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만난 名문장] 리좀과 억새
“리좀(rhizome)은 시작하지도 않고 끝나지도 않는다.
리좀은 언제나 중간에 있으며
사물들 사이에 있고 사이-존재이고 간주곡이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
‘천 개의 고원(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2. Mille Plateaux) (1980)’ 중
'리좀(rhizome)'은 식물이 땅속에서 만든 줄기를 말한다. 우리말로 땅속줄기 또는 지하경(地下莖)이라고 한다. 리좀은 땅 위로 나오지 않는다. 지하에서 대지의 편평한 면을 따라 뻗어 나간다. 그러면서 리좀은 잎을 틔울 진짜 줄기를 땅 위로 밀어 올린다. 그러니까 리좀은 뿌리도 아니고 줄기도 아니다. 그냥 리좀이다.
대나무의 리좀에서 발아하여 땅 위로 올라온 것이 그 순하고 여린 죽순(竹筍)이다. 리좀은 전분과 단백질을 저장해 생강이나 강황처럼 비대해지기도 한다. 리좀은 땅굴을 파며 수평으로 줄기를 뻗는 능력이 대단한데, 그와 동시에 가지를 치고 또 쳐서 사방팔방 줄기차게 자란다. 자신의 복제품을 시작도 끝도 없이 줄줄 만든다. 리좀은 지상과 지하를 연결하고 식물체와 식물체를 연결하고 식물과 무수한 미생물을 연결한다.
억새가 제철이다. 지금 핀 저 아름다운 억새들 무리에서 나는 억새와 물억새를 구분한다. 그 둘은 리좀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뻗는, 서로 다른 종이다. 땅을 파서 보지 않아도 안다. 억새는 리좀이 똬리를 틀 듯이 안으로 동그랗게 말리기 때문에 땅 위에서 한 아름 모여난다. 물억새는 리좀이 횡대로 뻗기 때문에 가로로 줄을 지어 늘어선 모양이다. 다시 말해 강강술래 하듯이 빙빙 뭉쳐나면 억새, 어깨동무하고 횡대로 서 있으면 물억새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불리한 여건에서 리좀은 식물의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다양하게 변화시킨다.
리좀은 우리에게 가르친다. 타자를 지배하는 존재로서의 주체를 꿈꾸지 마라. 타자와 수평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끊임없이 변화를 꿈꾸는 존재가 되라. 두 철학자가 말하는 것도 그 비슷한 거겠지.
◦억새[학명: Miscanthus sinensis var. purpurascens]는 벼과의 억세게 자라는 생명력 강한 여러해살이풀이다. 갈대는 꽃색이 고동색이나 갈색을 띠고 있지만, 억새는 꽃색이 은빛이나 흰빛을 띤다. 갈대는 습지에서 자라는 반면, 억새는 산 능선 등의 고지에서 보통 자란다. 갈대는 잎의 가운데에 아무것도 없는 반면에, 억새는 잎의 가운데에 하얀 줄무늬(잎맥)가 있다.
옛 노래에 ‘으악새가 슬피 운다’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으악새를 으악, 으악 하고 우는 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억새가 몸을 부딪치며 내는 소리를 표현한 것이다. 으악새란 억새의 경기도 방언이다. 억새가 만발한 가을을 멋지게 표현한 노랫말이다. 꽃말은 ‘친절, 세력, 활력’이다.
◦물억새[학명: Miscanthus sacchariflorus (Maxim.) Benth]는 벼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물터에 사는 억새라는 뜻이다. 적어도 1년에 한두 번은 물에 잠기는 곳, 한 번씩 관수(冠水)되는 곳에서 산다. 늘 침수되는 곳은 아니다. 가까이에 물이 흐르는 곳이라면 최적지로, 하천변이나 도랑 근처에서 자주 관찰되는 이유다. 꽃말은 ‘원망’이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차이와 생성의 프랑스 철학자로 유명하며, 리좀과 수목, 탈영토화, 탈코드화 등 철학적으로 독창적인 사유의 어휘들을 창시하였다. 헤라클레이토스, 바뤼흐 스피노자, 프리드리히 니체, 앙리 베르그송 등 소위 철학사의 비주류적 계보를 탐색하고 발굴하며 그들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전개했다. 그는 철학을 넘어 과학, 수학, 회화, 영화, 문학, 건축, 지리학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동시에 후대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개념은 벽돌이다. 그것은 이성의 재판소를 세우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아니면 창문으로 던져질 수도 있다.
Un concept est une brique. Il peut être utilisé pour construire un palais de justice de la raison. Ou il peut être jeté par la fenêtre.
─『천 개의 고원』 中
나무라면 진절머리가 난다.
―『천 개의 고원』 中
여기서 나무란 서구의 전통적 사유방식을 의미한다. 나무를 떠올려보자. 나무는 뿌리에서부터 줄기-가지로 뻗어나간다. 모든 것을 사물의 본질이나 근거,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사유로 서양의 형이상학적 전통, 근거지음(grunden)이다. 또, 위계적인 체계로 유목적인 체계인 리좀과 대비되는 사유방식이다.
들뢰즈/가타리는 통일성과 단일성을 버리거나 거기서 멀어지자고 말했다. 또 주체성도 털어내자고 했다. 그들은 기존의 나무 대신 리좀(rhizome, 뿌리줄기, 땅 밑 줄기, 헛뿌리)을 주장했는데 리좀은 내재적이고 유목적인 사유방식을 의미한다. 리좀은 어떤 것이 무엇과 관계하는가에 따라 본질이 달라지고 관계의 질이 달라진다. 그것은 어떤 중심뿌리 없이 접속되고 분기되는 줄기 식물처럼 특정한 사고의 기반 없이 다양한 것들의 차이와 복수성을 다원화하고 새롭게 번식한다. 하나의 중심(뿌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무와 달리 뿌리도 없이 접속되고 분화되고 단절되고 연결되는 시작도 끝도 없는 가변적이고 역동적이며 유목적인 사유방식이다.
나무 중심의 사유 체계 혹은 지리서가 철저하게 이분법적 계통 혹은 분화를 따른다고 해서, 뿌리의 사고가 다만 이분법적으로만 존재했다는 것은 아니다. 수염뿌리 텍스트의 예로는 제임스 조이스와 프리드리히 니체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염뿌리 체계 역시 주체와 객체의 상보성과 진정으로 결별하지 않는다.
✵피에르펠릭스 가타리(Pierre-Félix Guattari, 1930-1992)는 프랑스의 철학자, 정신 분석학자. 대중에게는 질 들뢰즈와의 철학 콤비로 유명하지만, 그 스스로의 철학도 현대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타리의 관심은 단순히 정신 분석과 마르크스주의를 결합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형식의 정치를 모색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상의 흐름은 '횡단성 → 분자 혁명 → 분열 분석 → 생태 철학(카오스모제)'으로 표현된다. '카오스모제'에서는 이러한 생태 철학과 분열 분석 방법론을 결합해 '카오스모제'(chaosmose)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출해낸다. 카오스모제는 카오스(chaos, 혼돈混沌), 코스모스(cosmos, 질서秩序), 그리고 오모제(omose, 상호 침투相互浸透)의 합성어로 혼돈과 질서가 상호 침투하는 생성生成의 과정을 의미한다.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내가 만난 名문장, 리좀과 억새(허태임 식물분류학자·‘나의 초록목록’ 저자), (동아일보, 2021년 11월 04일(월))〉, 《Daum, Naver(인터넷 교보문고)》/ 이영일 ∙ 고앵자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