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아니, 김일손 이놈이 기어이 사실대로 썼구나!”
실록청에 몰래 숨어들어 사초를 읽던 이극돈이
어금니를 깨물며 화를 참았어요.
세조의 비인 정희 왕후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전라 감사로 있던 이극돈은
조문을 하러 올라가지도 않고 기생과 놀았어요.
김일손은 그 사실을 신하의 바르지 않은 행동이라며 역사에 기록하려 했어요.
그러자 이극돈은 김일손을 찾아가 그 내용을 빼 달라고 부탁했지요.
하지만 김일손은 이극돈의 부탁을 거절했던 거예요.
이극돈은 자신의 허물을 들추는 이야기가 더 있는지 살폈어요.
그러다 김일손이 ‘조의제문’을 칭찬하는 내용이 있는 것을 보았지요.
조의제문은
김일손의 스승인 김종직이 쓴 글로,
단종을 죽이고 왕위 에 오른 세조를 은근히 비꼬는 뜻이 담겨 있었어요.
이극돈은 유자광에게 이 일을 알렸어요.
“이번 기회에 젊은 학자들을 조정에서 몰아 냅시다.”
유자광은 당장 조정의 원로 대신들인 윤필상, 노사신, 한치형 등을 찾아갔어요.
훈구파를 이끌고 있던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날 밤, 대궐에 들어갔어요.
“전하, 김일손 등 사림의 젊은 학자들이
세조 대왕을 깎아 내리고 있사옵니다.”
“뭐라고? 당장 그놈들을 잡아들여라!”
연산군은 당장 김일손을 잡아들여 고문을 했어요.
“네가 반역을 꾀한 신하들을 엄벌로 다스린 세조 대왕을 비난한 김종직의 글을 실록에 남기려 했느냐?”
“그렇사옵니다.”
“어째서 그리하였느냐?”
“사실을 그대로 쓰는 것이 저의 일이기 때문이옵니다.”
김일손이 당당하게 말했어요.
연산군은 그런 김일손에게 더욱 화가 났어요.
훈구파와 마찬가지로 연산군도 사사건건 간섭하는 사림파를 미워하고 있었던 거예요.
연산군은 이미 죽은 김종직을 무덤에서 꺼내 목을 베게 하고,
김일손을 비롯한 사림파 수십 명을 죽이거나 귀양을 보냈어요.
이 일을 무오사화라고 해요.
사림파는 무오사화에 이어
6년 뒤에 또 다시 큰 화를 입게 되지요.
그 사건은
연산군이 자신의 친어머니인 윤씨를 쫓아 내는 데 찬성한 신하들을
모조리 죽인 갑자사화였어요.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
세조는 조카인 단종을 내쫓고 왕이 되었어요.
이 때 많은 신하들이 세조를 도왔어요.
세조는 왕위에 오르자
자신을 도와 준 이들을 공신으로 명하고,
많은 땅과 노비를 주었어요.
이 공신들을 훈구파라고 하지요.
훈구파들은 큰 힘과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 욕심을 부렸어요.
그러자 훈구파의 잘못을 나무라는 세력이 생겨났어요.
사림파로 불리는 그들은
주로 사헌부나 사간원 등에서 일하던 학자들이었어요.
본래 사헌부, 사간원은
왕이나 신하가 한 일의 잘잘못을 따져 보는 곳이었지요.
사림파와 훈구파는 성종을 거쳐 연산군에 이르러서는
얼굴만 마주쳐도 으르렁거릴 정도로 사이가 나빠졌어요.
2. 기묘사화와 을사사화
중종은 훈구파의 도움으로 왕위에 올랐어요.
그러다 보니 중종은 훈구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지요.
“어진 왕이 되려면 신하들에게 끌려 다녀서는 안 돼.”
좋은 왕이 되고자 했던 중종은
훈구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했어요.
조광조는 그런 중종에게 큰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이었어요.
사림파를 이끌고 있던 조광조는
훈구파의 바르지 못한 행동을 나무라며 정치를 새롭게 하려 했어요.
조광조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면
훈구파는 물론 왕 앞에서도 거리낌없이 말했지요.
갈수록 힘이 약해지던 홍경주, 심정, 남곤 등의 훈구파들은
조광조의 강인한 성품을 이용해 일을 꾸몄어요.
먼저 훈구파들은 ‘조광조가 왕이 되려고 한다’는 헛소문을 퍼트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홍경주의 딸인 후궁 홍 희빈이
중종에게 나뭇잎 한 장을 내밀었어요.
“이것은 벌레 먹은 나뭇잎이 아니오?”
“그렇습니다.
제가 궁궐의 뒤뜰에서 주워 왔지요.
그런데 나뭇잎에 글자가 쓰인 듯하옵니다.”
“허허, 정말 주초위왕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구려.”
중종은 나뭇잎을 그저 신기하게만 보았어요.
“주(走)와 초(肖)를 합하면 조(趙) 자가 됩니다.
즉 조광조가 왕이 된다는 말이지요.”
“무엇이? 조광조가 왕이 된다고!”
홍 희빈의 설명을 듣고 나서 중종은 불같이 화를 냈어요.
그렇지 않아도 조광조가
왕위를 노린다는
소문을 이미 들었던 중종의 마음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게다가 홍경주는
백성들이 왕보다 조광조를 더 존경한다며
분명히 역모를 꾸밀 것이라고 했어요.
결국 중종은 훈구파의 음모에 속아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렸어요.
또 그를 따르던 많은 사림파들을 죽이거나 귀양을 보냈지요.
사실은
훈구파가
조광조를 몰아 내기 위해
나뭇잎에 ‘주초위왕’이라는 글씨를 쓰고
꿀을 바른 뒤
벌레들이 먹게 하여
글씨가 새겨진 것처럼 만든 것이었어요.
하지만 중종은 죽을 때까지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지요.
이렇게 훈구파의 음모로
사림파가 또 한 번 화를 입게 되었는데,
이 사건을 1519년 기묘년에 일어났다고 해서 기묘사화라고 해요.
중종에 이어 인종이 왕이 되었지만 9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어요.
이어 열두 살의 명종이 왕이 되었어요.
나라를 돌보기에는 명종의 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어머니인 문정 왕후가
대신 나라를 다스렸어요.
문정 왕후는
이 때 자신의 힘을 키우기 위해
동생인 윤원형과 손을 잡고
인종의 외삼촌인 윤임을 몰아 냈어요.
이 과정에서
문정 왕후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사림파들을 죽이지요.
이 사건을 을사사화라고 해요.
을사사화 이후에
사림파들은 지방으로 내려가
서원을 세우고 학문을 닦는 데 열중하며 세력을 키워 갔어요.
이 때에는 훈구파가 사림파를 눌렀지만
16세기 이후에는 사림이 권력을 잡게 되지요.
3. 내용 정리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데 공을 세우고 권력을 잡은 훈구파는
많은 땅과 노비를 거느리고 부를 쌓았습니다.
사림은 이를 비판하며 훈구파와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연산군 때에는 세조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훈구파에게 사림파가 화를 당하는 무오사화가 일어났습니다.
연산군을 몰아 낸 훈구파의 도움으로
왕이 된 중종은 조광조를 아꼈습니다.
그러자 훈구파가 헛소문을 퍼뜨려 조광조를 모함했습니다.
중종은 소문을 믿고 조광조와 사림들을 죽이게 했는데,
이 사건이 기묘사화입니다.
한편, 명종이 왕위에 오른 해에는
명종의 외삼촌인 윤원형이
문정 왕후와 함께
윤임의 일파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사림이 화를 입은 을사사화가 일어났습니다.
- 천재교육, 천재학습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