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총회 때문에 필라델피아에 다녀왔습니다. 가는 길이 설레임이었던 것은 총회 때문이 아니고, 그곳에서 만나 볼 몇 신태인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온지, 13년, 한국에서까지 합하면 20년 정도 만에 만나는 사람을 포함한 몇 사람.
박종기 형님 어머님 권사님과 동생들, 종만, 종덕, (종택이는 마침 선교지에 나가고 없었습니다) 벌집 백화점 집 아들, 희준이, 강정호 그리고 정호 아내 나금향.. 등 신태인 사람들을 한꺼번에 여럿 만났습니다. 마침 김 정기가 그곳으로 이사 올려고 왔다갔다는데,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살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신실한 신앙인들이어서 좋았습니다. 조금씩 늙어간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하나님 위해 살기에 충분히 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돌아오면서 마음 속 깊히 박수를 치고 왔습니다. 그 소식 빨리 올리고 싶었는데 두주가 지나가는 이제사 올립니다.
오월은 늦 봄이라 부릅니다. 조금 있으면 여름이 슬그머니 밀어 닥칠 것이고, 아쉽지만, 더 이상 ‘봄이 완연하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못할 것 입니다. 조금 늦게 찾아 온 봄 때문에 주변 환경의 변화도 다소 늦은 감이 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나무 잎이나 집 앞 뜰의 잔디가 빠르게 변했을 텐데 올해는 그리 서두르는 것 같지 않습니다. 잔디 곳곳에 피었던 예쁜 민들레 꽃은 어디로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하늘을 삐치고 올라 온 흰머리 얼굴들만 보입니다. 그나마 바람 따라 자유롭게 날라간 자리에 성큼 자란 줄기만이 다소 처량하게 보일 뿐입니다. 예년 같으면 진즉 잔디를 한 번이라도 깎아 주었을 것인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전 보다 늦게 자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보기에 깔끔하지는 못하지만, 덕분에 인위적이지 않은 색다른 기쁨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어느날 보니, 무심코 보니 잔디의 모습이 이상했습니다. 키가 크면 다 같이 커서 무성한 균등의 맛이 있을 터인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흡사 서투른 이발 솜씨의 엄마가 집에서 아이 머리 깎겠다고 자리를 폈다가, 뒤 늦게야 미장원에 달려 왔을 때, 그 때의 쥐 갉아 먹은 모습 같았습니다. 여기 저기 높이 올라 선 잔디가 있는가 하면, 무엇이 부끄러운지 아예 얼굴을 땅에 감춘 잔디들도 있었습니다. 그것도 자연스러운 것인가 생각하며 살펴보니 이유가 있었습니다. 옛 시골 아이들 머리에 난 도장밥(두충)처럼, 전혀 잔디가 없는 곳이 한 두 군데 있었습니다. 이것은 잔디의 수줍음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지난 겨울 눈 덮인 집 앞 길이 얼었을 때, 소금이라 부르는 염화 칼슘을 뿌렸던 일이 있었습니다. 아들 녀석이 자기도 돕겠다며, 잔디를 덮은 눈 더미 위에 몇 삽을 부었던 일이 있었는데,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눈을 녹이며 내려간 염화 칼슘이 잔디마저 죽인 모양입니다.
그런가 하면 그 보다는 훨씬 더 넓은 곳의 잔디들이 시원치 않게 나와 있었습니다. 죽은 것은 아니로되 힘이 있는 것은 또한 아니었습니다. 민 머리 속에 송송 솟아난 수십 가닥의 작은 머리카락 같은 밤톨 잔디들이었습니다. 살펴보니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곳은 겨우내 아들 녀석이 볼을 가지고 놀던 자리였습니다. 자기 기분에 좋아 뛰노는 동안 죽이지는 않았으나 성장 발육을 막았던 모양입니다. 봄 기운이 돌면서 하늘을 보고자 머리를 내밀었지만, 마찬가지 봄 맞이 공놀이에 열심이었던 터라 그만 기가 죽었던 것 같습니다. 늦게야 다른 곳에서 놀도록 했지만, 한 번 짓 눌린 잔디가 쉽게 올라오지를 앉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여기저기 쥐 갉아 먹은 모습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인생]도 그러겠다 싶었습니다.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염화 칼슘이 잔디를 죽인 것처럼,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무심코 뿌려댄 수 많은 [부정언어]와 [부정표현] [부정행동]이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인생을 가로 막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당시에는 나는 내 할일 하고, 내 할 말 한다고 했지만, 그리고 그 때에는 수고 했다는 자랑이 될 수 있었지만, 나중에 자기와 주변 인생 길을 가로막는 부메랑이 된다면, 참 억울하겠다 싶습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단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의 중대한 기회였다면 얼마나 억울 할 것인가 생각이 듭니다. –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것처럼, 생각하여, 작은 일 하나, 작은 사람 하나에도, 긍정적으로, 깊이 살펴, 돌보는 삶이 곧 [신앙]의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가 봅니다. 가능한 좋은 일[축복]의 부메랑을 많이 만드십시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