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맹전 李孟專(1392 ~ 1480))】 「불의한 세상을 등지고 맹인으로 산 생육신.」
이맹전(李孟專, 1392년 ~ 1480년)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단종에 대한 충절을 지킨 생육신(生六臣) 의 한 사람으로서,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백가(伯可), 호는 경은(耕隱)이다.
이맹전은 1421년(세종 3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집현전의 여러 직책을 거쳤다. 그는 학문이 깊고 사리가 밝아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건강상의 이유로 관직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고향인 성주로 돌아와 학문에 정진했다.
1453년,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자, 이맹전은 불의한 권력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그는 병을 핑계로 고향에 은거하며 관직 생활을 완전히 중단했다. 1455년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그는 관직을 버린 것을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과 완전히 인연을 끊고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이맹전은 이후 평생을 야인(野人)으로 지내며, 벼슬을 위해 과거에 급제했던 자신의 행위를 참회하는 의미로 스스로 맹인의 흉내를 내고 살았다. 이는 '눈으로 불의한 세상을 보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그는 밭을 갈고 책을 읽으며 지냈으며, 이러한 그의 삶을 기려 '경은(耕隱)'이라는 호가 붙여졌다. '경은'은 '밭을 갈며 숨어 산다'는 뜻이다.
이맹전은 1480년(성종 11년)에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충절은 사후에 높이 평가받아, 1782년(정조 6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또한 그는 김시습, 원호 등과 함께 생육신으로 불리며, 불의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킨 선비의 표상으로 존경받고 있다.
수양대군(세조)이 왕위를 찬탈한 후, 이맹전은 불의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절망감으로 고향인 성주에 은거했다. 그는 '불의를 눈으로 보지 않겠다'는 뜻으로 스스로 맹인의 흉내를 내고 살았다. 사람들은 그를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하는 노인"이라 여겼지만, 그는 세상의 부정한 권력에 대한 저항을 이런 방식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후세에 그의 충절과 지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일화로 알려진다.
세조는 이맹전의 뛰어난 학문과 강직한 성품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 그를 관직에 불러들이려 했다. 어느 날, 세조의 측근이 이맹전의 집을 찾아와 "전하께서 공의 학덕을 아까워하시어 벼슬을 내리시려 하오니, 부디 상경(上京)하시어 나라를 위해 힘써 주시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맹전은 "나는 이미 눈이 멀어 앞을 볼 수 없는 늙은이요. 어찌 관직에 나아가 나라 일을 할 수 있겠소"라며 완강히 거절했다. 사실 그는 눈이 멀지 않았지만, 이처럼 맹인 행세를 하며 세조의 부름을 단호히 거부했다. 이는 불의한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그의 확고한 신념을 보여주는 일화다.
이맹전이 고향에서 은거할 때 스스로 '경은(耕隱)'이라는 호를 지었다. '경(耕)'은 '밭을 간다'는 뜻이고, '은(隱)'은 '숨는다'는 뜻이다. 이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밭을 갈며 숨어 살겠다는 그의 결심이 담겨 있다. 이맹전은 이러한 삶을 통해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선비의 도리를 지키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삶의 태도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이맹전 관련 고사성어
첫댓글 이맹전은 눈을 감는 것으로 세조의 세상 전체를 부정했다.
아이들에게 충절과 올바름을 가르쳤다.
이맹전은 눈을 감는 것으로 세조의 세상을 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