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가을날
좋지 가을볕은
뽀뿌링 호청같이 깔깔하지.
가을볕은 차
젊은 나이에 혼자된 재종숙모 같지.
허전하고 한가하지.
빈 들 너머
버스는 달려가고 물방개처럼
추수 끝난 나락 대궁을 나는 뽁뽁 눌러 밟았네.
피는 먼지구름 위로
하늘빛은
고요
돌이킬 수 없었네
아무도 오지 않던 가을날.
―김사인(1956~)
*뽀뿌링 : ‘포플린’의 북한어. 직물의 하나. 명주실, 털실, 무명실 따위로 날실을 가늘고 촘촘하게 하고 씨실은 굵은 실을 이용하여 짠 부드럽고 광택이 나는 평직물이다. 주로 무명의 것을 이르며 와이셔츠나 여성 복지용으로 쓴다. ⇒규범 표기는 ‘포플린’이다.
*호청 : '홑청'의 비표준어
* 재종숙모(再從叔母) : 칠촌뻘이 되는 아주머니
* 나락 : ‘벼’의 방언
* 대궁 : '대'의 방언
가을볕의 감촉은 어떠한가. 시인은 까칠까칠하고 차다고 말한다. 가을볕은 마치 포플린으로 이불의 겉을 홑겹으로 짜서 씌운 듯해서 살갗에 닿으면 좀 거칠거칠하긴 해도 말쑥하고 시원한 느낌이 없지 않다. 가을볕은 차가우니 축축한 기운이 전혀 없다. 또 꽉 차 있지 않아 비어있는 것만 같으니 사람의 마음 한구석에 막막하고 적적한 느낌이 생겨나게 한다. 가을해가 내리쬐는 기운을 참 빼어나게 비유해서 표현했다.
빈 들판도 늦가을 것이다. 익은 곡식을 베고 거둔 자리에는 그루터기만 남았다. 저 옛날에는 낟알을 떨어낸, 탈곡한 볏짚을 무더기로 쌓아 뒀는데 요즘은 그런 동가리를 보기가 쉽지 않다. 빈 들판에도 머지않아 서리가 내리고 살얼음이 올 것이다. 고개를 들어서 보면 위로는 조용하고 텅 빈 하늘이 더없이 넓다. 시인의 산문에 “모과나무 너머 파란 하늘이 고요하고 귀합니다. 숨을 조용히 쉽니다. 손발의 힘도 빼고 가만히 있습니다”라고 쓴 대목이 있다. 꼭 그렇게 고즈넉함을 즐길 만한 요즈음이다.
✵김사인(1956~ ) 시인은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1982년 ‘시와 경제’에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82 시와 경제 창간동인, 실천문학 편집장 및 편집위원,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해인승가대학 강사, 하버드 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교환 교수를 지냈다. 수상경력은 제6회 신동엽문학상, 제50회 현대문학상, 제14회 대산문학상 등이다. 시집은 《밤에 쓰는 편지》 (도서출판 청사)(문학동네)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 산문집 《따뜻한 밥 한 그릇》 (큰나), 편저 《시를 어루만지다》 등이 있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조선일보 2024년 11월 04일(월)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문태준 시인)〉, 《Daum, Naver 지식백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