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
노병철
유식한 티를 내려고 한문으로 쓰면 초복(初伏)이라고 쓴다. 가끔 복(伏) 자가 헷갈려 묻는 이가 있어 덧붙인다. 복(伏)은 ‘엎드릴 복’자이다. 가을 기운이 살짝 대가리를 내밀다가 너무 더워 납작 엎드린다는 뜻이다. 복날이 왔다. 보신탕이 없어지고 대신 닭이 우리 가까이에 온 것 같다. 삼계탕집 집은 미어터진다. 집안 아저씨가 닭 공장에 계실 땐 엄마 드시라고 잡은 닭 열댓 마리씩 주고 가셔서 질릴 정도로 먹곤 했는데 이젠 정년퇴직하시고 나니 그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다. 그땐 복날에 사람들이 삼계탕집에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친구가 전화가 왔다. ‘복달임’하잔다. 워낙 보신탕을 좋아하는 친구라 어디 가자는 건지 안 봐도 비디오다. 요즘 불도가 심하게 몸에 달라붙어 개고기를 멀리한다고 했더니 머리를 밀라는 둥 온갖 욕을 하고 끊는다. 나중에 들으니 장어 먹으러 갔단다. 진작 이야기하지. 복달임과 복달음은 언뜻 같아 보이지만 다르다. ‘복달임’은 복이 들어 몹시 더운철 즉, 시기나 때 세월을 말한다. 음식이 아니다. ‘복달음’은 건강을 비는 축수(祝壽)를 의미하기에 복날 보신 음식을 먹는 것을 말한다. 대충 말하고 대충 알아듣는다. 아주 익숙한 우리네 현실이다.
삼계탕은 본시 여유 있는 집안에서 먹는 여름 음식이란다. 없는 집사람들은 인삼이랑 찹쌀 넣은 닭 구경이나 해봤겠는가. 없는 집구석은 그냥 개 한 마리 끌고 냇가에 가서 개장국 해 먹었다. 어릴 적 개장국 먹은 기억은 나는데 삼계탕 먹은 기억은 나지 않는 것을 보아 우리 집도 그렇게 부자는 아니었나 보다. 엄마에게 물었다. 우리 집이 아무리 가난해도 닭 한 마리 잡아먹지 못할 정도였냐고. 엄마는 능청스럽게 말씀하신다. 대가리 나쁜 놈을 흔히 닭대가리라고 비하한다. 어릴 적 모이 먹고 있는 닭 엉덩이를 걷어차면 바로 달려든다. 하지만 불과 몇 초만 도망가면 닭이 따라오지 않는다. 엉덩이 걷어차인 사실을 바로 잊어버린다. 그래서 너희 머리 나빠질까 봐 안 먹였단다. 토종닭이 맛있다고 재래시장까지 가서 사 온 닭으로 삼계탕을 끓여 먹으면서 한바탕 웃었다. 난 애들에게 닭을 너무 많이 먹였나 보다.
초복이라 많은 문자가 온다. 절기를 설명하는 초복 유래 문자부터 삼계탕 되기 전에 닭 가족사진이나 불쌍한 개 모습까지 다양하게 올라온다. 이래저래 복날이니 몸보신하자는 이야기일 것이다. 초복의 유래야 어떻든 난 초복은 어른분들 여름 건강하게 잘나시라고 영양가 있는 음식 챙겨드리는 날로 배웠고 여태 그렇게 해왔다. 애들 생일이나 기념일을 참 부지런히 챙겼건만 막상 초복 날이 왔는데 딸들은 물론 조카들에게서도 여름 잘 보내라는 문자 한 통 없다. 이러다 안 되겠다 싶어 한 소리 하려고 하니 말린다. 괜한 꼰대짓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래도 할 소리는 해야 하는데 답답하기만 하다.
“너거 큰아부지가 삐졌다. 문자라도 보내라.”
엄마가 조카들에게 전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귀가 좀 어두우신지라 작은 소리로 한다는 게 온 집안사람 다 듣는다. 씁쓰레한 웃음이 나온다.
첫댓글 저는 복날 어른한테 전화라도 해야되는 줄 시집와서 알았습니다. 삼대독자 아버지라 일가친척도 별로 없는데다 집안에서 그런 것 챙기지도 않았기 때문이지요. 이글 읽으니 결혼 하고 처음 맞는 복날 시아버지한테 혼난 생각이 나네요. 그게 뭐라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