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가 신공황후 49년에 가야 지역을 군사 정벌하여 4세기말 한반도 패권을 둘러싸고 고구려와 대결을 벌이고. 5세기에는 한반도 남부 가야지역을 임나 일본부라하여그곳에서 300년간 가야지역을 지배하다 흥명천황 23년에 중국 송나라에게 빼았겼다는 것이 대위가 아닌 소위 일본이 말하는 임나 일본부 설이다. 한마디로 오래전에 왜구들이 우리를 지배하였다고우기고 나 짜빠지는 임나설은 학계에서 조차도 검토의 가치가없는 황당 무계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여기서 화투의 역사 이냐고요?
진정하시고 한번 읽어 보세요. 백제 시대에. 우리민족의 고유 스포츠인 화투가 각종 문물과 함께 일본에 전수되여. 당시 무지몽매하던 일본 백성들의 여가 선용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였다는 데. <일본 나가 이유사(日本裸嫁理由史)>에는 파토현이라는 현이 존재하였고. 거기에는 많은 백제인들이 뛰여난 백제 문물을 가져왔다는데.고증에 의하여 찾아본 결과. 색상이 선명하고 국보급 인쇄술에 해당하는 화투가 발견 되였다고 하더군요. 그 日本裸嫁理由史에는 일본에 최초로 화투를 전수한 백제인의 이름이나 나이는 기술된것이 없으나. 다만 일본인들은 그를 오광선인[五光仙人]으로 추앙 하였다고만 기록 되여 있다고 하네요.
그는 쳣다하면 오광을 다 먹고 싹슬이하였으며 특히 광 중에서도 맨 마지막으로 팔 광을 먹는 기술은 신기에 가까워 함께치는 일본인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일본인들은 오광선인의 팔광 먹는 기술을 높이기려 팔광의 해를 그린 깃발을 만들어 걸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일본의 국기인 일장기(日の丸히노마루)의 시초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불우한 이웃을 위하여 판돈 전부를 개평으로 기부하는 고귀한 화투정신을 가진 타짜였는데. 말년에는 전국에서 모여드는 인제들 때문에 오직 하루에 한판식만 지도 대판만 하다가 어느날 갑짜기 고도리속의 세마리 새를 찾아 입산하여 다시는속세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신비스러운 인물로 전해집니다. 오늘 날에도 일본전역 하우스에는 그의 자화상을 걸어서 불멸의 화투정신을 추앙한다고 합니다.
일화에 의하면 이 오광선인은 입산 직전 멀리 중국에서그의 소문을 듣고 신비한 기술을 사사 받고자 찾아온 한 젊은 이를 어여삐 여기시여 한달간 모든 재자들과의 대판을 중지하고 오로지 그 젊은 중국인과만 집중 대판을 하였는데 한달간의 식음을 전폐한 집중 대판으로이 젊은이는 머리가 다 빠졋다고하니. 가히 그 훈련의 강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읍니다. 이 젊은 이는 훗날 중국으로 돌아가. 화토 불모지 중국에 화투를 퍼트리기 시작 하였는데. 중국인들은 훗날 그를 가르켜 비광도사라고 불렀읍니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민화투 육백 월남뻥의 저급한 화투 문화이였는데 반하여 국내에서는 종주국 답게지속적인 연구와발전을 통하여 화투 문화의 최고봉이라 불리우는 고도리를 개발하여. 사대부 집안을 중심으로 하여 폭 넒게 행하여 졋다고 합니다. 고도리 문화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백성들 사이에서도 급속도로 확산 되였는데. 당시 고도리는 양반집 규방에서 많이 행하여졌으며. 단오절의 그네뛰기와함께 어염집 처자들의 두가지 레포츠로 자리 잡았읍니다. 그러나 호사다마란 말처럼 그 부작용도 나타 나는데요.
일부 고도리 중독증에 걸린 처자들이 고도리를 끊기 위하여 작은 칼을 가지고 다녔으며 이는 다시한번 고도리를 치며는 손가락을 자른다는 약속을 지키기위한 것으로 <은장도>의 효시이다. 한편 조선 말기에는 서양의 선교사들이 포커를 드려와 보급하기 시작 하였으니 그것이 <포커선교>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포커놀이는 카드의 킹과퀸그림이 왕권을 모독하는 것이라 하여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서양 선교사들과 일부 포커 옹호자들이 계속된 포커선교를 하였는데. 정부는 이들을 잡아 능지 처참 하였으니 이것은 신유년에 피를본 박해라하여 신유박해라 전해지는데. 그중 서양 선교사와 조선인 두민족을 같이 처단 하였다 하여 피박 즉 피박섰다의 어원이 된다.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위대한 놀이문화라 일크러지던 고도리 문화를 전해들은 서양인들이고도리의 비법을 계속 요구하였는데. 이들의 청을 물리치고 쇄국정책을 편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바로 흥선 대원군이었다.
당시 대원군은 고도리 문화가 미개한 외국인의 나라로 빠저나가는것은 숭고한 고도리정신 훼손이라하여 강력한 쇄국 정책을 펴개되는데...... 상황이 이러하자 프랑스는 7척의 함대를 앞세워 강화도를 점령하며 고도리문화 전수를 요구하는데. 대원군은 쌍피산성에서 이들을 격파하였으이 이것이 바로 병인양요이다. 이때 프랑스는 강화도 외고장각문서를 강탈하여가서 아직도 모두 돌려주지 않고 있으니 에이c.... 고도리 규칙과 화투장의 변천및그 내용이 집대성된 문서를 소장하고 있다고하니 반환이 절실하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조상들의 슬기와 얼이 배여있는 고도리 놀이문화를 미개한 서양인들에게 넘겨줄수없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 한것이여서 고개가 저절로 숙여질수밖에 없다. 이처럼 유구한 역사속에 내려오던 고도리 문화 전통은 개화기와 일제 36년간의 통치를 거치면서 유실되고 잊혀젔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서글프다. 조상들의 땀과 피와 눈물로 이루어진 고도리 문화 그덕택으로 이제는 짓고땡 두장메기 전0환고스톱 노0우 고스톱에 따봉까지 등장 하게 됩니다. 역시 종주국이야...
우리조상들의 빛나는 슬기와 얼이 담긴 화투장 당신이 오늘도 힘차게 내리치는 화투장 속에서 이제는 더이상 고도리가 일본의 잔재니하며 부끄러워 하지 마십시요 .... 그리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픽숀이오니 너무 오해마시고 그저 하루의 스트레스를 녹여주는 한편의 웃음거리로 생각하십시요 또한 종교인 여러분들에게서도 선조들의 거룩한 순교의 모독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한편의 웃음으로 양지하여 주십시요 게시판도 엽기에 올려야 되는데ㅋㅋㅋㅋㅋ
첫댓글 조상의 빛나는 전통을 이어서 고도리를 해야하는데,치면 잃으니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