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세 아들의 이름을 아십니까? 출생순서를 아시나요?
아이고 그것을 질문이라고 하십니까? 성경좀 보세요. 성경에 나오잖아요.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창 5:32)
그것은 셈과 함과 야벳이지요. 출생순서도 마땅히 셈이 첫째, 함이 둘째, 야벳이 막내가 아닌가요? 그런 게 대답하시겠지요.
네!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유심히 연구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성경 속에 그 대답이 있구요.
창세기 5장 32절도 번역에 따라 다르게 번역합니다.
자 각기 다른 번역들이 어떻게 번역하는지 몇가지를 살펴볼까요?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창 5:32, 개정)
“노아가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을 때의 나이는 오백 세였다.”(창 5:32, 공동)
“노아는 오백 세가 되어서 셈과 함과 야펫을 낳았더라.”(창 5:32, 한글킹)
“그리고 노아는 500세가 지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창 5:32, 현대인)
한글 킹제임스 버전은 오백세가 되어, 공동번역은 “오백 세”, 개역 개정은 “오백 세 된 후에”...
도대체 노아 몇세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을까요?
셈과 함과 야벳은 세쌍둥이입니까?
어떤 번역이 맞다는 것입니까? 다양한 질문들이 나오게 됩니다.
히브리어의 독특한 문법체계를 알아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구절입니다. 히브리어는 맨 처음아들을 낳을 때에 이후의 동생아들도 묶어서 “노아 500세에 아들이더라.” 첫 아들을 낳을 때를 기준으로 표현합니다. 노아 500세 될 때 아들을 낳고, 그 후로 다른 아들들도 낳았다는 표현을 장자의 탄생 연령 때에 한 번에 묶어서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노아 500세에 낳은 아들일까요?
누구를 맨 처음 낳았을까요? 누가 장남일까요?
“[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창 9:22-24)
함을 작은 아들로 표현하는데, 개정개역 성경에는 난하주에 “1)둘째,” 라고 표현되어 있고, 영어성경 NIV성경에는 막내아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When Noah awoke from his wine and found out what his youngest son had done to him,”(Gn 9:24, NIV11)
함이 막내라면 셈과 야벳중에 누가 첫째일까요?
창세기11장 10절에 셈은 100세, 홍수 2년에 아르박삭을 낳습니다. 홍수 2년이 셈이 100세라는 것입니다.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창 11:10)
창세기7장 11절에 홍수 때의 노아의 나이를 알수 있는 기록이 나옵니다. 홍수 때가 노아 600세되던 때라는 것입니다.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창 7:11)
노아600세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 홍수 후 2년은 노아가 602살 때입니다. 셈이 홍수 2년에 아르박삭을 낳았습니다. 그때 노아는 몇 살이었을까요? 홍수 2년에 노아의 나이 602세, 계산이 되시지요?
그렇다면 셈은 노아 몇 살에 태어난 것입니까? 노아 602세에 셈이 100살이니, 602-100=502살, 셈은 노아 502살에 태어난 아들인 것입니다. 어때 재미있지 않나요? 그러면 이제 정리가 되죠. 노아 500세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누구인가? 함도 아니고, 셈도 아니었다. 그러니 마지막 남은 아들 야벳이 장남인 것이죠.
노아가 낳은 순서대로 하면 야벳, 셈, 함이 됩니다.
그래서 창세기10장에서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야벳을 맨 앞에 둡니다.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창 10:1)
창5-11장 성경기록의 문학적 구조가 선명히 나타난다.
“(창 10:2)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
“(창 10:6)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
“(창 10:21)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창세기 10장에 나온 순서도 또 야벳, 셈, 함의 탄생순서를 따르지 않습니다. 야벳은 처음에 기록하는 것이 장자기 때문이라해도 왜 셈이 둘째라면 마지막에 기록할까요?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더욱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야벳을 소개할 때는 ““(창 10:2) 야벳의 아들은..”
함을 소개할 때는 “(창 10:6) 함의 아들은...”이라면서
족보중심으로 언급하다가
셈을 언급할 때는 그 표현방식이 다릅니다.
“(창 10:21)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셈의 자손들을 언급하면서 창세기11장으로 넘어가면서 아르박삭- 셀라- 에벨- 벨렉… “아브람”(창11:26)까지 연결됩니다. 바로 믿음의 조상, 하나님이 선택된 백성의 조상들의 계보를 연결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셈의 족보를 마지막으로 뺀 것이지요.
성경은 많은 경우, 기록순서가 출생순서가 아니라 메시야족보, 영적으로 중요성 순위로 기록하는 것이구나하는 중대한 정보를 발견하게 됩니다. 셈을 제일 먼저 기록한 것은 셈이 장자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메시야의 계보를 이어갈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기에 제일 먼저 기록한 것이지요.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당신의 언약 안에 있는 백성을 주목하여 보십니다. 창세기의 족보를 유심히 보면 창세기 4:16-24에서 가인의 족보가 나옵니다. 창세기5장에서는 아담 다음에 가인은 나오지 않고 셋으로 연결됩니다. 왜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의 계보를 이어감을 알려줍니다. 언약을 떠난 백성은 없는 자요, 잃어버린 자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를 향하여 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눅 15:24)
주님을 떠난 자는 잃은 자이며, 죽은 자입니다. 주님이 내안에 계심이 생명이듯, 우리도 주님안에 있음이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창 10:21)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창세기10:21을 보면 “셈은...야벳의 형이라”는 표현을 보고, 어! 이것보세요. 셈이 장자가 아닌가요? 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형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 “아흐 'âch로 ‘형제’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번역들이 제대로 안되어 좀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 어떤 분은 성경을 보다가 이런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노아 방주에 몇 명이 탔나요?
이다.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창 11:10)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창 10:22)
창세기11장10절에는 셈이 홍수 2년에 아르박삭을 낳았는데,
창세기10장 22절에는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이라고 나오잖아요. 그러면 아르박삭보다 먼저 엘람과 앗수르가 있으니 노아방주에 이 2아들이 포함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노아방주에 노아와 그 아내, 세아들과 세자부,8명이 들어간 것이 아닌가요? 성경에도 그렇게 얘기하는데 도대체 어덯게 된 것인가요?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창 7:13)
자 그 문제도 성경에 기록된 자녀들의 순서가 낳은 순서대로만 기록되어진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이해해야 해결됩니다. 마치 셈, 함, 야벳 노아의 세 아들의 순서처럼요.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기록합니다.
노아의 식구들이 방주안에서 자녀를 낳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창 10:1)
그런고로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도 출생순서가 아님을 기억하면 해결될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주목하여 보십니다.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시 32:8)
주님의 눈앞에서 늘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 11:12)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시 34:15)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신 32:10)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시 17:8)
https://youtu.be/kwFbCffMwvI
https://youtu.be/qt9Ryxkn3uI
https://youtu.be/WRNaUhedX1w?list=PLExlxED8KcesaZDD13OvgKkv7_37jer7r
https://youtu.be/V76yANv1Is0?list=PLkDm9k3-yeTgIp856CqVZ89zoT2ruCM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