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인간 / 알베르 카뮈 / 김화영 / 미메시스
일러스트가 들어간 판본이다. 나는 일러스트들을 이해할 수 없다.
47세(1960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카뮈의 유작이라고 한다. 책에는 알아볼 수 없는 글자라는 [ ] 표시가 많이 있으며, 각주들이 많이 있다. 작가의 손을 거쳐 다듬어지지 않는 것인데, 작품이라 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다. 역시 미완이다. 그러나 작가의 명성이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 아닐까 한다.
술술 읽히던 책이 중간부터 힘들어지지 시작하더니, 다 쓰여지지 않은 글의 마지막을 만난다. 작가가 어떤 작품을 구상했는지 많이 나오나, 그것을 이 작품을 해석하는데 적용한다면 있지도 않는 작품을 가지고 갑론을박하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나는 가난을 겪어보지 못했다. 나의 부모님 세대가 어렸을 적에는 그 가난이 삶이었다고들 하신다. 무엇까지도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아주 현실적인 예를 들어주시는 것을 듣곤 했으나 머리 속에 남아있는 것은 별로 없다. 얼마나 가난했는지 이해하려고 말씀하신 것들을 기억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가난하면서도 지켜야 할 것, 가난을 벗어나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가난, 그 가난이란 환경에서 망가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 가난하기에 펼쳐지는 환경들을 이 작품에서 나는 조금, 정말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면 과장한 것일까. 직접 겪은 것도 잊어버리거나 네 기억에서 내몰아 버리는데, 기껏 조금 이해한 것이니 내일이면 다 잊어버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이 책을 통해서 흔적이라도 조금 남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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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급 인사들이 진부하기만 한 시대에 말랑은 가능한 한 자기만의 개성적인 생각을 지니려 노력하고 어느 경우에나 겉보기에는 마지못해 타협하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도 실은 굽힐 줄 모르는 판단의 자유를 확보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46
그는 항상 죽음처럼 헐벗은 가난의 한가운데서, 보통 명사들 속에서 성장했다. 반면에 삼촌 댁에 가면 고유 명사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었다. 91
"난 가난한 사람이야. 나는 고아원 출신이지. 이런 옷을 입고서 전쟁에 끌려오긴 했어도 나는 못 할 짓은 안 해." 98
어머니는 응 하고 대답했지만 아니라은 뜻일지도 몰랐다. 어둠 속에 파묻힌 기억을 뚫고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 아무것도 분명한 것이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기억은 벌써 부자들의 기억만큼 풍요롭지 못하다. 자기들이 사는 곳에서 떠나는 적이 없으니 공간적으로 가늠할 만한 표적이 더 적고 그게 그 턱인 단조로운 생활을 하니 시간적으로 가늠할 만한 표적이 더 적었다. 물론 가장 확실한 것은 마음의 기억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마음은 고통과 노동에 부대껴 닳아 버리고 피곤의 무게에 짓눌려 더 빨리 잊는다. 잃어버렸던 시간을 되찾는 것은 오지 부자들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시간은 그저 죽음이 지나간 길의 희미한 자취를 표시할 뿐이다. 그리고 잘 견디려면 너무 많이 기억을 하면 못 쓴다. 매일매일, 시간시간의 현재에 바싹 붙어서 지내야 했다. 113-115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가난에 쪼들리지 않았지만 습관이 들어서, 그리고 또 삶의 고통을 견디어 온 사람들 특유의 불신 때문에 여전히 궁핍을 먹고 살았다. 그들은 동물적으로 삶을 사랑하고 있었지만, 삶이란 또한 그 뱃속에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던 불행을 규칙적으로 낳아 놓곤 한다는 것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176
그들에게 휴식이란 모든 식구들에세 돌아가는 식사가 더욱 가벼워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 이 동네에 있어서 노동은 덕목이 아니라 어떤 필연성이었다. 그 필연성은 사람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결국은 죽음으로 이끌로 가는 것이었다. 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