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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읽기는 달생편이 끝나고 오늘부터는 제20편 산목편으로 들어간다.
莊子 外編 20篇 山木篇 解說(장자 외편 20편 산목편 해설)
[해설]
육덕명陸德明은 “기록한 일을 들어 편 이름을 지었다.”고 풀이했다. 왕선겸王先謙은 소여蘇輿의 말을 인용하여 “이 편도 장자의 학생이 기록한 것인데 〈인간세人間世〉편과 같은 뜻으로 혼탁한 세상에 살면서 해로움을 피하는 기술을 말하고 있다.”고 풀이했다(王叔岷).
이 편의 대지大指는 제1장에 있다 할 것이다. 여기서 장자는 스스로 무용無用과 유용有用의 사이에 머물겠다고 말하는데, 무용無用으로 천수를 누린 산목山木과 울지 못하기 때문에 일찍 죽게 된 거위의 상반된 이야기를 통해 어지러운 세상에서 생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말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시남의료市南宜僚와 노후魯侯와의 문답을 통해 이상적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여기서 장자는 무위자연의 도道를 체득하여 자신을 비우면 남을 해치지도 않고 남에게 해침을 당하지도 않는 이상적인 삶의 태도를 지닐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빈 배[허주虛舟]의 비유는 바로 자신을 비우는 무욕의 태도를 말하고 있다.
이 편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기사로는 제4장, 제5장, 제7장에 나오는 공자의 설화를 들 수 있다. 여기서 장자는 진채지간陳蔡之間에서 곤경을 당한 공자의 이야기를 통해 한편으로는 공자의 처지를 동정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공자의 처세를 비판하고 있는데, 〈인간세人間世〉 제8장에 나오는 접여接輿의 공자비판孔子批判과 비교하면서 감상할 만하다.
莊子 外編 20篇 山木篇 第1章(장자 외편 20편 산목편 제1장)
[제1장 해석]
장자莊子가 산속을 거닐다가 가지와 잎사귀가 무성한 큰 나무를 보았는데 벌목伐木하는 사람들이 그 옆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그 나무를 베지 않았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쓸 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장자莊子가 말했다. “이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천수天壽를 다할 수 있구나.”
선생先生이 산에서 나와 옛 친구의 집에서 묵게 되었다. 친구가 기뻐하여 아이 종에게 거위를 잡아서 요리하라고 시켰더니, 아이 종이 여쭙기를 “한 마리는 잘 우는데, 한 마리는 울지 못합니다. 어느 것을 잡을까요?” 하였다. 주인이 말했다. “울지 못하는 놈을 잡아라.”
다음 날 제자가 장자莊子에게 물었다. “어제 산중山中의 나무는 쓸모없었기 때문에 천수天壽를 다할 수 있었고 지금 주인집 거위는 쓸모없었기 때문에 죽었으니 선생께서는 장차 어디에 몸을 두시겠습니까?”
장자莊子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사이에 머물 것이다. 그런데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사이에 머무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럴 듯 하지만 아직 완전한 올바름이 아니기 때문에 세속의 번거로움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도道와 덕德을 타고 어디든 정처 없이 떠다니듯 노니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명예도 없고 비방도 없이 한 번은 하늘에 오르는 용이 되었다가 또 한 번은 땅속을 기는 뱀이 되어 때와 함께 변화하면서 한 가지를 오로지 고집하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는다. 한 번 하늘 높이 올라가고 한 번 땅속 깊이 내려감에 조화로움을 한량으로 삼아서 만물의 시초에 자유롭게 노닐며, 만물萬物을 만물萬物로 존재하게 하면서도 스스로는 물物에 의해 물物로 규정받지 않으니 어떤 물物이 번거롭게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옛날 신농神農과 황제黃帝가 지켰던 삶의 법칙이다.
그런데 만물의 실정實情과 인간 세상사의 전변轉變(만물萬物이 생멸生滅, 변화變化함)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합하였다 하면 이윽고 분열하고, 완성되었다 하면 이윽고 파괴되고, 날카롭게 모가 났다 하면 어느새 꺾이고, 존귀尊貴하게 되었다 하면 어느새 몰락하고, 훌륭한 행동을 하는 인간이다 싶으면 무너지고, 현명하면 모함에 걸리고, 어리석으면 기만당하니 어찌 〈세상의 번거로움을 면할 것이라고〉 기필할 수 있겠는가. 슬픈 일이다. 제자들은 잘 기억해 두어라. 〈내 몸을 둘 수 있는 곳은〉 오직 도道와 덕德의 고장일 뿐이다.”
莊子 行於山中 見大木 枝葉盛茂 伐木者 止其旁而不取也
問其故 曰無所可用 莊子曰 此木以不材 得終其天年
(장자행어산중하다가 견대목하니 지엽이 성무호대 벌목자 지기방이불취야어늘
문기고한대 왈무소가용이니라 장자왈 차목은 이부재로하다가 득종기천년이로다)
장자莊子가 산속을 거닐다가 가지와 잎사귀가 무성한 큰 나무를 보았는데 벌목伐木하는 사람들이 그 옆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그 나무를 베지 않았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쓸 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장자莊子가 말했다. “이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천수天壽를 다할 수 있구나.”
☞ 이 문단의 이야기는 이께다池田知久의 지적처럼 〈인간세人間世〉편의 장석匠石과 제자의 ‘산목散木 문답’과 남백자기南伯子綦가 상구商丘에서 본 ‘쓸모없는 나무 이야기’를 근간으로 주인공을 장자莊子로 바꾸어 요약한 것이다. ‘무소가용無所可用’이나 ‘종기천년終其天年’ 따위의 말은 〈인간세人間世〉편에도 그대로 보인다.
☞ 득종기천년得終其天年 : 천년天年은 천수天壽.
夫子出於山 舍於故人之家 故人喜 命豎子 殺雁而烹之
豎子請曰 其一能鳴 其一不能鳴 請奚殺 主人曰 殺不能鳴者
(부자 출어산하야 사어고인지가하니 고인이 희하야 명수자하야 살안이팽지한대
수자 청왈 기일은 능명하고 기일은 불능명하나니 청해살이잇고 주인왈 살불능명자하라)
선생先生이 산에서 나와 옛 친구의 집에서 묵게 되었다. 친구가 기뻐하여 아이 종에게 거위를 잡아서 요리하라고 시켰더니,
아이 종이 여쭙기를 “한 마리는 잘 우는데, 한 마리는 울지 못합니다. 어느 것을 잡을까요?” 하였다. 주인이 말했다. “울지 못하는 놈을 잡아라.”
☞ 수자豎子 : 유자孺子와 같다. 童子.
☞ 살안이팽지殺雁而烹之 : 안雁은 기러기이지만 여기서는 아조鵝鳥, 곧 거위를 지칭한다. 팽烹은 삶아서 요리한다는 뜻.
明日弟子問於莊子曰 昨日山中之木 以不材 得終其天年
今主人之雁 以不材死 先生 將何處
莊子 笑曰 周將處乎材與不材之間
材與不材之間 似之而非也 故 未免乎累
(명일에 제자 문어장자왈 작일에 산중지목은 이부재로 득종기천년하고
금 주인지안은 이부재로 사하니 선생은 장하처잇고
장자 소왈 주는 장처호재여부재지간호리니(호리라)
재여부재지간은 사지이비야론 고로 미면호루어니와)
다음 날 제자가 장자莊子에게 물었다. “어제 산중山中의 나무는 쓸모없었기 때문에 천수天壽를 다할 수 있었고
지금 주인집 거위는 쓸모없었기 때문에 죽었으니 선생께서는 장차 어디에 몸을 두시겠습니까?”
장자莊子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사이에 머물 것이다.
그런데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사이에 머무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럴 듯 하지만 아직 완전한 올바름이 아니기 때문에 세속의 번거로움을 면치 못할 것이다.
☞ 선생장하처先生將何處 : 선생께서는 장차 어디에 몸을 두시겠습니까? 내편에서 강조한 ‘무용지용無用之用’을 좀더 심화한 사상 표현이다.
☞ 처호재여부재지간處乎材與不材之間 :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사이에 머묾. 〈양생주養生主〉편 제1장에서 “선善을 행하되 명예에 가까이 가지는 말며, 악을 행하되 형벌에 가까이 가지는 말라.”고 한 내용과 같은 사상 표현이다. 이런 태도를 비판적으로 극복한 것이 〈달생達生〉편 제5장에서 “안쪽만을 중시하여 은둔하지 말 것이며 밖으로만 나가 너무 지나치게 드러내지 말고 내內와 외外의 한가운데에 고목枯木처럼 서야 할 것이다.”라고 한 부분이다.
若夫乘道德而浮遊 則不然
無譽無訾 一龍一蛇 與時俱化 而無肯專爲
一上一下 以和爲量 浮遊乎萬物之祖
物物而不物於物 則胡可得而累邪 此神農黃帝之法則也
(약부승도덕이부유면 즉불연이라
무예무자하며 일룡일사하야 여시로 구화 이무긍전위하며
일상일하에 이화로 위량하야 부유호만물지조하야
물물이불물어물하나니 즉호가득이루야리오 차 신농황제지법칙야니라)
하지만 도道와 덕德을 타고 어디든 정처 없이 떠다니듯 노니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명예도 없고 비방도 없이 한 번은 하늘에 오르는 용이 되었다가 또 한 번은 땅속을 기는 뱀이 되어 때와 함께 변화하면서 한 가지를 오로지 고집하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는다.
한 번 하늘 높이 올라가고 한 번 땅속 깊이 내려감에 조화로움을 한량으로 삼아서 만물의 시초에 자유롭게 노닐며,
만물萬物을 만물萬物로 존재하게 하면서도 스스로는 물物에 의해 물物로 규정받지 않으니 어떤 물物이 번거롭게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옛날 신농神農과 황제黃帝가 지켰던 삶의 법칙이다.
☞ 약부승도덕이부유즉불연若夫乘道德而浮遊則不然 : 도덕道德은 내편內篇에는 보이지 않는 말이다. 〈변무騈拇〉‧〈거협胠篋〉‧〈천도天道〉 등의 용례와 함께 ≪노자老子≫ 사상과의 절충折衷이 강하게 느껴진다(福永光司). 도덕을 타는 것은 자연을 따름이다.(林希逸)
☞ 무예무자無譽無訾 : 세속의 훼예포폄毁譽褒貶에 초연超然하다는 뜻.
☞ 일상일하一上一下 이화위량以和爲量 : 지인은 때에 따라 올라가고 내려와 조화를 도량으로 삼음을 말한 것이다.(成玄英)
☞ 부유호만물지조浮遊乎萬物之祖 : 조祖는 만물생성萬物生成의 근원根源에 있는 진리眞理 즉 도道의 세계를 의미한다.
☞ 물물이불물어물物物而不物於物 : 본질적으로 한정限定을 갖는 상대적인 입장에서 ‘재材’, ‘부재不材’의 옳고 그름을 의론議論하는 것보다는, 상대적인 입장 그 자체를 초월한 ‘도道’의 입장, 즉 진실재眞實在의 세계에 눈을 뜬 삶이 한층 근원적임을 말한 것이다.(福永光司)
若夫萬物之情 人倫之傳 則不然
合則離 成則毁 廉則挫 尊則議 有爲則虧 賢則謀 不肖則欺
胡可得而必乎哉 悲夫
弟子 志之 其唯道德之鄕乎
(약부만물지정과 인륜지전은 즉불연하야
합즉리하고 성즉훼하고 렴즉좌하고 존즉의하고 유위즉휴하고 현즉모하고 불초즉기하나니
호가득이필호재리오 비부라
제자(아) 지지하라 기유도덕지향호인저)
그런데 만물의 실정實情과 인간 세상사의 전변轉變(만물萬物이 생멸生滅, 변화變化함)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합하였다 하면 이윽고 분열하고, 완성되었다 하면 이윽고 파괴되고, 날카롭게 모가 났다 하면 어느새 꺾이고, 존귀尊貴하게 되었다 하면 어느새 몰락하고, 훌륭한 행동을 하는 인간이다 싶으면 무너지고, 현명하면 모함에 걸리고, 어리석으면 기만당하니 어찌 〈세상의 번거로움을 면할 것이라고〉 기필할 수 있겠는가. 슬픈 일이다. 제자들은 잘 기억해 두어라. 〈내 몸을 둘 수 있는 곳은〉 오직 도道와 덕德의 고장일 뿐이다.”
☞ 인륜지전人倫之傳 : 인륜人倫은 덧없는 인간 세상을 의미한다. 윤倫은 유類와 같다. 전傳은 전轉의 가차假借로 전변轉變, 곧 전변무상轉變無常함을 뜻한다.
☞ 렴즉좌廉則挫 : 청렴하면 꺾임을 당하게 된다.(成玄英), 노자老子 제9장의 “헤아려서 날카롭게 하면 길이 보존될 수 없다.”고 한 대목과 유사한 사상 표현이다.
☞ 존즉의尊則議 : ‘의議’는 기운다는 뜻. ‘아俄’와 같다(兪樾). ‘아俄’는 ‘경傾’과 같은 뜻이다.
☞ 호가득이필호재胡可得而必乎哉 : 필必은 기필期必함. 세상의 번거로움을 면할 것이라고 기필할 수 없다는 뜻.
☞ 지지志之 : 마음에 잘 새겨 두라는 뜻으로 지志는 지識(지), 지誌 등과 같이 쓰인다.
☞ 기유도덕지향호其唯道德之鄕乎 : 편안히 머물 수 있는 곳은 도덕의 고장일 뿐이라는 뜻이다. ‘도덕지향道德之鄕’은 〈소요유逍遙遊〉편에 나오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과 같은 경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