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둘째 주 그룹큐티나눔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경영
이사야 14:24-15:9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찬송 419장, 구 478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 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고 눈앞의 막막한 현실이 우리를 압도할 때, 종종 세속적인 방법으로 타협하고 싶은 유혹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온 열방을 향한 원대한 ‘경영’(계획)을 쉬지 않고 이루어 가신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꺾으시고 기댈 곳 없는 연약한 백성을 끝까지 보호하십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굳게 신뢰하며 그 품에 거하는 사람은 어떠한 현실에서도 흔들림 없이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앗수르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계획입니다(14:24-27).
1) 여호와의 ‘경영’(계획)에는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24, 27절)
하나님의 ‘경영’(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누구도 폐하거나 돌이킬 수 없다.
24-27절은 교만한 앗수르 제국에 대한 심판 예언이다. 이는 이사야 10:5-11을 생각나게 한다. 원래 앗수르는 하나님의 심판 도구(몽둥이, 막대기)다(10:5). 하나님은 앗수르를 ‘징계의 회초리’로 사용하셔서 경건하지 않은 나라를 심판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 도구인 앗수르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교만하게 허다한 나라를 파괴했다(10:7). 그래서 하나님께서 앗수르에 대한 심판을 계획하신 것이다. 이사야 14:24, 27에서, 하나님은 앗수르를 향한 심판 계획을 반드시 성취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엄위한 심판을 막을 수 없다. 하나님의 심판은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실현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 개입만이 앗수르의 교만을 깨뜨릴 수 있다.
2) 앗수르를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경영은 무엇입니까?(25절)
앗수르를 ‘하나님의 땅’에서 파하며, ‘하나님의 산’에서 짓밟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철저히 분쇄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앗수르를 철저히 심판하시는 이유는 단지 억압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앗수르의 손에서 구출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이렇게 강력하게 파하시는 이유는 앗수르가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며 스스로 왕 노릇하려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앗수르의 교만을 깨뜨리기 위해 심판의 칼을 드신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과 위엄에 도전하는 모든 열방과 제국을 의롭게 심판하신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그의 뜻과 상관없이 세상을 억압하고 통치하는 모든 악한 권력을 반드시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 계획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나눔 1 하나님의 경영은 역사의 한복판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영원할 것만 같은 세상 권세를 보며 낙심하거나 부러워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지금 내가 끝까지 붙들고 신뢰해야 할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인지 나눠 봅시다.
2. 블레셋과 모압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14:28-15:9).
1) 자신을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며 기뻐하는 블레셋에게 어떤 경고가 임합니까?(29-31절)
비록 막대기가 부러졌을지라도 더 무서운 독사가 나올 것이며, 결국 블레셋은 기근으로 죽고 대적의 공격에 살육당할 것이다.
시리아-에브라임 연합군이 남유다에게 반앗수르 동맹을 강요하지만, 유다가 이를 거절하자 예루살렘을 공격한다. 이에 아하스왕은 앗수르에 도움을 요청한다. 그래서 앗수르는 군사를 일으켜 시리아(아람)를 멸망시키고, 북이스라엘(에브라임) 영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게 바로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이다(주전 735-732년). 이 전쟁 이후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 3세는 주전 727년에 사망하고, 남유다의 아하스는 주전 715년에 사망한다. 29절의 ‘막대기’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남유다의 아하스 왕, 둘째,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 3세다. 막대기의 정체가 누구든 그 막대기가 꺾였다고 블레셋이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뱀의 뿌리에서 독사가 나오듯이 강한 군주가 사라지면 그 뒤에 더 무서운 왕이 나타나서 블레셋을 멸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2) 반앗수르 동맹을 요구하는 블레셋 사신들에게 예언자는 무엇이라고 답합니까?(32절)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유다 왕 아하스가 죽자, 블레셋은 은근히 유다가 반앗수르 전선에 동참하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사신을 보내 반앗수르 동맹에 동참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선지자는 유다가 블레셋의 이 요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유다의 진정한 보호자이며 구원자이시기 때문이다. 시온(유다)의 운명은 동맹 여부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에 유다는 외세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3) 모압의 대표적인 성소가 있는 ‘디몬’(디본)의 물에는 무엇이 가득하게 됩니까?(15:9)
피가 가득할 것이다.
디몬은 ‘디본’을 가리킨다. 디본은 모압의 대표적인 성전이 있는 곳이다. 즉 디본은 모압의 중심지이며, 모압 신의 돌봄을 받는 축복받은 성읍이다. 마치 유다가 예루살렘을 성지로 생각하듯이 모압 사람들은 디본을 거룩한 도시로 생각했다. 그리고 디본 성읍은 화려하고 풍요로워서 무너질 것 같지 않았다. 모압 백성은 이곳에 피하면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삶의 안정을 디본에서 찾으려 했다. 그러나 그 디본이 피로 가득할 거라고 주님이 말씀하신다. 마치 출애굽 당시 나일강이 붉은 피로 물들 듯이 디본이 그렇게 피로 물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인간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성읍도 죽음의 도시가 될 것이다.
나눔 2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확실한 수단에 기대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기보다 먼저 찾아가려 했던 ‘나만의 동맹군’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나눔 3 세상의 요새인 ‘디몬’은 무너져도 하나님이 세우신 ‘시온’(교회)은 곤고한 자들의 영원한 피난처가 됩니다. 무너져 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 공동체가 서로에게 따뜻한 피난처가 되어 주었던 은혜의 기억을 서로 나눠 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인간적인 계산보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주님의 약속을 먼저 붙들게 하소서.
공동체 _ 우리 교회가 고난당하는 이웃들이 찾아와 쉴 수 있는 피난처가 되게 하소서.
<출처 : http://www.su.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