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속의 한글
한 2년전 어느 여름 밤 바닷가에서 우리 가족은 아는 가족과 함께 하늘의 총총히 박혀있는 별들을 보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조용히 듣기만 하고 말수가 적은 그러나 깊고 해박한 지식을 보유한 그 집 아저씨는 문득 이런 얘기를 꺼냈다. ‘들은 얘기인데요, 올림픽 등 대형 국제 경기가 열리면 보도실에서 각국의 기자들이 경기 상황을 자국으로 송고하는데 한국 기자들이 항상 한참 전에 먼저 손 털고 일어난 답니다. 한국 사람들이 손놀림이 빠르기도 하겠지만 동일한 정보를 문자화 하는데 한글이 그만큼 효율적이라는 거지요. 생판 처음 온 외국인도 며칠만 배우면 더듬더듬 길가 간판의 글자를 읽을 수 있다고 하니 아마 이런 글자는 세계에서 한글밖에 없다고 합니다.’
한글의 우수성이 강조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내가 새로이 놀라는 것은 그 디지털 적응성이다. 0, 1, 2, 3, 4, 5, 6, 7, 8, 9 열 개의 자판을 갖고 모든 한글을 약어 없이 그대로 쓸 수 있고 어려운 복모음, 쌍받침 기가 막히게 만들어 낸다. 한자나 카나는 말할 것도 없고 한때 타자판에서 우리 글의 받침, 복모음 등을 비웃던 26자의 영어 알파벳도 일단 휴대폰에 들어오면 힘을 못 쓴다. 문자로 ‘love’를 치는데 11개의 키 누름이 소요되고 ‘사랑’을 치는 데는 8개의 키 누름이 필요하다. ‘beautiful’과 ‘아름다운’, ‘dog’과 ‘개’ 등등.. 비교가 안 된다. 특히 영어식에서 한 자판을 두번 세번 반복해서 누르는 따분함에 비해 천지인의 세 모음 키를 다채롭게 조합해서 만드는 다양한 입체적 복모음들은 마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듯한 재미를 준다. 그네들이 즐겨 쓰는 4(for), 2(to), u(you) 등은 애교로 보아주자.
요즘 중고등학생들 문자 보내는 것 옆에서 보면 기가 막힌다. 말하는 속도의 절반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딸애의 휴대폰은 1년도 안되었는데 자판 글씨가 거의 지워져 있다. 청각 장애인들에게 휴대폰은 기존의 수화를 대체할 정도로 매우 효율적인 의사 전달의 필수품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에 내어놓을 가장 자랑스런 우리 문화로 주저 없이 한글을 든다. 우리 민족의 창의성과 우수성을 긴말 필요 없이 확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백 육십년전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는 한 착하고 현명한 임금이 어려운 한문을 배우지 못한 어리석은 백성들을 위해 우리 말을 소리나는 그대로 쓸 수 있도록 만들었던 한글. 그 위대하고 거룩한 발명품이 오늘날 첨단 IT 제품에서 더욱 빛나고 있으니 이 어찌 기념할 만 하지 않은가?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8812543555001258211(한글 만세!)