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20(금) 수리산 등산때에는 초여름 날씨를 느낄만큼 더위를 느끼게 하드니 오늘 3/24(화)도봉산 망월사 등산을 위하여 나서려니 초겨울 날씨를 느낄만큼 싸늘하다. 오늘 최저기온이 섭씨 영하3도, 최고기온이 섭씨 영상 6도라고한다.
10시무렵 도봉산 망월사역에 도착하니 각자 집에서 드러누운채 편하게 TV야구 결승관람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12명의 노건각들이 몰려든다. 10시 15분 이 상기가 뒤늦게 도착함을 끝으로 망월사를 향하여 망월사역 출발이다.
한 현일, 주 재원, 최 병인이 소형 라디오 리시버를 귀에 꽂고 야구 중계소식을 알려준다. 가다보니 북한산 도봉사무소이다. 도봉사무소 직원이 등산하기 가파른 코스와 완만한 코스를 친절하게 안내하여준다. 계속하여 오르는 도중에 주 재원으로부터 1,2회전 야구 성적이 좋지않다 하면서 혀를 찬다.
12시경 망월사못미쳐 공터에서 12명의 노인네들이 빙둘러 앉아 홍어회, 바나나, 떡, 계란을 안주삼아 주고 받는 막걸리 한잔에 쓸데없는 잡념이 사라진다. 싸늘한 날씨에 이 상기로부터 준비하여온 뜨끈뜨끈한 오뎅으로 젖가락이 몰려든다.
望月寺는 신라 선덕여왕8년(639)에 창건되었으며,고려 문종20년(1066)慧 炬스님에 의하여 중수되었다고 한다. 禪修行을 위한 절로 信心을 더욱 지니도록 하게 함으로 여러 가지로 다른 절과 비교가 된다. 가을에는 단풍이 우거져 산림이 수려하여 가을에 다시오고 싶은 마음을 갖게한다.
절 내부를 두루 관람하고 하산하여 망월사역부근에 이를 무렵 한 현일로부터 야구 경기 스코아가 동점이 되었다고 소리를 지른다.이에 따라 11명의 친구들이 환성을 지른다. 올라오든 등산객들도 같이 환성을 지른다. 한국인 전체가 일체감이 된 기분이다. 오후2시너머 망월사역 못미쳐 칼국수집에 도착하니 3:3 동점으로 TV연장전 경기가 나온다. 곧이어 5:3패의 준우승으로 끝나니 오늘 하루가 너무나 아쉽게 느껴진다. 3/27(금)홍제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지다.
등산 참가자 명단; 송 권용, 송 희경, 송 재덕, 박 희성, 박 찬운, 조 남진, 조 원중, 유 충호, 주 재원, 이상기, 최 병인, 한 현일
3/27(금) 등산 일정;북한산 홍제역, 10시정각
3/31(화)등산일정; 아차산역 10시정각
"나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지 말라.”
그는 그 한 마디를 남기고
조용히 하늘로 떠났습니다.
충무공의 얘기가 아닙니다.
1995년 오늘(3월 7일) 아흔을 일기로 세상을 떠난 한국 최초의 안과의사
공병우 박사의 유언이었습니다.
그는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
쓸만한 장기와 시신은
모두 병원에 기증하라.
죽어서 한 평 땅을 차지하느니
그 자리에 콩을 심는 것이 낫다.
유산은 맹인 복지를 위해 써라”는 말을 남기고
이승을 떠났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가장 가까운 공동묘지에 매장하되
입었던 옷 그대로 값싼 널에 넣어
최소면적의 땅에 묻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이런 유언 때문에 공 박사가 별세했다는 소식은
이틀이 지나서야 동아일보 특종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공 박사는 콘택트렌즈와 쌍꺼풀수술을
국내에 도입한 유능한 안과 의사였지만
한글사랑, 맹인사랑으로 더 유명합니다.
그는 1938년 공안과에 눈병 치료를 받으러 온
한글학자 이극로를 통해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감화를 받은 뒤 한글의 과학화에 앞장섭니다.
고성능 한글타자기를 발명했고
한글 텔레타이프, 한영 겸용 타자기, 세벌식 타자기 등을
발명해 보급했습니다.
한글시력표를 만들었고 한글문화원을 세워
한글 글자꼴과 남북한 통일자판문제 등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공 박사는 특히 세벌식 타자기에 애착이 컸는데,
세벌식 키보드를 써 본 사람은 2벌식보다 속도가 훨씬 빠르고 오자가 적은데다 편리하다고 한목소리를 내더군요.
정부가 성급히 2벌식을 표준으로 정하는 바람에
시장에 보급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공 박사는 당시 PC통신에서 세벌식 타자의 우수성에 대해
수많은 글을 남겼는데,
당시 ‘초딩’, ‘중딩’들의 '무지한 욕'에 개의치않고
계속 글을 썼습니다.
그는 또 자신은 옷과 신발을 해어질 때까지 입고 신으며 검소하게 살았지만,
맹인부흥원을 설립하고 장님을 위한 타자기, 지팡이를
개발하는 등 평생 장님을 위한 일에
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한국일보에 의해 ‘한국의 고집쟁이’ 6위로 선정된 그는
수많은 일화를 남겼습니다.
일제시대에 창씨개명을 거부하며 ‘공병우 사망’을 선언했고
서슬퍼른 5공화국 때 대놓고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형식보다는 본질에 충실해 집안의 문지방을 모두 없애버렸고 ‘못사는 나라에서 옷치장에 시간을 낭비해선 안된다’며
한복을 입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결혼식에서 며느리에게 폐백 절하는 것보다
악수나 한번 하자고 청했습니다.
시간을 금쪽같이 여겨 5분 이상 머리를 깎는 이발소,
낮에 열리는 결혼식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평생 생일잔치를 하지 않았고
미리 예약하지 않고 온 손님은
아무리 귀한 사람이라도 돌려보냈습니다.
공 박사는 미국에서 한 60대 언론인을 만나 얘기하던 중
길거리에서
“젊은 사람이 컴퓨터도 안 배우냐”고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그는 젊음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고
얼마나 공부를 하며 사회에 열심히 공헌하느냐가
잣대라고 말해왔습니다.
자신도 그렇게 젊게 살다가 가셨습니다.
늘 공부하며 사는 것,
남의 눈치보다는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며 사는 것,
소아(小我)보다는 큰 뜻에 따라 사는 것,
사랑을 품고 사는 것,
이러한 삶이야말로 젊은 삶이 아닐까요?
영원한 젊은이 공병우 선생의 기일에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될것 같아 전합니다
첫댓글 등산에 참가한 회원 모두의 공통된 심정은 너무나 부담이 가는 한일전을 집에서 진행된는 그대로 시청한다는 것은 노인들의 심장과 뇌에 너무 부담이 가는 것 같아 훌훌 털어버리고 산을 오르는 것이 낫다고 해서 등산에 참가한 것인데, 결과가 너무나 안타깝게 끝나 너무너무 마음 아픕니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보니 김인식 감독이나 강민호 포수도 이치로를 거르게 하라고 했는데 왜 임창용 핏쳐가 거기에 따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내용이 나와 너무 속상하군요. 그러나 우리 선수들 너무 너무 잘했고 위대했습니다. 조스님! 아픈 가슴을 달래면서도 이렇게 빨리 등산기를 올려주어 고맙소.
조스님, 올린 글 가뭄타는 가슴에 새 생명 틔우는 단 봄비만 같습니다. 훌륭하게 살다가신 공병우 선생을 다시 생각하며 자신의 삶을 반성하게 합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선전한 우리 개표팀 선수 한 사람 한 사람 준우승으로 이끈 김인식 감독은 국민 가슴마다에 새로운 희망과 용기의 불씨를 심어준 자랑스런 얼굴 얼굴들입니다. 모두 함께 박수! 박수! 박수!
등산소식, 공병우 박사 에대한 좋은 글 잘읽었어요. 우리에게 좋은 말을 전해주려는 조스님, 감사합니다. "望月寺는 신라 선덕여왕8년(639)에 창건되었으며,고려 문종20년(1066)慧 炬스님에 의하여 중수되었다고 한다" 는 망월사에 대하여도 알려주고....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