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의 두번째시간
창세기 3-5장 읽으며 공부했어요.
3장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사건이 주된 내용이었어요.
뱀이 하와에게 질문을 했는데, 그 질문이 좀 이상해요. 하나님이 하와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나무의 열매는 다 먹어도 되지만, 선악을 분별하는 열매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뱀은 “하나님이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말라 하시더냐?” 하고 묻습니다. 비슷한것 같으면서도 아주 다른 질문이었어요. 정확하게 질문되지 않은것엔, 답도 달라진대요.
하와의 대답 역시 하나님이 말씀하신것과 조금 달랐어요. 내 안에 떠오르는 질문들, 이 세상이 묻는 질문들이 내 마음이나 생각, 결정을 다르게 하는건 아닌지.. 교묘하게 속이는 질문은 아닌지 잘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뱀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서 속이고, 이간질해요. 결국 이 이간질이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버리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뱀은 여자에게 못먹는 결핍 하나에 주목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결국 선악과는 먹음직하고 보암직 하지만 내게 없는 ‘결핍’ 이라는게, 요즘 세상이 다른사람을 부러워하게 하는 방법과 같아서 더 놀랐습니다. 이미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풍성한 에덴동산을 만족했다면, 감사했다면 결핍을 느끼지 않았을텐데, 여자는 선악과를 보면 볼수록 욕망하게 되었을것 같아요. 그리고 이 대목이 금방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시간성을 두고 일어났을 수 있다는 말씀이 이해가 되었어요. 더욱 그러했겠다.. 싶었어요.
중요한건 돕는베필인 두 사람의 관계가 서로 돕는 관계가 되지 못했다는 거였어요. 아담은 하와의 바로 옆에 있었지만 곁생명을 도와주지 않고 같이 빠져들었습니다.
현 시대에도 ’선악과‘가 존재한다는 말씀이 새로웠어요.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는 것들.. 이라고 할 수 있을것 같은데, 이것을 사유화 하면 깨진다(관계가)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돈, 땅, 자원..등등 얻는 순간 관계가 깨지게 된다는 것이 참 씁쓸했습니다.
나에겐 어떤것이 선악과 일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는 무엇보다 내가 어떤것에 ’만족‘하지 못하는가? 에 대해 질문 하며 생각했어요. 너무 좋은 관계를 바라다보니 만족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니 만족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첫 시간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신 것에도 ‘만족’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반복되어 나오니 제게 이게 큰 문제인가.. 생각되기도 했어요.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은 동일하게 이행되지 않은 것 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과 성경의 죽음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 알려주셨어요. 창조때엔 없었던 모습_달라진 모습이 곧 ’죽음‘의 개념이라는 것, 결국 관계가 끊어지고, 서로를 탓하고, 뒤틀리는 것이 ‘죽음’이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진짜 죽는것보다 더 슬프게 다가왔어요.
서로를 필요로 여겼던 옛날과 서로를 안 필요 하게 만드는 현 시대의 구조가.. 참 안타깝게 느껴졌는데, 누군가는 지금의 구조를 편안하게 느낄것이라 생각하니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궁금해졌어요.
4장은 가인과 아벨 이야기였어요. 인류의 첫 살인이 일어난 사건이에요. 아벨의 재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재물은 받지 않으신 하나님의 모습에 여러 추측들이 있지만, 이번 수업을 들으며 결국 가인의 마음에는 이미 아벨을 미워하고 죽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힌트가 성경 구석구석에 있다는걸 함꼐 찾아가는 시간이었어요. 그런 마음을 가진 가인이 재물을 드렸을 때, 오히려 받지 않는 것이 가인에게 유익한 것이었는데, 가인은 죄의 문 앞에서 돌이키지 못하고 아벨을 죽였습니다. 우리도 죄의 문 앞에 있을 때, 잘 선택해야한다, 잘 지켜야겠구나.. 생각 들었어요.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라는 그의 말이 1장의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니라”라는 말을 비교해주셨는데, 나와 타인을 동일하게 여기던 것이 나와 타일을 완전히 다른, 관계 없는 자로 여기는 걸로 변화되는 게 곧 ’인류의 죄‘라고 알려주셨어요. 섬뜩했어요.
저도 요즘 관계가 참 어렵다 느끼는데, 제가 마주하고 있는 것이 죄로 인해 깨진 관계속에서 보여지는 모습이라.. 첫 창조의 모습처럼 나도 새롭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동생을 죽인 가인은 벌을 받게 되는데, 그가 힘들다고 하니 하나님은 가인에게 표식을 주시고 죽음을 면케 해주십니다. 지켜주시지요. 저는 이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아서 강사님께 질문했는데, 하나님은 원래 그러신 분이라 알려주셨어요.
그런 가인은 에녹성을 쌓았고, 어마어마한 부와 예술문화와 철기문화를 꽃 피웁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어마어마한 놈들이었다고 하셨어요. 아담과 하와가 이후에 낳은 ‘셋’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후손은 이어졌어요. 가인은 두려웠기에 성을 쌓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었어요. 어쩌면 가인과 같은 사람(뛰어난 사람)을 세상은, 교회는 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렇게 뛰어나야 한다고 교육받으며 살아왔는데, 오히려 그 뛰어남이 다른이들을 소외시키고, 어렵게 만든다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됩니다. 창세기 수업 들으며,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어떻게 이뤄지길 원하셨는지, 인간사를 보며 계속 잘 알아가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