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활 접고 진천 촌동네로 들어온 지 7년…
간판은 '이원아트빌리지'
미술관에 도예공방, 공연장 짓고 … 경계하던 마을사람들도 "진천의 명물"
[조선일보 김윤덕, 이상선 기자]
7년 전, 충북 진천군 이월면 미잠리에 ‘곱슬머리 건축가’ 부부가 내려왔을 때 마을 사람들 사이에 말이 많았다. IMF 때 쫄딱
망했다더라, 말년을 지낼 별장을 지으러 왔다더라, 자선사업가라더라…. 분명한 건 농지 1만평을 통째로 사들인 이들을 마을 사람들이 고깝게
보았다는 사실이다.
이월 토박이 김순철(65)씨는 이렇게 회상했다. “귀농입네, 웰빙입네 하며 내려오는 서울 사람들이 한둘이라 말이지유. 대개는 며칠 못 살고
짐을 싸는 판국이니 첨엔 신경도 안 썼어유. 공장이나 안 지으면 다행이겄다 했지유.”
다음은 김순철씨가 들려주는 ‘이상한 건축가’ 원대연(62)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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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이지유. 곱슬머리 부부가 내려왔데유. 살러 왔는지 뭘 하려구 왔는지, 모를 일이었지유. 근디 초장부터 그 양반 허는 일이 참
이상해유. 공장은커녕 마누라, 아들 서이(셋)가 살 집 한 칸 달랑 짓더니 소나무 200여남은 그루에 수백 종의 야생화를 허구한 날 심어유.
한참 있다가 또 땅을 파기에 이번엔 진짜 공장인갑다 했드니, 웬 미술관을 짓는다 하더라구유.
보시믄 아시겄지만, 그 살림집이란 것도 희한혀유. 뭔 초가집마냥 둥그막한 지붕에 햇볕이랑 비바람을 막아야 한다고 처마를 내렸다가는 또
대청을 만들어유. 밀짚모자 걸어두는 곳, 연장 넣어두는 벽장, 새참 먹을 수 있는 평상까지 만들어놨는디 완전 신식 농가라.
또 있어유. 대문에 들어서면 손발을 씻고 땀을 닦을 수 있게 수도꼭지가 설치돼 있는디, 아 글씨, 물받이란 것이 깨진 장독이유. 그래 내
물었슈. 돈 많은 서울 사람이 연못 파고 에어컨 빵빵 나오는 별장을 만들 것이지, 웬 농사꾼 집을 흉내내느냐구유. 이 양반 빙그레 웃기만
하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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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지나니 그 묘상한 건축가에 대한 얘기들이
여서저서 들려와유. 롯데호텔, 또 롯데월드, 또 현대백화점 같은 서울의 삐까번쩍한 빌딩들을 그이가 만들었대유. 그래서 돈도 엄청 벌었는디, 그
금싸라기 땅을 떠나 진천까지 흘러들어온 진짜 사연은 누구도 모릅디다.
그러다 놀라운 일이 생긴거유. 이월면 성당을 새로 짓는디 그 양반이 설계를 맡았다는 거지유. 그것도 공짜루유. 롯데호텔 지었으면 아, 일류
중에 일류 아니겄슈. 근디 설계를 부탁한 주임신부헌티 ‘설계비는 안 받겠다, 대신 어떤 간섭도 받지 않겠다’ 하고 못을 꽝 박았대유.
그 소문이 삽시간에 이월 전역으로 퍼졌는디, 아, 그때부텀 곱슬머리 양반이 달라 보이는 거라. 도시 사람들은 어쨌거나 돈 밝히는 족속들
아니유? 근디 그게 아녀. 여편네들은 파마한 거모냥 굽슬굽슬한 머리가 미국 영화배우를 닮았다고 난리지유, 암튼 평판이 몰라보게 좋아졌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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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 가며 내가 눈여겨본 게 또 있슈. 이 양반이 건축에는 도사일낀데, 뭔 집을 세월아 내월아 하면서 져유. 살림집 3년, 성당 2년.
미술관은 어디 보자, 하나, 둘, 서이, 너이, 그려, 6년이나 걸렸슈. 그 양반 농촌에서만큼은 자기가 초보라서 그렇대유. 짓다가 허물고, 다시
벽을 세웠다 내리고…. 그래도 미술관에 이어서 공연장, 도예공방, 도서관, 찻집까지 하나하나 들어서는데 참말 진풍경이데유. ‘저게 뭐랴? 뭔
집이 저렇게 올망졸망 생겨먹었디야?’ 하면서도 논밭 오가는 길에 참새 방앗간 들르듯 마을 사람들이 기웃대기 시작하는디 아주 재미났지유.
여편네들은 또 어떻구유. ‘이거 실례가 아닌가?’ 하면서도 반쯤 지어진 미술관 앞마당에 고추를 널고, 잔디밭에 퍼질러 앉아 푸성귀를
다듬으면서 해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어대는디 내가 다 미안하드라구유.
미술관 문 열었을 때유? 난리났지유. 이월이 뭐예유. 음성, 청주, 대전, 대구에서꺼정 귀경온다고 법석이었어유. 내 집도 아닌디 공연시리
내가 더 뿌듯하더래니까유. 미술관이란 것도 별거 아니데유. 널찍한 공회당에 그림만 뎅그러니 걸려 있는디, 처음엔 영 불편하고 어색하더니만 볼수록
맘에 들어유. 어떤 건 사진이랑 영판으로 똑같이 그려놨드래께유. 나는 그러니까 권영우라는 화가의 그 뭣이냐, 한지에다가 그린 그림, 그게 첨부터
마음에 착 와닿데유. 은은한 것이. 제목이유? 글씨유. 아이구 제목은 알아서 뭐해유. 땅 파먹는 농사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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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마을 공사가 1차로 마무리되고 나서 한날은 내가 큰 맴 먹고 건축가 선상님께 물었어유. ‘집도, 미술관도 왜 이렇게 단층으로만
짓는데유? 땅도 넓고 하늘도 높은디 대리석도 바르고 3층 4층으로 올려 좀 뽄대나게 짓지’, 이렇게유. 근디 이제나 저제나 그 양반 대답은 아주
싱거워요. ‘그래야 부수기도 쉽고, 쓰레기도 덜 나옵니다.’ 또 이래유. ‘나는 이 집도 언젠가 나무들에게 덮여서 안 보이길 바랍니다.’ 사는
사람 눈에 허술해 뵈고 만만해 뵈고, 뭣이냐 오래 입은 옷처럼 편안한 집이 좋은 집이라나유?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유.
그래도 올 초엔 그 양반헌티 경사가 있었슈. ‘한국건축가협회상’이라나? 이 집 때문에 뭐 그런 유명한 상을 받았다는 거예유. 그로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서울서 대학생들이 내려오는디, 곱슬머리 양반 집 자랑한다고 하는 말이 또 아리송해유. ‘도시에서 배운 건축 지식이 농촌에서는
그야말로 경솔로 드러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해와 바람과 물길의 조건을 거스르지 않는 생명의 집을 짓는 것은 한두 해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되지
않는다….’
마지막엔 이런 말을 합디다. ‘첫해 내려왔을 때와는 삶의 무게감이 천지차이다, 자연이 주는 고독과 고통까지도 감내할 수 있어야만 즐길 수
있는 생활이다’라구유.
자연이 주는 고독? 그게 뭔 말이래유? 뭔가 남자답고
멋진 대답인 것은 확실헌디. 어쨌거나 건축가 양반 덕분에 이름없는 촌동네였던 우리 마을이 전국으로 소문이 났으니 그게 젤로 벅차지유. 기똥차게
자랑스럽구유.
◆ 이원아트빌리지 꾸민 원대연씨는
롯데그룹 고층빌딩들을 줄줄이 설계해 ‘부자 건축가’로 소문났던 원대연씨가 서울생활을 접은 건 IMF 때문도, 별장 때문도, 웰빙 때문도
아니었다. “건축주의 주문이 아닌, 오로지 나의 의지대로 집을 짓고 싶었어요. 모든 걸 뿌리부터 새로 시작한다고 다짐했지요. 자연 속에
살아움직이는 집을 지을 수만 있다면 그간 모은 재산을 다 날려도 좋다도 생각했습니다.”
황해도 해주 사람인 원씨는 홍익대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대표 건축잡지 중 하나인 ‘플러스’를 창간한 주인공. 현재 홍익대 겸임교수인 그는
일상과 건축문화의 관계를 설명한 ‘여행 넘어서기 1·2·3’을 펴내기도 했다.
사진작가인 아내 이숙경(59)씨 호를 따서 지은 살림집 ‘상촌재’는 소박한 멋이 배어나는 농가다. 방은 주방을 포함해 모두 세 칸인데,
복도의 끝에 빈 방을 하나 더 만들어 비를 피해 빨래를 널고 고추 등속을 말리는 여유 공간으로 삼았다.
‘이월성당’은 인도 사암으로 통일한 마감재가 평범한 시골마을의 풍광과 친근하게 어우러지는 건축이다. 내부 공간도 인상적이다. 측면의 천창을
통해 떨어지는 빛, 좁은 공간에 아무런 장식 없이 검박하게 꾸민 제대. 신성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그의 의지가 담겨 있다.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은 ‘이원아트빌리지’는 적삼목 너와를 낮게 이은 지붕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아름다운 ‘건축마을’이다. 자연친화적
건축을 실험해보겠다는 의지로 재료 또한 공사 현장에 버려진 벽돌이나 블록, 폐자재들을 재활용했다. 대신 기초공사 때부터 나무와 야생화를 함께
심었다. 마을은 지중해의 어느 시골마을, 아니 남도의 농촌마을을 연상케 한다. ‘골목길’ 때문이다. 경사진 지형을 그대로 살려 계단이 많은 데다
매스를 잘게 나눠 샛길이 많은 덕에 담과 담 사이를 걷고 오르내리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 이원아트빌리지는
농촌 속 작은 건축마을인 이원아트빌리지는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이면 닿는 당일 나들이코스로도 제격이다. 나지막한 건축물을 구경하는 재미,
미로처럼 난 샛길을 걷는 즐거움은 크지만,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잘 조경된 200여그루의 소나무와 230여종의 야생화를 감상하며
산책하는 맛도 빼놓을 수 없다.
상촌미술관에는 원대연씨 부부가 소장하고 있는 국내 유명 화가들의 작품 20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높은 천장에 자연 채광을 끌어들인 공간이
그 자체로 구경거리다.
며칠 전 문을 연 ‘찻집’도 들러볼 만하다. 의자와 온돌마루를 병행한 좌석도 재미있고, 통유리창 너머로 한적한 시골풍경을 즐길 수 있어
연인들이 좋아하겠다. 큐레이터 최윤정씨가 직접 내려주는 커피 맛도 일품. 상촌재 안주인이 직접 담갔다는 매실주스도 시원하다.
한끼 밥이 될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은 아직 없다. 대신 빌리지 식구들이 이용하는 식당에서 백반을 5000원에 사 먹을 수 있다. 무공해로
재배한 야채들이라 그야말로 웰빙 식단이다.
이원아트빌리지를 구경하려면 주말을 이용하는 게 좋다. 금·토·일이 이 마을의 공식적인 개관일. 나무와 들꽃, 건축물을 보호하기 위해
올해부터는 입장료(어른 5000원, 어린이 3000원)를 받는다. 평일에 방문하고 싶다면 미리 예약하면 된다. 월요일은 휴관.
(043)536-7985~6 가는 길:중부고속도로 음성IC―17번 국도 광혜원 방면으로 우회전―17번 국도 진천 방면으로 좌회전―대막삼거리에서
덕산 방면으로 좌회전―두 번째 다리는 건너지 않고 직진하면 왼쪽에 이원아트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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