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6월16일
쑥갓꽃으로 만든 새참
시골집 텃밭에 심어놓은 오이랑 가지 고추가 따가운 햇볕을 받고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올해 처음 수확한 오이는 아기 팔뚝만 했다. 8개를 따서 마루에 펴놓고 인증 사진을 찍었다. 뚱뚱하다고 놀리지 않았다. 튼실하게 자라줘서 고맙다고 다독여주었다. 처음 오이를 키워 보았기에 꽃이 피고 자라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감사할 뿐이다.
유튜브로 열심히 공부하는 남편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일찍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한 까닭에 부모님이 농사를 지었어도 남편은 낫 한번 잡지 않았다고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그래도 자란 환경 탓인지 베란다에 텃밭을 만들어 상추 키우고 고추도 심어서 가을에 붉은 고추도 땄다. 포도도 심어서 어느 해 크리스마스에는 포도 한 송이를 먹어보는 기적 같은 일도 맛보았다.
시골집에 아무도 계시지 않으니까, 우리가 주말농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집수리한다고 바쁘지만, 틈틈이 텃밭을 가꾼다. 어머님이 짓던 밭은 형제들이 모여서 들깨와 고추와 땅콩 고구마를 심는다. 땅이 넓어서 가을에는 제법 수확한다. 들기름을 짜서 형제들이 나눠 먹는 고소한 추억을 해마다 만들고 있다.
주말마다 시골집에 내려가서 집 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있다. 집 안에 있는 텃밭에 고추하고 가지 토마토 딸기 포도 등등 여러 가지를 심어놓았는데 손이 서툰 우리는 놀기 삼아 텃밭을 가꾼다. 한 삽 뜨고 앉아서 쉬고 잡초 몇 개 뽑고 쉬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그렇게 즐겁게 보낸다.
윗도리까지 벗고 창고를 짓는 남편에게 돌쇠 같다고 놀렸다. 곡괭이로 바닥을 깨고 흙을 고르는 작업을 한 낮에 하고 있으니, 걱정이 태산인데 내 말은 듣지 않는다. 방에서 에어컨 켜놓고 누워 있으려니 마음이 불편하고 나가서 구경만 하는 것도 장난이 아니다. 얼음물 대기 시켜놓고 물수건을 수시로 갈아준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니 온몸으로 비타민D 받고 있다고 하얗게 웃는 남편이 사랑스럽다.
텃밭 한구석에 쑥갓꽃이 노랗게 피었다. 쑥갓꽃이 한 무더기 피어있으면 참으로 예쁘다. 집에서 열무를 키우면서 열무꽃을 남편에게 선물로 받은 기억이 났다. 쑥갓 줄기를 잘라줘야 키만 크지 않고 옆으로 가지를 뻗는다고 한다. 꽃을 잘라내는 일이 처음에는 아깝고 서운했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알고 이벤트를 준비했다.
시골집 수리한다고 애쓰는 남편에게 쑥갓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어서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노랗게 핀 꽃줄기를 하나씩 꺾으면서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하는 일은 나도 행복해지는 일임에 내내 마음에서 꽃향기가 새록새록 피어나는 것 같았다.
쑥갓꽃을 꺾다가 문득 이 꽃도 먹을 수 있을까? 검색했더니 꽃차도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얼마나 반가운지 ‘그래 오늘 새참은 이것이다!’오래전에 깨꽃으로 튀김을 했었는데 눈꽃처럼 예뻤다. 튀김가루가 하얗게 꽃처럼 피어나는 데 환상적이었다. 오늘 새참은 쑥갓꽃과 깻잎 튀김을 하기로 했다.
돌쇠처럼 머리에 질끈 수건을 두르고 일을 하는 남편에게 쑥갓꽃으로 만든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남편이 어이없어하면서 ‘예쁘네, 이렇게 꽃다발을 다 만들고 시인의 아내는 다르구나.’하면서 안아주었다. 내가 생각해도 시인은 맞는 것 같다. 꽃다발을 풀어서 농기구 창고에 얌전하게 앉아 있는 노란 양은 주전자를 꺼내서 꽃다발을 주전자에 담았다. 그대로 시들어 버리면 속상하고 미안해서 주전자에 물을 담고 꽃을 심은 것이다. 얼마나 귀한 풍경인지 가슴이 콩콩거렸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옥상 계단에 주전자 화병을 앉혀놓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우리 부부의 추억 속에 살아있을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무더운 날씨가 두렵지 않았다. 가스레인지 앞에서 튀김을 한다는 자체가 누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사랑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튀김가루가 없어서 밀가루옷을 입혀서 튀김을 했는데 내가 생각한대로 환상적인 요리가 되었다. 어느 고급 한정식 집에서 나오는 튀김이 이렇게 청초할 수 있을까? 보기도 아까운 요리다. 노랗게 핀 꽃이 파릇한 쑥갓과 어울려서 하얀 천에 노란 쑥갓꽃을 수놓은 듯했다. 깻잎도 깨 순 채로 튀김옷을 입혀서 튀겼더니 하얗게 뭉게구름이 일듯이 피어나는 자태가 눈이 시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이런 풍경을 내가 만들고 즐기고 있음에 정신이 몽롱했다. 부엌에는 선풍기도 없는데 땀을 흘려가며 새참 준비하는 나에게 자연이 너무도 귀한 선물을 주었다.
접시에 담는데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예뻐도 되는 거야1 혼자 보기 아깝다.’ 혼자 중얼거리며 하얀 접시에 세팅했다. 쑥갓꽃이 다시 피어나는 것 같았다. ‘죽어서 다시 살 수 있으리’ 내 졸시 <마중물> 한 구절이 생각났다.
앉은뱅이 밥상에 새참을 마련해서 남편과 마주 앉아 먹으니 <천상의 정원>이 따로 없다. ‘바삭하고 고소하고 맛있네!’ “쑥갓꽃이 예쁘지 않아?” 남편은 맛을 말하고 아내는 꽃을 말하고 있다. 새참이 이렇게 예뻐도 되는 거야? 주전자 화병에 꽂아놓은 쑥갓꽃이 생글생글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