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라고 마누라가 쑥국을 끓였다.
- 쑥국은 도다리 쑥국보다 달롱개와 갯가재를 쪼사 넣은 기 맛있는데....
어머니 생각이 났지만, 해주는 것만 해도 고맙다고 주는대로 먹어야지 군소리를 했다가는 타박만 맞을끼고...
쑥국을 보니 미국에서 쑥국 찾은 나훈아 생각이 났다.
며칠 전 5월에 서울에서 열리는 "청춘 어게인" 나훈아 공연 티켓 3만 장이 8분만에 매진되었다고 했다.
20일 오전 10시 정각부터 에스24에서 예매 시작했는데 불과 8분만에 동이 난 것이다.
가격은 R 석 16만 5천원, S 석 14만 3천원, A 석 12만 1천원이었다고.
구입한 사람들은 주로 20 ~ 30대로 부모들을 위한 '효도 전쟁'이엇다고 한다.
나훈아와 동년배인 노인들에게는 아직도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증거다.
쑥국 이야기는 1985년경에 나훈아가 미국 엘 에이에서 공연을 할 때 있었던 사실이다.
그 때 사회를 봤던 이상벽의 회고담이다.
야간 공연을 마치고 술을 한잔 한 후 호텔에서 잠을 잤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는데 속이 쓰렸다. 식당에서 시중드는 웨이터들은 한국 청년들이었다.
나훈아가 말했다.
"어이, 동생 보래이, 요 동네 엘 에이 아이가, 한국 사람들 마이 산다 아이가. 오데 쑥국 파는 집 없나?"
그러자 웨이터 반장이 말햇다.
"잠시만 지달려 보이소. 알아보겠심더."
웨이터 반장은 주방장과 상의를 하고 몇 군데 전화를 하더니 잠시 후에 특배로 쑥국이 도착했다.
나훈아는 "고맙데이 동생들아!" 하면서 웨이터 전원에게 빳빳한 100불짜리 한 장씩 건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