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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미방 김은숙은 모르지만, 밥딜런을 번역한 김백리는 안다 | ||||||
[사람 사는 이야기-김덕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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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82년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김은숙 씨를 만난 적이 없다. 사실 ‘부미방’의 문부식, 김현장이란 이름은 기억이 나고, 이들을 숨겨주었다가 구속된 원주의 최기식 신부는 알지만, 김은숙이란 이름은 생경하다. 게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 문부식이란 사람이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네”, “변절을 했네”, “뉴라이트가 되었네”, “부산 동의대 사건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고 떠들었네” 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탓에, ‘부미방’ 자체에 대한 이미지도 좋지 않았다. 과거에 자신이 했던 일을 후회하고 부정하는 일은 개...인의 자유니까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자신의 “회심”을 합리화하기 위해 다른 이들의 정신과 행동까지 폄훼하는 사람은 부산미문화원 아니라 백악관에 불을 질렀던 사람이라도 난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글을 읽으며 목이 메이고 눈물이 흘렀다. 대부분 자신의 과거를 팔아먹으며 높은 자리에 서고 싶어 할 때, 그녀는 ‘부미방’ , ‘무기수’ 라는 그 좋은 ‘스펙’ 안 팔아먹고 스스로를 ‘백리(百里)’라고 칭하며 작가로 살았고, 평화시장 노동자 아이들의 친구로 살았단다. 특히 미국 민주화 운동의 아이콘이자 포크 음악계의 제왕이자, 좋아하는 밥딜런의 평전을 번역한 ‘김백리’가 김은숙 그녀라는 사실은 너무 놀랍다. 제주 4․3항쟁을 기리며 첫딸의 이름을 유채라고 지었다는 그녀는 분명 조용히 살았어도 결기가 있는 사람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4월 5일(화) 오늘 저녁 7시 면목동 녹색병원 로비에서 고은 시인, 함세웅 신부, 평화의 나무 합창단 등이 함께하는 음악회가 열리고 임수경씨가 김은숙 씨와 아이들을 후원하자며 계좌를 열었다. 말은 꺼내도 누구하나 실천하지 않는 일을 임수경씨가 또 하고 있다. [농협 302-0378-0560-01 임수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