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에게 묻다. 제발 밥값 좀 하게"
질문)선생님 직장상사나 아버지가 제발 밥 값좀 하랍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죠?
사치스럽지 않고 단순한 음식에 길들여지는 것은 우리에게 완전한 건강을 주며, 우리가 생활하면서 꼭 필요한 것들에 주저하지 않게 해주는 법이야. (에피쿠로스, ‘쾌락’) 자네가 우리 학원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다면 어차피 간소하게 먹는 것에 단련되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야. 나는 욕망의 부재를 말했지. 욕망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욕망을 줄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야. 무엇 무엇이 있어야 행복하다면 그는 욕망의 노예일 뿐이지. 반면 무엇이 없어도 행복하다면 그는 욕망의 주인이야. 이것이 진짜 즐거움이지. 진정한 쾌락과 즐거움이 목표라면 절제는 중요한 수단이지! 밥값걱정 없이 살아가려면 밥에 의존하지 말고 즐겁게 사는 법을 배워야해! 밥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말이 비현실적으로 들린다는 표정이구먼. 나를 포함해서 우리 대다수는 밥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그러나 영원히, 혹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무서움이란 없는 법이야!
'내가 가진 것보다 바라는 것이 더 많으면 불행하고, 거꾸로 가진 것이 더 많으면 행복한 것'
그는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스승이 혼돈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에 실망하여 14살 때부터 철학공부를 시작했다. 18세 아테네 시민이 되기 위해 2년간의 군사훈련을 받는다. 이후 아테네는 마케도니아에게 사모스를 잃게 된다. 전쟁에 진 아테네 인들은 모두 추방당한다. 그의 부모는 이미 소아시아 콜로폰으로 망명해 있었다. 부모가 있는 콜로폰에서 에피쿠로스는 철학공부를 다시 시작한다. 그 후 10년 동안의 행적에 관해서는 남아 있는 기록이 없다.
정원학원! 그는 35세 전후에 아테네로 돌아와 학원을 열었다. 당시 아테네는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이 있었다. 두 학원은 철학을 정치와 공공생활에 적용하는 데 관심이 많은 야심 있는 엘리트학생들을 받았다. “우리는 일과 정치의 감옥에서 해방돼야 한다” 그는 개인의 자유로움을 위해 정치활동과 공공생활을 피하라고 가르친다. 심지어 결혼도 하지 않는다. 그의 학원은 두 메이저학원에 비해 인기가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그도 학원으로 돈 벌 생각은 애초에 없었던 듯 하다.
언젠가 왕이 그의 학원을 찾았다. 그가 사치스러울 것이라 생각한 왕은 초라한 그의 모습을 보고 의외라는 듯 질문했다. "'먹고,마시고,행복해라'는 뜻이 무엇이오?" 그가 답했다. "그대가 본 대로요. 그대가 행복하길 원한다면 단순해지시요. 왜냐하면 그대가 복잡해지면, 그대는 불행해지기 때문이오." 쾌락주의자고 알려진 그는 쾌락이라는 단어의 느낌과 다르게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친구 같은 제자들 정원학원에서 소박하게 살았다. ‘결핍으로 인한 고통이 제거된다면, 단순한 음식도 우리에게 사치스러운 음식과 같은 쾌락을 준다.’ (에피쿠로스, ‘쾌락’) 마른 빵이 고작이었지만, 잔칫상처럼 즐겼다. ‘아기 사자’ ‘작은 정복자’ ‘죽여주는 여자’ 같은 재미있는 이름의 여자들과 노예까지 저녁이 끝난 후 모두 함께 춤을 추었다. 그가 매춘부와 놀아나고 많이 먹어서 하루에 두번 토한다는 소문이 떠돌 정도였다. 물론 매춘부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는 퇴폐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쾌락에서 비롯되고, 쾌락은 이성의 힘으로 조절할 수 있을 때 계속된다' 전쟁에서 연달아 패하여 자존심에 상처받은 그리스인들은 행복을 개인의 구원에서 찾으려 한다. 콜로폰 그가 살고 있던 곳이 동방이었다. 동방으로부터의 철학적 사조를 받아들이고 이를 그리스인의 논리적 우수성으로 발전시켰다. 이 전환점이 인간에게 전체의 일부로서가 아닌 주체적 개인이라는 개념을 갖게 해 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몸의 병을 물리치지 못하는 의술이 아무 소용없듯이, 마음의 고통을 물리치지 못하는 철학 또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의 철학은 의술이었다.
질문)운명은 정해진 것입니까?
아니! 인간은 정해진 운명에 의해 사는 것이 아니야. 데모크리토스는 세상 모든 것의 기본 구성요소는 원자라고 했지.('원자론') 원자들의 낙하운동을 통해서 만물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어. 그러나 나는 원자의 낙하운동이 조금 빗나갈 수도 있고 그러면 부딪혀서 사고가 날 수도 있는 것처럼 세상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지. 운명도 정해진 방향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야!
질문) 어떻게 하면 풍요롭게 될 수 있나요? 전 카드값에 매달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자네가 누군가를 풍요롭게 만들고 싶다면 그의 재산을 늘려주지 말고 욕구를 줄여주는 것이 좋아! 나와 나의 제자들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일하지 않기 위해, 독립을 택했지. 고용관계를 포기한 대가로 우리들은 가난을 선택하게 되었지. 자네가 극단적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선택이 힘들더라도 자신의 욕구를 조절하면 행복해 질 수 있다네. 카드 값 때문에 직장에 다닌다면 카드값을 줄여야해! 자기의 욕망을 얼마나 성취하였는가에 따라 행복도가 다른 법인데 나는 행복 방정식을 만들었지.(행복=성취/욕망) 이 방정식으로 풀어 보면 욕망이 크면 행복이 줄어들기 마련이지.
질문)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나요?
우정! 남을 비난하는 사람은 친구마저 비난하는 경향이 생기는 법이지. 비난이 습관화되는 것이야. 거. 친구들의 도움이 우리를 돕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이 도와줄 것이다'는 믿음이 우리를 돕는 것이야. 진정한 행복은 좋은 친구를 사귀는데 있어. 그리고 이웃과의 우정도 중요해. 그리고 "이웃이 알면 어쩌지?" 라고 걱정하게 하는 일을 너의 인생에서 하지 말아야해!
질문)신이 있는데 세상에 악은 없어지지 않는거죠?
신이 악을 막아내려 하는데 그럴 능력이 없다면 신은 무능한거지. 능력은 있는데 그럴 의향이 없다면 신은 악한것이지. 능력도 있고 의향도 있는데도 악이 있다면 악은 어디서 왔을까? 나는 신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살았어.
질문)선생님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들이 존재하는 한 죽음은 존재하지 않고, 죽음이 존재할 때 우리들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법이지.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죽음과 만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어. 먼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살아 있으니 죽음과 무관하고, 죽은 다음에는 죽음을 의식하지 못하니 역시 죽음과 무관하지. 따라서 ‘나 자신의 죽음’이란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법이지. 우리가 죽음에 대해서 갖고 있는 경험과 의식은 모두 타인의 죽음을 통해 얻어진 것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것이 아니야. 그러므로 걱정할 일이 없어. 내가 친구들에게 쓴 편지이니 꼭 읽어 보게나. “나는 죽어갑니다. 그러나 두렵지도 괴롭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행복합니다. 내가 죽음의 고통을 이길 수 있는 까닭은 친구들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나눈 즐거웠던 얘기를 떠올리면 괴로움도 슬픔도 사라집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죽은시인의 사회’ 라는 영화에서 나온 구절이다. 오늘을 즐겨라 이 말은 그의 철학에서 유래 되었다. “인생은 ‘유보’ 때문에 점점 사라져간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즉 오늘을 즐기라는 것이다.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모든 일은 오늘 여기에 살고 있는 인간으로서 그대가 행복하게 산다는 데에 달려 있다”
질문)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우리가 여행길에 오른 한, 우리는 시작보다는 끝을 더 잘 만들도록 노력해야해. 그리고 끝에 이르면, 우리는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좋아.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하..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