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기증관이 들어설 예정인 종로구 송현동 녹지광장이 이승만기념관 건립 예정지로 부상하고 있다. 송현동 광장 전경. 사진 서울시 제공
서울시 주요 사업·정책들이 부침을 겪고 있다.
16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남산 곤돌라 사업은 참가자가 없어 두번째 입찰도 유찰됐다. 당초 내년 11월 준공이 목표였지만 원안대로 추진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재비·인건비 등 공사비 상승 부담에 따른 사업성 부족과 건설경기 악화로 인한 위기발생 우려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시는 재공고를 한 뒤 오는 7월까지 실시설계 적격자 선정을 끝내고 전체 사업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관리할 계획이다. 건설사들과 간담회를 열어 사업비 규모를 현실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시가 추산한 남산 곤돌라 총 공사비는 417억2700만원이다.
곤돌라 사업이 극복해야할 장애물은 ‘돈’ 뿐이 아니다. 인접한 교육 시설을 둘러싼 ‘학습권 침해’가 또다른 문제로 부상했다. 곤돌라 예정노선 75m 거리엔 리라초등학교가, 79m 거리엔 리라아트고등학교와 숭의초등학교가 있다. 시는 해당 학교들이 공식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출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일부 단체들은 규탄대회를 여는 등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서울시는 곤돌라 운영수익으로 생태회복사업을 추진하고 숲체험 공간 등을 조성하면 장기적으로는 주변 학생들 교육 환경에 긍정정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만 주민과 반대 단체들 의견은 추후 설계에 일부 반영될 전망이다. 학습권 침해 우려를 감안해 시공사가 입찰 제안을 낼 때 생태환경과 학생들 사생활·학습권 보호를 우선 고려해 설계·제안 방안을 제안하도록 입찰공고에 포함했다.
이건희 기증관이 들어서기로 했던 종로구 송현동 땅은 활용 방안이 바뀔 처지다. 보수진영에서 영화 건국전쟁을 이슈화하는 계기로 이 자리에 이승만기념관을 짓자는 논의가 다시 촉발되고 있어서다. 오세훈 시장은 당초 이건희기증관 외에 남은 땅은 열린 공간으로 비워두겠다고 밝혔지만 최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입장 변화를 시사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은 현재 기념관 건립 최적지로 송현동 부지를 꼽고 있다. 영화가 불을 지폈지만 사실상 정부·서울시 모두 최종 결정만 남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정부는 이미 예산 460억원을 배정했고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시장은 개인명의로 각각 500만원, 400만원을 기념재단에 기부했다.
불교계 반발은 넘어야 할 산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이 전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불교를 탄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 조치는 1954년 발표한 ‘사찰정화 유시’다. 결혼한 승려를 일컫는 대처승 축출을 표방하면서 불교계의 강한 반발을 샀다. 현재 송현동 광장 인근에는 조계사와 조계종 총무원 등이 들어선 한국불교문화역사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지난해 11월 조계종은 공식 성명을 통해 “윤석열정부는 출범 이래 지속적으로 통합이 아닌 갈등을 조장하고 사회간 종교간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며 “정부의 종교 편향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불교태고종에서도 종단 차원의 성명을 냈다. 종단은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전면 백지화하라”며 “불교계 의견을 묵살하고 건립을 강행한다면 각종 불상사와 부작용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책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균형감각과 원칙에 맞는 기준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각종 위원회에서 자문역을 지낸 한 관계자는 “사업과 정책을 둘러싼 환경은 바뀔 수 있고 그에 따른 유연한 대처도 중요하지만 절차와 과정을 잘 밟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공무원을 위한 사업, 정치권이 요구하는 사업을 하면 후유증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사업 수정, 정책 변화는 가능하지만 그 기준은 언제나 시민이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