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이 팔을 길게 늘여 둥그렇게 만든 품속에 포근히 안긴 단성면 운리, 그 아늑한 마을의 한복판에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단속사(斷俗寺) 옛 터가 있다. |
출처: 강석정의 사랑방 원문보기 글쓴이: 보중
▲ 단속사지 ‘정당매’(2013년 마지막 개화모습) |
지리산 자락이 팔을 길게 늘여 둥그렇게 만든 품속에 포근히 안긴 단성면 운리, 그 아늑한 마을의 한복판에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단속사(斷俗寺) 옛 터가 있다.
속세를 끊어낸다는 뜻의 절 이름에서부터 절다운 초연한 아름다움이 풍기는 이 곳에는 보물 제72호, 제73호로 지정된 2기의 석탑(단속사지 동삼층석탑, 단속사지 서삼층석탑)과 수령이 640여년이 되는 ‘정당매’가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정당매’는 고려말기의 문신으로 단성면 남사마을‘원정매’를 심은 원정공 하즙(1303~1380)의 외손자이자 「양화소록(養花小錄)」을 지은 인재 강희안(1417~1464)의 조부이기도 한 통정 강회백(1357~1402)이 단속사에서 공부를 하던 중에 심었다.
나중에 과거에 합격하여 종 2품인‘정당문학’에 이르렀기 때문에 ‘정당매’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원정매’와 더불어 후세에 이르러 ‘산청의 삼매’중 하나로 불리었다.
이는 어쩌면 원정공 하즙의 매화에 대한 애정이 남사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의 외손자인 강회백에게도 그대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600년이 훌쩍 넘은 세월에도 해마다 봄이면 사람들의 발길을 찾게 하는‘원정매’와‘정당매’를 외조손 간에 남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여겨진다.
또한, 강희백의 손자인 강희안이 우리나라의 첫 원예백과사전이나 다름없는 「양화소록」을 지었다는 점에서도 강희백의 매화 사랑을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비록 지금은 죽은 굵은 가지가 잘라내어져 옛 풍모를 잃고, 긴 세월동안 봄이면 꽃을 피워 그 기품을 드러내던 모습도 2013년 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은 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몇 년 전 산청군에서‘정당매’의 후계목을 주위에 심어 그 정신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조만간 다시 꽃 피울‘정당매’를 볼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또한, 그 옆에는 1915년에 건립된‘정당매’를 기리는 비각‘ 정당매각’이 세워져 있어 곁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비각 안의 두 개의 시비에는 비각을 세운 이유를 적은 정당매각기와 통정 강회백의 시, 강회백 후손들이 지은 시 등 여러 편의 시가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산청과 인연이 깊어 남사마을에 터를 잡은 이호신 화백이 1998년에 그린 「산청 단속사지 정당월매(政堂月梅)」에는 ‘정당매’의 예전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고매화의 역사를 한 눈에 엿볼 수 있다.
지리산 자락이 팔을 길게 늘여 둥그렇게 만든 품속에 포근히 안긴 단성면 운리, 그 아늑한 마을의 한복판에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단속사(斷俗寺) 옛 터가 있다. |
출처: 강석정의 사랑방 원문보기 글쓴이: 보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