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들이 해마다 4월이 되면 모두 들에 나가서 쑥을 캔다.
올해는 양산 통도사 서운암에 가서 봄맞이도 하고 쑥도 캐자고 의견을 모아서 노포동 시외버스 터미널에 모여서 양산 버스를 타고 내려서 서운암으로 갔다. 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가 있다. 무릎이 아파서 다리를 절면서도 그저 아이들처럼 재잘거린다. 우리끼리 만나면 나이도 잊어버리고 그저 웃고 떠들기만 한다.
서운암에서는 해마다 4월 하순이면 들꽃축제를 하고 싸리 울타리마다 시를 걸어놓고 시화전을 한다. 몇 해 전에 동인이 수상을 하여서 이곳에 와보았다. 그녀는 민들레라는 시로 우수상을 받았다. 여리고 순한 그녀의 내면에 있는 노래들이 시로 표현되어서 깊은 울림을 주고 감동을 주었다.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지고 난 후, 홍매화의 요염한 자태와 라일락의 아름다운 여린 꽃잎은 쳐다만 보아도 눈물겨울 만큼 가슴이 싸해 온다. 각양각색 꽃들의 잔치는 보는 이들이 즐겁고 소리치며 내려가는 개울물 소리도 지친 영혼들을 맑게 치유해준다.
시인들의 노랫소리는 아픔과 사랑스러움 처연함이 숨어 있어서 그들과 같이 가슴앓이도 하고 같이 울기도 한다. 문학 강연도 하고 넓은 마당에서는 덩더쿵 한바탕 춤사위로 놀아보니 이런 날 이곳에 오면 온갖 것이 신비롭고 절로 신이 난다. 온 산과 숲이 같이 어우러져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곳에 오니 그때 생각이 나서 마당을 한 바퀴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내가 앉았던 툇마루에도 걸터앉아 본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으로 가서 파릇파릇한 쑥을 캐기 시작했다. 여리고 향긋한 쑥은 얼마 가지 않아서 제법 비닐봉지에 수북하게 올라왔다. 남편들이 더 즐거워한다. 후미진 숲에서는 제비꽃과 민들레들이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며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다. 군데군데 앙증맞은 할미꽃도 수줍게 보라색 솜털을 이고 고개 숙이고 있다. 이팝나무의 하얀 꽃들은 온 세상을 품어 안을 듯이 풍요롭다. 5월 말쯤 되면 붉은 작약들이 이곳 언덕을 눈부시게 수놓을 것이다.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앉아있는 항아리가 숨겨놓은 보물들을 담고 있는지 햇빛에 반짝거리고 있다.
모두가 가져온 배낭 속에 온갖 먹을거리들이 가득하다. 쑥떡, 밀감, 식혜, 양갱 등을 알뜰하게 챙겨와서 평상 위에 펼쳐놓으니 오랜만에 소풍 나온 아이처럼 마냥 즐겁기만 하다. 같이 온 남편들도 이것저것 먹으면서 아이들처럼 연방 웃는다.
사십 년간 이웃하여 살면서 아이들 자라는 것 보며 학교 보내고 사회생활 하면서 혼인하여 이제는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그중에 친구 둘이 남편을 먼저 보내었지만 우리는 스스럼 없이 서로 만나서 허물없이 지내면서 서로 기쁨과 아픔을 나누기도 한다. 쑥 캔 것을 다듬어서 가방에 챙겨 넣고 옹달샘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돌팍 위에 앉아서 이야기하다가 남편이 가져온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합창단에 있었다면서 그때 즐겨 불었던 하모니카를 지금도 곧잘 분다. 나는 남편의 하모니카 부는 모습이 참 좋다. 가끔 뒷산에 가서 불면 청아한 그 소리가 너무 좋아서 같이 장단을 맞추며 노래한다.
서운암 골짜기에 물소리와 같이 하모니카와 노랫소리가 어우러져서 묘한 울림을 준다. 언제 함께 목소리를 가다듬어 노래를 불렀던가. 고향의 봄을 시작으로 바위 고개와 클레멘타인까지, 우리는 소녀 시절로 돌아가서 마냥 철부지 아이들 같다. 지나가는 여인들이 같이 모여서 노래한다. 우리는 어느새 주인공이 되어서 서로에게 손을 흔들며 노래한다.
우리가 내년에도 이곳에 와서 쑥을 캐면서 봄을 맞이해보자. 사월은 아름다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