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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리스도라는 카페의 글을 쓰다가
사무엘 시대의 연대기적 난제에 발목이 잡혀 성경의 연대기적 난제의 울돌목을 만나
정처없이 표류하고 있습니다.
무심코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이지만
성경의 광맥을 찾아서 땅을 파는 굴착 작업은 지혜와 명철을 얻는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을 알고 깨닫고 주장하는 확신에 이르기까지
도가니의 연단으로 제련되지 않으면 성경 난제의 울돌목에서 표류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사 시대의 혼동과 그 암흑에서 벗어난 사무엘 시대의 광명은
과거의 역사에 대한 사무엘의 사관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또한 사무엘을 통해서 바라본 성경 저자의 역사 의식은
성경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고 올바른 구속사의 정관을 갖게 할 것입니다.
사사기의 저자는 입다의 말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마을들과 아로엘과 그 마을들과 아르논 강 가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주 한 지 삼백 년이거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고 하였습니다.(삿11:26)
입다가 말한 삼백 년은 대략적인 어림수이지만
가나안 정복 후 입다 때까지의 연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열왕기의 저자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왕상6:1)
사사 입다 이후 솔로몬의 건축 시작까지는
출애굽한 후 광야 생활 사십년을 제외하면 일백사십 년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연대기는
역사적 사건과 정황으로 그 당시의 연대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성경 저자가 알고 있는 정보로 몇 년이라는 단서는
연대기의 고고학적 자료와 같은 소중한 사료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연대를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입다에서 솔로몬의 성전 건축까지
일백사십 년의 연대를 성경 내적인 증거로 추적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입다에서 삼손까지
사사기에 사사의 그 연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입다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육 년이라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 길르앗에 있는 그의 성읍에 장사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그 뒤를 이어 베들레헴의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그가 아들 삼십 명과 딸 삼십 명을 두었더니 그가 딸들을 밖으로 시집 보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밖에서 여자 삼십 명을 데려왔더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칠 년이라
입산이 죽으매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삿12:8-10)
그 뒤를 이어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고 하였습니다.(삿12:11)
그 뒤를 이어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그에게 아들 사십 명과 손자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칠십 마리를 탔더라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팔 년이라고 하였습니다.(삿12:13-14)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삿13:1)
블레셋의 사십 년 압제는
다른 사사들의 경우처럼 사사로 세움받기 전의 상황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고 하였습니다.(삿16:30-31)
사사기는 역사적 정황으로 삼손 시대에 끝이 나는데 연대를 계산하면
입다 6년, 입산 7년, 엘론 10년, 압돈 8년, 블레셋 40년, 삼손 20년으로 도합 91년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엘리 40년, 사무엘 ?년, 사울 40년, 다윗, 40년, 솔로몬 4년을 합하면
사무엘의 연대를 제외하고 124년이 됩니다.
입다에서 삼손까지와 솔로몬 성전 건축까지는 140년이 되어야 하는데
실제 정황은 사무엘의 연대를 제외하고도 215년이 됩니다.
위의 140년은 출애굽한 후 솔로몬 성전 건축할 때까지 480년 가운데서
광야 40년과 가나안 시대 입다까지 300년을 제외한 년수입니다.
이제 중복된 시대를 최대한으로 압축해서
블레셋의 압제 40년을 삼손 시대와 엘리 시대를 포함하면 175년이 됩니다.
여기서 제외된 사무엘의 연대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고 엘리가 98세에 죽고
언약궤가 블레셋에게 빼앗겨 불래셋 진영에서 7개월 정도 머물고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서 20년과
사무엘이 늙어 사울을 왕으로 세우기까지의 기간입니다.
사울은 40세에 왕이 되어 40년간 다스렸으며
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어 40년간 다스렸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 사울에게 도망 다닐 때
엔게디 요새에 있을 때 있을 때 사무엘은 죽었습니다.
사무엘은 엘리가 죽고 사울을 왕으로 세우기 전 사사요, 선지자로 본격적인 활동을 한 연대는
언약궤를 빼앗긴 실로의 성막이 블레셋에게 파괴된 후
언약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있을 20년, 곧 미스바 대부흥의 싯점 그 전후부터일 것입니다.
☞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삼상4:10-11 )
블레셋에게 빼앗긴 언약궤는 아스돗과 가드와 에그론 등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있은 지 일곱 달 동안 있었습니다.
벧세메슬 돌아 온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으로 옮겨졌고
기랏여아림의 아비나답 집에서 20년 동안 머물렀습니다.
☞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삼상7:2 )
언약궤는 에벤에셀에서 빼앗긴 후 블레샛 진영에서 7개월 동안 머물렀고
사무엘이 미스바 전투에서 승리하고 에벤에셀 단을 쌓을 때까지 아비나답의 집에서 20년을 머물렀으며
그 후 사울을 왕으로 세울 때까지와 사울의 40년과 다윗의 헤브론 통치 7년과
예루살렘의 왕궁 건축 후 알파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잃어 버린 언약궤의 세월을 아비나답의 집 20년으로만 알고 있는 수준은
성경의 연대기적 정황을 완전 무시한 성경의 문맹일 것입니다.
잃어 버린 언약궤의 세월은 블레셋 진영 7개월과 아비나답의 집 20년과
사울의 통치 40년과 다윗의 헤브론 통치 7년을 합하면 67년 7개월이며
사무엘의 나머지 활동 연대와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왕궁을 건축한 기간을 포함하면
대략 70여년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 언약궤가 아비나답의 집으로 옯겨졌을 때는 아비나답의 아들 엘리아살이 지켰으며
다윗의 시온성 예루살렘으로 옮겨질 때는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수종들었는데
웃사는 소가 뛰므로 언약궤를 붙들었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죽었습니다.
이로 인해 아비나답의 집을 떠난 언약궤는 곧 바로 예루살렘으로 옮겨지지 못하였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3개월 동안 머물렀다가 예루살렘으로 옯겨졌습니다.
☞ 다윗이 궤를 옮겨 자기가 있는 다윗 성으로 메어들이지 못하고
그 대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대상13:13-14)
그러므로 언약궤가 벧스메스로 돌아와서 아비나답의 집에 머문 20년은
사무엘이 공식적으로 선지자로 활동하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실제 언약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머문 기간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70여년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다윗이 30살에 왕이 되기 전에
사울에게 쫓겨 도망다니며 사울을 피해 블레셋 진영에 있을 때 죽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도망하여 처음 찾아간 곳은 사무엘의 살던 라마나욧이며
사무엘이 죽을 때는 바란광야로 도망하였습니다.
열왕기 저자의 기록대로라면
출애굽의 40, 가나안 정복에서 입다까지 300년, 입다에서 솔로몬 성전 건축까지 140년이 되어야 합니다.
입다 이후, 삼손과 엘리와 사무엘과 사울과 다윗의 연대는
역사적 정황이 분명하여 더 이상 압축할 수 없습니다.
뿐만 가나안 정복에서 입다까지 삼백 년은
사사기의 기록으로 그 연대를 추적 할 수 있습니다.
입다까지의 사사는
옷니엘과 에훗과 삼갈과 드보라와 기드온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팔았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라고 하였습니다.(삿3:8-11)
초대 사사 옷니엘은 갈렙의 동생 그나스의 아우요, 갈렙의 딸 악사와 결혼한 사람으로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서를 연결하는 과도기적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옷니엘의 연대는
연대기적 난제의 난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입성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는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갈렙은 팔십오 세에 가나안 정복 전쟁의 영웅이 되었고
여호수아는 갈렙의 연장자였을 것입니다.
아론과 모세는 일백이십삼 세와 일백이십 세로 같은 해에 죽었고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은 갈렙과 여호수아 다음 연장자일 것입니다.
엘르아살은 출애굽기의 인구 계수에 들어갔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 가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르아살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려면
60세 미만이 되어야 합니다.
다만 예외조항인 민1장47-49절 말씀에 그러나 레위인은 그들의 조상의 지파대로 그 계수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레위 지파만은 계수하지 말며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계수 중에 넣지 말고라고 하였으므로
실제 엘르아살의 나이는 추정하기 어렵습니다.
광야에서도 비느하스는 역동적인 역활을 하였지만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로만 불려졌고 가나안 땅에 들어 와서야
제사장 비느하스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 비느하스는 레위인의 첩이 당한 성폭력 사건으로 인한
이스라엘 연합군과 베냐민의 벧엘 전투를 수행하였습니다.
이 때 베냐민 지파의 남자는 육백명 가량 밖에 남지 않았고
2대 사사가 된 베냐민 지파의 에훗은 전쟁의 상처로 남은 다음 세대일 것입니다.
옷니엘과 비느하스는 같은 세대요,
사사기 서론의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던 다른 세대는 옷니엘 다음 세대일 것입니다.
다음은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열여덟 해 동안 섬기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고 하였습니다.(삿3:12-15)
그 때에 모압 사람 약 만 명을 죽였으니
모두 장사요 모두 용사라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였더라
그 날에 모압이 이스라엘 수하에 굴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삿3:29-30)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고 하였으나 (삿3:31)
삼갈의 연대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팔았으니
그의 군대 장관은 하로셋학고임에 거주하는 시스라요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고 하였습니다.(삿4:1-3)
드보라가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삿5:3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낙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고 하였습니다.(삿6:16)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이 사는 사십 년 동안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삿8:27-28)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서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면서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이십 삼 년 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삿10:1-2)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고 하였습니다.(삿10: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시매
그 해에 그들이 요단 강 저쪽 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땅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쳤으며
열여덟 해 동안 억압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삿10:7-8)
이렇게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8년, 옷니엘 40년,
모압 왕 에글론의 18년, 에훗 80년, 가나안 왕 야빈의 20년,
드보라 40년, 미디안의 7년, 기드온 40년, 아비멜렉 3년, 돌라 23년, 야일 22년,
암몬의 압제 18년으로 도합 319년입니다.
여기 319년 가운데는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과
이스라엘이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압제를 받기 이전까지의 연대는 제외되었습니다.
이러한 연대는 역사적 상황에 대한 증거이므로 자로 잰듯한 시대의 구분이 아니라
서로 겹치고 중복되는 것을 감안하면 입다의 삼백 년이라는 이해는
요단 동편과 가나안 땅의 주인이 이스라엘이라는 그 확실한 정체성을 가졌습니다.
열왕기 기자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는 이해는
출애굽의 증거와 그 신앙의 확실한 정체성에 대한 역사 인식이요, 사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계보, 또한 연대기적 수치 개념이 아니라
역사 인식의 뿌리라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애굽의 레위 계보는 아주 짧고 가나안 땅의 레위 계보는 아주 긴 반면에
애굽의 유다 계보는 레위보다 길고 가나안 땅의 유다 계보는 아주 짧습니다.
광야시대부터 다윗까 계보를 보면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고 하였습니다.(룻4:20-24)
나손은 광야 시대 유다의 족장으로
모세와 함께 출애굽의 역사에 동참하였습니다.
살몬은 여리고의 탐정으로
여리고의 기생 라합과 결혼하였습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자부 룻을 아내로 맞아
기업을 잇는 가문의 대를 이었습니다.
나손은 제사장 엘르아살의 세대요,
살몬은 초대 사사였던 옷니엘과 비느하스의 세대일 것입니다.
보아스는
이스라엘의 2대 사사인 에훗 시대의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벳은 어느 시대인지 알 수 없고
이새는 엘리 시대의 사람일 것입니다.
광야 시대의 유다 지파의 족장이었던 나손과 가나안의 정탐꾼이었던 살몬과
보아스와 오벳과 이새와 다윗 시대까지 480년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마치 애굽의 레위 계보가
레위와 고핫과 아므람과 모세의 4대를 430년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에 레위 지파는 광야 시대 아론은 엘르아살을 낳고
가나안 정복 시대의 엘르아살은 비느하스를 낳았고 옷니엘 시대의 비느하스는 아비수아를 낳고
아비수아는 북기를 낳고 북기는 웃시를 낳고 웃시는 스라히야를 낳고 스라히야는 므라욧을 낳고
므라욧은 아마랴를 낳고 아마랴는 아히둡을 낳고 아히둡은 다윗 시대의 사독을 낳았습니다.
유다의 계보는 여섯 계보 480년을 이해해야 하고
레위 지파는 열셋 계보로 480년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무엘서의 등장 인물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은 엘리요, 그 다음은 엘가나요,
그 다음은 기스요, 그 다음은 이새요, 그 다음은 사무엘일 것입니다.
당시 시대 정황상 사무엘이 이새보다 나이가 더 많지만
다윗의 계보로 보아 광야에서 다윗 시대까지 6대가 480년이 될려면 나이 많아
여덟 자식을 두었다는 이새의 말은 일반적인 나이 많다는 개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라 하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이새는 사울 당시 사람 중에 나이가 많아 늙은 사람으로서 여덟 아들이 있는 중
그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으니 싸움에 나간 세 아들의 이름은
장자 엘리압이요 그 다음은 아비나답이요 셋째는 삼마며
다윗은 막내라 장성한 세 사람은 사울을 따랐고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베들레헴에서 그의 아버지의 양을 쳤다고 하였습니다.(삼상17:12-15)
사울 시대의 제사장 아히야, 곧 아히멜렉은
사무엘과 같이 자랐을 비느하스가 죽을 때에 낳은 이가봇의 의 형제인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이기 때문에 사무엘보다는 나이가 어릴 것입니다.
애굽의 레위 계보 4대 430년을 이해할 수 있다면
가나안의 유다 계보 6대 480년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울과 다윗은 50년의 차이가 나지만
사무엘과 사울의 연대는 수치의 개념보다 성경에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사무엘이 나이 늙어 아들을 사사로 세웠고 그 아들들의 실패를 대신해서 사울을 왕으로 세웠으며
사무엘의 죽음과 사울의 죽음은 3년 정도의 차이가 나며 사울은 80세에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은 3년 정도의 비슷하게 80세의 나이로 죽은 사울과 비교하면
나이 늙어 40세의 사울을 왕으로 세운 그 성경의 정황을 그대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사울의 나이 40에 사무엘의 나이 50이었다면 연대기적으로는 맞지만
성경의 정황상으로는 맞지 않습니다.
사울은 사무엘 아들의 세대요, 다윗은 사울의 아들 세대로 보면 사무엘상의 연대는
98세를 살았던 엘리는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와 사울의 아버지 기스와
다윗의 아버지 이새와 같은 세대의 사람이요,
홉니와 비느하스, 사무엘, 사울, 요엘과 아비야, 아히멜렉, 요나단과 이스보셋 ,
다윗, 아비아달, 므비보세의 순서일 것입니다.
이러한 연대기적 난제라는 난맥의 난망으로 담아낸 모세와 사무엘 그리고 다윗의 이야기는
생명의 율법과 말씀의 본질을 이루는 신앙이요, 구약 성경의 중심 인물입니다.
출애굽의 증거와 그 신앙이 허상으로 느껴지면......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성경의 그 모든 말씀은 연대기적 으로 기술된 고고학적인 자료가 아니며
종교적 교훈을 위한 상황에 따른 스토리텔링에 강조를 두었습니다.
성경을 글자로 읽지 않고 글로 읽으면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언약의 백성으로
그 확실한 교감으로 충만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