 건설교통부장관은 미국이란 말을 듣자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전략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충분히 취하되 외국의 개입을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야 합니다."
"그게 무엇이오?"
홍지영과 이종식이 동시에 정지수에게 물었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꼭 이긴다는 보장도 없
고, 이기더라도 외국의 개입은 필연적이었다. 그렇다고 독도 인근해상에서 발생한 사건을 그
냥 두고 넘기기에는 국민감정이 용납하지 않아 곤란했다. 막강한 함대로 계속 한국의 해상
통상로를 위협하는 일본을 두고 볼 수도 없었다. 한국은 이 난국을 타개해야 했다.
"지고도 이기는 방법입니다. 대통령님. 자, 권 대장!"
정지수 대장이 통참 작전기획 참모부장 대장을 지목했다. 50대 중반 나이치고는 보기 드
물게 185cm의 큰 키와 떡 벌어진 체격을 자랑하는 권대현 대장이 앞으로 나서자 대형 멀티
비전이 작아보였다.
"이번 작전의 목표는 군사적 승리가 아닙니다. 일차적으로 일본군대의 해체와 부수적으로
는 일본 산업시설의 철저한 파괴입니다."
장내에 작은 웅성거림이 있었다. 패배를 목표로 한 작전이라는 말에 군인으로서 당연히
반발이 있었지만, 일본 군대를 약화시키고 일본 내에 있는 산업시설 기반을 파괴한다면 정
치적 목적을 충분했다. 이 작전이 성공만 한다면 일본은 당분간 한국에게 군사적으로도 열
세에 놓이게 되고, 향후 군비를 증강하느라 경제적으로도 한국과 경쟁하기 어려울 것이다.
산업기반의 파괴는 일반적으로 대규모 전쟁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수반된다. 전시체제가
되면 중공업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이 군수 동원체제가 되어 군수 물자를 생산하게 되며, 폭
격과 포격, 전선의 이동에 따라 전반적인 생산능력이 떨어지고 산업은 피폐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를 목적으로 하는 전쟁은 없었다. 산업시설 공격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군사시설이 아닌 산업시설을 주요 공격목표로 한다는 것은 군인에게 있어 대단히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한국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어쩌면 일본의 산업시설 파괴인지도 몰랐
다. 한국의 산업은 일본의 하청산업에서 간신히 벗어나기는 했지만 아직 일본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고 있으며, 수출시장에서도 일본의 견제를 심각하게 받고 있었다.
"주요 산업 기지와 수도인 도쿄를 점령하는 데에는 지상군 약 5개 사단에 시간은 일주일
이면 충분합니다. 원정군이 패배하건 일본측에서 유리한 휴전조건을 제시하건 말건 전략목
표는 이미 완수됩니다."
완전한 승리를 목표로 하지 않는 군인이 있었던가. 홍지영은 군지수 대장과 권대현 대장
의 주장에 잠시 어지러웠다. 분명, 군인들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이 아니었다. 그들 뒤로 뭔가
어두운 그림자가 느껴졌다. 그러나 견디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일본을 완전히 이길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국운을 걸고 일본을 공격하는 것은 너무
비경제적입니다."
"말도 안 됩니다!"
계속된 충격적인 발언에 박정석 상장이 반발하고 나섰다. 일본 육상 자위대는 전시체제가
아니라도 총 13개 사단에 달한다. 기타 지원부대는 빼더라도, 그리고 지상군을 경시하는 일
본 방위계획에 따르더라도 13대 사단을 상대하는 데 한국군 5개 사단이면 지나치게 적었다.
게다가 적지에서 싸워야 하는 원정군 입장에서는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충분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60만 병력이라고 해도, 자위대에 비해 압도적인 병력 차로도 산구에서 동경까지 가는 데
3개월이 넘게 걸립네다. 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고 가정해도 말입네다. 장장 2천 키
로메타에 달하는 대장정을 어드러케 5개 사단으로 일주일만에 수행합네까?"
대다수 국무위원들과 참모들이 박 상장의 주장에 수긍했다. 한국군이 일본을 점령하려면
대규모 기갑부대가 활동하기에 비교적 수월한 평야지대로 진격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만만
치 않은 육상자위대에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수많은 도시와 좁은 도로망을 감안하면,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퍼부어지는 항공자위대의
폭격을 가정하면 7일 만에 도쿄를 점령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다. 게다가 배후를 위협하는
큐슈도 완전 점령하지 않고는 안전한 진격이 보장되지 않는다. 보급로를 위협받는 군대치고
승리한 군대는 없는 법이다.
"우리가 반드시 큐슈나 시모노세키 인근에 상륙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바로 이곳!"
상륙전은 상륙하기 가장 좋은 곳을 선정해야 한다. 작전반경이 짧은 한국 공군기들의 지
원, 한국군의 상륙능력을 따져볼 때 혼슈 서남단 이외의 대안은 없었다. 그러나 권대현 상장
이 지목한 곳은 엉뚱하게도 혼슈 북부, 쿄토 바로 북쪽인 후쿠이현 쓰루가였다.
"그기... 가능하갔소?"
이종식 차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쓰루가항은 대규모 하역을 할 수 있는 좋은 조건
을 가진 항구이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너무 멀었다. 수송수단을 갖추더라도 그렇게 멀리까지
해상자위대의 전투함이나 잠수함들을 피해 도착하기는 어려울 게 분명했다. 게다가 막강한
항공자위대의 F-15J 전투기들이 일본에 접근하는 한국군의 상륙선단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
을 것이다.
그러나 쓰루가에 상륙할 수만 있다면 일본을 공격하기에는 아주 좋은 위치였다. 산업시설
이 밀집한 교토와 나고야, 오사카, 고베 일대가 모두 전장의 중심이 되어 철저한 파괴를 피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상륙전에는 제공권 보유가 필수인데, 작전반경이 짧은 F-16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항속거
리가 긴 수호이 전투기는 겨우 3개 대대뿐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호석 통신전자 참모부장이 공군 출신답게 문제점을 지적했다. 일본의 주력전투기
가
F-15J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상륙전 때의 제공권 확보는 가장 큰 문제였다.
"최근에 도입한 수호이 전투기와 이번에 취역한 중형 함모 이순신함, 그리고 울릉도 기지
와 공중급유기를 이용해 상륙지점을 엄호하면 가능합니다. 제공권은 상륙 당일 단 하루만
확실하게 장악하면 됩니다. 또한, 상륙지점에 비상활주로를 건설할 계획입니다."
권대현 대장이 짧게 답변을 마치고 상륙작전에 동원될 부대와 진격로를 조목조목 상세히
설명했다. 상륙작전의 선봉은 역시 해병대였다. 그러나 주공은 기동력과 화력이 우수한 기계
화보병사단과 독립기갑여단이었다.
"해병1개 사단과 1개 여단이 나고야와 쿄토 일대를 중심으로 방어선을 형성하여 혼슈 서
쪽에 집중된 육상자위대 주력을 상대로 지연전을 펼칩니다. 그 사이에 2개 기계화보병사단
과 1개 기갑여단이 도쿄를 점령하는 작전입니다. 진격로는 1000 km 미만입니다.!"
권대현 대장은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일본의 방위계획은 민간인에게도 노출돼 있기 때문
에 다른 상황을 가정할 필요는 없었다. 한국군은 군사비밀이 없는 나라와 전쟁을 하는 것이
다.
"상륙예정지점 부근에는 이렇다 할 지상전력이 없습니다. 나고야까지 쾌속진군하고, 나고
야와 도쿄 사이에서 자위대 1개 사단과 훈련예비대인 후지교도단을 섬멸시킵니다. 교토지역
의 지연전 외에 실제 대규모 지상전투는 이들 부대에 대해서만 이뤄집니다. 그 다음 도쿄가
지는 무인지경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권대현 대장이 자신 있게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 육상 자위대가 한국군의 상륙지점을 잘
못 판단할 경우에 가능한 작전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예상대로 혼슈를 비우더라도 홋카이도
의 자위대 병력이 더 큰 문제였다. 당연히 김평국 중장이 그 문제를 들고 나왔다.
"홋카이도에 있는 자위대 주력은 어떻게 할 생각이시오?"
홋카이도는 옛날부터 구 소련의 상륙전에 대비하여 자위대 최강으로 평가되는 4개 사단이
진을 치고 있는 곳이다. 이들 부대가 최신식 90전차를 앞세워 밀고 내려올 경우 상륙능력
제한으로 기갑부대를 충분히 상륙시키지 못하는 한국군 입장에서는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
었다. 김평국 중장의 지적에 권 대장이 미리 예상했다는 듯 답했다.
"아오모리와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세이칸 해저터널을 붕괴시키면 됩니다. 완전 봉쇄는 힘
들더라도 북쪽의 병력을 상당기간 붙잡아둘 수 있습니다. 그들이 간신히 쓰가루 해협을 건
너 허겁지겁 남진해올 때쯤에는 이미 도쿄는 통일한국군 수중에 있게 됩니다."
"쓰가루? 쓰르가?"
일본지명을 잘 모르는 홍지영이 헷갈려 묻자 권대현 대장이 자세히 설명했다. 쓰루가는
혼슈 중심부인 교토 북부의 항구이고, 쓰가루는 혼슈와 홋카이도 사이에 있는 해협이다.
"음... 그럼 도쿄를 점령하고 나서 휴전협정에 조인하면 된다 이거요?"
홍지영은 전혀 의외의 상황이 되자 갑자기 즐거워졌다. 총력을 기울이지 않고 소규모 병
력만 동원해도 일본의 콧대를 꺾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인 일로 느껴졌다. 그리고 미국
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설득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잘하면 지난 100여 년 간 한민족이 느꼈
던 열등감을 깨끗이 씻고 동북아시아의 맹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습니다. 휴전이 되면 원정군은 도쿄만에서 당당하게 우리나라로 귀환하게 됩니다. 단
기전이기 때문에 보급선이 차단될 염려도 없습니다. 만약 일본이 휴전에 응하지 않거나 원
정군이 패배한다면, 우린 투입된 병력만큼만 피해를 입는 셈입니다. 그러나 일본 중심부는
완전히 폐허가 됩니다. 결코 손해보는 장사가 아닙니다."
평생을 야전군, 그것도 기갑부대 지휘관으로 보낸 권대현 대장은 대통령이 보기에도 믿음
직했다. 참석자들은 일본 수도에서 당당하게 군가를 부르며 귀국선단에 탑승하는 국군 병사
들을 상상하며 만장일치로 작전을 승인했다. 대통령 홍지영이 완벽한 준비를 지시하며 비장
한 각오로 마지막 훈시를 했다.
"한민족 7천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쟁이며, 앞으로 10여 세기 동안 일본을 확실히 꺾되
외국의 개입을 사전에 차단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통일한국은 전치체제에 돌입하며 상륙작
전 지원이 최우선 순위에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장군들은 이번 작전이 반드시 성공할 수 있
도록 최선을 다 해주시오."
홍지영도 작전의 성공을 군사적 승리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씁쓸했지만 한국이 섣불
리 일본을 점령하려다가 미국의 개입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었다.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란
한국의 패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최창식 국무총리를
특사로 미국에 파견하고 김온 국가정보원장과 여진구 외교안보 수석비서관이 동행키로 했
다.
"대통령님! 원정군 사령관을 임명하는 문젭네다만..."
이종식 차수가 대통령에게 사령관 임명건에 대해 물었다. 인사 제청권은 당연히 통일참모
본부 의장인 이 차수의 권한이다. 그러나 정지수 대장이나 권대현 대장 같은, 원래 한국군에
서 인민군의 이차수 서열보다 높은 사람들을 휘하에 거느리게 된 묘한 상황에서 이 차수의
권한 행사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말이 통합이지 인민군이 한국군에 흡수된 것이나 다름없
었다.
"이 차수의 의향은 어떻습니까?"
이종식 차수가 씨익 웃었다. 그의 의중을 떠보는 것에 불과했다. 이 차수가 부관에게 현역
육군 대장급 이상의 리스트를 화면에 띄우게 했다. 통일한국군 제 1-5군 사령관을 포함하여
통일참모본부와 각군 소속에 대장 22명, 차수 5명이 있었다. 대장 이상급이 이렇게 많은 것
은 계급 인플레이션이 심한 인민군 탓이다. 물론 대장 이상급 인민군 장령 중에는 현역 지
회관이 아니라 행정관료인 경우가 더 많았다.
"몇 부대를 차출하여 원정군을 편성하니끼니 굳이 현임 군사령관을 임명해야 할 이유는
없습네다."
이 차수가 토를 달자 정지수 대장과 권대현 대장이 잔뜩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
차수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지수 대장만은 곤란했다. 지휘능력이 뛰어날지라도 정 대장
은 지나치게 강성 인물이라 승리에 눈이 멀어 자제력을 잃을 우려가 있었다.
"흠...결자해지라 했는데, 작전을 기획한 분이 지휘를 하면 어떻겠소?"
대통령도 이 차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좋은 핑곗거리를 들었다. 정지수 대장이 뭐라 말
하기도 전에 권대현 대장이 작전을 꼭 성공시키겠다고 다짐했다. 대일본 원정군 사령관 임
명건은 이렇게 순식간에 결정되었다.
12월 7일 07:10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
"세탁기 한번 돌리고요. 음식물 찌꺼기는 절대 쓰레기통에 버리지 말고 따로 모아둬야 해
요."
이은경은 서둘러 출근하면서 남편에게 대충 몇 가지 주의를 주고 집을 나섰다. 다리가 불
편한 남편은 지난번 전쟁 때 부상당한 상이군인 정호근 인민군 예비역 중좌 겸 현역 통일한
국군 소령이다.
"나도 출근해야 하는데..."
"당신은 아홉시 까지 가면 되잖아욧! 부대도 바로 옆이고."
앙칼지게 쏘아붙이자 기가 질린 정호근이 엉거주춤 화장실쪽으로 걸어갔다.
"저녁때 봐요. 쪼옥!"
이은경이 생긋 웃더니 문을 쾅 닫고 뛰어 나갔다. 정호근은 겨울용 감색 여군 정복이 그
녀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의 각시는 천방치축 '남반부 에미나이'치곤 되바라지지
않아 좋았다. 처음 볼 때보다는 훨씬 착하고 귀여웠다.
지난달 중순, 치료가 적당히 끝나자 두 사람은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다. 처가와 본가 양쪽
에서 반대가 이만저만 심하지 않았다. 충남 홍성에 있는 처가를 인사차 방문했을 때 가새비
(장인)와 처갓집 오마니(장모)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싸우를 맞았고, 최고어른인 가시할머니
는 못마땅했는지 아예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도 않았다. 심지어 늦둥이인 적은이(처남)
는 그를 가리키며 빨갱이 괴뢰군을 때려잡자고 장난감 총으로 쏘는 시늉가지 해서 가슴이
아팠다.
각시가 본가에 왔을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은 그나마 나았지만 동생 마누라인
오르만(제수)은 각시를 미제 초콜릿을 많이 얻어먹어 피부가 까무잡잡하냐고 놀리기까지 했
다. 누이는 미제의 개, 남반부 국방군 각시를 오라반댁(올케)으로 부를 수 없다는 것인지 일
이 바빠서 못 온다는 거짓부렁까지 했다.
그러나 결국 결혼은 이뤄지고 요즘은 꿈같은 단꿈 같은 신혼을 보내고 있었다. 인민군 예
비역 중좌로 예편한 그는 비록 핵미사일기지 침투공작에 실패했지만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
서 자력으로 빠져나온 공을 인정받아 한국군에 소령으로 임관했다. 지상군이 완전 통합된
지금은 국방대학원에서 특수전 분야를 교수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라 아직 어수선했지만 두 사람은 그런 대로 살만했다. 유공자들을 위해
국가에서 무료로 분양해준 아파트에 둥지를 틀고 새로운 삶을 즐겼다. 그는 결코 이 행복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정호근이 옷을 갈아입고 출입문을 나섰다. 다음주에 있을 도로주
행시험이 걱정되었다. 이번에 붙어야 승용차를 살 텐데... 아직 익숙하지 않는 의족이 신경쓰
였지만 걷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천천히 절룩거리면 걸으면서도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가득했다. 북한에 있을 때는 꿈도
꾸지 못한, 고위 당 간부나 장령급 군관이나 탈 만한 고급 승용차를 몰게 된다는 꿈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일단 고정적인 수입이 두 달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한국군 소령 계급으로 받는 봉급 실수령액은 인민군 대위 때 받은 액수의 열 배가 넘었
다. 그리고 핵미사일 공작팀이 일괄적으로 수령한 생명수당과 보로금 등이 적지 않았다. 만
약 한국이 중국에게 패했다면 막대한 전비지출과 함께 배상금을 갚아야 할 국가에서는 그러
한 재원이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승리했기 때문에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 정부, 그에게 있어 아직까지는 남조선 괴뢰정부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공
화국 정부에 비해 나쁘더라도 재정적인 지원 면에서는 괜찮았다. 1800cc 중형 승용차에서
세금을 빼니까 소형 승용차 가격에 불과했다.
버스정류장 가는 길에 자동차 영업소가 눈에 들어왔다. 하루에 두 번씩 지나가는 길이지
만 쇼윈도 안쪽에 진열된 승용차들은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모든 차들이 다 예쁘
게 보였다. 어떤 차를 선택해야 할지 몰랐다. 몇 달 전까지는 상상도 하기 힘든 행복한 고
민에 빠진 자신이 대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일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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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콘2 (한일전쟁) 제3장 가미가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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