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그린 연두
- 한영수
입이 틀어 막히며 네 발이 들리며
거부를 거부하며
연두가 눈을 뜬다
경계에 경계 없이
중력에 중력 없이
어느 날은 제자리걸음
물끄러미 뒤도 쳐다보면서
연두는 연두를 경영한다
비탈이거나 웅덩이
병실에서 좌판에서
독방의 창가에서
겨울나무 끊어진 높이에서
한꺼번에 아름다워지지는 말자
밀리며 밀어붙인다
조금씩 살다보면
조금 더 살아진다
주름이 생기고 관절에 통증이 올 때까지
모든 하루를 지나갈 모양으로
돌풍인지 안개인지 작은 씨앗인지 모르는
연두의 영토
빛깔을 발음할 때마다
마른 가슴에 마실 물이 고인다
ㅡ계간 《문학인》(2024,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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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 지구를 지탱하는 색깔은 처음부터 진초록이 아니라 연두에서 출발합니다
덩굴식물의 끄트머리는 연두보다 더 엷어서 살짝 붉은 빛도 띱니다
가시광선을 차례로 늘어놓는 무지개를 보세요
빨주노초파남보- 모든 빛이 초록을 가운데에 두고 모여듭니다
초록을 향하는 작은 희망이 연두이고 보면 겨울마저 연두의 영토입니다
현실의 민주주의가 흩뿌리고 있는 모습과 빛깔을 보세요
한꺼번에 이룰 수 없어서 자유도 비틀거리지만, 그 역시 연두입니다
비바람을 뚫고 햇볕을 견뎌야 비로소 진초록 세상을 이루게 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