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 속의 구름 / 양애경
중국 낙양에서 백마사 방향으로 나가면
수천 년 묵은 석회암 절벽지대가 있고
거기엔 작고 큰 자연동굴 수천 개가 있어
수백 년 전의 크고 작은 부처님 상이며 그림이며
수백 년 전에 거기 살며 섬기던 사람들의 자취가 남아 있지요
동굴이야 수천 년 그 자리에 있었지만
사람이야 어디 백 년을 살려구요
죽고 다시 태어나 향 피우고
죽고 다시 태어나 보살 하나 새기고
동굴 임자들은 자주자주 바뀌며
그렇게 오래 지나왔지요
제가 전생에 살던 별은 안드로메다 성운에 있는,
지금 사는 은하계와 쌍둥이 은하계
지구의 쌍둥이 별이었는데
그때의 제 반려와는 정말 행복한 일생을 지냈고
지금도 선잠을 깰 땐, 그 사람 생각에 빙긋 웃곤 하지요
지금 생인지 그때의 생인지 잠깰 무렵엔 잘 분간이 안되거든요
이 별에 태어나 보니 그때의 반려는 저와 다른 시간대에 태어났는지
아니면 먼 지역에 떨어졌든지
아직 만나지를 못했구요
가끔가끔 사랑한다던 남자들 있어
혹 이 사람이 그인가? 한 적도 있었지만
아마 그가 아니라 제가 전생에 빚진 사람들이었나 봐요
제가 이 별에서 살 날, 아직 좀 남았는지요
몇 백 년 전, 동굴 안에 살며 기도하던 사람처럼
몇 개의 흔적을 벽에 그리고 간 후
그리고도 몇 백 년이 흘러간 후
동굴 밖에서 물끄러미
제가 그린 꽃 그림, 구름 그림 몇 개
들여다 볼 누군가가 있을까요?
그의 커다란 검은 눈이 시간을 통과하여
제 웃음과 슬픔을 꿰뚫어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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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애경 시인
1956년 서울 출생
충남대 국문과 및 同 대학원 졸업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공주영상정보대학 영상문예창작과 교수
시집
『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1988
『사랑의 예감』1992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1992
『내가 암늑대라면』2005
『맛을 보다』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