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소설)
그가 나에게로 왔다
이덕화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52|146×210×15mm|232쪽
17,900원|ISBN 979-11-308-2094-1 03810 | 2023.10.23
■ 도서 소개
우리 시대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리얼하게 전달하며
현실 너머의 새로운 가능성을 암시하는 소설
이덕화 작가의 소설집 『그가 나에게로 왔다』가 <푸른사상 소설선 52>로 출간되었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차별받는 여성들의 모습, 나이와 세대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고통에 노출된 현대인들의 고단한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소외된 자들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며 현실 너머의 새로운 세계를 향한 가능성을 꿈꾼다.
■ 작가 소개
이덕화
연세대학교에서 「김남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 경희대학교, 가천대학교 강사, 평택대 교수를 거쳐 현재 평택대 명예교수이다. 여성문학학회, 한국문학연구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문학수첩 기획위원장, 작가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소설집으로 『은밀한 테러』 『블랙 레인』 『하늘 아래 첫 서점』 『흔들리며 피는 꽃』 『아웃사이더』 등이, 학술서로 『박경리와 최명희, 두 여성적 글쓰기』(2000) 『여성문학에 나타난 근대체험과 타자의식』(2005) 『한말숙 작품에 나타난 타자윤리학』(2012) 『‘너’ 속의 ‘나’, ‘나’ 속의 ‘너’, 타자 찾기』(2013) 『아시아적 신체와 혼종적 정체성』(2016) 『일제하 작가들 간의 관계를 통해서 본 문학적 대응』(2021), 공저로 『페미니즘과 소설비평:근대편』(1995) 『페미니즘과 소설비평:현대편』(1997)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2000) 등이 있다.
혼불학술상, 노근리문학상, 자랑스런 이화인상을 받았다.
■ 목차
▪작가의 말
그가 나에게로 왔다
메타버스 홈
달려라 토끼
빨간 원피스
하얀 죽음
지워지지 않는 기억
그녀를 추모하다
나를 놓아줘
▪작품 해설 : 작품 해설 예술이 나에게로 왔다_ 이경재
■ '작가의 말' 중에서
유대인이었던 탓에 기구한 인생을 살다 1952년에 죽은, 카프카가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여인 도라. 카프카와 도라와 함께 지내던 에피소드이다.
카프카가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가 어린 소녀가 슬피 우는 모습을 보았다. 소녀가 아끼던 인형을 잃은 것이다. 카프카가 그 소녀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 말했다.
“네 인형은 말이야, 그냥 여행을 떠난 거란다.”
놀란 소녀가 쳐다보았다.
“나한테 편지를 보내서 그렇게 말했어.”
“정말요? 편지는 어디 있죠?”
“편지는 집에 있단다. 내일 여기 다시 오면 내가 가져다줄게.”
그날 밤 카프카는 소녀에게 갖다줄 인형의 편지를 썼다. 다음 날 소녀에게 편지를 읽어주었다. 3주일 동안 편지를 쓰고 읽어주는 일이 계속되었다. 인형이 사랑에 빠지고, 약혼을 하고 결혼식을 하고 소녀에게서 떠날 수밖에 없게 된 시점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카프카와 도라는 그사이에 사랑이 싹트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 짧은 이야기의 감동은 어린 소녀의 감성을 울린 것이다. 셰헤라자데의 이야기에서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서사의 기본 원리인 호기심과 기다림이었다. 그 에피소드가 진실이냐 아니냐는 상관이 없다. 서사는 독자에게 호기심을 유발하고 기다림과 감동을 주어야 한다. 아주 간단한 원리임에도 그동안 그렇게 작품을 써왔는가는 필자조차 회의가 든다. 자기 독백이나 세상에 대한 자기 토로에 그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자기반성보다는 세상을 탓하고 그것을 원리로 사람을 선동하고 부추기는 험한 세상이다. 그보다 드러나지 않게 스스로 빛을 밝히는 아름다운 주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삶을 통하여 마음속의 촛불을 스스로 불태우며 그 온기로 따뜻한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사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런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작은 빛들이 모여 세상을 환히 밝히는 그때가 오기를 염원해본다.
■ 작품 세계
「나를 놓아줘」와 「하얀 죽음」에서 알 수 있듯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은 나이와 시대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고통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이덕화의 『그가 나에게로 왔다』는 단순히 여성의 고통을 박진감 있게 보여주고, 그것을 통해 가부장제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는 것으로만 시종하는 것은 아니다. 이덕화가 창조해낸 여성들은 「나를 놓아줘」의 아내나 「하얀 죽음」의 K와 같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결국 파괴되어버리기도 하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가부장제 사회에 균열을 내거나 나아가 출구를 만들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략)
이덕화에게 예술(소설)은 일종의 꿈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것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스런 삶을, 그 실제보다 더한 리얼함으로 전달하는 하나의 상상적 실제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것은 현실 너머의 새로운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덕화의 소설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은 주로 예술을 통해서 가능하다. 「달려라 토끼」에서도 교수였던 남편을 폐암으로 잃고 “청소 아줌마”(82쪽)로 살아가는 재인은 디자인과 회화를 섞어서 “작품을 하고 싶”(84쪽)어 한다. 「메타버스 홈」에서도 소령은 전통적인 예술은 아니지만 새로운 창조를 통하여 자신의 현실적 곤란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표제작인 「그가 나에게로 왔다」에서 ‘나’의 여자 친구인 지혜도 대학을 졸업하자 그림을 그리겠다고 선언한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지만, 지혜는 새로운 방식의 예술을 통하여 자신의 미래를 열어나간다. “메타버스 갤러리를 열어 플랫폼을 만드는”(14쪽) 것에 관심이 있던 지혜는, 선배가 마련한 메타버스 갤러리 작품전에 몇 점의 작품을 출품하는 것이다. 나중에는 주부들 중에 그림을 그리다 그만둔 사람들이 모여서 전시회를 여는데, 그것을 이야기와 함께 메타버스 갤러리와 연결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한국이라는 이국 땅에서 고생하는 차말 역시 그림을 그리며, 차말은 그림을 그리면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종수는 지혜의 작업에 차말의 그림이 활용되도록 노력한다. 그 결과 메타버스 갤러리 플랫폼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통해 다양한 배경 속에 배치된 차말의 그림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러한 차말의 그림은 거의 다 팔리기까지 하며, 차말은 “화가”(34쪽)로 다시 태어난다. 예술이야말로 새로운 삶과 세계를 열어내는 비상구였던 것이다. 이덕화의 소설집 『그가 나에게로 왔다』 역시 하나의 예술(꿈)로서 우리 앞에 오롯이 놓여진 귀중한 선물임에 분명하다.
― 이경재(문학평론가, 숭실대학교 교수) 해설 중에서
■ 출판사 리뷰
이덕화 작가는 소설집 『그가 나에게로 왔다』에서 오늘의 시대에 소외된 자들의 삶을 면밀하게 포착하고 있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차별받는 여성들의 모습, 나이와 세대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고통에 노출된 현대인들의 고단한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문학과 예술 등 나름의 방법으로 현실 너머의 새로운 세계를 향한 가능성을 꿈꾼다.
「나를 놓아줘」와 「하얀 죽음」은 세대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가부장적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를 놓아줘」에서는 20년 이상 시부모님 집과 자신의 집을 돌보며, 온갖 고통과 억압에 시달린 아내이자 며느리가 등장한다. 활기차고 꿈 많던 그녀는 결혼 후 유학을 떠난 남편을 따라가면서 천직으로 생각하던 음악 교사직을 그만둔다. 귀국 후에도 복직은 어려워지고 엄격한 시부모를 모셔야 하는 아내는 점차 시들어가지만, 효도와 가부장제에 철저한 남편은 이 상황을 해결할 의지나 방법도 없다. 「하얀 죽음」에서는 권력 있는 남성의 폭력이 한 젊은 여성의 꿈을 어떻게 파멸시키는지 보여준다. 표제작인 「그가 나에게로 왔다」에는 국적도 인종도 다른 두 인물이 현실의 어려움에 부딪치지만 서로 연대하며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파괴되어버리기도 하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가부장제 사회에 균열을 내거나 나아가 출구를 만들어낸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과 세태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통해,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촛불처럼 따스한 온기를 전한다.
■ 작품 속으로
다들 일어서려는 순간, 한 명이 이번 방학에 아르바이트를 그만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들 일어서려다 멈칫 그 친구를 쳐다보았다. 남인도와 스리랑카를 간다는 것이다. 멍한 채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 새꺄 로또 맞았냐? 인생 끝날 것처럼 살지 않기로 했어! 뭐? 뭔 말이야.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도 그 길만이 길인 줄 알았지, 근데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 다 같이 목적도 모르는 골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애. 출세가 목적인 것처럼, 왜 돈을 벌어야 하고 출세를 해야 돼? 그 길 외에는 방법이 없어? 우선 난 나에게 일어나기 시작하는 질문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우선인 것 같애. 무조건 달리지만 말고. 한 학기 꿇더라도 이번 방학에는 여행을 가려고 해. 잠시 멈추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처음부터 생각해보려고.
(「그가 나에게로 왔다」, 20쪽)
벌떡 일어났다. 어떻게 거실에 들어와서 잤는지 모른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 초록색 보리밭이 펼쳐져 있었다. 항상 빌라에서 얌전히 인사하는 501호 할머니와 재인은 서로 마주 앉아 쏴 소리를 내며 소변을 보았다. 그러고는 둘이서 손을 잡고 끝없이 들판을 내달렸다. 지금껏 질러보지 않은 고함소리를 내며 달리고 달렸다. 고함소리에 놀라 잠이 깨었다. 빌라에서 전날 주민들의 눈초리 때문인가. 또다시 소변 보는 꿈을 꾸다니. 그러나 시원한 기분과 함께 마음이 상쾌했다. 얼마 자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일어날 시각이다.
(「달려라 토끼」, 87쪽)
딸이 유학 간 후 아내는 혼자 지낸다. 그러면서 양쪽 집의 세끼 밥을 도맡아 하고 있다. 아내와는 국내 여행이든 해외 여행이든 여행이라곤 전혀 꿈도 꾸지 못한다. 퇴직하면 유럽 여행을 가자고 노래를 부르던 아내였다. 나는 아내에게 자유롭게 친구들과 어울려 여행을 즐기라고 하지만, 아내는 식사 부담 때문에라도 결코 집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나면 점심, 점심 식사를 하고 나면 바로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 내가 어떻게 이곳을 벗어날 수 있겠냐고 항변한다. 도우미 아줌마도 싫다, 외부 음식은 절대 금지, 한 번 이상 똑같은 음식을 먹지 않는 어머니를 두고 내가 도망가거나 당신과 이혼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이라는 것이다.
(「나를 놓아줘」, 190~1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