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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자를 세 번 치고 세워서 보이시고)
시회 대중은 아시겠습니까?
雨後鳩鳴(우후구명) 山前麥熟(산전맥숙)
何處牧童兒(하처목동아) 騎牛笑相逐(기우소상축) 更把短笛橫吹(갱파단적횡취) 風前一曲兩曲(풍전일곡양곡)
비가 오고 난 뒤에는 비둘기가 울고, 산 밑에는 보리가 익는다.
목동 아이는 어디 있는고?
소를 타고 웃고 서로 좇으면서 피리를 횡으로 불면서바람 앞에서 한 곡 두 곡을 부르더라.
이런 때를 당해서 무엇이 부족한 게 있고 무엇을 더 구할 것이 있겠어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 나날이 참 좋은 날이더라.
그래도 알지 못할진대 또 산승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과거에 설봉 도인이 말씀하시길,
大地撮來 如栗米粒大 抛向面前 漆桶不會 打鼓請看
대지를 잡아가지고 보니까 밤톨만하고 쌀알만하다. 면전을 향해서 던졌으나 캄캄한 사람은 알지 못함이라. 북을 둥둥 치는 것을 한번 들어보라.
이에 대해 장경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습니다.
長慶稜問雲門 雪峰與麼道還有出頭不得處麼 云有 稜云作麼生 云不可總作野狐精見解 又云狼藉不少
"설봉 스님이 이런 말을 했는데 여기에서도 뛰어나지 못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있다.”
"어떤 것입니까?"
"들여우와 같은 견해를 지어서는 안 된다. 어지러이 흩어짐이 적지 않다."
해탈을 못한 중생들은 너무나 캄캄한 생각을 가지고 삽니다.
그저 1 더하기 1은 2라 하는 건 알지만, 1 더하기 1은 3이라 하는 도리는 모르거든요.
그러니까 고정적으로 배운 식견 하나만 가지고 안다고사는 것이지 그 외의 것은 모릅니다.
여러분이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 하는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맞는 거 아니거든요. 맞는게 아닌데 우리 인간이 생각으로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는 걸 법칙으로 정해놨어요. 이게 딱 맞다, 이래야 된다 하고 만들어 놓은 것이지 본래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라 하는 건 없는 거예요.
본래 없는 것을 상식적인 생각(식견)으로 만들어 놓은 건데, 그게 전부인 줄 아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한테,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니다."
"그럼 몇입니까?"
"셋이지."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는데 어찌 셋인가요? 학교 가서 시험 칠 때 셋이라고 써내면 틀리는데요?"
또, 어린애들한테 "니가 뭐냐?" 하면 "나는 영섭인데요.“ / "이름은 영섭인데, 영섭이라는 이름 짓기 전에는 뭐라고 해야 되느냐?"
"그때는 아무것도 없는데요?" / "없으면 어떻게 너가 없다고 하느냐? 아주 없는 데서는 없다는 말조차도 없어야 되는데, 너가 지금 없다고 하지 않느냐? 없다 하는 그놈은 그럼 뭐냐? 있는 거냐 없는 거냐?"
"그건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모르고 그냥 사는 거예요. 전부가 남이 말해놓은데 속아가지고, 진짜 마음인지 진짜 영혼인지 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누가 '마음이다' 하면 그걸 들어놓고 누가 물으면, "마음입니다.“ /
"누가 그러더냐?"
"모르겠어요. 누가 마음이라고 합디다."
그래 말하거든요. 이건 안 되는 거예요. 우리들은 전부 캄캄하게 모르고 있는 거예요. 모르고 있기 때문에 깨어나지 못한 우리 인간이 여우와 같다는 겁니다
우리 인간들이 의심이 참 많습니다.
산에서 여우를 쫓으면 몇 발자국 가서 힐끔 돌아보고, 또 몇 발자국 가서 힐끔 돌아보고 이럽니다.
항상 뒤에 있는 저 사람이 나를 얼마나 따라올 건가 의심증이 있어가지고 자꾸 돌아봐요.
부부 간에도 의처증이 있는사람은 같이 못 산다 하잖아요. 조금만 어째도 의심을 하니까 의처증이 병이라는 겁니다.
그런 것이 정말 좋지 못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중생들입니다. 여우와 같이 의심하는 병이 있다는 겁니다.
여우는 삼동초 기름이 고소한 냄새가 나서 그 기름을 좋아합니다. 사람이 여우를 잡으려고 올가미에다가 그 기름을 갖다 놓으면 여우가 보고서, '저거 나를 잡으려고 갖다 놨구나' 하면서도 그 고소한 냄새나는 게 하도 먹고 싶어서 못 견디는 거예요.
그래서 '안 먹어야지' 하면서 저만큼 도망가다가 '한 번 냄새라도 맡아보자' 하고 다시 돌아오니 냄새가 더 나거든. 그러면서 한 발짝씩 곁으로 살살 간다는 거예요.
'저걸 먹으려고 하면 올가미를 건드려서 잡힐 거고, 곁에 가서 냄새나 실컷 맡고 말자.'
그리고 냄새를 맡으려고 살살살 가서는, '살짝 한 번만 먹어보자' 하고는 그 기름에 입을 대면 올가미에 척 걸린다는 거라.
그러니까 '안 먹어야지 안 먹어야지' 하면서 자꾸 거기 한 발자국씩 다가가는 여우처럼, 우리 인간이 사는 길에 명예를 날린다든지재물을 좋아한다든지 남녀간에 색을 즐긴다든지 술, 담배를 좋아한다든지 세상에 중생들이 좋아하는 게 참 많잖아요.
'이거 먹으면 해롭다 했는데안 먹어야지 안 먹어야지하면서 그걸 자꾸 먹는 거예요.
이 세상 사는 데에 내가 분(分)이 없는데도 명예를 날리려고 욕심을 내고, 분이 없는데도 더 많이 잘 살려고 돈 욕심을 자꾸 내는 것이, 그 욕심을 내면 내는 것만큼의 몇 백배가 도로 전도몽상으로 거꾸로 뒤집어져서 나쁜 게 닥쳐 와요.
안 되는 거를 억지로 하려고 욕심을 자꾸 내면 그래요. 번연히 부처님 말씀을 들어서 알면서도, '이게 분에 넘치는 욕심이라는데 안 해야지'이러고 있다가 친구가 와서 "이 사람아. 어디에 좋은 게 있다네." / "뭐가 있어?" / "좋은 것이 있어."
그러면 귀가 솔깃하단 말이에요.
"어떤 건데?"
"무엇을 어떻게 하면 한 몫 잡는다는데, 한번 돈을 투자해서 해볼만한 거 아니야?"
가만히 들어보니까 그럴싸하거든. 그래서 학림사를 찾아와서, "
스님, 어느 친구가 어디 투자를 하자는데, 하면 한 몫 돈 좀 벌겠어요?"
그래서 내가 가만히 그 사람 얼굴을 쳐다보면 투자했다가는 도리어 2배, 3배를 거꾸로 뒤집어 엎어서 몽땅 잃고 빈손을 쥐고 돌아설 사람이야. 그런데 그 사람 보고 "당신은 빈손 들고 돌아선다" 하면 아주 섭섭하게 생각해요.
누구든지 사람이 찾아올 때는 속 시원한 말을 듣고 싶어서 와요. 내일이라도 잘 된다는 시원한 말을 듣고 싶어서 왔는데 반대로 "빈손 쥐고 돌아서고 아주 절단나겠다" 하면 아주 안 좋아합니다.
아주 기분 나빠해요. 그래서 나한테 돈 좀 주려고 봉투 가져왔던 것도 도로 가지고 가버려요. (대중 웃음)
그래서 내가 기가 막혀요. 나도 하도 많이 사람 상대를 해보니까 이력이 나더구만.
심리가 환히 드러나는 거예요. 분명히 봉투를 날 주려고 가져왔는데 그만 시무룩해서 안 좋아가지고 그냥 일어나면서, "어디 가니까 그분은 날 보고 올해 운이 좋다 하던데요." 그말 하고 그냥 가버린단 말이야.
그래서 나도 가만 생각하니 '나만 손해구나!’
그 다음에는 누가 와서 물으면,
"좋습니다. 참 좋아요."
"아이고 좋습니까?"
"그럼. 한 몫 잡지.“
"그렇습니까?"
그러면 아주 감사하게 절을 하고 봉투를 척 내놓고 간단 말이요. 그리고 나중에 찾아와서는,
"근데 스님, 이번에 뭘 했는데 일이 잘 안 되는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 스님이 좋다는대로 했는데 일이 잘 안 되는데요?
"그것이 잘 안 되는 원인이 있지."
"어찌해서 그렇습니까?"
"그거 잘 안 될 때는 기도를 해. 기도하는 수 밖에 없어."
처음부터 대번에 “안 좋으니까 기도하시오” 이러면 기도도 안 하고 돈도 안 주고 가버려요.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할 수 있는 길을 트자면 할 수 없이 돈부터 받아놓고 시작을 해야 되는 거라. 안 그러면은 되지 않아요.
내가 경험해 본 게 처음부터 "안 좋으니까 기도를 하십시오. 그러면 괜찮습니다.
됩니다.
" 이러면 기도를 잘 안 합니다. 말을 안 들어요. 그래서 절단나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아요. 그런데 돈부터 받아놓으면 가서 해보고 안 되면 또 올 거 아닌가? 내가 분명히 그걸 알거든.
"스님 이상하게 잘 안 되는데 어째서 그렇습니까?"
"한 가지 장애가 좀 끼어 있어서 그런데 어떡하나."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 일을 시작했는데."
"이 세상에 본래 팔자가 좋고 안 좋고, 잘 되고 안 되는 게 있나? 원래 없다."
"그럼 어찌 해야 됩니까?"
"한 가지가 길이 있는데 그 길만 하면 돼."
"그걸 가르쳐 주십시오."
"그럼 기도를 해."
그래서 기도를 한단 말이에요. 기도하면 분명코 그 어려운 걸 난점을 풀어서 나간단 말입니다.
애당초에 기도하라 하면 안 들어요. 많은 사람을 내가 상대해 봤지만 잘 안 해요. 그러나 이미 자기가 손을 대놨기 때문에 꼼짝 못해요. 기도 안 하고는 안 되는 거라. 그래서 그때 “기도를 하라” 그런단 말입니다.
그게 왜 그러느냐? 밀감 하나도 직접 먹어야 효과가 있지, 밀감을 먹어보지 않고 말로만 “먹는다 먹는다” 몇 번 해도 배가 안 부르고 몸에 아무 이익도 없습니다.
아무리 근세의 큰 도인이나과거의 큰 도인인 달마스님, 육조스님 같은 분들이라도 부처님을 능가할 수는없습니다.
부처님이 8만 4천 법문을 설했는데, 그렇게 무변광대한 법문을 한 선지식이 어디에 있습니까?
조사들도 다 부처님 말씀을근거해가지고 했지, 부처님말씀을 떠나서 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조사스님이 말씀하신 "부처도 치고 조사도 치고 성인도 치고 범부도 치니, 일체가 박살이 나서 여기에한 개의 터럭도 세울 수가 없다.
" 이런 말을 잘 들어야 되지, 이 말을 잘못 들으면 정말로 부처님을 두드려 패고조사를 패고 성인을 팬다는걸로 잘못 알아듣는데, 여기에는 깊은 뜻이 들어있습니다.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내리치고)
이 소리를 들었어요? 무엇입니까
이 소리를 들은 놈이?
그놈을 부처라고 해야 될까, 선지식이라고 해야 할까, 안 그러면 공자라고 해야 되겠어, 예수라고 해야 되겠어요?
하늘이라고 해야 되나, 땅이라고 해야 되나, 뭐라고 해야 되겠는가요?
그놈을 바로 알아야 한다 이거예요. 바로 그것은 조사도 아니오 부처도 아니오 공자도 아니요 예수도 아니라.
그러면 무엇이냐?
공자에게 매달리고 예수한테 매달리고 부처님한테 매달리고 선지식한테 매달리면 영겁이 가도 이 도리는 알 수 없고 참으로 자신을 깨달아 알지 못하기 때문에일체의 모든 것을 몽땅 싹 쓸어버리는 거예요.
쓸어버리고 난 뒤에 "이 소리를 들었어? 뭐냐?" 이 말이에요. 이걸 먼저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을 직접 깨닫게하기 위해서 조사스님들이 "조사도 치고 부처도 친다, 조사라고 해도 맞지 않고 부처라고 해도 맞지 않다" 하고 바로 찔러서 가르쳐 주는 소리지, 조사를 비방을 하고 부처를 비방하는게 아닙니다.
그걸 여러분이 잘 알아들어야 됩니다.
어느 스님이 공부하다가 선지식을 찾아가서 법거량을 하는데, "조사도 죽이고 부처도 죽일줄 알아야 돼. 그래야 니가 비로소 대장부가 되는 것이야!
" 이러니까 그 사람이 그걸 잘못 알아듣고 그만 선지식을 목을 콱 조르면서 "너도 죽어라!" 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알아들으면 안 되는겁니다. 법을 바로 알아들어야 됩니다.
여우와 같이 살아가는 데에 ‘이게 좋은가 저게 좋은가?’ 항상 의심하기 때문에 가르칠 도리가 없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가르쳐서 제도하느냐?
"집에서 아침 저녁으로 독경 좀 하고 공부했습니까?"
"안 했는데요."
“그러면 어쩌자는 거요? 내가 대리로 가서 돈을 벌어줘서 갑부가 될 수만 있다면 내가 가서 벌어주겠는데, 그거는 어떻게 해줄 수가 없소.”
그러니까 역대 조사스님들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사상을 벗어나서 말해본 일이 없어요.
과거의 효봉스님이나 동산스님 같은 분에게, "왜 항상 부처님 말씀만 자꾸 하십니까?“ 하고 물으면, "이놈아. 이 동산이 말을 들으라 하면 들을 사람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내가 부처님 말씀을 남한테 해줄 수 있는 눈이 조금 열렸어. 과거에는 부처님 말씀이 뭔지 몰랐어. 그러나 이제 내가 공부를 해보니 참으로 부처님 말씀을 알았어.
참으로 이 대지를 적실 만큼 눈물을 흘려도 내가 그 은혜를 갚을 수가 없다."
저도 공부를 해보면 해볼수록 부처님에게 더욱 감사한 마음을 느낍니다.
어떻게 부처님이 이런 말씀을 하고 어떻게 이걸 부처님이 연구를 해서 알았을까? 어떻게 이걸 부처님이 알았는지 기가 막힌 거예요.
우주 천하를 놓고 아무리 연구해 봐도 전부 허사라 아무것도 진실된 게 없는데이거 하나를 부처님이 깨달았어요. 그래서 천상천하에제일 가는 부처님이 된 거거든요.
어느 날 나도 공부해서 게송을 하나 써놓고서 어느 날 조사어록을 들쳐 보면 거기에 다 있어요. 이미 부처님과 조사님이 다 말씀해놨어요.
그래서 누가 보면 "이거 다 부처님 경전에 있는 말이고, 조사스님들이 다 했는 말이네." 그러면 꼼짝없이 변명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우리가 공부를 해도 결국에도 깨달으면 부처님 경전 말씀을 하게 돼 있지, 그 외에 벗어나서는 할 수가 없어요.
공자도 스스로 자기는 성인이 아니라고 그랬어요.
"이 천하에 성인이 있다면 서천서역국에 있는 황면노자(석가모니 부처님)니라. 그분은 말하지 아니해도 일체의 만민이 따르고, 하려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다 된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공자도 그만큼이라도 공부한 것은 말년에 문수보살를만나서 깨달음을 얻은 거예요.
그와 같이 부처님의 말씀을여러분이 가정에서 아침저녁으로 독경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돼요.
왜 그러냐 하면, 어느 스님이 마을에서 이것저것 다 해봐도 별로 마음에 만족되지 않고세월이 가는 것이 아까워서 '나도 산에 가서 공부나 하자' 하고 산에 들어가서 머리를 깎고 천막을 치고 앉아서 주야장천 금강경, 법화경을 독경을 수 만 독을 했어요.
그런데 하면 할수록 잠이 쏟아지고 별별 희한한 장난이 나오는데, 그래도 그놈을 이겨내고 계속하니까 장난이 다 없어지고 평온을 되찾았는데, 이 스님은 산에서 이것저것 나무뿌리, 열매 따먹고 하다가 몸이 지쳐서 탈진이 됐어요.
어느 날 일어나서 문 밖을 몇 발짝으로 나가다 기운이없어서 푹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하얀 옷을 입은 머리가 희고 눈썹은 긴 스님이 가사장삼을 수하고 육환장을 집고 나타나서 하는 말이, "네가 공부가 많이 됐는데 힘이 탈진이 돼서 기력이 없구나."
"예 그렇습니다."
"니가 그 힘을 다시 회복하려면 한 가지 길 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 어디서 애들이 자꾸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기 애들이 떠드는 소리가들리느냐? 그곳을 찾아가면 그 애들이 물에 들어가서 옷을 벗고 목욕을 할 것이야.
그중에 한 아이의 옷을 감춰 가지고 오너라. 집으로 올 때에 뒤에서 그 애기가 아무리 불러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라. 집에 와서 내가 나타나서 뭐라고 할 때까지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도 말고, 별별 욕을 다 퍼붓고 해도 대답을 하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기력을 조금 차려가지고 애들이 떠드는 소리가 나는곳을 가보니까 바위가 병풍처럼 쌓인 사이에 폭포가 펑펑 쏟아지는데, 아래 물웅덩이에서 애들이 옷을 벗고 들어가서 목욕을 하고 있어요.
거기 가서 애 옷을 하나 얼른 집어서 품 안에 넣어가지고 돌아오는데 뒤에서 "여보시오 대사. 왜 내 옷을 가져가요? 옷 주시오!"
그래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오니까, "이 중놈아. 내 옷 줘. 이 나쁜 놈아. 이 도둑놈아!"
이렇게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막 퍼붓는데, 뒤를 안 돌아보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로 하는 거예요.
한참 그러다가 조용해져서 오는데 곁에서 "이놈아!" 하면 깜짝 놀라 얼른 돌아보려고 하다가도 '아 돌아보면 안 된다 했지' 이러면서 집 앞까지 다 와서 가만히 앉아 있으니, 그 노장 스님이 나타나서 "절대 돌아보지 않고 가만히 참고 있는 게 힘든 것인데 너는 잘 참았구나!“
그리고 쫓아오던 아이를 보고 하는 말이,
“얘야, 너는 욕을 하지 말고 저 스님 품 안으로 들어가거라."
그러니 애가 안 들어가려고 합니다.
"글쎄 그 스님 품 안으로 들어가라니까. 어서 들어가거라!"
이러니까 애가 손을 스님 품 안으로 쏙 넣었습니다.
"뱃속으로 아주 들어가거라."
그러니 애기가 스님 뱃속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노장 스님이, "이제 다 됐다. 그래 너 지금기분이 어떠한고?"
"이상하게 힘이 막 솟구칩니다."
"그렇지? 이제 너는 살았느니라."
"스님 이게 뭐입니까?"
"이 산에 사는 산신에게 내가 명령을 했노라.
이 산의 수 천년 묵은 동삼(童蔘)이 모여서 목욕을 하는데, 그중에 산 정기를 제일 많이 빨아먹은 동삼을 내가산신한테 명령해서 네 뱃속에 들어가게 한 것이니라."
동삼이 속으로 들어가니 하늘을 덮을 기운이 막 솟아나는 거지요.그리고 노장스님이 떠나가는데 그분이 바로 법화경에 나오는 보현보살이더라는 것입니다.
부처님 경전을 일심으로 외우면 마음이 깨끗하게 소지가 되는 동시에, 진실되고 참된 마음이 되었을 때에는 모든 선신이 여러분을 도와줍니다.
진실되고 참된 사람을 선신이 도와주지, 악한 사람, 욕심 많은 사람은 안 도와주는 거예요.
부처님 말씀은 천상천하에서 제일 가는 말씀이라.
여러분이 마치 독을 발라놓은 북을 치면 누구든지 다 죽듯이, 여러분이 부처님 경전을 자꾸 접해서 외우고생각하고 공부를 하면서 ‘이놈이 무엇인고?’
'부처님 경전을 독경하는 이놈은 도대체 무엇일꼬? 하고 깊이 생각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하면서 부처님 경전 독경을 아침저녁으로 게을리 하지 않고 하는 사람은 실제로 밀감을직접 먹는 사람이고 밥을 먹는 사람이에요.
부처님의 진리의 말씀을 직접 실천에 옮겨서 내가 접해서 먹는 사람이 돼야지, 부처님 말씀을 듣기만 하고집에서 독경도 안 하고 하나도 안 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지금까지 제가 공부를 하라고 해서 열심히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은 솔직히 사주팔자라든가 관상을 보면 빌어먹을 사람이에요.또 얼마 안 돼서 일을 당할 사람이에요.
그럴 때 본인이 직접 해야지, 직접 본인이 안 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직접 항상 하라는 거예요. 그렇게 직접 하는 그 사람은 의외로 잘 살 사람이 아닌데 잘 살거든요. 또 큰 액난을 당할 사람인데도 큰 액난을 잘 안 당해요. 본인이 직접 실천하기 때문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오만해지고 방종해져요. 아무것도 아닌 재산 가지고, 조금 팔자가 피고 생활이 안정이 되고 돈 좀 벌어서 잘 살아지면 그만 신심이 없어집니다. 스님이 "
보살님 처사님 열심히 하십시오. 그리고 학림사 절에 와서 좀 더 신심을 내서 열심히 잘하십시오. 복 좀 지으십시오.
" 하면 말 잘 안 듣습니다. 겨울에 작은 문틈이 생기면 거기서 들어온 바람에 감기가 들듯이, 여러분 자신의 마음에 공백이 생기면그 틈을 따라서 8만 4천 마구니가 들어온다는 거예요.
여러분한테 들어온 마구니가 여러분이 생각하는 마음을 조정을 해요.
마구니가 조정을 해서 살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희한한 망상이 일어나가지고 그 망상을 좇아가서 그만 자기도 모르게 이성을 잃고희한한 소리를 하고 그럽니다.
그래서 틀림없이 아침 저녁으로 열심히 실제로 실천에옮기는 공부를 하게 되면 여우와 같은 생각이 없어지고 사자와 같은 마음을 쓸 수 있는 걸 여러분은 찾는 것입니다. 여우 같은 걸 따라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석두현 선사가 송하되,
牛頭沒馬頭回(우두몰마두회)
曹溪鏡裏絶塵埃(조계경리절진애)
打鼓看來君不見(타고간래군불견)
百花春至爲誰開(백화춘지위수개)
소머리가 없어지고 말머리가 돌아옴이여
조계의 거울 속에는 티끌 하나 없도다
북을 쳐서 보려고 와도 그대는 보지 못하네
온갖 꽃이 봄에 이르러 누굴 위해 피었는가
산승이 여기에 붙여서 말할진대,
석인타파사가선(石人打破謝家船)
자라장리산진주(紫羅帳裏撒真珠)
돌 사람이 사씨네 배를 부수니
붉은 비단 장막 속에서 진주를 흩어버린다
내일은 선방에서 관세보살님 점안식을 합니다.
여러분이 금을 한 개라도 가져와서 부처님 점안식에 올리게 되면, 가섭존자는 금 하나 바쳐서 부처님 개금한 공덕으로 42겁을 하늘나라에서 낙을 누리다가 인간 세계에 장자의 아들로 태어나서도 몸에 금빛이 나고 부처님의 상수제자가 됐단 말이지요.
그와 같은 인연을 지어놔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인연을 지어야 되는 건데, 이런 좋은 인연을 지으라고해도 안 들어요.
부처님을 점안하는 것은 부처님이 다시 이 도랑에 오시는 것입니다. 내일 점안식에 요만큼씩이라도 금을 가져오셔서 점안하는데 올려가지고 인연을 짓도록 하십시오.
일륜명월당헌조(一輪明月當軒照)하니
옥전소소불견인(玉殿蕭蕭不見人)이로다.
하나의 둥근 달이 집을 비추니
옥으로 된 집은 소소하여 사람을 볼 수 없더라
(주장자를 세 번 치고 하좌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