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용순 | 날짜 : 12-04-01 17:33 조회 : 1656 |
| | | 막갈레 어둠 속에 주위가 들어오고 머리가 깨어 온다. 시계는 02:00의 녹색 빛을 보내고 있는데, 내 몸의 생체 프로그램은 아침 8시로 인식하며,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두꺼운 커턴 틈으로 여명이 비집고 들어 올 때까지 허리를 말았다, 펴다를 반복하며 몇 시간을 보냈다 관광버스 내부만큼 한 국내선 여객기는 한쪽 프로펠라부터 먼저 돌리기 시작한다. 옆 좌석 키 큰 흑인 아가씨의 검고 긴 손가락과 노란 금반지는 보색을 이루어 더욱 눈에 뜨인다. 그녀에게서 전해오는 진한 향이 불쾌하지는 않다. 이곳의 여인들은 중,남부아프리카와는 다르다. 가까운 홍해 건너 이슬람 쪽과 혼혈 된 듯, 아름다웠다는 시바여왕의 후예답게 커피 색 피부에 크고 예쁜 눈을 가졌다. 어디에서나, 유심히 보면 검은 피부 속에 감추어진 미인들이 이외로 많다. 그러나 이곳 국민들의 약 10%(?)가 에이즈에 걸려 있다고 하여 무섭고 안타까웠다. 창 밖, 저 아래에는 무한히 펼쳐진 흙빛 원시 대지(大地)가 있다. 갈래갈래 찢어진, 대지의 짙게 그늘진 계곡과 펑퍼짐한 등성이의 경작지, 헤엄치는 뱀같이 가늘고 길게 굽어 흰빛을 반사시키는 강(江)도 보였다. 저 아래 어디엔가는 TV에서 본 기이한 풍습의 원시 부족들도 살고 있을 것이다. 뿌려놓은 좁쌀처럼 군데군데 펴져 있는 취락(聚落)지들, 가끔씩 아래의 함석지붕에서 눈부신 빛을 쏘아 올린다. 비행기는 날개깃을 세우며 사뿐히 내려앉아 시골 버스처럼 승객을 바꾼 뒤 다시 오른다. 막갈레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의, 완공 단계인 공장으로 안내되었다. 최신 자동 설비에 엄청난 투자다. 고용증대를 목적한다면, 자동설비는 많은 투자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대량 고용을 창출하지 못한다. 가난한 나라에서 효율적인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산업화를 위한 막대한 정부자금이 특정인들에게만 집중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국민소득이 하루 1달라도 못되는 이곳에서, 우리가 만난 사람들 모두 도요다 SUV자가용을 가졌다. 아무리 후진국이라고 해도 특정인들은 잘 사는, 빈부의 격차는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의 모순인 모양이다. 작은 도시 ‘막갈레’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호텔 정원에 앉아 기후의 쾌적함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백 여 년 전까지 왕(王)이 살았으나 지금은 박물관이 된 옛 왕궁 앞으로 아름드리 야자수가 도로 양편으로 열 지어 도열하였다. 작은 체구의 당나귀가 등짐을 가득지고 무겁게 띄는 발걸음이 애처로워 보인다. 털이 짧고 등에 혹이 하나인 낙타가 긴 열을 지으며 가끔 씩 지나간다. 낙타들이 일 열로만 가는 이유를 알지 못하였는데, 앞 놈의 꼬리와 뒤 놈의 턱이 좁은 간격으로 연결 되어있었다. 지구상 어느 곳이든 인간은 동물을 혹사하고 결국에는 그 고기까지 먹어 치운다. 불교의 윤회(輪回)는 인간을 사후에 심판하는 하늘의 법인가?
여기에서 이 나라 왕국의 발원지인, 고도(古都) ‘악슘’까지 지프차로 출발하였다. 흙 빛 대륙은 온통 돌 마당이다. 군락을 이루는 아름드리 마디 선인장, 용설란, 잎 양쪽 가장자리에 흰줄이 있는 용설란, 알로에, 흔히 화분에서 보아왔던 선인장 류가 보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큰 몸집들이 서로 엉켜 마른 대지에 박혀있다. 마을을 지나면서 인파가 도로를 메운다. 부근 광장에 장(場)이 선 것이다. 여기도 5일 장이 선다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 삶의 한부분에 열중들이다. 물건이래야 간단한 생필품, 플라스틱 제품, 무슨 곡물들, 사려온 사람인지? 팔러 온 사람인지? 모두들 돈이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지만, 시골 장은 평화롭고 여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카메라를 든 동양인이 물건 보다 더욱 흥미롭다. 꼬질꼬질한 아이들이 우르르 모여들어 발자국마다 따라 붙는다. 여기서는 동양인은 전부 차이니스다. 2세대 화상(華商)들이 인해전술로 이 척박한 오지까지 뿌리를 내리려 하고 있었다. 카메라에 새까만 얼굴들을 연신 담았다. 그들은 자신이 찍히는 것을 부끄럽게 느끼지 않고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그들을 여행의 증거로 담아 가려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는 크고 작은 돌밭 사이의 자갈길을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달린다. 잠시 휴식을 위하여 작은 마을의 카페에 들었다. 하얀 차도르를 쓴 두 명의 까만 아가씨, 한 아가씨는 수줍어 색다른 객이 건네는 말에 대답도 못한다. 커피 열매를 그을음투성이 주전자에 넣고 화로 불에 끓인다. 먹물 같은 커피에 프림도, 설탕도 없다. 마시면 며칠씩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아 사양하였다. 이 나라의 남쪽 “카페”라는 지방이 아라비카 커피의 원산지이며 지금도 곳곳에서 야생 커피를 볼 수 있다한다. 커피는 이 나라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세계 10위 생산국이다. 주로 남부 고원지대에서 생산되며, 어느 날 야생 열매를 먹고 흥분상태에 빠진 염소를 관찰하면서, 커피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한다. 다시 지프차는 마을 뒤를 돌아 고개 길로 오른다. 까마득하게 마을을 내려다보며 조마조마하여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나 양장(羊腸) 같은 절벽 길은 끝날 줄을 모른다. 절벽 위 길가, 공터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작은북을 두드리며 긴 막대기를 들고 춤을 추고 있다. 부근에는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데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모였을까? 결혼식이라고 하였다. 민족 복장으로 한껏 성장하고 비단 양산을 쓴 신랑 신부 주위를 돌며 춤춘다. 음식을 먹은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외 딴 공터에서 결혼 축하연, 그들의 풍습이 생경스럽다. 차에서 내린 우리에게 시선들이 모인다. 그들의 놀음에 방해가 될 것 같아 조급히 샷터를 누르고 떠난다.
길가 언덕 밑에 코를 박고 있는 녹 슨 장갑차, 군용트럭의 사체가 너부러져 있다. 오랜 내전의 잔재로 그들이 갈라지며 새로 그은 국경이 가깝다고 한다. 홍해에 접한 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의 자치연방에서 완전 병합되자 병합에 반대한 에리트레아 반군들에 의해 내전이 일어났다. 오랜 싸움으로 수많은 목숨을 희생 시킨 후, 에리트레아가 독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경을 접하고 있는 소말리아와의 국경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순박하고 평화롭게만 보이는 그들이 무엇 때문에 서로 싸우고 결국 서로 갈라지게 되었을까. 몇몇 지도자들의 욕심 때문은 아니었을까? 만나면 싸우는 수컷들처럼 인간도 결국 동물 문(們)을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 같다. 종교와 교육은 싸움의 당위성을 합리화하는데 도움을 줄뿐, 평화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길가에 흔하게 보이는 돔 모양의 건물이 교회이고 전 인구가 기독교와 이슬람 교인이다. 그러나 종교도 원초적 싸움 본능을 억제하지는 못하였다. 자동차는 거대한 원시 협곡의 허리부분을 따라 나있는 돌투성이 도로를 따라 숨 가쁘게 핸들을 좌로 우로 꺾는다. 바퀴 네 개가 전부 땅위에 구르고 있는지?, 하나쯤은 허공에 구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조수 대 뒷좌석에 앉은 나는 아찔하여, 차창 밖 절벽 쪽을 볼 수가 없었다. 이런 길이 피를 말리며 지루하게 계속 된다. 협곡 위, 산의 정상부분 평지에 도무지 물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다. 협곡 아래에는 물은 있지만 덥고 해충들이 많아 사람이 살 수 없다고 한다. 이곳에 지천인 돌은 집 짓는 재료로 이용되어 대부분의 가옥들이 사각 혹은 원형으로, 돌로 정교하게 쌓여져 있다. 지붕은 마른풀이나 함석으로 만들어져 상투과자 모양을 하고 있었다. 컴컴한 내부는 취사와 휴식 공간이 하나인 구조이다. 마른 대지에 한 그루씩의 나무와 선인장이 띄엄띄엄 서있는 풍경, 나무 그늘에는 사자가 낮잠이라도 자고 있을 것 같다. 좋은 기후에도 불구하고 먹을 수 있는 푸른 작물과 물은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는다. 마르고 돌투성이 땅에는 이곳의 주식인 ‘인젤라’를 만드는 조보다 알이 작은 ‘테푸’라는 곡식을 수확한 그루터기만 남아있다. 그것도 우기 때만 경작이 가능하며 건기인 지금은 풀 한포기 구경 할 수도 없다. 하느님은 이곳에 살기 좋은 기후를 주셨지만 경작할 수 있는 기름진 땅을 주지는 않았다. 척박한 이 땅의 주인들이 가난함은 필연인가보다. 한적한 도로에 삼삼오오 어디론가 가고 있는 행인들이 자주 눈에 띄어 궁금증을 더한다. 목덜미가 혹처럼 튀어 오르고 뿔이 긴 야윈 소들과, 몸집이 작은 당나귀들이 도로를 메우며 만보(慢踄)하고 있어 달리는 나그네를 때때로 여유롭게 한다. 다섯 시간을 달려 역사고도(古都) ‘악슘’에 도착하였다. |
| 임재문 | 12-04-01 21:12 | | 에티오피아 ! 다소 저로서는 생소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기행문을 읽고 보니 그나라의 풍물과 역사와 생활 문화가 한 눈에 들여다 보입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에티오피아의 다음 글이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 |
| | 김용순 | 12-04-04 20:05 | | 임선생님, 저는 1주일 정도 코끼리 다리만 만지다 왔습니다. 그래서 아는 것이 없습니다. 본 것만 옮겨 보았습니다. | |
| | 이희순 | 12-04-01 22:56 | | 선생님 덕에 에티오피아에 부쩍 호기심이 일어납니다. 알고보니 한반도의 다섯 배나 되는 큰 나라군요. 저는 에티오피아와 사우디가 홍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유명한 아덴 만도, 아라비아 해도 보입니다. 이제 선생님의 초점은 고대의 왕도 악숨에 맞추어져 있음을 직감합니다. 강물이 흘러가듯 유려한 필치로 전개되는 에티오피아의 풍광이 세계명작의 프롤로그처럼 잔잔한 감동을 자아냅니다. | |
| | 김용순 | 12-04-04 20:08 | | 이희순 선생님, 에티오피아는 먼 곳에 있어도 우리와는 인연이 깊은 나라 입니다. 몰라서 그렇치 근로자들도 많이 나와 있는 모양입니다. 부끄럽습니다. | |
| | 임병문 | 12-04-02 11:47 | | 선생님을 따라 더불어하는 아프리카여행, 설레는 마음으로 열심히 좇아갑니다. | |
| | 김용순 | 12-04-04 20:11 | | 임선생님, 별 것 없으니까, 설레실 것도 없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 |
| | 강승택 | 12-04-02 17:48 | | 세상의 모든 경험이 저와는 차원이 다르신 김선생님, 새삼 키가 한 뼘이나 더 커보입니다! 간간히 느껴지는 이국여성에 대한 김선생님의 곁눈질,그러시면 안되죠? | |
| | 김용순 | 12-04-04 20:14 | | 부끄럽게 왜 그러세요. 이국 여성에 곁 눈질 안하면 무슨 재미로 여행 합니까? 피부는 검어도 괜찮은 여인들이 많더군요. 에이즈 때문에...... | |
| | 김영월 | 12-04-04 15:23 | | 저도 아프리카 여행을 케냐를 비롯한 동부 쪽으로 다녀 왔는데 이디오피아는 못 가 본 곳이라 기행문이 옛 추억을 더듬게 하네요. 원시와 가난이 아직도 공존하는 땅, 아프리카는 어디든 비슷하네요. 이 나라는 기독교 역사가 가장 오래된 나라인지라 더 흥미를 주고 있어 잘 읽었습니다. 무척 힘들지만 한 살이라도 젊었을때 아프리카는 꼭 가보면 좋은 나라인 듯 싶습니다. 멋진 여행, 축하드립니다. | |
| | 김용순 | 12-04-04 20:16 | | 김부회장님, 저는 일 때문에 잠깐 다녀 왔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관광도 못하였고요.그들이 솔로몬왕의 후예라고 하여 흥미로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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