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열 명이 앉으면 식당 안은 가득 찹니다. 고만한 식당이지요. 그런데 영업시간은 다른 일반식당과 조금 다릅니다. 자정부터 시작해서 아침 7시까지입니다. 손님이 있느냐고요? 손님이 있으니까 영업을 하겠지요. 하기는 요즘 하루를 거꾸로 사는 사람들이 한둘이겠습니까? 그런데 웬걸요. 야근 또는 철야하는 사람들이야 근무하느라 식당에 올 시간도 없을 것입니다. 사실은 일이 끝난 사람들이 옵니다. 그러다가 하루를 거꾸로 사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오는지도 모릅니다. 한 번 두 번 오다가 그만 단골손님이 되어 오는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시간이 되면 그냥 오는 거지요.
처음 나타난 사람들은 장례식장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중간에 온 사람도 있고 끝내고 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웬 여자가 들어옵니다. 행색은 조문객인데 말하는 것은 그게 아닙니다. 출판사 편집부장인 모양입니다. 최근 자기가 맡았던 인기도서 출판을 부하 직원에게 넘겨야 했습니다. 저자의 압력으로 회사가 밀린 것입니다. 소위 돼먹지 않은 주제에 작품을 비판이나 하고 있다는데 심기가 불편해진 저자가 편집장을 바꾸라고 했던 모양입니다. 어쩌겠습니까? 나이 든 이 처녀 편집장이 쌓인 스트레스를 장례시키려 상복을 입고 야간 외출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식당에 들어왔습니다.
남자들 모이면 하는 이야기가 뻔합니다. 군대 이야기, 스포츠 이야기 그리고 여자 이야기입니다. 상복을 입은 여자는 또 다른 매력을 풍긴다나요? 시간이 없어서인지, 매력이 없어서인지 본인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 남자들이 작업을 거는 것인지 아니면 놀리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혹 낮에는 자신이 없어서 밤에 상복 차림으로 작업 상대를 찾아 나선 것인가? 하는 의심을 삽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들은 산 이야기들을 나눌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날 역시 상복을 입었지만 꽤 괜찮은 남자를 만납니다. 처음으로 연정을 느끼며 살맛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장례식장을 돌며 조위금 갈취하는 도적이었네요. 더 큰 상처를 입습니다.
조그만 식당 안에 옹기종기 앉아서 식사를 하다보면 옆 사람의 이야기 다 듣습니다. 위로도 해주고 칭찬도 해주지요. 때로는 맞장구도 쳐주고 서로 가까워집니다. 그렇게 몇 번을 한 곳에서 보면 한결 편하게 대화를 나눕니다. 식당 주인은 식사를 만들어 제공하면서 때로는 멘토가 되어주기도 하지요. 상복을 입었어도 산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배고프고 욕망도 살아 있습니다. 유가족도 장례를 마치고 와서는 야식을 먹습니다. 마음이 아프다고 몸까지 아파야 할 이유는 없지요. 슬픔에 찬 얼굴이지만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주인의 염치와는 상관없이 발산됩니다. 어쩝니까? 웃어야지요.
근처에서 메밀국수 집을 운영하는 세이코는 남편과 함께 하던 식당을 아들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제 갓 스물이나 되었을까 싶은 아들 녀석은 엄마에게 붙들려 함께 일하고 있지만 속은 깊습니다. 엄마는 아직도 한참 어린아이로 보고 있지만 어느덧 딴 여자를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그마치 15살이나 연상인 여자를 말입니다. 어떻게 알게 되었고 어떻게 가까워졌는지는 모릅니다. 아마도 음식배달 하면서 자주 접하다가 가까워진 모양입니다. 아무튼 좋은 걸 어쩝니까? 어느 날 식당에서 세이코는 친구와 함께 온 이 처녀를 만나서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변죽이 잘 맞았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이에 나이가 뭔 상관이냐 하고 맞장구를 치다가 그 상대가 바로 자기 아들이 되자 언제 그랬느냐 하듯 돌변합니다.
보이스피싱에 걸려 거액을 가지고 도시까지 나온 곱상한 할머니가 등장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오래도록 연락이 끊긴 아들을 위해서 달려온 것입니다. 오래 전 자기 인생을 위해 어린 아들을 떼놓고 도망친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았습니다. 그 아들이 어려움을 당했다는 소식에 이제라도 속죄하려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아무런 의심 없이 오로지 아들을 구하려는 마음에 거액을 사기꾼에게 넘겨줍니다. 주변에서 이상함을 눈치 챈 선한 이웃들이 힘을 합해서 할머니를 도와줍니다. 손녀 같은 처녀를 만나 좋은 교제의 시간도 갖습니다. 할머니도 처음 올라온 그날 늦은 밤 이 식당에 모셔졌었지요. 그 때 종일 굶다가 먹은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을 떠나기 전에도 청해서 먹습니다. 오래도록 아니 남은 생애 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늘 자리에 앉아서는 그 날의 메뉴를 메모하던 노인이 이제는 메모를 하지 않습니다. 아니 아저씨, 왜 메모를 하지 않으세요? 무슨 메모? 아 식사하시기 전에 꼭 그 메뉴를 수첩에 적으셨잖아요? 아 그랬지. 이제 하지 않기로 했다오. 왜요? 아 그거,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먹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와 -!! 식당에 함께 한 모두의 탄성을 자아냅니다. 조그만 식당입니다. 대단한 사람들이 모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름 만들고 있는 인생이고 만들어져가는 인생들입니다. 잘 모르지만 차츰 가까워지며 서로 밀어주고 당기면서 함께 자기들의 삶을 다듬어갑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대단한 사람들의 인생만 인생이겠습니까? 영화 ‘심야식당(2)’을 보았습니다. 일본 영화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또 다시 복된 한 주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